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클] Recovery
대니의 조언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참고했습니다.
내 두 손에 피가 묻어 있어. 그것이 새벽 네 시에 잭이 클리브를 깨우고는 툭 던진 말이었다. 클리브는 반사적으로 '지금 네 손은 깨끗한데 무슨 소리야' 따위의 말을 하려다 잭의 의도가 그런 게 아님을 깨닫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잭이 말을 이었다.
나에게 이 모든 일상을 영위할 자격이 있긴 한 건지 모르겠군. 혼란스러워. 클리브는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잭을 데리고 대니를 찾아갔다. 대니는 여전히 자기 눈앞의 사람이 클리브의 복제된 육체에 이식된 잭 빈다우스라는 사실을 다소 두려워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데도 언제나처럼 최적의 조언을 제공해주기 위해 애썼다.
실존한다는 건 결국 자신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죠. 맞는 말이지만 너무 원론적인 발언 아니냐고 클리브가 끼어들려던 찰나 대니가 말을 이었다. 제빵 같은 활동에 집중해보세요. 재료의 정량을 지켜 구우면 제대로 된 제품을 보상으로 받는 경험이 당신의 마음을 치유해줄 겁니다.
기껏 새로 사 온 식재료들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썩힐까 봐 조마조마했던 클리브의 우려와는 달리 잭은 곧잘 이것저것 만들어냈다. 건포도를 넣은 파운드케이크부터 시작해서 스콘, 비스킷, 아티잔빵 등등. 규칙을 지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경험한다는 건 분명 유의미한 것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대니의 조언은 참으로 적절한 것이었다.
오늘도 잭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열심히 빵 반죽을 치대고 있다. 클리브는 문득 언젠간 저 손의 핏자국이 밀가루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될 거라는 그런 실없는 상상을 하면서, 잭의 부탁에 따라 오븐을 예열하러 부엌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791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