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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금랑] 죽음의 이유 (2021.02.09)

Snapdragon by 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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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할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금랑님이 자랑스러워하는 너클짐 트레이너이자 금랑님을 도와 보물고 관리를 맡고 있었습니다. 금랑님의 죽음에는 저희의 과실이 큽니다. 죄송합니다. 보물고 테러가 있던 그 날, 네, 금랑님이 돌아가신 그 날이요. 그때 저희도 함께 있었어요.

사건이 있던 날도 보물고 내부 공사 때문에 유물을 옮기고 있던 시기였어요. 거기엔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게 많으니까요. 정말 이런 말 따윈 하기 싫지만, 아마 금랑님이 살아계셨더라면 덕분에 테러에 의해 유물들이 손실 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하셨을 거에요. 금랑님은 그런 분이세요. 프라이드도 높고 책임감도 강하신 분이죠. 그런데 감히 그런 분을 그런 식으로 모욕하려고 했다니, 절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요. 

테러가 있던 시간은 점심시간이었어요. 저희가 힘들어 보였는지 금랑님은 자기가 마저 마무리하겠다며 저희들에게 먼저 식사라도 하라며 보물고에서 내보내셨어요. 포켓몬이라도 있었더라면 어쩌면 빠져나올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그때 금랑님은 포켓몬이 한 마리도 없으셨어요. 사람도, 포켓몬도 어느 쪽도 여유가 없을 정도로 무리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금랑님이 점심시간이라도 푹 쉬라며 포켓몬 센터에 아이들을 맡기셨죠. 금랑님은 그런 분이세요. 자기가 제일 힘들면서 언제나 남을 먼저 챙기시죠.  

만약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절대로 금랑님을 혼자 두지 않았을 거에요. 만약 저희 중 누군가와 같이 있었더라도 테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금랑님이 혼자 죽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만약 저희가 함께 있었다면 적어도 금랑님은 저희를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절대 목숨을 포기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 영상을 보셨다시피 마지막까지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분이시니까요. 

보물고 뿐만 아니라 다른 곳곳에 트레이너들이 너클시티 복구 작업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니 인력이 없었죠. 보물고에도 인력이 없었어요. 그러니 테러범이 그런 장치를 설치한 줄도 몰랐던 거죠. 

무한다이노가 깨어난 그 사건 때문에 너클시티는 보수해야할거리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금랑님도 저희들도 정말 바빴죠. 그리고 그 빌어먹을 기자들! 알고 계시죠? 금랑님에게는 생각보다 적이 많아요. 어떻게든 물어뜯고 싶어서 안달난 기자들이나 금랑님 발끝도 못 미치는 것들이 금랑님을 시기 질투하는 그래요, 안티들이요. 알다시피 그 포켓몬이 너클시티에 잠들어 있었으니까요. 이런 좋은 먹잇감을 그들이 가만히 냅둘리가 없지요! 하지만 저희는 정말 바빴어요. 그런 것들을 신경 써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알아요. 전부 변명이에요. 금랑님은 온 몸으로 그들의 질타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본인의 일을 하셨으니까요. 

금랑님은 명실상부 챔피언 단델님의 라이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단델님이 챔피언이 아니시잖아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저 모든 상황이 금랑님을 너무 힘들게 했다는 겁니다. 설령 단델님에게 패배해도 그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너클짐의 수석관장이고 우리들의 리더입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챔피언 단델을 쓰러뜨리겠다는 목표를 잃어버린 괴로움을 저희가 어떻게, 어떻게 감히 위로 할 수 있었겠어요? 그런 상황에 너클시티의 보수 문제나 비용도 큰 부담으로 느끼셨을 겁니다. 금랑님을 사랑하는 너클 주민들도 알게 모르게 금랑님을 원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알아요, 그들도 괴로워서 그런거겠죠. 저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시겠죠? 금랑님은 정신적으로 정말, 정말 힘드셨을 거란 이야깁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희는 금랑님의 위로가 되어드리지 못했어요. 그저 당장 눈앞에 있는 일에 급급해서 금랑님을 신경 써드리지 못했어요. 정말 후회합니다. 저희가 아주 조금이라도 믿음직했다면 금랑님은 자신의 고민을 저희에게 털어놓으셨겠죠. 어떻게든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그래요, 금랑님이 그런 협박을 받고 홀로 괴로워하실 줄은 정말로, 정말로 몰랐어요. 죄송해요, 금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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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챔피언이자 현 가라르 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단델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금랑이 죽은 건 다 제 탓입니다. 

금랑의 죽음은 보물고 테러가 있던 날 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제가 그를 배신한 순간, 금랑은 분명 죽을 거 같은 고통을 느꼈을 겁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금랑의 그 표정을. 지금도 매 순간 나타나 저에게 묻는 거 같아요. 왜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냐고.

금랑이 전 위원장님과 공범이며, 지하 플랜트에 무엇이 있는지 정말 몰랐는지, 설령 몰랐다 하더라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때 금랑은 이미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상부에서는 아직 혼란스러운 가라르를 수습하기에도 급급했고, 논의 중이라는 말로 금랑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죠. 때문에 금랑이 공식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금랑에 대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그래요. 제게도 금랑이 영상에서 말한 그 사람이 찾아왔었습니다. 금랑과 관련된 서류들을 가지고 말이죠.

저는 십 년 동안 가라르의 챔피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 무게가 사라지고 저는 보다시피 위원장 제의를 받아들이고 이 자리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네, 맞아요. 서툴렀죠. 혼란스러운 이 상황도 시간이 지나면 모든것이 해결 될 거라고 그렇게 막연히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지금도 생각합니다. 그 때 제가 금랑을 믿어주고, 제가 가진 권한을 가지고 발 빠르게 금랑의 일을 수습해주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만약 제 가족이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는 좀 더 빠르게 이 일을 해결했을 겁니다. 설령 어떤 믿을 수 없는 나쁜 증거들이 나오더라도 인정하지 않고 진실을 찾으려 했겠지요.

그자가 제게 준 자료에는 금랑이 전 위원장인 로즈씨의 조력자이며 이번 사건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던 정황들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죠. 누구라도 그걸 읽으면 인정할 정도로 아주 자세하게요. 하지만 전 그 '누구'에 들어가서는 안되는 인간이죠. 지금껏 필드 위에서 직접 그를 부딪치며 그 누구보다 금랑에 대해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하던 제가! 고작 그 종이 몇 장에 눈이 멀어버렸으니 말입니다. 물론 전부 거짓은 아니었죠. 많은 진실들과 작은 거짓이 섞인 내용이었으니까요. 

저는 금랑을 직접 배틀타워에 불러서 그 일을 따졌습니다. 금랑이 제게 물었어요. 고작 그런 걸로 자신을 의심하느냐고. 금랑은 그 자리에서 마치 전의를 상실한 사람처럼 해명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금랑을 본 마지막이요. 정확히는 살아있는 금랑을 본 마지막이요. 이후 그 너덜한 시체를 제 눈으로 확인해야 했으니까요. 금랑이 떠나고 저는 일부러 금랑을 찾지 않았습니다. 어리석게도 타워에 틀어박혀서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어요. 제 라이벌의 배신을 부정하려 애썼던 거 같습니다. 정말 배신한 건 그를 믿지 않는 저 자신인 줄도 모르고.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금랑은 웃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죽음이 그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 것처럼 말이죠. 금랑은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를 믿지 않았던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자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금랑이 모든걸 포기한듯 그렇게 죽었다면 그건 전부 제 탓입니다. 만약 제가 처음부터 금랑을 끝까지 믿었더라면! 아니, 이제 이런 가정은 의미가 없네요. 더는 아무것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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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 가라르 챔피언입니다. 사실 저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요. 저는 정말 이해 할 수 없어요. 어째서 불행할 정도로 금랑님에게만 세상이 이렇게 가혹한지. 도저히 제 머리로는 모르겠어요.

저는 십 년 동안 무패의 챔피언이던 단델님을 이기고 새로운 가라르의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알다시피 무한다이노라는 포켓몬과 함께요. 제 승리에 대해서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단델님이 쓰러진 직후 곧바로 챔피언컵이 있었으니 부당하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게다가 무한다이노는 가라르의 재해라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이유였죠. 그래도 저는 그 포켓몬의 트레이너니까요. 그러니 저는 트레이너로서 그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무한다이노는 드래곤 타입의 포켓몬이에요. 가라르에서 드래곤 포켓몬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라면 그건 당연 금랑님 밖에 없으시죠. 저는 금랑님에게 조언을 구했고, 금랑님은 본인이 힘든 상황에도 저를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덕분에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어요. 

한번은 제게 '목표를 잃어버린 걸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제가 단델님을 이겼기 때문이겠죠. 왜냐하면 챔피언 단델은 금랑님의 목표였으니까요. 금랑님은 언제나 단델님을 이기기 위해서 항상 노력하셨으니. 하지만 금방 웃는 얼굴로 돌아오셔서는 '그래도 자신이 단델을 이길 거라고, 그 녀석 머리 꼭대기 위에 서서 자신이 비웃어 줄 거라며, 기대해도 좋다'며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또 생겼다'고 말씀하셨죠.

저도 영상을 봤어요. 금랑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잊혀지지가 않아요. '자신은 더이상 단델의 라이벌이 아니니 쓸모를 다해서, 그래서 필요 없어 진 거라고. 그래서 죽는 거라고.' 

아무도 제 탓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지만 가끔 생각해요. 정말 실례되는 생각이란건 알고있지만, 제가 챔피언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혹시 어쩌면, 하는 그런 생각. 

하지만 그럴때마다 다시금 금랑님의 말씀이 떠올라요. '어차피 자신이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결국은 희생되었을 거라고.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고, 오늘은 평소보다 더 불행했을 뿐이라고.' 

그 말이 맞아요. 결국 우리가 진실을 알게 된 것도 불행이 겹친 아주 작은 우연이었으니까요. 저는 금랑님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같은 일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저는 챔피언으로서 금랑님을 위해 싸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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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더이상 스파이크 마을의 관장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는 그 녀석에 대해서 길게 말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네요. 그래도 가끔 술친구였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녀석이 가라르에 해를 끼치려고 했다는 억측만큼은 전면 부정하겠습니다. 오히려 되묻고 싶어요. 가라르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관장직을 그만두면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딱 한 번 있어요. 단 한 번도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대요. 그저 그놈의 단델, 단델, 단델. 그 녀석 하나만 보고 앞만 달리는 그런 놈이라고요. 그렇게 해서 당신이 얻는 게 무엇인지 물었더니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고 싶다고. 절대 잊혀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군요. 

바람대로 절대 잊을 수 없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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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랑님이 살려주신 목숨이니 모든 진실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야기가 많이 길어지겠지만요. 그리고 저의 죗값도 반드시 받겠습니다. 그러니 저의 이야기를, 금랑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세요.

저는 금랑님의 안티팬입니다. 혹시 금랑님의 안티 사이트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흔히 검색만 해도 나오는 그런 안티 카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곳은 사실 위장입니다. 제가 말하는 사이트는 안티 중에서도 소위 악질이라는, 흔히 말하는 극성 안티팬들만 모아놓은 곳입니다. 그 사이트는 아무나 쉽게 접근 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그 사이트를 만든 운영자가 알음알음 금랑님에게 얼마나 심한 피해를 주었느냐에 따라 그 주소를 선별해서 알려주는 그런 사이트입니다. 맞습니다. 저도 주소를 받았어요. 제가 금랑님에게 어떤 피해를 주고 거길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제발 묻지 말아 주세요. 모든 죗값은 받겠습니다. 하지만 제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정말 후회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아, 지금은 찾으셔도 없을 거예요. 보물고 테러가 있기 전 이미 모든 계획을 끝내고 사이트는 없애기로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었으니까요. 이제서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만, 보물고에 폭발 장치를 설치한 그 녀석이 증거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사이트도 폐쇄하자고 의견을 냈어요. 저희도 모두 동의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잠잠해지고 가라르가 안정이 되면 그때 다시 모이자는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믿지 않으실 거란 걸 알지만 저희는 금랑님을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냥 지금보다 좀 더 상황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어서, 금랑님의 무능함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 계획을 처음 생각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준비하겠다고 말한 그 녀석이 어쩌면 금랑님이 말한 협박범이 아니었을까요?

제 역할은 금랑님을 보물고에서 빠져나오게 만드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라이브 촬영을 하면서 테러 상황에 시민과 함께 노닥거리고 있는 수석관장이라는 타이틀을 주고 안 그래도 나쁜 이미지에 조금 더 보태려는 그 정도의 계획이었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정말로 죽이려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제가 금랑님과 함께 빠져나오면 그 녀석이 보물고에 테러를 감행하기로 했습니다. 말했다시피 저희는 익명이었어요. 저는 그놈이 누군지 정말 모릅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자존심과 허세와 불필요한 실행력만 잔뜩 가지고 있는 구제불능들이 한데 모여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 일이 실행되지 않으리라는 의심은 정말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스마트폰으로 라이브 촬영을 하며 마치 평범한 일반 시민인 척, 금랑님의 팬인 척 접근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에 트레이너들이 빠져나오는 걸 보았거든요. 분명 테러범도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었겠죠.

제가 금랑님에게  접근한지 얼마 안 되어 한 번  큰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입구 쪽에서요. 당황했죠. 분명 계획은 저와 금랑님이 보물고에서 빠져나온 뒤 쓸데없는 잡담을 하는 사이에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니까요. 제가 당황하는 사이 금랑님이 저를 안쪽으로 끌고 무너지는 잔해들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금랑님 말씀으론 보물고는 내부 공사 중이었어요. 지하 플랜트의 영향으로 지반이 약해지고 많이 불안정한 상태라고요. 금랑님 말씀으론 기둥을 건드린 거 같대요. 제가 보기에도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천장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게 보였습니다. 

금랑님이 자기가 여기 관리자이니 다른 비상 탈출구를 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둡고 긴 공간을 지났던 거 같아요. 불빛도 제대로 들지 않았거든요. 금랑님 몰래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다른 녀석들이 제대로 한 건지 라이브 방송 주소를 여기저기 뿌려놨더라구요. 게다가 테러 실시간 상황이니 사람들이 안몰릴 수가 없었습니다. 채팅창을 통해 뉴스도 타고 있다는 걸 알자 저는 뭔지 모를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금랑님에게 이것저것 물었던거 같아요. 조금 웃었던것도 같아요. 금랑님이 있으면 어쨌든 안전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고 저는 그저 휘말린 피해자로 보였으니까요.

저는 속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금랑님을 비웃으며 물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그러니까 보물고가 무너지는 일이 일어난 거 같냐고요. 그러자 금랑님이 그저 우리 둘 다 운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순간 화가 났던 거 같아요. 이 일을 고작 운이 나쁜 일로 취급하는 게 그냥 기분이 나빴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모진 말이 나갔어요. 저는 운이 나쁜 게 맞는 거 같다, 그렇지만 금랑님은 그 정도가 아닌 거 같다고요. 그러자 금랑님이 그 말을 인정하며 자신이 불행한 트레이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시더군요. 자기가 불행한 사람이라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요. 그제야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보물고 안에는 비밀 문이 있었어요. 금랑님이 무엇을 건드리자 아주 작은,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거 같은 작은 통로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혼자 여기로 빠져나가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당황했습니다. '그럼 금랑님은요? 같이 가시는 게 아닌가요?'

보물고는 언제나 관리자가 한 명이었고, 이 비밀 통로도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요. 한 명이 이 통로를 사용하는 순간 더는 사용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지만 금랑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런거겠죠.

다시 이야기하지만 저는 금랑님이 죽길 바란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계속 설득했습니다. 같이 나갈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요. 그러자 금랑님이 고개를 저으며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여기서 눈을 감고 싶다고 말하셨어요. 저는 금랑님을 계속 추궁했습니다. 

뭐 이미 아시는 대로 전 위원장님은 감옥에 갔지만 여전히 시민들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왕족이 엮여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왕족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와중에 금랑님이 눈에 띈 거죠. 더이상 무패의 챔피언 단델님의 라이벌이 아닌, 그저 너클시티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는 수석관장이 말이죠. 이보다 좋은 먹잇감은 없을 거라며 금랑님이 이야기하셨어요. 

금랑님 앞에 직접 나타나 선택하라고 하셨대요. 왕족의 이미지를 위해서 이대로 조용히 죄를 인정하고 시민들의 먹잇감이 되던가, 아니면 금랑님이 아닌 신입 관장에게 그 죄를 넘기라고 했답니다. 약간의 생각할 시간을 주었고, 결국 금랑님은 전부 거절했습니다. 죄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죄를 넘기지도 않으셨죠. 

그리고 테러가 일어난 겁니다. 금랑님은 이게 전부 자신의 탓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만들면 되는 것이고, 사람들의 분풀이는 꼭 살아있는 육신에게 할 필요가 없다고요. 제 시체만 넘겨주면 사람들이 알아서 억측하고 물어뜯을 거라고요. 저는 그때까지도 이 테러가 저희의 짓이라고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번더 금랑님을 설득하려고 할 때 다시 폭발음이 일어났습니다. 아주 가까이에서요. 그리고 흔들림을 느꼈고 금랑님이 저를 밀어붙이듯 그 안으로 밀어넣으셨습니다. 다시 한번 더 미안하다고 사과하셨어요. 어차피 살아서 몰매를 맞아 죽을 바에 그냥 여기서 편안히 눈을 감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무너지는 건물이 무서워 혼자 도망쳤습니다. 기어가다시피 그곳을 빠져나오자 정말로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그리고 보았습니다. 보물고가 반 이상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금랑님은 시체로 그곳을 나오셨습니다. 저는 라이브 방송을 켜놓고 있다는 사실도 그대로 잊었어요. 배터리가 방전될때까지 제 충실한 스마트 로토무는 모든것을 촬영했기에 금랑님의 억울한 죽음이 드러날 수 있었던 겁니다."

6

금랑은 바닥에 누워 무너져가는 보물고를 바라보았다. 작은 폭발에도 이 정도라니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더 안좋았다. 고작 내부 공사로 이 낡은 건물을 유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이미 지하 플랜트의 영향으로 지반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고 언제 갑자기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한 번 무너트린 뒤 기반을 다시 다지고 더 튼튼하게 다시 짓는 게 안전하다. 역사적 가치의 손실은 아쉽지만 적어도 유물들은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미래를 생각한다면 손해는 아니다.

'뭐 이런 사정을 대단하신 윗사람들이 알 턱이 없을 테지만!'

금랑은 평온하게 웃었다. 나중에 제 시체를 확인하게 될 단델을 위해서라도 금랑은 웃었다. 아, 단델! 감히 나님을 배신한 단델! 그럼에도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의 단델! 너의 삶에 영원한 죄책감으로 이 몸이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죽음은 절대 헛되지 않을 테다. 그리고 모두에게 기억 될, 너무나도 상냥한 금랑님이 자리 잡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일이 너무 잘 풀렸어!' 금랑은 감히 너클짐에 찾아와 제게 협박을 하던 무례한 인간을 떠올렸다.

금랑이 단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속이 텅 비어버린 거 같은 허탈감을 안은 채 배틀타워를 빠져나와 너클짐에 도착했을 때 그는 멋대로 금랑이 아끼는 찻잔에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마치 무언가의 축하인사라도 건네듯 아주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말인즉슨, 왕족들의 이름을 덮을 희생양이 필요하다며 선심 쓰듯 말했다.

"협박이 아닙니다. 선택권을 주는 겁니다. 당신이 지금껏 가라르에 공헌한 바가 큰 덕이죠. 위원장이 편리를 위해 당신을 내친 거처럼 당신도 고르기만 하면 됩니다. 로즈씨에게 이용당한 꼬맹이가 있죠? 포플러님의 가호로 문책은 못 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죠. 아니면 당신이 라이벌을 내치는 건 어떤가요? 이미 한 번 추락한 왕을 끌어내리지 못할 이유도 없지요. 이번에 챔피언이 된 아이도 나쁘지 않네요. 그가 그런 위험한 포켓몬을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쫓을 이유는 충분하니까요. 그게 싫으면 본인이 희생하면 됩니다.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드리죠. 아, 트레이너들이 다치는 게 싫다면 도망은 안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는 차가 맛있었다는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떠났다.

금랑은 고아였지만 눈에 띄는 아이였다. 덕분에 로즈의 눈에 띄어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단델의 라이벌이 된 것도, 너클짐 관장이 된 것도 모두 자신의 실력이라고 당당히 말 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비칠 게 뻔했다. 정확히 너클짐 지하에서 무슨 짓거리를 준비하는 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수상한 움직임 정도는 포착하고 있었다. 그놈의 권한이 제게 없었을 뿐. 계속 선을 그으며 나중에 덮어쓰지 않을 증거들은 차분히 모아왔지만, 왕족이 뒤에서 버티는 한 씨알도 안먹힐 게 뻔했다. 마치 모든 게 금랑을 위해 준비된 상황처럼 모든 증거들이 척척 들어맞았다. 오, 이거 상황이 안 좋네. 장난 아니고 진짜 안 좋은걸.

금랑은 제가 고아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적어도 안티들 때문에 슬퍼할 가족들도 없고, 자신은 가족이 없으니 그쪽으로는 절대 협박 받을 리 없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금랑을 쥐고 흔들 게 많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어느샌가 여기에 소중한 것을 너무 많이 만들어버린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불명예스럽게 가라르에서 지워 질수는 없지!"

금랑이 으깨진 자신의 다리를 보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물론 영원할 거 같았던 단델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린 거 같다고 아주 잠깐 슬퍼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상관없었다. 지금껏 단델을 이긴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목숨을 걸었다. 분명 단델은 저를 의심한 그 순간을 평생토록 후회하며 잊지 못할 테니까. 금랑은 천국에서 자신의 첫 승리이자 마지막 승리에 축배를 드는 상상을 했다.

'참, 그 안티팬에게도 감사해야겠네. 잘 속아줘서 고맙다고 말이야.'

애초부터 금랑은 극성 안티들이 모인 사이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금랑은 가짜 계정을 하나 만들고 금랑을 어떻게 테러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썼고, 자신의 진짜 계정에 그런 일을 당한척 몇 번 글을 적은 것만으로도 손쉽게 주소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리 테러의 상황을 알면서도 적당히 당해주는 척을 하면서 지금껏 지내왔다. 쓰레기들끼리 알아서들 모여있다니 덕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알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생각했더랬다.

"응응, 역시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니까."

금랑은 사이트에서 사람들을 선동했다. 보물고 테러에 관한 일은 전적으로 자신이 맡았다. 다른 녀석들에게도 적당히 역할을 부여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나에 대한 미움보다 그저 타인의 관심이 가장 고픈 녀석으로 적당히 골랐다. 참 운이 나쁜 녀석이야. 미리 트레이너들과 포켓몬을 보물고에서 내보낸 뒤였기에 금랑은 안심하고 설치해둔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꼴 좋다. 멍청이들. 금랑은 입에서 계속 피가 쏟아져나와 겨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왕족의 이름을 덮으려고 했지만 금랑은 역으로 아주 널리, 그들의 악명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괘씸죄였다. 감히! 감히 이 몸과 단델 사이를 이간질하려 하다니. 그건 어떤 걸로도 용서할 수 없었다. 

챔피언 단델을 끌어내리는 건 실패했지만, 적어도 챔피언 단델의 최고의 라이벌이라는 자리는 자신이 끌어안고 순장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금랑의 마지막 심장이 뛰었다. 동시에 눈이 부시게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무너진 천장 위로 비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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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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