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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 보고서 >

등록번호 : 2N80001W2

작성자 : Аделаида (Rye, 라이)

작성일 : 2123. 9. 28. 화



오늘의 아침은 맑음. 구름 한 점 없음! ☀️


평소에는 주인님한테 음성으로 보고했을 텐데 문자로 쓰려니 왠지 어색하네. 하지만 그렇다고 보고를 건너뛰기엔 이건 우리가 항상 하던 일이잖아, 그렇지? 그러니깐, 음, 어색하더라도 라이가 노력해볼게. 난 멋지고 만능인 안드로이드니까! 😀

오늘은 평소처럼 일어나서 쉘터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살펴봤어. 혹시나 사람의 흔적이 있거나, 야생동물이 접근해서 기계들을 망가트린 건 아닌지 점검하면서. 통신기기엔 아무 연락도 들어온 게 없더라고? 언제나처럼 말이야. 오늘도 역시나 사람의 흔적은 못 찾았어.

그 후엔 주인님에게 줄 식사를 준비하러 주변에서 식자재를 조달하려고 했는데, 평소처럼 준비하고 나니 그제야 생각났지 뭐야. 주인님은 이미 죽었잖아! 더 이상 식자재는 필요하지 않았어! 그래서 챙겨둔 짐을 다시 내려놓고… 뭘 해야 할지 생각했어. 주인님도 알다시피 고철 덩어리는 밥을 먹지 않으니까 사냥해서 식자재를 만들 필요도, 요리할 필요도 없잖아. 오랜만에 메모리 정리하는 시간이나 가졌지 뭐. 필요 없는 메모리랑 쿠키 데이터들을 삭제했어. 지금까지 생각보다 쌓여있는 게 많더라고? 그러다 보니 다음 일정 시간이 됐지 뭐야?

쿠키랑 머핀에게 줄 식사를 챙겨서 마구간으로 가서 먹이를 주고, 주변 정리도 해주고… 그러다 보니깐 금방 해가 지더라고. 원래대로라면 쉘터로 돌아가서  식사 준비를 해야 하지만… 난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거든. 그래서 그대로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노을이 지는 창문을 바라봤어.

주인, 당신이 죽은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내가 할 일이 절반으로 줄어든 거 알아? 귀찮은 일이 줄긴 했지만 그게 조금 아쉬운 거 같기도 하고… 가슴이 조금 서늘한 거 같은데 이거 왜 그런 건 줄 알아? 부품 일부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주인이 봐주면 금방 고쳐줬을 텐데.

 

오늘의 보고는 이걸로 끝!

데이터베이스에 들어있는 보고서 양식들과 비교하자면 너무 자유분방하긴 하지만 어차피 봐줄 사람도 없으니 뭐 어때? 내일 뭐 할지나 생각해봐야겠다. 쉘터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정찰을 가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지금까진 주인님이랑 멀리 떨어지면 안 돼서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당신이 없잖아. 그곳에 재미있는 게 있을지 어떻게 알아?

아무튼 보고 진짜진짜 끝. 이 보고서는… 대충 서랍 어딘가에 넣어둘게. 주인은 보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난 오늘의 보고 마쳤다?! 


P.S. 방문앞에 갑자기 우편함처럼 보이는 게 생겼어. 어차피 이 보고서 주인 읽지도 않을테니까 한 번 넣어봐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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