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같이 도서관 가서 책읽기
ADVENT MHTS / 동거 n년차 뿅감독×송선수 setup
시험기간은 끝난 것 같았다. 기억 속의 캠퍼스는 늘 활기가 있었고 학생들로 반짝이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꽤 조용하고 쓸쓸한 기운이 돈다. 태섭이 홀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구경이라는 이유로 아무 건물이나 들어갈 수도 없다. 졸업생도 외부인으로 분류되는 마당에 정말 아무 인연도 없는 순도 100% 외부인에겐 그 문턱은 너무 높다. 명헌의 모교를 오는 건 처음이었다. 따라오겠다고 한 건 자신의 충동적인 결정이었으니 조금 심심해도 감내해야한다. 오전엔 백화점에서 만년필을 함께 골랐다. 은사를 찾아봴 때 빈손으로 갈 순 없다며 진지하게 고민하던 명헌의 표정이 생각나 길 가다 대뜸 혼자 웃는 사람이 된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고 오라 등 떠밀어 보냈으니 시간은 꽤 걸리겠지. 목적지를 잃어 단지 걷는 건지 길을 잃은 건지 모를 태섭을 캠퍼스 안내판이 구원한다. 동글동글 눈을 굴려 현위치로부터 가까운, 캠퍼스 내 큰 녹지를 끼고 있는 건물의 아이콘 위로 손가락을 대며 끄덕.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야 해서 건물 앞에 다다랐을 즈음엔 조금 땀이 났다. 다행히도 게이트가 오픈된 상태였기에 별다른 확인 절차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건물 홀 공간에 트인 구조의 카페가 있어 창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점퍼를 벗어 팔에 걸며 마실 음료를 주문하고 계산으로는 명헌의 카드를 꺼냈다. 결제 문자가 가면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있지 않을까, 명헌이 카페의 이름을 봤을 때 이 곳을 떠올린다면의 전제가 붙어야 하지만.
홀 공간에서 도서 자료 열람이 가능한 공간으로 이어지는 문을 통해 흘긋 안을 구경했다. 책상 앞보단 코트 위의 삶을 디딘 태섭에게는 친근함 보단 낯설음이 큰 곳이기도 했다. 이내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잎사귀를 잃은 나무는 불어오는 바람에 잔가지를 털며 가지 사이사이를 통과하는 햇빛과 교감한다. 찬 공기가 차단된 공간으로 드는 햇빛과 교감으로 태섭은 눈이 살살 감겨오는 것 같기도 했다. 타이밍 좋게 음료가 완성되어 태섭이 졸음을 밀어내고 받아왔다. 차가운 음료에 졸음을 다시 한번 더 밀어내고 의미 없이 폰을 만지다 팔을 테이블 위로 쭉 뻗으며 푹 엎어진다. 시간은 따스함을 안고 흐른다.
“태섭”
얕은 잠에 빠져있던 태섭이 금세 상체를 바로 세웠다. 자신이 먹으려 시킨 음료는 명헌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진짜 카드 문자 보고 왔네. 이명헌 도서관 꽤 많이 들락거렸나 보다. 아직 기억하는 걸 보면.
“인사는 잘 드리고 왔어요?”
“응, 온 김에 들어가 볼까용”
태섭의 손을 잡은 채 걸음을 옮기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명헌에겐 반가운 공간일 테니 이 시간에 재를 치고 싶지도 않고, 태섭도 명헌의 과거가 깃든 공간은 궁금하기도 해 그 걸음에 속도를 맞추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열람실은 실례가 될 터라 도서가 있는 자료실밖엔 선택지가 없긴 했다. 열을 맞추어 세워진 책장 사이를 걸으면 목소리를 절로 낮아진다.
“잘 찾아보면, 오래된 책엔 아직 대여 카드가 들어 있다 뿅”
“푸흐… 그런 거만 골라 읽었어요?”
“기분 전환”
그러면서 명헌이 집어든 건 책의 색바램이 심상치 않은 심플한 디자인의 책이었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중 하나였다. 뒷표지를 펼치니 책과 비슷할 정도로 누렇게 변해버린 봉투와 그 속에 꽂혀 윗부분이 드러나 있는 낡고 빳빳한 종이가 있었다. 설마 하면서도 들이치는 확신, 태섭은 그 종이를 조심스레 꺼냈다. 이름 석 자가 연인의 글씨체로 반듯하게 적혀 있다. 대여일에는 월과 일이 숫자로 적혀 있었다. 연도는 적혀 있지 않아 알 순 없었다.
“이거 맘대로 적으면 안 되는거 아니야?”
“과거의 형태만 남은 거니까용, 기념 뿅”
“이거 말고 더 있어요?”
왠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여 태섭이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삼킨다. 가볍게 팔을 툭툭 치고 얼른 더 찾아보자는 듯한 태섭의 턱짓은, 이명헌 이름이 적힌 도서 카드 찾기 대모험의 신호탄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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