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XIV(夢)

눈밭 위의 아지랑이

2241자 / 오르슈팡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었던 엘린의 이야기

* 슈엘 200일 기념으로 잠들어있던 글을 완성했습니다 잘 읽어주시길……( ˶ ̇ ̵ ̇˶ )♡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오르슈팡은 한결같이 기지를 지키며 훈련에 임했고, 엘린은 아침부터 온 지역을 쏘다니지만 커르다스에 어둠이 내릴 때쯤이면 언제나 기지로 돌아왔다. 그는 이곳을 지키는 코랑티오와 야엘에게 가벼운 묵례를 건네고, 오르슈팡의 개인실을 향해 걸어가며 그의 푸른 눈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런 날이 어느덧 몇 주는 지났다. 사령관과 요즘 떠오르는 샛별 모험가 사이의 관계는 두 사람이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기지 내에선 소문이 쫙 퍼졌다. 또 사령관의 훌륭한 심성 또한 익히 알려져 있었기에, 이들은 커르다스에서 피어나는 봄아지랑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오늘의 엘린은 한낮부터 찾아와 손에 두껍게 포장한 봉투를 쥔 채 돌벽에 걸린 깃발을 지그시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멍하니’가 더 맞는 말이려나. 그의 표정만 보아서는 감정이랄 것이 읽히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엘린님.”

하여 코랑티오는 우두커니 서 있는 그를 보고 말을 걸었다. 툭, 툭 소리를 내며 봉투에 눈송이가 스치며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고, 그것은 퍽 이상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그 모험가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미소와 함께 인사를 받아주었다. 다행히 심각한 고민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여담이지만 코랑티오는 그에게 ‘감기 걸리겠다’는 말을 건네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 비슷한 말을 했을 때 감사를 전하며 조심스레 자신은 설산에서 태어나 살아 이런 추위에는 매우 강하다는 답을 기억해두고 있었다. 매일 찾아오는, 아마 앞으로도 찾아올 기지의 손님이자 은인의 말이었다.

“⋯사령관님을 찾으십니까?”

코랑티오의 시선이 일순 엘린의 손끝으로 향했다.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종이봉투를 들고 용머리 전진기지로 찾아왔다는 것엔 목적이 분명해 보였으리라. 엘린은 아직 제 마음에 답을 정하진 않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관님께선 기지 안에 계십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간단히 지금의 엘린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만 준 코랑티오는 자리를 벗어났다. 엘린은 두 눈을 깜빡이다 속눈썹에 쌓인 눈을 털며 자신이 이곳에 너무 오래 서 있었음을 짐작했다.

“어서 와라 엘린! 오늘도 변함없이 아름답구나!”

실내에 울리는 목소리에 엘린은 절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 ⋯.”

그러나 웬일로 주저하며 선뜻 탁상 앞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엘린의 모습에 의문이 든 오르슈팡은 더 생각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사슬 짤랑이는 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처음 그가 이곳을 찾아왔을 때보다 훨씬 누그러진 얼굴이었다만, 오늘은 무언가 생각이 많아 보였다.

“⋯?”

엘린은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연인에게 눈썹을 내려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저도 모르게 등 뒤로 숨겼다. 이미 그의 길쭉한 귀 너머의 무언가를 발견했지만, 오르슈팡은 급하게 먼저 캐묻지 않았다.

“전해줄 것이 있나?”

그러면서도 엘린에게 답을 들어낼 작정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환한 미소를 드러낸 오르슈팡을 앞에 두고 잠시간 고개를 돌린 채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은 꽤나 진풍경이었지만⋯ 야엘도 훈련에 참여하고 있어 이 사령관실엔 오직 둘뿐이라는 사실은 엘린에겐 다행이기도 걱정이기도 했다.

다행히 엘린은 곧바로 생각을 결론지었다. 어차피 오늘 밤도 이곳에서 잘 테고, 이대로 자리를 떠나봤자 그 여관으로 가게 될 테니 여길 벗어나면 자신에게 좋은 일이 하나 없을 것이란 이유였다. 엘린은 결국 아주 두껍게 포장되어 노끈으로 정리된 종이봉투를 오르슈팡 앞에 내밀었다.

“그, 사실은⋯.”


“어제 큰 임무를 맡게 돼서 며칠 못 오게 될 거란 편지를 썼는데, 공교롭게도 일이 해결되어서 예정대로 올 수 있었다, 라⋯.”

해서, 직접 들고 왔다는 거지? 오르슈팡은 순간 새어 나올 뻔한 웃음을 필사적으로 내리눌렀다. 간밤에 급하게 단어를 생각하며 종이에 펜을 꼭꼭 눌러썼을 모습이 눈에 선했고 상상 속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귀여웠기에 살풋 웃어서 상황을 중화해 주었다. 그러나 편지지를 조심스레 쥔 채 한 번 다 읽은 글을 이제는 아예 머릿속에 외우려는 듯 첫 인사말부터 새로이 읽기 시작하는 연인의 장난기 어린 모습에 엘린은 다시금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것을 소중히 대해주는 태도를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었기에 편지를 가져다주는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눈앞에 있는 자신에게 소홀해지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의 옆으로 살포시 다가와 넌지시 그 얼굴을 올려다보며 그 나름의 투정을 부리긴 했다.

등불의 온화한 빛무리가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며 여느 때보다 조금은 특별한 하루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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