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콜로니. 17
#17. 목 없는 시신
이틀 전.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다. 거리 곳곳 낙엽이 흩날리다 빗물이 만든 웅덩이 위로 떨어져 둥둥 떠다녔다.
쓰레기 수거 차량이 거리를 빠르게 지나갔다. 거대한 바퀴가 덜컹거리며 움푹 파인 아스팔트 도로에 고여있던 빗물을 사방에 흩뿌렸다. 노먼은 가까스로 몸을 피해 더러운 물을 뒤집어쓰는 꼴을 면했다. 그가 잇새로 욕설을 지껄이며 이미 멀어진 수거 차량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퍼킨스는 그런 파트너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평소엔 더할 나위 없이 나긋하게 굴던 인간이 가끔가다 이렇게 분노 조절을 못 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정말이지 신기하고, 우스웠다. 퍼킨스는 노먼의 성질머리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과 닮아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골목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없는 남성형 안드로이드가 미드타운, 카스 가 근처에 위치한 골목 쓰레기통에서 발견됐고, 노먼과 퍼킨스는 퇴근하는 길에 현장에 들렀다. 벌써 세 번째. 같은 유형의 피해자였다. 안드로이드의 옷은 모두 벗겨졌으며 흰색으로 변한 손목에는 결박흔이 남아있었다. 노먼은 ARI에 드러난 정보를 분석해 읊었다.
"머리는 깔끔하게 분리됐고 손목 외엔 전부 깨끗해. 앞서 발견된 두 대와는 달리, 반항한 흔적이 전혀 없네."
"이것도 봐봐."
퍼킨스가 감식팀이 넘긴 작은 유리병 하나를 노먼에게 건네주었다. 노먼은 이를 받아 들고 살펴봤다.
"왜 여태까진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면서, 이 안드로이드에겐 DNA를 남긴 거지?"
노먼이 장갑 낀 오른손을 들어 공중을 휘적댔다.
"일단 FBI 데이터베이스엔 등록되어 있지 않은 인간이야. 잠시만. 다른 수사기관 쪽 자료도 찾아볼게."
그러면서 손가락을 열심히 놀렸다. 어딘가에서 웽웽대며 울리는 소음에 퍼킨스가 고개를 틀었다. 경찰차 두 대가 줄지어 골목을 지나갔다. 이 동네는 사건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고, 사이렌 소리 역시 끊이지 않았다.
퍼킨스는 최초 목격자인 쓰레기 수거 노동자와 간단한 면담을 진행하고, 시신이 버려진 시각과 경로를 유추한 후 지원 나온 요원에게 근처에서 확보할 수 있는 모든 CCTV와 차량 블랙박스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주변을 더 살펴본 퍼킨스가 단서를 몇 개 찾아냈고 이에 관해 얘기를 나누려 노먼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흰색 작업복과 남색 근무복을 입은 요원들 사이에서 퍼킨스는 고개를 빼 들고 이곳저곳을 살폈다. 이내, 골목 저편에서 허리를 수그린 채로 구역질하는 남자를 발견했다.
"노먼?"
퍼킨스가 그리로 다가가자 노먼은 콜록대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어 입을 닦았다. 퍼킨스는 그의 코 아래에 묻은 피를 발견했다. 노먼의 눈엔 아무것도 씌어있지 않았으나, 퍼킨스는 대번에 무슨 일인지 알아챘다.
"또야?"
노먼은 아무 말 없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잠시간 숨을 몰아쉰 그는 파트너가 내민 물병을 받아 들고 입을 헹구어냈다.
퍼킨스는 상체를 틀어 좀 전에 경찰차가 사라진 모퉁이를 바라봤다. 젖은 회색 도로 위로 빨갛고 파란 불빛이 반사되는 게 보였다.
노먼이 물을 뱉어내며 신음을 흘렸다.
"...미치겠네, 진짜."
그가 옷소매로 입을 닦고 퍼킨스의 시선이 닿는 곳을 흘겨봤다. 한 차례 머리를 흔든 노먼이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고 퍼킨스도 그를 따라갔다.
모퉁이를 돌자, 경관 여럿이 도로 한 편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차된 차량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내려섰다. 오른 팔뚝의 푸른 발광 섬유가 노먼의 눈에 들어왔다.
코너. 그가 고개를 돌리더니 노먼을 발견하곤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 좀 그만 쓰시면 안되겠습니까?"
노먼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건 제 수사 도구예요. 당신이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무슨 데이터를 그렇게 전송받는 거예요?"
"저야말로 수사하는 데 필요한 기능입니다. 대체, 여기서 뭘 하시는 겁니까?"
"그건 제가 묻고 싶네요. 이 넓은 디트로이트 내에서 뭐 마주칠 일이 있다고 가는 곳마다 보는 건지."
노먼이 투덜거렸으나 코너 역시 그리 달가운 표정은 아니었다.
"FBI에 수사권을 넘기기 전엔 경찰도 신고 내용을 접수하고 나름의 조사를 벌일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이 안드로이드 전담팀이라는 건 알지만, 정식으로 수사권이 넘어가기 전엔 끼어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카스 가에서 발견된 시신과 관련한 거라면, 이미 DPD로부터 수사권을 넘겨받았어요. 그런데 또 뭘 찾으려 여기까지 온 거예요?"
"안드로이드의 시신이 카스 가에서 발견됐다고요?"
코너는 자신이 서 있는 우드워드 가의 도로표지판을 보았다. 파란 표지에는 흰색 화살표와 함께 ‘카스 에비뉴, 80m’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카스 가와 우드워드 가는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담당 경찰서가 바뀌는 위치였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 관할지가 어디입니까?"
"그야 3번 관할구…. 혹시, 그쪽에서도 새로운 시신이 발견된 건가요?"
노먼이 상체를 옆으로 틀어 도로에 통제선을 설치하는 경관들을 살폈다. 코너도 그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목이 없는 시신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막 도착한 상황입니다. 저도 자세한 내용은 아직 모릅니다."
"그럼, 직접 가서 보지."
퍼킨스가 성큼 걸음을 옮겼고 노먼도 그를 따라갔다. 코너는 두 인간을 막아 세워야 하나 잠깐 고민했으나, 상황을 보니 어차피 그들에게 넘어갈 사건으로 보여 내버려두었다. 대신, 그는 걸음을 빨리하여 인간들보다 먼저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개빈이 다가오는 코너를 보곤 날카롭게 말했다.
"도대체 뭐 하다 이제 온 거야?"
코너가 싸늘한 말투로 받아쳤다.
"제가 아직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는데, 문을 잠그고 가셨죠. 경찰차의 뒷문은 내부에선 열리지 않는다는 상식도 모르십니까?"
개빈이 인상을 팍 구겼다.
"우리가 내릴 때 재깍재깍 내렸으면 됐잖아!"
"시스템에 잠깐 오류가 생겨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음부턴 제대로 확인하고 잠그십시오. 형사님이 기억력이 안 좋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부주의하게 행동하실 때마다 수사에 차질이 생깁니다."
차갑게 지적한 코너가 개빈을 지나쳐 경찰 통제선 안으로 들어갔다. 개빈은 벌게진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저 새끼가 진짜…!"
그들 뒤에서 가만히 듣던 퍼킨스가 노먼에게 작게 속삭였다.
"경찰 놈들 싸움 구경이 슈퍼볼 경기보다 재밌어."
노먼도 웃으며 동의했다.
"나도 그래. 그나저나, 코너도 제법 성격이 있네."
씩씩대던 개빈이 속닥거리는 두 인간을 쏘아봤다.
"또 당신들이야? 아직 사건 넘겨주지도 않았는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아아, 맞아. FBI였지? 시민들 감청하는 건 그렇다 쳐도, 경찰 무선까지 도청하면 곤란해."
퍼킨스가 엄지로 뒤쪽을 가리켰다.
"우린 저기 카스 가 사건 조사하러 온 거야. 그런데 애석하게도, 여기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걸 알게 돼서 말이야. 목 없이 버려진 안드로이드. 맞지?"
개빈이 욕설을 지껄였다.
"아오, 저 깡통 새끼가 이젠 아무한테나 사건정보를 유출하네. 작년에 확 폐기해 버려야 했는데!"
노먼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한 번 둘러봐도 될까요? 안드로이드 사건이라면 어차피 저희 쪽으로 넘어올 텐데…. 형사님께서도 업무적으로 그편이 편하실 겁니다."
개빈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노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당신이 형사 업무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들어?"
"저야 모르죠. 하지만 사건 이관할 때, 보고서 작성하느라 수고하실 시간이 훨씬 줄어들 거라는 사실 정돈 압니다."
노먼의 말에 정곡이 찔린 듯, 개빈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아무 말도 못 했다. 이윽고 그가 혀를 차며 목격자로 보이는 행인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것이 무언의 허락임을 안 두 요원은 개빈을 지나쳐 통제선을 넘어갔다.
어두운 골목에서 코너는 커다란 쓰레기 컨테이너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 앞으로 널브러진 허여멀건 다리가 보였다.
노먼은 검은 쓰레기봉투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시신을 보았다. 목은 없었고, 손목은 벗겨져 흰 부품이 드러났다. 노먼이 ARI를 꺼내 들려다가 멈칫하곤, 코너의 옆에 똑같이 쪼그리고 앉아 물었다.
"뭔가 보이는 단서라도 있나요?"
"손목에 결박된 흔적이 있네요. 그리 심한 부상이 아님에도 인공피부가 덮이지 않은 걸 보니, 사후에 풀어줬을 겁니다. 자국의 크기와 패턴을 보면…. 벨트, 혹은 가죽띠 같은 걸로 결박한 듯싶어요."
코너가 허리를 굽혀 이번엔 안드로이드의 목을 살펴보았다.
"출혈이 심합니다. 가동을 정지한 후라면 이렇게까지 피가 나오진 않아요. 살아있는 동안 머리가 분리된 모양입니다."
"무슨 모델인지 알겠나?"
퍼킨스의 질문에 코너가 시신을 유심히 살폈다.
"이것과 똑같은 유형의 몸체와, 같은 형의 티리움을 공유하는 모델이 5개 정도 됩니다. NK300, WO100, AL500, SL300, EN600. 이들 중 하나예요."
"신원을 알아낼 방법은?"
코너가 고개를 저었다.
"안드로이드의 고유번호는 후두골 부분에 새겨져 있어요. 인간과는 달리 유전정보도 없기 때문에, 머리 없이는 신원을 특정짓기 어렵습니다."
노먼이 현장 한편에 마련된 라텍스 장갑 한 쌍을 가져와 본인의 왼손에 끼곤, 한 짝을 퍼킨스에게 넘겨주었다. 퍼킨스가 이를 받아 들곤 말했다.
"우리가 조사하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유형의 피해자야. 머리 없는 남성형 안드로이드. 그전까지 시신이 버려진 위치와 발견된 시각이 꽤 차이가 났는데. 이번엔 카스 가와 여기, 두 구나 비슷한 곳, 비슷한 시각에 버려졌군."
노먼도 시신의 몸을 조사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전에는 나름 안 보이는 곳에 산산이 조각내서 버렸지. 발견된 것도 한참이나 지난 후고. 하지만 갈수록 시신을 처분하는 방식이 허술해지고, 간격도 짧아지고 있어. 이 시신 역시 방어흔은 따로 없네."
그리곤 그가 안드로이드의 하체를 살피곤 눈살을 찌푸렸다. 다리 사이에 푸른 피와 함께 흰 액체가 말라붙은 채 묻어있었다.
"성폭행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고."
노먼의 말을 들은 퍼킨스가 몸을 일으켜 뒤에 선 경관들을 불렀다.
"여기 PSA 키트 하나만 가져다주실 수 있습니까?"
고개를 돌린 경관이 아래를 내려다보곤 피식 웃었다.
"그건… 딱히 필요 없을 거 같은데요."
옆에 선 그의 동료도 비실비실 웃음을 흘렸다. 노먼이 그들의 시선을 따라 옆을 돌아보고는 기겁해서 코너의 팔목을 잡아챘다.
"코너! 뭐 하는 거예요?"
손가락에 묻은 액체를 혀로 핥으려다, 그를 제지하는 손길에 멈칫한 안드로이드가 노먼을 바라봤다.
"정액에 들어있는 DNA를 감식해서 등록된 범죄자 데이터와 비교 대조해 보려 합니다."
경관 둘이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노먼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 외에도 감식할 방법이 수도 없이 많아요! 아니, 그건 그렇고 당신들 동료 아닙니까? 왜 그냥 보고만 있는 거죠?"
노먼이 경관들에게 따져 물었다. 그 날카로운 목소리에, 경관 역시 눈썹을 추켜세우며 받아쳤다.
"자기가 좋아서 먹는 걸 우리가 무슨 권리로 말립니까? 현장 조사관도 도착 안 했고 저 안드로이드는 애초에 감식 기계로서 이곳에 온 겁니다. 그냥 본인 할 일 하게 냅두십쇼."
답답하게도 코너마저 이에 동의했다.
"맞아요, 제이든 요원. 이것은 제 업무 중 하나입니다. 당신은 끼어들지 마십시오."
그리고선 다시금 손가락 가까이 혀를 내밀었다. 노먼이 안드로이드의 손목을 강하게 붙들었다.
"미안하지만 제 눈앞에선 그건 어렵겠네요. 흙먼지를 핥든 오래된 시신의 혈액을 마시든 상관 안 하겠지만, 상식적으로 이건 진짜 아니에요."
그리곤 품에서 채취 용기를 꺼내 들어 코너의 손가락에 묻은 액체를 밀어 담았다. 노먼은 혹여라도 코너가 남은 거라도 핥아먹을까봐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잔여물을 깨끗이 닦아냈다.
코너는 미간을 찌푸리고 노먼을 쳐다봤다. 그는 약간 기분이 상한 표정이었다.
"아직 FBI에게 수사권이 이관되지 않았는데 멋대로 이러는 건 곤란합니다. 명백한 월권행위예요."
노먼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흔들었고 듣다 못 한 퍼킨스가 대꾸했다.
"이봐, 안드로이드. 이건 월권행위가 아니라 도와준 거야. 저 인간들이 대놓고 널 놀리고 있었잖아."
코너가 고개를 돌려 뒤에 선 경관을 바라보자, 그들이 헛기침하며 자리를 떴다. 코너가 의아한 눈으로 퍼킨스에게 질문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현장 증거 감식에 놀릴 만한 요소가 존재하나요?"
"감식 목적이든, 뭐든. 네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인간의 정액을 먹는 행위는 성적인 의미로밖에 읽히지 않아."
코너가 눈을 내리깔고 침묵했다. 무엇을 생각하는 건지 그 이마의 LED가 노랗게 돌아갔다. 노먼은 고개를 젓곤 품에서 ARI를 꺼내 들었다. 그가 손에 든 용기를 유심히 살피더니 말했다.
"카스 가에서 발견된 시신에서 채취한 것과 같네요. 아까 충돌난 것 때문에 경찰 쪽 데이터베이스는 아직 다 확인 못 했는데…. 감식 결과는 따로 보내드릴게요."
노먼이 안경을 내리곤 코너에게 말했다.
"나머진 당신이 조사한 후, 정리해서 우리에게 보내주세요. 혹시라도 또다시 시신이 발견되면 DNA 검사쯤은 과학감식팀에 맡겨요.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선 그런 감식 방법은 삼가는 게 좋을 거예요."
코너가 입을 열자, 노먼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당신의 업무를 방해한 건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인간은 갖은 이유로 상대를 우습게 보고 그 판단하에 사회적 위치를 정해버리죠. 당신은 수사관으로서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 이런식으로 저들에게 틈을 보이다간 아까 그 경관이 말했듯 감식 기계로만 쓰이게 될지도 몰라요."
코너가 입을 닫고 노먼을 빤히 바라봤다. 인간의 걱정스런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알겠습니다.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절 도우려 했다는 퍼킨스 요원의 말은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조언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노먼은 희미하게 웃었다. 솔직히 이 안드로이드가 그의 말을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때문에 여전히 불안했지만, 그래도 코너가 하는 말에는 약간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노먼은 왼손에 낀 장갑을 벗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며 말했다.
“당신으로선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문제는 인간 사회의 고착화된 시선이죠. 이해가 안 가는 인간의 행동이 있다면 물어봐요. 범죄 분야지만, 어쨌거나 심리학 학위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거예요. 보아하니 그런 걸 알려줄 만한 사람이 그쪽엔 없어 보이니까.”
이해가 안 가는 인간의 행동? 그런 건 셀 수도 없이 많았으나, 코너는 당장 떠오르는 걸 물었다.
“당신은 왜 이런 걸 제게 말해주는 거죠?”
인간에 대해 알려주리라 자신한 노먼은 코너의 질문에 바로 말문이 막혔다.
“어, 그야…. 누구든 그런 꼴을 당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 경관들은 지켜봤잖아요? 그들과 당신의 차이는 뭐죠?”
“저들은 잘못된 행동을 했고, 전 그걸 바로잡았을 뿐이에요.”
“경찰관 역시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역할이죠. 하지만 이제껏 제게 그런 걸 알려준 사람은 없었어요.”
퍼킨스가 한숨을 내쉬며 끼어들었다.
“뭘 꼬치꼬치 캐물어? 그런 인간도 있고 저런 인간도 있는갑다, 하는 거지. 노먼은 너에게 친절을 베푼 것뿐이야. 이 녀석은 원래 오지랖이 넓어서 앞으로도 시도 때도 없이 이럴 텐데, 그때마다 왜 그랬냐고 추궁할 생각이라면 관둬라.”
코너는 노먼과 퍼킨스를 차례로 바라봤다.
“그럼, 퍼킨스 요원도 제게 친절을 베푼 건가요?”
“뭐?”
“요원님이 제게 그 행위가 무슨 의미인지 말씀해 주셨잖아요.”
“그건 그냥 사실적시지. 뭔 친절이야.”
노먼이 퍼킨스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빙긋 웃었다.
“맞아요. 친절. 우리 다정한 퍼킨스 요원도 당신에게 친절을 베푼 거죠.”
“그런가요?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코너가 퍼킨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퍼킨스가 미간을 잔뜩 구기며 손등으로 코너의 손을 팍 쳐냈다.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기계를 무시한 그가, 노먼의 팔 마저 거칠게 치우곤 골목을 빠져나갔다.
노먼은 씩 웃으며 코너에게 말했다.
“저건 솔직하지 못한 인간이 쑥스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미성숙한 어른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행동 유형이죠.”
코너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하여간, 한번 잘 버텨봐요. 안드로이드 사건 말고 다른 범죄도 좀 배정해달라 하고. 또 수사 범위가 겹쳐서 전파라도 꼬이면 당신이나 저나 여러모로 곤란하니까.”
노먼의 조언에 코너는 침묵했다. 저번의 공조수사 이후 코너에게도 꽤 많은 안드로이드 사건이 배정되었지만 어차피 그것은 죄다 FBI로 넘어갈 것들뿐이었다. 아무것도 본인의 손으로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코너는 다른 유형의 사건 역시 자신에게 배정해달라 수도 없이 안건을 올렸으나, 모조리 기각당했다. 파울러 서장은 여전히 인간을 수사하는 부분에선 안드로이드를 미덥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코너는 불만스러웠지만 이러한 세부 사항까지 외부인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했으나 이를 알 리 없는 노먼은 만족스레 웃으며 골목을 나섰다. 퍼킨스가 주머니에 손을 꽂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식팀 요원한테 통화했어. 카스 가의 시신은 수습했고, 현장도 얼추 정리가 되었대. 우리도 이만 퇴근하자고.”
노먼이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이 홀로그램 통제선을 지나자마자, 곧바로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조사가 끝나셨나? 기껏 둘러보게 해줬더니. 너무 대충 하는 거 아냐?”
그 소리에 대번에 기분이 나빠진 노먼이 개빈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남은 건 코너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맡기고 왔습니다. 그나저나 당신들, 안드로이드 평등법이 생긴 건 알고 있긴 합니까? 서장에게 건의라도 해서 경관들 똑바로 교육하길 진심으로 권고드립니다. 경찰이 차별적인 행동을 해서 구설수에 오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걸 아예 기정사실로 못 박고 싶진 않을 테니까.”
타 기관 인간의 난데없는 신랄한 비난에 개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한테 그런 말을 지껄여? 차별? 웃기고 있네. 거기 옆에 있는 양반이 작년에 무슨 짓을 했는진 알고 하는 소리야?”
울컥한 노먼이 반박하려 입을 열자, 퍼킨스가 막아섰다.
“그래, 맞아. 하지만 난 헌법이 바뀐 이후로 이렇다 할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지. 근데 저 경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동료 안드로이드한테 성희롱을 하더군. 우리가 봐서 다행이지, 만약 권리단체가 여기 있었다면 당신들은 죄다 정직 감이었어.”
개빈이 눈을 찌푸리고 퍼킨스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두 경관이 그를 흘끔흘끔 쳐다보고, 코너가 무표정한 얼굴로 옆에 서 있었다. 개빈이 둘을 한차례 쏘아보곤 그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잠시 뒤, 날카로운 목소리가 골목을 쩌렁쩌렁 울렸다.
“뭐? 또 그딴 역겨운 짓을 한 거야? 니들, 내가 이 자식 아무거나 주워 먹지 못하게 지켜보라고 했잖아!”
“아니, 멋대로 감식하는 걸 무슨 수로 말립니까?”
“감식 같은 소리하네. 애초에 말릴 생각은 있었고?“
“우리가 억지로 먹였습니까? 우린 아무 짓도 안 했다고요!”
“아무 짓도 안 한 바로 그게 문제라고! 저 인간들 앞에서 이게 무슨 쪽이야, 젠장! 이 일 전부 보고 할 테니 그리 알아. 그리고 이 깡통아, 제발 말 좀 쳐들어!”
퍼킨스가 코웃음을 치며 걸음을 옮겼다. 노먼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카스 가로 향하는 발을 내디뎠다. 뒤에선 개빈의 고함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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