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조종(弔鐘) 소리가 들려요"
이름 : 로빈 루베클라 Ronbin Rubecula
나이 : 13
성별 : 남
키 / 몸무게 : 148/40
외관 :
(리카츠 @Rikacheu 님 커미션)
뒷목을 덮지 않을 정도의 갈색 참머리. 옆머리는 귀를 가리지 않고 앞머리는 눈을 살짝 덮을 정도. 눈은 검은색에 눈매가 둥글고 눈꼬리가 처져있어 순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소극적이고 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분위기가 위축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별 일이 없으면 항상 엷은 미소를 띄고 있는 편이다.
피부는 희고 창백한데다 안색이 나빠보인다.
옷은 빨간 라운드 티에 흰 반바지, 검정 니삭스에 갈색 구두. 그 위에 허리까지 오는 갈색 후드 망토를 걸쳤다. 망토의 후드는 벗는 것을 보기가 더 힘들 정도로 언제나 쓰고있다.
성격 :
강단
조용하고 수동적이지만 위축된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는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한 번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납득하기 전엔 철회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 얌전하던 모습과 차이가 크다. 쉽게 말하자면 평소 얌전하던 아이가 한 번 고집부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하지만 그 '고집'을 자주 부리는 것이 아니고 필요하지 않다면(=싫은 것도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라면) 굳이 싫다고 하지 않고 따르기 때문에 호오를 알기 힘들다.
결벽증
약간의 결벽증. 정리가 안되면 힘들다던가 무조건 각을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고 유별나게 깨끗한 정도. 스킨쉽을 싫어하고 기회가 되면 꼬박꼬박 손을 닦으며 옷, 음식, 도구 등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꺼려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동물이 처음 보는 것을 탐색하듯이 찬찬히 살펴본 후 조심조심 사용한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되도록 다른 사람과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있으려 노력하며 자신을 도와주려는 손길에도 겁을 먹고 벌벌 떤다.
미련
자신의 주변이 충분히 조용해졌다고 생각하면 사람을 찾아 그 주위를 계속 맴돈다. 사람을 밀어냄으로써 자신의 안전은 확보했지만 이번엔 심리적인 외로움에 싸여서 사람의 근처를 기웃거리는 것이다. 친교를 맺는데에 상반되는 두 감정이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고, 본인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고쳐야하는지, 자신이 바뀌어야만 미련이 사라지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종합하자면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낯을 심하게 가리고 다른 사람의 호의도 꺼리는데다 필요할 땐 강하게 상대의 관심을 끊어버리는 등,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에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을 가졌다. 본인도 자신의 이런 성격을 좋아하며 일부러 스스로 만들어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고립감에 결국 사람 주위를 맴돌며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다.
기타사항 :
너서리 라임 <누가 울새를 죽였나?>의 울새이다.
언제나 망토의 후드를 쓰고 다닌다. 심심하면 망토로 손장난을 하는데, 주로 망토 끝을 손으로 잡아 날개처럼 펄럭이거나 후드 위로 귀를 막는 듯한 행동을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동물에 빗대어 말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별명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어울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왜 그런 별명을 부르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다.
잠이 많아 일을 하다 구석에서 눈을 붙이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잠귀가 밝아 이름만 불러도 깬다. 잠들었을 때 어깨를 흔들어 깨우거나 장난치는 것을 싫어한다. 보통 다가오는 기척에 깨서 장난에 당한 적은 없지만 이 때는 평소와 다르게 투정(혹은 짜증)을 부린다. 잠시 건드리지 않고 혼자 두면 기분 풀고 다시 평소처럼 엷은 미소를 띄고 돌아다닌다.
비설
너서리 라임 <누가 울새를 죽였나>의 울새...라고 생각하고있지만 사실 평범한 인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방치되고, 아버지가 겁을 준 것으로 세뇌당해 본인이 죽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극도로 심한 피해망상과 인간불신을 겪고있다. 언제나 누군가가 자신을 죽일거라는 공포에 떨며 아무도 믿지 못한다. 증상이 심할 때는 '자신이 한 번 죽은 후 회귀했다' 또는 '예지몽을 꿨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죽는 운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로빈을 움직이는 두가지 감정은 '죽고싶지 않다'와 '사랑받고싶다'로, 이 둘은 한 뿌리에서 나온 전혀 다른 가지이다.
'죽고싶지 않다'는 감정은 죽음에 대한 공포는 물론이고 자신의 죽음으로 <누가 울새를 죽였나>의 이야기가 시작되므로 자신은 이야기를 여는 전제, 이야기가 만들어진 하나의 소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죽음만이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이라는 소외감과 고립감때문인 것이다.
'사랑받고싶다'는 감정은 존재는 중요하지 않은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자괴감으로 인한 발로이다. 죽음이 존재 이유인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이 없다고 자조하면서도 <누가 울새를 죽였나>에 나오는 울새를 사랑한 비둘기에 자신을 사랑할 사람을 대입하며 기대하고있다.
주변인을 모두 의심하지만 참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엷은 미소와 소극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불신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어서 '자신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딱잘라 거절하고 이것이 '어울리지 않는 고집'으로 보이는 것이다. 결벽증도 신체 접촉을 거부하는 것이나 자신의 것이 아니면 의심하는 보릇이 그렇게 보이는 것. 잠이 많아 꾸벅꾸벅 조는 것은 사실 밤에 의심으로 잘 자지 못해 그렇게 보이는 것.
동물에 빗대어 부를 때 나타나는 규칙.
참새 : 자신에게 적의를 가진(자신을 죽일/죽인) 사람. 평소에는 아무도 참새라고 부르지 않지만 주변의 모두가 참새 후보라고 생각한다. 여차하면 참새 후보를 모두 죽여서라도 생전하려한다.
파리 : 참새가 나타나면 참새 외의 모든 사람들은 파리이다. 자신의 죽음을 볼/본 사람, 더 나아가서 죽음을 방관할/방관한 사람들. 원망과 비난이 섞인 호칭
물고기 : 자신이 죽어가는 도중에도 자신을 이용하여 이익만 차릴/차린 사람. 참새나 파리는 평소에 쓰지 않지만 물고기는 평소에도 이익을 따지는 속물적인 사람에게 쓴다.
까마귀 : 위선자를 부르는 별명. 정확히는 '자신에게 신경써주는 척 하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5번 비둘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가지면 우선 까마귀라고 부른다.
비둘기 :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 에로스/필리아/스트로게 등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꿰뚫어보고 위로해준 사람에게 '쓸' 호칭. 아직 아무에게도 쓴 적 없다.
이 외에는 동물 호칭에는 의미가 없거나 적다.
두려운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고, 자신을 사랑해줄 비둘기를 더 적극적으로 찾기 위해 꿈 속 세계를 동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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