22. 나름 분위기 있게 와인 한 잔
ADVENT MHTS / 동거 n년차 뿅감독×송선수 setup
명헌이 들어오자 켜지는 센서등이 이 집안의 유일한 불빛이었다. 신발을 벗을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눈으로 거실을 훑고, 인기척을 잡기 위해 숨을 멈췄다. 조용했다. 감지되는 움직임이 없어 센서등마저 꺼진 집은 적막 그 자체였다. 어제밤 부딪친 언성 이후로는 얼굴도 못 봤고 종일 연락도 안 했다. 아침에 작은 방을 살폈을 때 잘 개진 이불만이 있을 뿐이었다. 들어오는 길에는 중식 외식을 할 때면 항상 가는 식당에서 탕수육과 고추잡채를 포장하고, 근처 와인샵에서 하우스와인을 하나 구매했다.
그저 그 순간 번쩍 부딪친 것일 뿐, 오래 끌 일도 더 악화될 이유도 없는 일이었다. 서로를 부르는 한마디만으로도 녹아 사라질 엉성하게 낀 서리와도 같았다. 사 온 것들을 내려두려 주방의 불을 켜자 식탁에 엎드려 숙면 중인 연인, 그리고 그 옆엔 케이크 상자와 와인이 있었다. 자신의 손에 든 와인과 같은 레이블에 살짝 웃었다. 둘 다 와인은 잘 모른다. 이 와인이 그간 선물로 받았던 와인들 중에 입맛에 맞다며 이름을 익혀둔 유일한 와인일지도. 케이크 상자의 윗면에 난 창으로 내용물을 슬금 확인핬다. 딸기 케이크. 이번엔 본인보다 태섭이 좀 더 무드가 있었던 것 같다.
“태섭, 들어가서 자야지”
고개를 번뜩 반쯤 들어 올린 태섭이 눈도 못 뜨면서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얼굴을 든다. 얼굴을 감싸 눈꼬리를 살살 엄지로 눌러주는 명헌의 손길에 가는 눈을 뜬 태섭이 푸스스 웃는다. 엉성한 서리는 흔적도 남지 않고 녹아 증발했다. 케이크 먹어야 해서 자면 안 된단다. 그 전에 저녁부터 먹어야 한다며 포장해 온 것들을 앞으로 끌어왔더니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다시 푸스스 웃는다.
“세수하고 올래요”
“다녀와 뿅”
태섭이 몸을 일으켜 명헌의 어깨에 살짝 얼굴을 부비는 평소엔 없을 간지러운 몸짓을 한다. 입 밖으로 내고 싶은 말이 따로 있지만 쑥스러움에 하기가 어려움을 표현하는 것임을 모를 수 없다. 그 마음이 전해졌음을 순순히 표현해 주기엔 받은 귀여움이 과해 결국 장난끼가 상냥함을 눌러버렸다. 명헌이 태섭의 이마를 슬쩍 밀고 올라가려는 입꼬리에 힘을 주며 내려다보았다.
“눈꼽 닦지마용”
“에이씨! 이명헌!!”
도망가듯 사라지는 연인에 그제야 낮게 소리를 내 웃었다. 케이크는 잠시 냉장고에 두고 저녁으로 사 온 음식을 접시에 담아 테이블을 세팅했다. 오랜만에 꺼내보는 와인잔은 물세척을 하고 키친 타올로 물기를 닦았다. 와인 코르크를 스크류에 걸어 들어 올리는 중에 태섭이 돌아왔다. 두 병의 와인, 그것도 같은 레이블의 병을 눈치챘는지 웃으며 의자에 앉는다. 같은 마음이라는 게 와인으로 표현된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붉은 술이 잔으로 쏟아진다. 옆자리를 빼서 앉는 명헌에게 태섭은 먼저 잔을 들어 살짝 기울어 보였다.
“건배사 있어용?”
“응?… 그… 미안,해?”
잔의 목을 잡고 마주 기울인 명헌이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미안해요”
“미안해용”
유리가 맞부딪치며 청명한 소리를 낸다.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는 움직임은 수줍지만, 기회에 닿았음을 확신할 땐 크게 다가올 줄 아는 송태섭. 이건 명헌이 좋아하는 태섭의 모습들 중 하나다. 그리고 다가왔을 땐 보상은 확실하게 해줘야 했다. 탕수육 한 조각을 집어 소스에 콕 찍었다. 와인 몇 모금 넘기고 잔을 내리는 타이밍에 입 앞에 대령해 드리니 고개가 뒤로 슬쩍 빠진다. 탕수육 한번 명헌 한번 보던 태섭의 눈썹이 슬 방향을 달리한다.
“젓가락은? 디러 이명헌”
“더럽다니용”
“아까 송태섭 얼굴 쭈물거리면서 눈꼽 만졌을 거 아냐”
“본인꺼면서 뿅”
“아아- 한마디도 안 져”
탕수육을 앙 문 태섭이 눈을 감고 킥킥거리면서도 열심히 턱을 움직인다. 명헌은 그런 태섭을 보다 와인잔에 첫입을 댄다. 함께 아는 와인에 의미가 하나 더 새겨지는 것,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 해도 이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을 수 있을 물건이 생긴다는 것. 분명한 행복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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