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봄은 사랑의 계절

2023.12.09 대만태섭 온리전 글 협력

某日 by 銘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훈기 섞인 바람 속에 피어나는 분홍빛 벚꽃과 함께 3학년들은 졸업을 맞았다. 만 1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많은 추억을 같이 쌓아 올린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 후배들은 선배들을 쉽게 보내지 못했다. 졸업을 한다고 관계가 끊기는 건 아니지만 오후부터 저녁까지 매일을 함께하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일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직 감수성이 풍부할 나이의 10대 소년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쿠라기는 특히 더했다. 인정하진 않아도 내심 형님처럼 따르던 아카기에게 매달려 고릴라는 왜 졸업하는 거냐고, 가지 말라고 억지를 부려댔고 코구레에게도 괜히 불퉁하게 굴었다. 졸업을 축하드린다며 꽃다발을 내민 루카와의 눈에도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앞으로 쇼호쿠를 잘 부탁해, 부주장. 야스다는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코구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든 장면은 쿠와타의 캠코더에 고스란히 담겼다. 졸업식 풍경을 기록으로 남기면 좋을 것 같다는 아야코와 하루코의 대화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자원했기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농구만큼이나 사진이나 영상 찍는 것을 좋아했던 쿠와타는 이 역할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늘 그가 찍은 영상은 이제 비디오로 옮겨져 부원들의 추억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었다.

“그런데 미츠이는 어디 갔지? 아까부터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사쿠라기를 겨우 떼어놓은 아카기가 묻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밋치라면 또 어디서 여자애한테 고백받고 있는 거 아니야? 오늘 하루 종일 불려 나갔잖아. 사쿠라기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츠이라면 그럴 만하지. 코구레도 동의했다. 하지만 미츠이 말고도 없어진 사람은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러고 보니 료타도 없네요. 야스다가 제 친구의 부재를 알아챘다. 두 분 같이 계신 것 아닐까요? 하루코가 추측을 내놓자 쿠와타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제가 한 번 찾아볼게요! 사쿠라기의 말대로 하루 종일 여기저기 불려 다닌 탓에 미츠이의 영상 분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므로, 만약 미야기와 그가 같이 있다면 쿠와타는 이 기회에 미츠이 중심의 샷을 조금 더 담아볼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체육관 뒤쪽의 담벼락이었다. 꽃과 졸업장을 든 미츠이가 미야기와 마주본 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 뭔가를 말하던 미츠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미야기에게 내밀었다. 미야기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는 게 보였다. 미츠이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던 미야기는 이내 그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소중하게 받아 들었다. 고마워요. 미야기의 입이 대충 그런 모양을 한 것 같았다.

“미츠이 선배! 미야기 선배!”

크게 이름을 부르자 미츠이와 미야기가 동시에 이쪽을 돌아다보았다. 부원들이 찾아요! 아, 오케이. 갈게! 쿠와타의 말에 미츠이가 크게 대답했다. 미츠이가 가자는 듯 턱짓을 하자 미야기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몸을 돌렸다. 미츠이는 미야기에게 바짝 붙어 팔로 허리를 감싸며 걸어왔다. 원래도 스스럼없이 붙어 있는 사람들이긴 했으나 이 정도로 미츠이가 친근하게 몸을 붙이는 걸 보는 건 또 처음이었다. 미야기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으며 팔꿈치로 미츠이의 배를 퍽퍽 쳤다.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떨어지라는 말을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게 더 편하다니까? 요즘은 네 어깨에 팔 얹으면 미묘하게 높단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너 혹시 키 큰 거 아니냐? 돌아가면 한 번 재 봐.”

“그따위 소리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해도 하나도 기쁘지 않으니까 입 다물어요.”

미야기가 짜증을 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마지막 날까지도 어김없이 입씨름을 해대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쿠와타가 웃으며 캠코더를 들었다.

“두 분 마지막까지 사이좋으시네요. 한 번 포즈라도 취해보세요, 잘 찍어드릴게요.”

“이런 걸 영상으로 남겨서 뭐 해.”

“뭐 어떠냐, 기념인데.”

미야기는 불평했지만 미츠이는 호탕하게 웃었다. 질린 눈빛으로 미츠이의 당당한 얼굴을 올려다보던 미야기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바람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요, 뭐,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리고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았다. 분홍빛의 벚꽃처럼 부드러운 미소와 다정한 눈빛이 소년들의 얼굴에 환히 피어났다.

“이거 묘하게 데자뷰가 있네.”

미야기와 나란히 서서 손님을 맞던 미츠이가 불쑥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예요?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앞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미야기가 고개를 돌려 미츠이를 쳐다보았다. 미츠이가 회장 한쪽을 보라며 눈짓을 했다. 쿠와타가 이쪽 찍고 있잖아. 미츠이의 시선을 따라가니 부드러운 곱슬머리의 미청년이 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을 향해 서 있었다. 미츠이가 씩 웃으며 손을 한 번 흔들어 주자 청년이 카메라 뒤로 꾸벅 인사했다. 미야기가 한 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게 어때서요? 쿠와타에게 촬영 부탁한 건 우리잖아요.”

“고교 졸업식 때도 저 녀석이 우리 둘 찍어줬잖아. 촬영 당하고 있으니 뭔가 그때 생각이 난다 이거지. 뭐야, 기억 안 나?”

“그랬었나요? 너무 오래전이라서.”

“너무 오래라니, 얼마나 됐다고!”

“10년도 더 전이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히 오래 됐지. 그보다 집중해요. 저기 당신 할아버님이랑 할머님이 오고 계시니까.”

“뭐? 우리 할아버지랑 할머니? 진짜잖아? 웬일이야. 그렇게 반대를 하길래 안 오실 줄 알았더니.”

“그래도 첫 손자 결혼식인데 설마하니 진짜 안 오시려 했을까요. 이렇게 멋있게 차려입은 히사시씨 보는 일이 흔한 것도 아닌데.”

“뭐냐, 그 발언은. 새삼스럽게 반할 것 같아?”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아요. 아침에 이 차림 봤을 때부터 이미 한 번 더 반했으니까.”

“…미국에 다녀오더니 능글맞아졌네, 너.”

“그래서 싫어요?”

“아니. 귀여워서 좋아.”

여전히 시선은 앞에 고정한 채로 입만 움직여 닭살 돋는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기품 있게 차려입은 노부부가 가까이 오자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자리에 오긴 했으나 노부부의 얼굴에는 탐탁지 않은 기색이 역력히 묻어나고 있었다. 미츠이는 웃는 낯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미야기의 시야를 슬쩍 가렸다. 겉으로 봐서는 친척에게 인사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이었지만 실제로는 미야기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고, 그것을 눈치챈 노부부는 더욱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미츠이는 조부모의 불만을 천연덕스럽게 무시한 채 눈꼬리를 휘며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오셨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히사시.”

“제대로 얼굴 보는 건 처음이시죠? 이쪽이 료타예요. 조금 있으면 제 남편이 될.”

일부러 남편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미츠이가 살짝 몸을 비키자 소개를 받은 미야기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미야기 료타입니다.

“원래 성으로 소개하는 건 양해해주세요. 아직도 히사시씨와 누가 성을 바꿀지 결정을 못 했거든요.”

“이 녀석도 한 고집 해서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미야기를 내려다보는 미츠이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가득 묻어났다. 일생일대의 사랑을 손에 넣은 남자의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래요, 우리 히사시를 잘 부탁합니다. 잘 살려무나. 결국 미츠이의 조부모마저 한숨을 내쉬고 두 사람을 축복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깊은 감정이었다.

이런 작은 에피소드가 있기는 했으나 결혼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스타일은 조금 다르지만, 주홍빛 꽃을 가슴에 달고 하얀 정장을 갖춰 입은 신랑들이 모두의 축복 속에 나란히 입장을 했다. 하얀 꽃과 반짝이는 조명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유리 위를 걷는 두 신랑은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결혼행진곡과 박수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쿠와타는 단상 근처에서 이 모든 풍경을 충실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언젠가의 영상 속에 담겼던 봄처럼, 행복에 들뜬 얼굴로 무언가를 작게 속삭이며 웃는 두 선배의 얼굴이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