Аделаида
아델라이드에 대하여
어느 날 갑자기 우편함이 생겼다.
주인님이 죽은 지 벌써 일주일째다. 라이는 자신을 만들어준 주인이 죽었음에도 스스로의 생활이 그다지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주인님을 위한 식자재를 조달하는 시간과 음식을 만드는 시간, 주인님과 대화하는 시간 등이 사라졌을 뿐이니까.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다. 안드로이드의 제작이유는 인간을 위해서이고, 아델라이드가 제작된 이유는 오로지 표도르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니까. 표도르가 죽음으로써 아델라이드의 존재의의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을 아직 지극히도 인간적인 안드로이드는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 안드로이드는 기계이기 때문에 지극히 논리적으로밖에 사고하지 못하는데도, 제작자의 의지에 따라 의도적으로 논리적이지 않게 사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안드로이드는 굉장히 인간적으로 변하였고, 그 뜻은 무척이나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으로 사고한다는 이야기이다. 그것도 아직 불완전해서, 이 안드로이드는 자신의 유일한 존재의의이자 제작자로부터 학습한 인간적인 면모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학습하지 못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흰 도화지 같은 상태의 빈 공백이다. 그러니까, 라이는 감정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다는 말이다.
라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을 위해 행동하기 위해서였고, 인간이 죽음으로써 라이가 할 일을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라이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자신의 존재의의가 사라졌지만, 인간적인 안드로이드는 원래의 하루 루틴대로 행동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주인의 죽음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만 하루 만에 우편함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로써 라이는 새로운 인간을 얻었다. 비록 그 인간은 직접 이야기한 적도 없고, 만나본 적도 없어 어떻게 생겼는지도 전혀 모르는 상대일지라도 말이다. 라이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 본인은 외로움을 굉장히 많이 타는 기계인지라 누군가와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외로워서 금방 스러질지도 모르는 수명이었다.
이쯤 되자 아델라이드라는 안드로이드를 왜 이렇게 만들었지? 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럼 안드로이드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빠질 수 없는 로봇공학자의 이야기를 해보자.
서기 2080년 경, 로봇공학자는 20대였다.
그는 세계에서 꽤 똑똑하기로 유명한 러시아의 천재였으며, 명성이 자자한 공과대학교 대학원생의 신분이었다. 오늘도 그는 랩실의 교수를 어떻게 죽일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연구실의 일을 해치워나가고 있었다. 다른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그 당시 지구는 어제처럼, 그제처럼, 몇 년 전처럼 환경오염이 심각하다고 분기마다 방송했으며, 환경 관련 규제가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공학자들과 많은 사업자는 이 규제를 어떻게 요리조리 피해 갈 수 있을지 고민했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상기후’ ‘환경오염’ 등의 키워드는 자신의 사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기후변화의 변화폭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멸망은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았다. 로봇공학자는 평소처럼 그저 자신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뿐인데 지구엔 자연재해가 하나둘씩 일어났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곳에서 지진이 일어났고, 태풍이 발생할 수 없는 곳에 태풍이 발생했으며, 대륙이 조금씩 잠겨갔고, 지구는 점점 뜨거워져 갔다.
일정 수준을 넘어가자 매일매일 하루에 하나가 넘는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인간은 자연재해의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했다. 제어할 수 없는 재해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것이 끊임없이 발생하니 자연재해 막을 방도를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로봇공학자는 그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자연이 찾지 못하도록 웅크리고, 숨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로봇공학자가 살아남은 것은 정말로 기적이라고 불릴 만하다.
어느 날부터 자연재해의 발생이 줄었다. 워낙 많이 지진과 쓰나미 홍수 등을 경험하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 로봇공학자는 어떻게든 견뎌냈고 인류의 대부분이 죽자 자연은 그제야 만족했는지 서서히 잠잠해졌다. 약 2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 사이 로봇공학자의 곁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엔 분명 여러 동료와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어도 외로움을 느낄 겨를은 거의 없었다. 그는 밀려오는 자연재해들을 견디는데 정신이 팔렸기 때문에. 그러나 점점 생각할 시간이 늘어나고,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자 그는 깨달은 것이다. 자신은, 너무나도 외로웠다.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그야 당연하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주변을 둘러봐도 살아있는 인간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인간이 다 죽은 건가? 절망감이 들었지만, 그에겐 다행히도 인간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만한 능력이 존재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과거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아직 멸망이 밀려오지 않았을 때, 평화로운 시간대에선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데에 많은 규제가 존재했다. 인간들은 너무나도 사회적이라 점 세 개 그려놓은 돌멩이에도 애착과 동정심을 금방 만들었으니, 인간과 비슷한 존재에게 어떻게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있을까. 초반 규제가 없었을 때 벌어지는 안드로이드와 관련한 수많은 사건으로 인해 제정된 규제들이었다. 모두 인간의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규제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러했다. “안드로이드를 인간과 똑같이 만드는 것을 금지합니다.”
그러나 이미 인간 사회는 무너졌고 인간들이 죽어 사회는 사라졌으니 로봇공학자는 거리낄 것 없이 안드로이드를 만들기로 한다. 누구보다도 인간답고, 감정적인 기계를. 부디 자신의 친구이자, 가족이자, 동료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떠한 완벽한 기계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노동력은 커다랬고, 그것들은 원래 여러 사람의 협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었는데, 로봇공학자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야만 했으니까. 그것도 그가 바라는 것은 완벽하게 인간적인 기계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몇 년의 시간 동안 로봇공학자는 계속해서 기계를 만들었다. 기계의 외형과 관절, 피부와 머리카락, 중추가 되는 메모리까지. 그것들을 위해 찾아내야 하는 부품들이 많았고, 결국 찾지 못하면 스스로 제작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그는 높은 가을하늘의 색을 닮은 눈동자를 기계에게 주었으며, 잿빛 머리카락을 기계에게 부착했다. 기계가 완벽하게 작동하기까지는 오랜 시행착오가 있었다. 어느 날은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해서 수정해야 했고, 어느 날은 너무나도 기계다워서 수정해야 했고, 어느 날은 제대로 사고하지 못해서 수정해야 했다.
그리고 로봇공학자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자, 가족에게 ‘아델라이드’라는 이름을 준다. 표도르라는 제 이름과 연관된 것이었다. 아델라이드, 라이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로봇공학자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웃고, 슬픈 일이 있으면 위로하게 되었으니까. 그는 자신의 작품이 어느덧 완벽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로봇공학자에겐 가족이 생겼다.
그렇게 안드로이드 라이는 완성됐다.
라이는 주인에게서 여러 가지를 학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라이는 자신의 주인에 대해 점점 더 잘 알게 되었다. 라이가 생각할 때 자신의 주인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집스러운 면까지 더해져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만 하고 전혀 꺾일 생각이 없는 면까지!
그러한 성격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만, 때때로 주인이 우울함에 빠지는데 한몫하는 것도 맞았다. 그래서 라이는 주인에게 좋은 말만 들려주었다. 자신의 주인이 기운을 내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와, 오늘은 날씨가 좋아. 낚시하러 나갈까?
저기 좀 봐, 꽃이 예쁘게 피었어. 냄새를 맡아볼래?
맛있는 음식을 차려줄게. 내가 모르는 레시피란 아무것도 없으니까 먹고 싶은 걸 모두 말해봐!
그렇게 흘러간 20년이었다. 라이가 제작된 지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고, 그에 비례해서 로봇공학자는 늙어간다. 예전 사회에서는 100세를 넘겨서 사는 것이 빈번했지만 문명이 사라진 곳에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자신의 수명을 늘릴 방법이 없다. 로봇공학자는 문명이 스러진 세계에서 살 만큼 살았고, 죽을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자신의 몸은 이제 걷는 것도 힘들었고, 밥을 먹고 누워있기가 고작이었다.
그런 늙은이를 돌봐주는 것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의 라이였다. 라이는 누워있는 제 주인을 대신해서 손과 발이 되어 움직여 간호했다. 주인에 대한 걱정은 들었지만, 인간은 원래 저 나이대가 되면 수명이 다한 것이라는 정보가 있었기에 그저 받아들였다. 주인의 도움 없이도 저는 주인과 생활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로봇공학자는 그저 숨만 쉬는 데에도 기력을 다 써서 힘에 부쳤지만, 한편으로는 혼자남을 제 가족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라이는 홀로 남을 것을 가정해서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었다. 오로지 로봇공학자 표도르가 지내는 데 문제가 없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을 뿐이니까. 저 안드로이드는…. 제가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러한 걱정에 대한 답을 얻기도 전에 안드로이드의 주인은 숨을 멈췄다. 조용하고 고요한 죽음이었다. 안드로이드는 잠을 자지 않기에 제 주인의 죽음을 온전히 지켜볼 수 있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생각보다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커다란 일이 아니었다. 라이는 숨이 멈춘 제 주인과 그 광경을 제 메모리 속에 꼭꼭 집어넣고 주인의 시체를 묻었다. 인간이 죽으면 이렇게 장례를 하는 거라는 정보가 있었으니까. 미리 만들어둔 비석을 묘지에 꽂아놓고 무덤을 만들었다. 그날도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평화롭고 맑은 날씨였다. 제 눈동자를 닮은 하늘을 잠시 바라본다. 로봇공학자의 죽음은 그렇게 지나갔다.
라이는 혼자가 되었다. 2123년 9월 26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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