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이름 처음 불렀어
꽃은 춤추고 바람은 노래한다 / 비센아도
“이건 그냥 물어보는 건데요, 영식. 내 이름 알아요?”
아도라가 대뜸 물었다. 어머니께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같이 골라 줬으면 좋겠다고 아도라를 불러낸 비센테는 뜬금없는 질문에 눈썹을 찌푸렸다. 또 시답잖은 소리를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아도라의 얼굴은 뜻밖에 진지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영애.”
“이거 봐요. 모르는 거 아냐?”
“예?”
대놓고 황당함을 드러내자 아도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맨날 그러잖아요. ‘영애’, ‘자르데아 영애’.”
“영애는 자르데아니까요.”
“성이야 그렇긴 한데 이름도 있거든요? 혹시 진짜 모르는 거 아니죠?”
의심스럽다는 듯 말꼬리를 늘리는 투가 놀려먹을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비센테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태어날 적부터 머리가 비상한 편이었고, 특히나 어느 순간부터 아도라에 관한 것은 잊어 본 적이 없었다. 봄이 되면 꽃이 춤추고 바람이 노래하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누가 누구를 놀리려 드는지. 제 속도 모른 채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얼굴이 자꾸 시선을 잡아 끌어서 비센테는 고개를 돌렸다. 부러 딱딱한 어조를 냈다.
“그러는 영애는 제 이름 아십니까?”
“어어? 말 돌리는 거예요? 이거 긍정한 거나 다름없는 거예요, 영식!”
“영식이라고 부르는 건 영애도 똑같은데요.”
그제야 아도라가 아, 소리를 냈다. 듣는 데만 집중하고 부르는 덴 관심이 없었군. 당황하는 여자의 얼굴을 본 비센테의 낯에 짧게 웃음이 스쳐 갔다가 말았다. 아도라의 표정이 단박에 변했다.
“뭐예요, 비웃어요? 누가 모를까 봐? 그냥, 습관이었거든요?”
“예, 저도 습관이었습니다.”
“안 믿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내가 영식 이름을 모르겠어요?”
“다른 여러 친구들과 헷갈리지 않기만을 빕니다.”
그렇게 답하는 목소리는 직전의 아도라 못지 않게 장난스러웠다. 아도라가 억울한 표정을 짓자 재미있다는 듯 짧게 웃는가 싶더니 아무렇지 않게 먼저 스쳐 간다. 어차피 먼저 가서는 기다릴 거면서 괜히. 놀려먹으려다 놀림당한 게 억울해서, 아도라는 결국 외치고 말았다.
“비센테!”
순간 남자의 몸이 멈칫했다. 아도라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재빨리 그를 추월했다. 팔을 뒤로 늘어뜨린 채 아도라가 반 바퀴 몸을 빙글 돌렸다. 햇살을 받아 밀빛 머리칼이 사늘사늘 나부꼈다.
“이것 봐요, 알죠?”
“…….”
“내가 먼저 대답한 거예요. 영식도…….”
신이 나서 말을 잇던 아도라의 말이 점차 잦아들었다. 왜 말이 없지? 의아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 약간 당황한 듯한 얼굴이 들어왔다. 채 숨기지 못한 감정이었다. 채 숨기지 못한, 그런…….
열기. 여름이 옮겨난 듯, 아도라의 눈에도 선명하게 붉은 귀.
어어……. 아도라가 어물어물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러운 혼란이 심장을 치고 들어왔다. 뭐지. ……화가 난 걸까? 그래도 귀가 붉어질 만큼 화를 낼 만큼 무례한 말은…… 안 하지 않았나? 화가 나서 열이 오른 얼굴이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알겠는데, 삐걱거리는 것처럼 사고가 이상하게 작동했다. 여자가 침묵하자 남자도 입을 꾹 다물고 주먹에 힘을 주었다. 아, 젠장. 또 머저리 같은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심장이 뛰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적이 흐르는 사이에서 아도라가 입술을 벙긋거렸다. 자수정빛 눈동자가 어색하게 흔들리고 여름이 여자의 뺨에도 옮겨붙었다. 상황을 타파할 만한 게…… 아도라의 눈동자가 부산스럽게 구르던 순간 비센테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도라.”
“…….”
“…….”
“……그…….”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잘 알고 있네요.”
그래. 사실 두 명 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냥 장난이었으니까, 그래. 한참 속으로 되뇌는 여자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던 비센테가 다시 말했다.
“이만 다시.”
“…….”
“……다시 가시죠, 영애.”
“그, 그래요, 영식.”
그래. 그냥 장난이지. 괜히 열이 오른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아도라가 애써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움직이는 아도라의 곁에서 비센테가 마른세수를 했다. 젠장. 스스로를 향한 욕을 지껄이는 남자의 머리 위로 다시 한 번 볕이 내려앉았다. 아무튼 늦봄, 어쩌면 초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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