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아엘] 꽃이 피면
슈리아님이 신청하신 골드커미션
봄꽃이 만개하기 시작하는 3월.
상점가에 자리한 꽃집 부케는 평일 오후 답게, 좋게 말하면 여유롭고 평화로웠고 나쁘게 말하면 한산하고 손님이 없었다. 하긴, 길거리만 걸어도 꽃이 핀 나무들이 잔뜩 팔을 흔들고 있는데다가, 졸업식과 달리 입학식 시즌에는 꽃다발을 선물하는 일도 드물기 때문에 손님이 없는 게 당연하긴 했다. 나른하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펴던 꽃집 주인은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푸른 머리색을 가진 젊은 청년으로, 분위기가 딱딱하고 절도있는 것을 보아 교직에 있거나 공무원이 아닐까, 하고 꽃집 주인은 생각했다. 그녀는 관상을 볼 줄 모르기에, 그런 생각은 대체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어서오세요~,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꽃집 안으로 들어와서 슬며시 꽃구경을 조금 하려던 눈치였던 청년은 금방 주인에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꽃집에 온 목적이 명확한 손님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목표를 좁혀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찾는 것이 확실한 손님에게 알맞는 식물을 찾아주는 것도 보람찬 일이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응대하자, 청년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어떤 걸 원할까? 애인에게 줄 꽃다발? 자그마한 화분? 본인의 기분전환을 위해 꽃을 좀 사가려나?
"공기정화 식물을 찾고 있는데, 추천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 셋 다 아니었다. 마음 속에 땡땡땡, 소리가 울렸다. 꽃피는 3월이지만 미세먼지가 심하긴 하지.
"특별히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신가요? 관리하기 쉽다거나..."
"제가 생활이 불규칙해서 관리하기 쉬우면 좋겠는데요."
"그럼 산세베리아나 스투키가 괜찮아요. 어두운 곳에 둬도 잘 자라고, 산세베리아같은 경우에는 흙이 말랐을 때 물을 주시면 되고, 스투키같은 경우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면 되거든요."
"둘 다 무난해서 오히려 고민됩니다."
"그럼 산세베리아쪽을 더 추천드려요. 스투키는 물을 줄 때 잎에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해야하거든요."
"혹시 꽃이 핍니까?"
"아니요, 이 종류의 산세베리아는 꽃이 피지 않아요."
"그럼 이걸로 부탁드립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청년이 들고가기 편하게 꼼꼼하게 포장한 화분을 건네자, 그는 꾸벅 인사를 하고 성큼성큼 가게 밖으로 문을 열고 걸어나갔다. 그 걸음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비쳐오는 듯 했다. 퇴근한 직장인이란 그런 법이지, 아 나도 빨리 퇴근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꽃집 주인은 다시 의자에 앉아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
겐이치가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자, 문 열리는 소리를 들은 아엘라스가 달려나오고 있었다. 이미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그 사소한 일상이 좋아서 겐이치는 웃으며 연인이자, 동거인에게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아엘라스씨."
"겐군 어서와~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어라, 화분이네?"
귀가한 겐이치를 반기던 아엘라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겐이치에 손에 들린 화분을 바라보았다. 반갑기도 하고, 제 영역을 침범당하기도 하는 기분이다. 아엘라스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겐이치를 응시하자, 겐이치가 화분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으며 대답했다.
"3월이잖습니까."
"3월이지."
"미세먼지가 이제 심해질 계절인지라."
"하긴, 마스크 쓰고 다니긴 해야겠더라. 그래서?"
"환기하기에도 곤란하니까요, 공기정화식물이래서 사봤습니다. 슬슬 집에 화분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을 것 같고."
응응, 아주 논리적이야. 합격~하고 아엘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가 있으니까 공기정화화분 같은 건 없어도 되는데 말이지. 아, 아닌가. 지금은 또 그런 기능(?)이 없는 걸까. 스스로에 대해 아주 잠깐 고찰하던 아엘라스는 이내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쭈그려앉아 화분을 들여다보았다.
"그럼 이거 어디에다 둘까? 겐군 방?"
"제 방만 공기가 정화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같이 덕을 봐야죠. 거실이나 부엌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 거실로 하자, 볕이 잘 드니까!"
"빛이 잘 들지 않아도 잘 자라는 식물이라던데..."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있잖아. 모처럼 남향이라 볕이 잘 드는데 안 두면 아깝지~"
웃챠, 일어나 화분을 든 아엘라스가 종종걸음으로 거실로 걸어가 소파 옆에 놓았다. 처음부터 그 자리의 주인이 산세베리아였다는 듯이, 꼭 알맞게 어울렸다. 뭐, 잘 어울리니까 봐줄까. 아 무거웠다~이걸 겐군은 대체 어디서 부터 들고 온 거람 힘이 장사야 장사~바로 소파로 굴러가듯 앉아 기지개를 펴는 아엘라스의 옆에, 넥타이를 풀며 천천히 거실로 걸어온 겐이치가 앉았다. 익숙한 무게에 소파가 울렁거리는 것이 느껴지자, 히힛, 하고 웃은 아엘라스가 겐이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옷 아직 안 갈아입었습니다만...."
"뭐 어때. 퇴근 직후의 겐군을 좀 즐기게 해줘."
"가끔 보면 아엘라스씨도 엉뚱한 부분이 있으십니다...음, 저렇게 두니까 보기 좋네요, 화분."
"응, 겐군 보는 눈 있는 것 같아. 나도 마음에 들어."
소파 옆에 자리한 화분을 들여다보던 겐이치가 제 어깨에 기댄 아엘라스의 머리에 살짝 머리를 기울였다.
"아엘라스씨."
"응, 왜?"
"저 화분에 꽃이 피면, 헤어질까요."
이별이 입에 오르자 조금 당황해서, 아엘라스는 급하게 산세베리아 화분을 쳐다보았다. 야, 너 꽃 피니? 아니요, 안 피는데요. 산세베리아와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눈 아엘라스는 겐이치가 좀 머리를 굴려 낭만적인 말을 했구나를 깨닫고는, 꺄르륵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럴까, 저 화분에 꽃이 피면 헤어질까."
"그러기로 하신 겁니다. 꽃이 피기 전까진 못 헤어지십니다."
"응, 그러자. 만약에 꽃이 피면 어떻게 할까?"
"연애는 그만두고 결혼할까요."
"히히, 그래, 그게 좋겠다."
겐이치와 아엘라스의 집에 새 가족인 산세베리아는 그렇게, 입주 첫날부터 두 사람의 꽁냥거림을 보며 피울 수도 없지만, 절대로 꽃을 피우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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