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팝콘들고 텔레비전에서 하는 특선영화 보기
ADVENT MHTS / 동거 n년차 뿅감독×송선수 setup
화면 상단에 떠 있던 제목이 사라졌다. 이 광고가 끝나면 영화가 시작할 터였다.
“광고 끝나 가는데-”
“거의 다 됐뿅”
명헌이 나무 소재의 샐러드 볼에 전자렌지에서 막 꺼낸 팝콘 봉지 내용물을 털어 담았다. 갓 튀겨져 하얗게 터진 옥수수 알갱이들의 향에 참을 수 없어 하나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어깨 한쪽을 붙이며 나란히 앉아 태섭에게 팝콘을 안겨줬다. 영화채널도 많고 OTT 서비스로 원하는 때에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오늘은 날짜는 물론이고 시간 조정도 할 수 없는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맞춰야 하는 지상파 채널의 연말시즌 특선 영화를 보는 날이었다. 당연, OTT 서비스에 검색 한 번이면 언제든 볼 수 있는 영화긴 했다.
특선영화 홈데이트의 제안을 한 건 명헌이었다. 같은 무비 타임이어도, 이따 영화 볼래? 하는 것과 이날 이 시간에 이걸 해준대, 같이 볼까? 하는 것의 무드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이유였다. 로맨틱한 거 은근 좋아한다니까 이명헌. 제안을 들었을 때 장난식으로 놀리기도 했다. 하지만 태섭도 명헌이 말하고자 했던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오늘 하루 종일 다른 일정들이 흐트러지지 않게 신경을 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영화 볼 때 뭘 먹을까를 생각하고, 집에 와서도 시간을 확인하며 집안일 같은 것들을 끝내는 그야말로 종일 무비 타임 데이트만 생각하고 신경 썼다. 그렇게 조금씩 쌓인 신경들이 영화가 시작할 즈음 자리를 잡고 앉을 땐 커다란 행복감이 되어 돌아왔다. 태섭이 명헌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올리며 슬쩍 깍지를 꼈다. 명헌은 팝콘과 가까운 손이 잡혀 먹을 수가 없다는 엄살을 부렸다. 태섭.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면 태섭의 손이 팝콘 하나를 입속으로 배달했다.
템포가 조금은 느린 탱고 음악, 화려한 무늬의 스페인 타일 위에서 두 주인공이 조금은 장난스럽게 스텝을 밟고 가까워지는 숨결이 아슬하게 거리를 두다 맞닿을 때 태섭이 명헌의 볼을 쿡쿡 눌렀다. 오래된 건물의 낡고 거칠지만 밝은 전등 빛이 두 사람의 몸짓이 결코 욕망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 매료되어 집중하던 명헌이 태섭의 찌름에 고개를 돌렸다.
“…ㅋㅋ..”
“으으응”
태섭이 입술로 팝콘을 물고 빨리하라신다. 방금 장면이 어땠더라. 가까이 다가가 이마를 대고 시선을 마주하면, 예쁘게 웃는 눈매 속에 지금 막 전환된 영화 장면 속 외부 벽 등의 주황색 빛이 들어찬 눈동자가 있다. 태섭이 입술을 가까이 대려 하면 명헌이 이마를 살짝 떼며 거리를 벌리고 태섭의 입매에 미소가 어리면 다시금 이마를 마주 대며 명헌이 같이 웃었다. 팝콘 위에 버드키스를 한다. 한 손으로 명헌의 통수를 잡고 끌어당기는 태섭의 노골적 요구에 팝콘은 명헌의 입으로 옮겨갔다. 잘했어 감독님. 덤으로 볼 뽀뽀를 얻었다.
“이젠 척하면 척이지 뿅”
다시 정면을 향해 자세를 바로 하고 영화에 집중했다. 손등 위로 겹쳐 잡았던 손은 이제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다.
“왜 흔들릴까”
“그래도 사랑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용”
“너무 많은 실망을 했잖아요, 거리를 두려고도 하고”
“그래도 완전하게 정리가 된 건 아니잖아”
“우리도 서로에게 지쳐서 저렇게 막 싸우고, 헤어진 듯 굴다가 붙잡으면 흔들리고 그러는 순간이 올까?”
“태섭, 지금 이별을 생각하는 건가용”
“만약에요 만약에”
“만약도 조금의 가능성은 깔려있”
“아냐. 아니니까 그 입 넣어요 ㅋㅋㅋ”
태섭이 정말 입술을 밀어 넣으려는 듯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왔다. 티비 속에선 홀로 남은 주인공이 흐느낀다. 손목을 잡아 내리며 명헌은 입술 눌림에서 탈출했다. 팝콘 하나 더 주세용. 말은 주세요 라면서 더는 손을 쓸 수 없게 태섭의 양 손목을 한 손으로 잡고 팝콘을 입술에 물려준다. 탱고 음악은 없다. 멜로디를 타는 끈적한 줄다리기도 필요 없다. 다가오는 명헌의 얼굴에 태섭이 눈을 내리감았다. 까맣게 변한 화면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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