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창작

여행

야라즈노아메 : 빗물과 추억, 그리고 동아리 / 아리키 모나 제출 / 2021.12.20 업로드

야라즈노아메의 여름은 지독하게 비가 내린다. 이곳저곳 고인 물웅덩이를 뛰어넘고 있으면, 기분 좋은 빗소리 사이로 도란도란 사람 사는 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주민들은 저마다 빨래를 걷거나, 마당을 뛰어다니는 개를 집안으로 옮겨놓는다. 녹색의 우산 아래서 인사를 건네면 곧이어 붉은 지붕 아래서 답사가 전해져 온다. 이곳은 내가 나고 자란 곳, 야라즈노아메 시다.

지난해 여름의 장마가 끝날 무렵 생각하였다. 비록 어른이 되어 이곳을 떠나더라도, 언젠가는 꼭 이 눈부신 청취 속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야라즈노아메 시는 우리의 고향이자, 나의 모든 시절이 묻어 있는 곳이니까. 간판 하나부터 길에 구르는 자갈에 이르기까지 그 빗물이 닿지 않은 곳이란 부재하였으므로.

지난해의 가을은 참으로 청명하였다. 고요하고, 또 평화로웠다. 언제 그랬냐는 듯 비는 그치고 하늘은 내내 푸르기만 하였다. 그 아래 붉게 익어가는 단풍잎이 하나둘 바닥으로 쌓여갈 즈음, 우리는 수학여행을 떠났다. 떨어지는 단풍잎을 잡겠다고 온종일 뛰고, 버섯을 캐고, 둘러앉아 함께 저녁을 지으며 웃음을 터뜨렸었다. 마지막 날에는 모두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집에 가고 싶지 않다며 밤이 꼬박 새도록 조잘댔던가. 하지만 여행의 의미는 결국 돌아옴에 있는 것이다. 일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여행의 끝이다.

하지만 수학여행을 마치고 들뜬 채로 학교를 다시 마주한 그 날, 우리는 돌아올 곳을 잃었다.

야라즈노아메, 떠나는 손님을 막기 위해 내리는 비. 먼 옛날, 이곳을 방문했던 동자승을 붙잡으려는 듯 그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비가 내린 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모교의 폐교와 고향의 재개발 소식을 듣고 줄곧 생각했다. 어째서 우리에게는 그 기적 같은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두루미 신은 저리도 화창한 낯으로 우리를 배웅하려 하는 것일까. 처음 한 계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음 두 계절은 침묵했다. 세 계절째에는 정겨운 인사 대신 집집마다 이삿짐을 싸는 소리가, 네 계절째에는 한적한 평화 대신 묵직한 정적이 하굣길을 채웠다. 그해 여름 역시 비가 내렸으나, 전과 같은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섯 계절째, 겨울이 찾아왔다. 정월에는 눈이 내렸다. 우리들의 추억을 붙잡게 해달라는 소원을 소원등에 적어 내리며, 날씨가 추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차오르는 울음에 코끝이 발개지는 것이 표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이얀 눈밭 위로 곧 녹아 사라질 발자국을 남기며 신사를 찾은 사람들은 저마다 어떠한 소원을 빌었을까. 어쩌면 나와 같을는지.

졸업 전 마지막 예비 소집 기간, 모든 것은 평소와 같다. 평범하게 출석을 부르고 각자의 동아리에서 연습을 하고, 평범한 대화를 나누면 어느새 노을이 새겨진다. 겨울은 해가 빨리 진다. 하여 평소와 같은 시간에 교문을 나서도 거리는 쓸쓸하기만 하다. 익숙한 길, 익숙지 않은 감정. 발이 닿는 곳마다 온통 마음이다. 지난 18년이 꼬박꼬박 쌓인 평상에 걸터앉는다. 소리라도 들리면 좋으련만, 내게 전해질 말은 아무것도 없는지 멍한 시간만 흘러간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 되려 했다.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도왔던 것 같다. 친구들은 하나둘 지쳐가고, 선생님들도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오기가 이럴 때에는 도움이 되는지, 그럴수록 버티고 섰다. 그러나 마음 한 켠으로는 서서히 이별할 준비를 해왔는지도 모른다. 야라즈노아메 학원의 마지막 졸업식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다가왔다. 이제는 시간도, 방법도 바닥났다. 펜이라는 마지막 동아줄을 다 까진 손으로 쥐고서 이 수필 대회에 글을 투고하는 것만이, 지금 내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자 마지막 아우성이다.

겨울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야 그는 상관이 없음을 깨닫는다. 야라즈노아메는 떠나려는 손님의 발을 붙잡는 비다. 우리는 이곳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기에, 영영 떠날 사람이 아니라 언젠가 여행을 끝내고 웃으며 돌아올 이들이기에 괜찮다. 새까만 용이 하늘을 틀어막을지언정 우리는 끝내 바다에서 찬란히 빗방울을 끌어올릴 테니까.

이 순간, 우리는 세 가지의 보물을 손에 쥔다. 추억을 써나갈 검은 펜과 인연을 수놓을 붉은 꼬리깃,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바꿀 부채를. 그리하여 이로코와 같은 반짝이는 벚꽃잎이 어깨 위로 나릴 때면 우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안고 각자의 여행을 시작할 테다. 돌고 돌아 시작이 되었던 곳에서 마무리할, 인생이라는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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