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감기에 걸린 상대 타박하며 간호하기
ADVENT MHTS / 동거 n년차 뿅감독×송선수 setup
송태섭. 현재 상태는 빡침.
일어났는데 이명헌은 없었고, 일찍 나간다는 얘기도 들은 적 없다. 급한 일이 생겼을 수 있다. 깨우기가 뭐해서 조용히 나갔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남겨진 메세지도 없어, 그래 정신없다 치자. 그래서 먼저 메세지 남겨뒀다. 러닝을 다녀와서 준비를 하고 구단에 도착할 때까지도 무소식이다가 점심 즈음에 받은 답이 며칠간의 외박을 알리는 말이었다. 이유를 붙이지 않은 통보에 스무고개를 하는 건 태섭이었다. 일 때문?. 아니. 혹시 집안에 무슨 일 있어?. 아니. 지인 상이라도 갑자기 생겼어요?. 아니.
“아악! 답답해 죽겠네!”
전화를 걸어도 안 받잖아. 벤치에 푹 꺼져 앉아 코트 위를 달리는 팀메이트들을 보며 괜히 눈에 불을 켰다. 다들 나쁘지 않은데 왜 그렇게 화가 났냐는 감독님에게, 교체해 줘요 한마디 했다. 올라온 화를 전투력으로 바꿔 연습게임에 쏟았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뜨거운 물로 샤워까지 하니 겉이고 속이고 인간 용광로가 따로 없다. 대신 머릿속은 열기가 빠지며 좀 진정됐다.
이명헌이 지금 숨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 숨겨야 하는 거라면 거짓말로 위장이라도 해야 할 텐데, 지나치게 정직모드였다. 단지, 말을 안 할 뿐인.
“진짜 너무하다 뿅쟁이"
시동을 건 건 한참 전인데 목적지를 정하지 못해 여전히 구단 주차장이었다.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잡으러 가지. 과거에 이명헌이 이유를 대지 않으면서 대면을 거부했던 적이 언제였나-하는 기억 주머니를 뒤졌다. 샤워실에서 씻고 난 후엔 따로 세팅을 하지 않아 눈꺼풀을 간지럽히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다 콱하고 움켜잡았다.
“설마"
빠른 손놀림으로 명헌에게 메세지를 남기고 태섭이 차를 출발시켰다. 같이 살기 전에는 아픈걸 숨기지 않았었다. 간호는 죽어도 안 받을 거라고 집이 아닌 호텔에 묵으면서 태섭이 몰래 집으로 찾아오는 걸 차단하긴 했었다.
아픈 거 좀 보이면 어때, 선수한테 옮기면 안 된다, 그렇다고 사람을 그렇게 밀어내, 밀어낸 게 아니라 걱정을, 걱정하는 사람이 걱정을 더 시키고 있다고 생각 안해요? 바득바득 싸웠던 때도 있다. 지금도 타협점은 찾지 못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동거 후엔 아예 집을 나가버리니까 더 열받잖아. 아픈 일이 드문 사람이지만 겨울이 시작되는 즈음엔 감기가 꼭 다녀간다.
죽을 사고, 해열 시트를 사면 될 것 같았다. 명헌의 성격상 병원은 알아서 잘 갔을 거라 약은 따로 사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걸 사서 다시 차에 올랐을 때, 묵고 있는 곳의 정보를 남겨둔 명헌의 메세지를 확인했다. 왜 그런지 아니까 다시 얼굴 안 볼 생각 아니라면 말하라 협박조로 말했더니 명헌이 한발 물러났다.
대신 꼭 마스크 껴용.
완전히 물러난 건 아니었다. 하여간 고집은. 문을 열며 태섭을 안으로 들이는 명헌 역시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이마가 벌건 게 열이 제법 오른 것 같아 해열 시트부터 뜯었다. 시트를 붙여주려 태섭이 손을 뻗으니 손으로 가로 막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손에서 시트를 가져가려는 명헌의 움직임이 이번엔 태섭의 손에 가로막혔다. 만나서 인사 한마디 없이 손길도 거부하는 명헌 때문에 걱정되는 마음이 슬슬 짜증으로 변해갔다. 크게 한걸음 다가가자 한걸음 똑같이 물러나길래 그대로 저벅저벅 걸음으로 몰아 침대에 앉혔다.
“누워”
“태섭”
“그냥 좀 받으면 안 되나? 나 아프면 이명헌은 그냥 놔둬?”
얌전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운 명헌의 이마에 해열 시트가 찰싹 붙는다.
“이명헌이 감기 안 옮겨도 내가 화병으로 앓아눕겠다”
약국에 들렀다 나오는 길에 과일 트럭에서 산 귤을 꺼내 손안에서 둥글리다 껍질을 벗겨낸 태섭이 한껏 내리깐 눈으로 명헌을 바라본다.
“마스크 잠깐 내리고 아 해”
귤의 달달함과 시원함이 기분 좋은 듯 웃는 눈매에 태섭의 눈이 가늘어진다.
“웃어?”
“태섭, 말이 자꾸 짧다 뿅”
“속 썩이는 애인한테는 반말이 딱이라”
또 웃는다. 그런 명헌을 보며 귤 하나를 더 집어 든 태섭이 옅은 한숨을 쉰다. 아픈 사람보고 귀엽단 생각하면 안 되는 거 맞지.
내일은 집에 들어와요, 안그럼 내가 가출할 거니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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