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s

Dear Webster

(4-a-1)

회색 부엉이 한 마리가 에즈겔 조슈아 웹스터의 집으로 날아든다. 부엉이가 들고 있는 것은 편지 한 통과 묵직한 소포 꾸러미다.


안녕, 웹스터.

잘 지내고 있어? 아마 그렇겠지.

내가 뭘 알아서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리고 실제로도, 설마 별일이 있으려나 싶고.

만약에라도 별일이 있으면…. 이 편지는 답장하지 않고 태워도 좋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괜한 말은 얹은 상대에게 그 정도 화풀이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편지와 함께 보낸 소포는 책이야.

‘존 던John Donne’의 ≪설교문 전집Complete Sermons≫.

내가 파트타임 일을 시작한 서점에 있는 걸 하나 빼 왔어. 주인 할아버지 말로는 아주 오래된 판본이라는데, 그게 사실인진 모르겠다. 그래도 그분이 허튼소리를 하는 분은 아니야. 좀 괴팍한 성미긴 하지만.

이 책의 가치가 어떤지 나는 잘 몰라. 누가 엮은 건지, 또 옮긴 건지, 아는 바가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사실 이 책은 겉만 번지르르 해 보일 뿐 알맹이는 아주 하찮은 허세 덩어리 물건일지 모르지. 하지만 말했듯 난 그걸 판단할 능력이 없으니까, 주인 할아버지의 말을 믿고 보내 봐.

왜 뜬금없는 책이냐 할 수 있는데, 너 나한테 호그스미드에서 빗 선물해 줬던 걸 잊진 않았겠지? 이건 그 답례야. 대단한 건 아니니까, 그냥 받아. 나는 네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고, 내가 확실히 아는 사실은 네가 종교인이라는 것 정도 뿐이야.

사실 그리스어 신약과, 불가타 성서를 두고 고민했는데, 네가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서. (혹시 오해할까 밝히는데, 나도 읽을 줄 몰라. 무시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야) 읽지 못하는 책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 그래서 마음을 바꿨어. 난 종교에 관한 건 잘 모르지만, 존 던의 종교시가 유명하다는 건 알아. 비록 읽어본 적은 없지만.

만약 이 설교문이 마음에 안 들면…. 다음엔 존 던의 시집을 선물해 줄게. 그 전까지 이 설교문은 벽난로 땔감으로 써도 되고. 두껍고, 장수도 많아서 꽤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거든.

책에 ‘왜 이렇게 지루해?’ 내지 ‘뭐 이딴 내용이 다 있어’ 같은 낙서가 적혀 있어도 너무 화내진 마. 이건 아주 오래되었을 뿐, 결국 중고 책이라고. 그리고 전 주인들이 남긴 흔적이야말로 중고 책의 묘미지. 내가 그런 걸 적어뒀다는 건 아니야. 난 이걸 들춰보지도 않았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서.

네가 준 빗은 내 방에 잘 있어. 요즘 머리가 다시 곱슬거리기 시작했지만, 한 번 펴 준 덕인지 전처럼 난장판은 아니야. 적어도 아직은 빗이 들어가는 상태라는 뜻이지. 언제까지 네 빗이 쓸모를 다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오래 쓸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8월의 잉글랜드는 아마 흐리고 덥기를 반복하겠지. 아일랜드는 아직도 밤이면 벽난로를 피워야 돼.

그럼, 9월에 호그와트에서 다시 보자.

그때까지 신의 가호…는 좀 이상하고. 아무튼 네가 믿는 너희 하느님이 네 앞길을 가로막는 일은 하지 않길 바라.

August, 1995

Niamh W. Redmond

추신. 같이 보낸 주머니에 든 건 애쉴린의 빠진 이빨이야. 얘는 새끼 고양이도 아닌데 왜 이게 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사한테 데려가 봤는데,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니까 안심하고 받아. 고양이 이빨에도 행운의 부적 같은 효험이 있는진 모르는데, 애쉴린은 보통 고양이는 아니니까 아마 있지 않을까 싶네.

추신2. 편지를 다 쓰고 떠올렸는데, 혹시 존 던이 너랑 종파 같은 게 다른 사람이면 어떡하지? 만약 내가 실수했다면…. 적당히 모른 척 하고 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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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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