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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을 대비하기

네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某日 by 銘

태섭은 옆에서 잠들어 있는 대만을 바라보았다. 창을 등진 채 태섭 쪽으로 몸을 향한 대만은 아주 평화롭고 온순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뜯어보던 태섭은 손을 뻗어 천천히 대만을 매만졌다.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 여전히 턱에 남아 있는 작은 흉터, 근육이 잘 잡힌 어깻죽지, 그리고 제 허리를 감싼 팔까지. 태섭이 사랑하는 수많은 것들의 일부였다.

“…잠이 안 와?”

대만의 잠긴 목소리가 한밤의 고요를 깼다. 눈도 못 뜨면서 대만은 태섭을 조금 더 제 쪽으로 당겨 안고 이불을 어깨 위까지 덮어주었다. 추운가……. 옷 입히고 재울 걸 그랬네. 졸음기 가득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태섭이 픽 웃었다. 그냥 잠깐 깨서 그래. 다시 잘 거야. 응……. 얼른 자. 알았으니 형도 다시 자. 태섭이 가만히 어깨를 토닥이자 대만은 작게 하품을 하고 도로 잠에 빠져들었다.

일정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대만의 가슴 위에서 목걸이가 반짝였다. 해지고 삭아가는 티가 나는 갈색의 가죽 줄을 보며 태섭은 대학 시절 룸메이트가 키우던 화분을 떠올렸다. 연인에게 선물 받았다던 작은 화분이었다. 이거 죽으면 걔랑 관계 끝날지도 몰라, 그러니까 소중히 키워야지. 그때는 무슨 미신 같은 소리냐고 웃었는데 정말로 그 화분이 말라 죽은 날 룸메이트는 이별을 했다. 물론 단순한 우연이었겠지만, 태섭은 대만의 목걸이를 보며 룸메이트의 그 말을 떠올렸다. 저 목걸이 줄이 끊어지면 그때는 정대만의 마음도 끊겨 나가는 게 아닐까, 이 사람의 사랑은 언제까지 온전할까, 우리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남았을까.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나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온기를 놓아줄 수 있을까.

다시 조용해진 방 안에서 태섭은 잔뜩 몸을 웅크렸다. 잠결에 대만이 태섭을 더 꽉 끌어안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막혔다. 힘겹게 천천히 숨을 쉬며 태섭은 베갯잇을 꽉 쥐었다.

네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준호 형 헤어졌다고?”

태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맞은편에서 커피를 마시던 달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태섭이 혀를 찼다. 결혼할 줄 알았는데.

준호는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사귄 여자친구와 오래 연애를 했다. CC는 하는 게 아니라는 농담이 세간을 떠돌지만 두 사람은 4년 내내 과 공식 커플로 인정받을 만큼 안정적으로 사귀었고 졸업 후에도 만남을 이어 나갔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할 거라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성실하고 착한 남자와 상냥하고 참한 여자. 누가 봐도 이상적인 선남선녀 커플이었다. 준호가 프로포즈를 하겠단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지만 그렇게 잘 어울리는 데다가 10년 가까이 만났으니 당연히 결실까지 맺을 거라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준호가 얼마나 여자친구를 좋아하는지도 모두가 알았으니까. 이런 사람을 내 인생에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안경 밑으로 수줍게 눈을 빛내는 권준호의 모습은 꽤 진귀한 장면이었기에.

“나도 그럴 줄 알았어.”

“충격이네. 형은 좀 괜찮대? 이거 위로주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치수 형 말로는 생각보다 담담하다던데. 그럴 줄 알았다고 했대. 당사자들만 아는 뭔가가 있었겠지.”

달재는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평온하게 커피를 마셨다. 그럴 줄 알았다라……. 과연 권준호는 뭘 알았을까. 완벽하게 안정적이던 커플을 한순간에 깨뜨린 건 뭐였을까. 태섭은 가만히 제 잔을 내려다보았다. 다 마신 라떼의 거품이 둥그렇게 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모든 게 사라졌음에도 끝내 떨어지지 않은 볼썽사나운 흔적. 그 거품이 태섭의 눈앞에 계속 아른거렸다.


“왔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태섭을 맞아주었다. 대만이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틀어져 있는 것은 웬 스릴러 영화였다. 웬일이래. 스릴러는 심장이 오그라든다며 선호하지 않는 정대만을 아는 태섭이 눈썹을 위로 치켜올렸다. 뭐 봐? 몰라, 채널 돌리다가 나와서 그냥 보고 있었어. 스릴러 싫다며? 어, 근데 이건 좀 재밌네. 옷 갈아입고 나올게. 오냐.

휴가를 받아 귀국할 때면 태섭은 대만의 집에 머물렀다. 아라가 자라면서 원래 태섭의 방을 그대로 쓰게 된 지라, 태섭이 머물 여분의 장소가 없었던 탓이다. 이사하자니까요, 돈 잘 버는 NBA 선수 두고 뭐해. 그렇게 이야기하곤 했지만 태섭은 아라의 대학 졸업까지는 당신의 손으로 시키고 싶다는 어머니의 의사도 존중했다. 대신 아라 졸업하면 이사 가는 거예요, 엄마. 잘 곳이 없어서 오랜만에 미국에서 온 아들을 내쫓는 게 말이 되냐구요.

그런 이유에서 돌아갈 때까지 신세 좀 지겠다는 태섭의 말에 대만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이렇게 된 거 아예 네 짐 다 우리 집으로 빼는 건 어떻냐고 설레발까지 치길래 명치를 대신 쳐줄 뻔하긴 했지만.

대만과 태섭은 5년째 사귀고 있었다. 태섭이 미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 대만은 절절한 마음을 고백했다. 인터하이 끝난 후부터 너를 좋아했고 그래서 너한테 잘해줬었고 졸업하고 나서도 틈만 나면 애들 봐준다고 북산 온 것도 그래서였고 어쩌고저쩌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태섭의 말에 대만은 얼빠진 표정을 했다. 언, 언제부터? 선배 졸업식 때? 모를 수가 없겠던데요, 선배 그날 하루종일 나만 쳐다봤잖아요. 아주 그냥 절절함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그러고 나서 피어싱 걸린 귀를 만지작거리던 태섭은 대만에게 말했다.

‘나랑 사귀면 선배 힘들 거예요. 나 그렇게 막……. 치대는 타입은 아니라서. 봤잖아요, 나 결국 한나 놓친 거. 미국 가면 만나지도 못하는데 연락도 잘 안 될 테고, 바쁘면 신경도 못 쓰고. 그런 거에 부담감이랑 죄책감 갖기도 싫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시작 안 하는 게 맞아요.’

그랬더니 정대만은 오히려 화난 얼굴을 했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네가 안 하면 내가 하면 되고, 내가 고작 연락 다시 안 돌아온다고 처질 놈처럼 보이냐고. 알잖아, 나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야. 내가 얼마나 불탈 수 있는지 보여줄게. 그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기가 차서 그랬었다. 그럼 선배 3년 넘게 그 짓 할 수 있으면 사귀어 주겠다고. 그랬더니 정대만은 정말로 3년 넘게 그 짓을 했다. 14시간이 넘는 시차에도 항상 태섭의 시간을 우선했고 국제전화비도 전부 저쪽에서 부담했다. 편지도 수시로 왔다. 과장 좀 보태서 학교 우체국에서 보낸 이에 Jeong이라는 글자가 보이자마자 태섭의 방으로 편지를 배달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 짓을 정말 3년 넘게 받으니 더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드래프트가 확정된 날, 태섭은 결국 체념한 목소리로 대만에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래요, 사귑시다. 선배 진짜 징글징글해서 안 되겠어.’

그때부터 5년이었다.

편한 옷을 입고 나온 태섭이 맥주캔 하나를 들고 대만의 옆에 앉았다. 딱, 쏴아. 탄산이 빠져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태섭은 캔을 입으로 가져갔다. 쓰고 따가운 액체가 목 뒤로 넘어갔다. 가만히 TV 화면을 보면서 맥주만 마시던 태섭이 갑자기 툭 말을 던졌다.

“준호 형 헤어졌다더라.”

“어, 알아. 들었어. 얼마 전에 치수랑 셋이 만났을 때 얘기하더라고.”

“형 보기엔 어땠어? 준호 형 괜찮아 보였어?”

“글쎄……. 뭐, 얼굴이 좀 죽긴 했어도 평소랑 비슷하던데. 자기 말로는 괜찮다 그러고. 진짜 심정이 어떤진 몰라도 걔는 심지가 굳세니까 알아서 잘 털어내겠지. 권준호 정도면 좋은 사람 또 만나는 거 어렵지도 않고.”

그리고 내 좋은 사람은 바로 여기 있네. 대만이 큭큭 웃으며 태섭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목 위로 입술이 가볍게 떨어진다. 나 이거 쏟는다. 태섭이 못마땅하게 말하자 대만이 그 손에서 캔을 빼앗아 커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러면 괜찮지? 그리고 태섭을 소파 위에 그대로 밀어 눕혔다. 당연하다는 듯이 겹쳐오는 입술과 함께 대만의 손이 티셔츠 안으로 파고들었다. 맨 허리를 쓸어내리자 간지러움을 느낀 태섭이 허리를 비틀었다. 겹친 입 사이로 대만의 웃음이 흘렀다. 턱부터 시작해 목선을 따라 연신 입을 맞추며 대만이 태섭의 바지에 손가락을 걸었다. 허리를 들어주자 속옷까지 한 번에 딸려 내려갔다. 태섭이 소파의 등받이에 오른쪽 다리를 올렸다. 그때부터는 연인들의 시간이었다.

대만의 목을 안고 태섭은 끙끙대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동안 수없이 몸을 섞었지만 매번 처음 열릴 때는 묵직함이 버겁다. 찌푸려진 미간을 보고 대만이 달래듯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 부드럽게 헤집어 오는 키스를 받으며 태섭은 땀이 배어난 대만의 목덜미를 매만졌다. 대만이 항상 하고 다니는 목걸이 줄이 툭툭 걸렸다. 7이라는 펜던트가 달린 그 목걸이는 태섭이 마침내 고백을 받아주고 나서부터 대만이 착용하던 물건이었다. 함께 있고 싶은데 있을 수 없으니까 대신 악세서리로나마 같이 있고 싶다면서 걸고 다닌 세월이 두 사람이 사귄 햇수만큼이나 되었다. 잘 때나 씻을 때나 절대로 몸에서 떼놓지 않는, 대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기도 했다.

손끝에 걸리는 갈색의 가죽 줄은 만질 때마다 가루가 조금씩 묻어났다. 처음 샀을 때만 해도 꽤나 질긴 줄이었는데 운동선수의 특성상 땀과 물이 수시로 닿다 보니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남자의 손으로 힘을 준다면 지금도 쉽게 튿어질 터였다. 그 약해진 끈을 손 안에서 굴리며 태섭은 오늘 들었던 준호의 이별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토록 끈끈하게 이어지던 사랑도 변해가는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관계도 한순간에 끝날 수 있는 게 사람의 인생이었다. 아무리 견고하게 지은 안정적인 빌딩이라도 지진 앞에서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그건 내게도 해당하는 확률이 아닐까. 한 번 생겼던 일이 또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태섭은 이미 소중한 관계를 하루아침에 잃어 보았다. 그날 이후로 소년은 영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언제라도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대비를 해 왔다. 그러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져도 어느 정도는 괜찮을 수 있었다. 이미 예상했으니까, 훨씬 나쁜 상황도 생각했으니까. 그건 태섭의 삶의 방식 중 하나였고 무슨 일을 겪어도 괜찮다고 금방 툭툭 털어낼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런데 눈앞의 이 사람 때문에 태섭은 오랫동안 그 삶의 지혜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대만이라는 불꽃이 주는 온기에 취해서 언제라도 추운 벌판이 눈 앞에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연신 떨어지는 부드러운 입술이, 배 위를 더듬는 간지러운 손길이, 섬세하게 템포를 조절하는 몸짓이, 감출 수 없는 사랑이 담긴 눈빛이, 모든 게 따뜻함을 넘어 뜨거웠다. 훅 끼쳐오는 열기가 갑자기 숨이 막혔다. 태섭은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대만의 다정함을 마주할 때마다 속이 메스꺼웠다. 그래서 태섭은 결국 쏟아지는 키스를 받다가 헛구역질을 하고야 말았다.

“괜찮아?”

관계 중에 헛구역질을 한 게 굉장히 오랜만이라 대만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4년 전이었나, 3년 전이었나. 태섭이 처음으로 먼저 몸을 붙여오던 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대만이 깊숙한 곳까지 억지로 밀어 넣으려 했을 때를 마지막으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로 움직임을 멈추고 이마를 닦아주며 제 컨디션을 예민하게 살피는 대만을 보고 태섭은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계속 속이 울렁거렸다.


대만이 2주간 지방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전지훈련에서 돌아오는 날이 딱 태섭의 출국날이었다. 애인 휴가의 3분의 2를 날려 먹는 것도 열받는데 이러다 인사도 못하고 보내는 거 아냐? 스케줄표를 몇 번이고 넘겨보며 대만이 투덜거렸다. 그래서 두 사람이 제대로 같이 있을 수 있던 건 지난 주말이 마지막이었다. 집합 장소로 떠나기 직전까지도 가기 싫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놓아주지 않으려던 걸 엉덩이를 발로 차서 겨우 쫓아 보냈다. 무슨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애같이 굴어. 내일모레면 서른 되는 거 맞아? 잔뜩 타박을 듣고 겨우 떠나는 대만의 차를 베란다 위에서 내려다보던 태섭은 그 뒤꽁무니가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울렁이는 속에 변기를 붙잡고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 것치고는 올라오는 것도 없었고 구역질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속만 계속 메스꺼울 뿐이었다. 그게 더 답답했다. 차라리 전부 게워내기라도 하면 편할 것 같은데, 그러고 다 털어버리면 나을 것 같은데. 태섭은 대만이 입맞춤을 남긴 오른뺨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겨우 화장실에서 나오고 나니 집안이 휑했다. 온 세상이 차가운 적막에 휩싸인 것 같았다. 태섭은 바람 빠진 소리로 웃었다. 미국에서도 혼자 있었잖아. 새삼스럽게 왜 그래. 태섭의 미국 집도 대만의 집과 비슷한 사이즈였다. 그러니 이런 곳에 혼자 있는 일은 지겹도록 익숙할 텐데, 이곳에서는 고작 한 사람이 없다고 갑자기 썰렁함을 느낀다는 게 지나치게 우스웠다. 정신 차려, 송태섭. 태섭은 제 뺨을 짝짝 내리쳤다. 정대만이 있든 없든 송태섭은 송태섭의 일상을 살아야 했다. 그게 당연했다. 원래 제 삶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이건 일종의 재활이었다. 8년 동안 무뎌진 것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려 놓는 여정. 누구 없이도 혼자 우뚝 서는 게 당연했던 과거의 송태섭을 되찾는 노력. 혹시 언젠가 무슨 일이 생겨 정대만이 영영 없어지더라도 괜찮아지기 위해서.

그랬는데 왜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 태섭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새로 부임한 감독이 빡빡한 타입이라더니, 훈련이 꽤 고된 모양인지 대만에게 연락이 잘 오지 않았다. 평소의 대만이었다면 여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연락을 해서는 오늘은 뭘 했는지부터 시작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을 텐데, 이번에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기껏 오더라도 곧 가봐야 해서 길게 통화는 못한다며 짧게 안부만 물었다. 밥 먹었어? 잘 챙겨 먹어. 잘 자고. 간다. 끝.

그래서 딱 재활을 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이냔 말이야. 밥도 맛이 없고 운동에도 집중을 못 하겠어. 책을 봐도 글자가 들어오지 않고 영화를 봐도 소리가 들어오지 않아. 길에 나가 농구공을 튕겨봐도 재미가 없어. 지인들과 가족들을 만나도 그때뿐이야. 돌아가는 길이 공허해. 집이 추워. 그래서 잠이 오지 않아. 아일랜드 식탁 위에 엎어진 채 태섭은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응시했다. 며칠째 깊게 잠들지 못한 눈이 빨갰다. 이게 정대만이 없는 일상이었다. 언젠가는 그가 다시 보내야 할지도 모를, 온전히 견뎌야 할지도 모를. 차가운 대리석 위에 뺨을 댄 태섭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권준호도 이걸 겪고 있을까.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그녀를 놓았을 때 이렇게 힘들어질 거란 걸 알았을까. 그래서 태섭은 망설임 끝에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준호는 정말로, 생각보다 괜찮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길이 막혀 조금 늦게 도착한 태섭을 반갑게 맞아주며 메뉴판을 내미는 손이 늘 그렇듯 다정했다. 먼저 마시고 있었던 건지 반쯤 줄어든 하이볼 잔이 준호의 앞에 놓여 있었다. 늦어서 죄송하니까 오늘 건 제가 살게요. 별로 늦지도 않았는데 뭘. 형이 뭘 모르네요, NBA 선수 뜯어먹을 일이 흔한 게 아닌데. 하하하, 그런가. 사장님, 생맥 한 잔 주세요. 주문을 마치고 물을 한 잔 마시는 태섭을 바라보며 준호가 빙그레 웃었다.

“치수 프로젝트 마감만 아니면 셋이서 같이 봤을 텐데 좀 아쉽다.”

“어쩔 수 없죠, 백수가 고급 인력의 시간을 함부로 뺏을 수가 있나.”

“백수라니, NBA 선수께서.”

“지금은 한정판 백수에요. 휴가 내도록 먹고 자고 노는 거 빼면 안 하고 있으니까.”

“그런 것치고는 눈이 좀 빨간 거 같은데. 잘 먹고 자고 놀고 있는 거 맞아? 들어온 지 일주일 넘었다며. 아직도 시차 때문에 고생해?”

여전히 권준호는 부원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살핀다. 아니면 이렇게 어스름한 이자카야 조명 아래에서도 티가 날 정도로 제 상태가 정말 엉망이거나. 그래도 나오기 전에 봤던 거울에서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태섭은 어색하게 웃으며 막 서빙된 맥주잔을 받아들었다.

“그러는 형은 괜찮아요?”

“음? 뭐가?”

“…달재한테 얘기 들었거든요.”

턱을 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준호가 아,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힘빠진 얼굴로 웃었다. 하이볼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손에는 반지가 없다. 살이 타지 않아 어렴풋이 남은 흰 자국만이 권준호의 과거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걸 보자 괜시리 제 입이 타, 태섭은 따라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안주로 나온 풋콩을 까며 준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응, 생각보다 괜찮아.”

“그래도 10년 정도 사귀었잖아요. 괜찮을 리가…….”

“아냐, 진짜 괜찮아. 남들 안심시키려고 억지로 하는 얘기가 아니고 진짜로.”

“…어떻게요?”

어떻게 괜찮을 수 있어요? 사랑했잖아요. 그것도 아주 긴 시간 동안. 내 모든 일상에 그 사람이 스며들고 그 존재가 당연해지다 못해, 그 사람이 곧 내 일부가 되고도 한참이나 남을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한순간에 사라졌잖아요. 나를 이 땅에 묶어두던 한 사람분의 중력이 갑자기 사라진 건데 어떻게 형은 이전과 똑같이 서 있을 수 있어요? 휘청거리지도 않고, 날아가지도 않고. 권준호는 그럴 수 있는데 왜 송태섭은 그럴 수 없는 거죠? 형은 대체 어떻게 재활을 한 거예요?

나는 정대만이 내 옆에서 사라지는 걸 상상만 해도 괴로워요. 형의 10년 연애가 갑자기 끝났듯이 내 연애도 어쩌면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 텐데, 나는 아직 그 최악을 상상할 마음의 준비조차 되지 않았어요. 형은 그럴 줄 알았다고 했죠. 어느 부분에서 그럴 줄 알았어요? 언제부터 끝을 상상했어요? 이별의 준비를 얼마나 했나요? 어느 정도로 준비를 해야 괜찮아져요? 나는 대만이 형이 더 이상 나에게 다정하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다정함을 더 받아버리면 나는 영원히 최악을 대비할 수 없게 될 것 같아요. 나를 약해지게 만드는 그 사람의 사랑이 너무 힘들어요. 그 사람이 다정하면 나는 죽어버릴 것만 같아요.

그래서 나도 알고 싶어요. 가르쳐주세요. 다시 홀로서기를 하려면, 최악을 마음먹으려면, 그 사람 없이도 뚫고 나갈 수 있으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나요?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묻고 싶은 말도 많았다. 하지만 태섭의 입에서 나온 건 ‘어떻게요?’ 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 모든 말을 눌러 담은 4글자의 질문. 목소리가 볼썽사납게 떨렸던 것도 같았다. 태섭은 테이블 밑으로 희미하게 떨리기 시작한 손을 꽉 쥐었다. 깐 콩을 우물거리던 준호가 열없게 웃었다. 결혼을 생각할 만큼 후회 없이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괜찮아. 의외의 대답에 태섭이 눈을 크게 떴다.

“아예 안 힘들다면 당연히 거짓말이지. 이렇게 헤어질 거라곤 생각 안 했는걸. 그동안 쌓은 추억이 얼마고 같이 보냈던 시간이 얼만데. 그거 알아? 사

실 여기도 둘이서 종종 마시러 왔던 곳이야. 내가 하이볼 마시면 여자친구는 생맥주 마셨어. 그러고 보니 지금 이 테이블이랑 똑같네. 좀 우습지?”

“준호 형.”

“하지만 나한테는……. 약간 마지막 인터하이 때 같은 느낌이야. 전국 제패는 결국 못 했지만 그 과정 동안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최선을 다했잖아. 그래서 지학한테 졌을 때도 후회는 별로 없었거든. 그때랑 비슷해.”

그래서 괜찮아. 그렇게 말한 후 준호는 남은 잔을 다 비웠다. 달그락, 녹아내린 얼음이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가만히 손가락을 세어보던 준호가 태섭을 보며 물었다.

“너랑 대만이, 몇 년 만났더라?”

“…좀 있으면 5년 넘어요.”

“생각보다 얼마 안 됐네? 더 오래 됐을 줄 알았는데.”

“그 전에 한 3년 정도는 대만 형이 일방적으로 쫓아다녔으니까.”

“그런 거였구나. 난 그때도 대만이가 하도 지극정성이길래 이미 사귀는 줄 알았거든.”

“징글징글해서 결국 받아줬죠.”

지겹다는 목소리로 내뱉은 태섭의 말에 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서른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소년 같은 웃음이었다. 여기 하이볼 한 잔 더 주세요. 지나가던 점원을 붙잡고 주문을 추가한 준호가 다시 태섭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태섭아, 준호가 다정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나는 너희도 다른 거 생각 안 하고 그냥 후회 없이 사랑했으면 좋겠어.”

한 살 어린 후배를 바라보는 그 눈은 얼마 전 이별을 겪은 사람답지 않게 아주 온화하고 따스했다.


시간은 안 가는 듯하면서도 빨리 가서, 어느덧 출국날이 되었다. 전날은 본가에 넘어가 보냈다. 대만에게도 미리 말을 해두었다. 대만은 스케줄표가 바뀌어서 공항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원래 아침 먹고 거의 바로 해산이었는데 감독님이 뭘 또 하시려는 것 같아. 미안해. 그래, 얼굴 못 보겠네. 알았어. 태섭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점심에는 안 선생님을 뵈었고 저녁은 가족들과 먹었다. 방을 하루 내주는 대가로 영어 과제를 대신 시키려는 여동생의 맹랑함이 어이가 없어 또 한바탕 하긴 했지만. 결국 식탁에 앉아 작문을 대신 해주면서도 태섭은 어처구니가 없어 연신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도 아라는 제 방을 더럽히지 말라고 몇 번이고 잔소리를 하고 안방으로 이부자리를 옮겼다. 야, 이거 원래 내 방이었거든! 지금은 내 방이거든!

출국은 오후 비행기였다. 일하러 가시는 엄마와 아르바이트를 가는 아라를 배웅하고 집안일을 몇 개 대신 해 놓은 후 태섭은 캐리어를 끌고 혼자 집을 나섰다. 차가 있으면 조금 더 머물러도 되었지만 본가의 차는 엄마가 쓰셔야 하니 오로지 대중교통만으로 공항까지 가야 했다. 환승이나 대기 시간을 제외하고 순 이동만 2시간을 잡아야 하는 거리. 가다가 지치겠구만. 전철에 몸을 실은 태섭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별게 없다. 국외와 국내를 자주 왔다 갔다 한 덕에 절차며 대략적으로 걸리는 시간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평일 점심 시간대라 공항은 그다지 혼잡하지 않았다. 식사를 하고 티켓까지 받았음에도 시간이 조금 남았다. 미리 심사받고 들어가 있을까, 아니면 여기서 시간 조금 더 때울까. 여권을 목에 툭툭 두드리며 태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발소리가 태섭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안내방송과 시끌벅적한 대화와 드르륵대는 바퀴가 만드는 그 모든 어수선한 소음을 뚫은 단 하나의 발소리였다. 시간에 늦어 정신없이 공항을 질주하는 여행객이 한둘이 아닐 텐데도 태섭은 발소리의 주인을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당연했다. 10명의 선수와 한 명의 심판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그 속에서도 송태섭은 항상 그 사람의 발소리만은 확실하게 구분해 냈으니까. 그게 바로 시선을 주지 않고도 그에게 정확한 패스를 할 수 있는 이유였으니까. 태섭이 고개를 돌렸다. 한 남자가 정신없이 이쪽으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짧게 깎은 스포츠 머리, 남들보다 머리통 한두 개는 더 큰 키, 건장한 체격. 100m 밖에서도 몰라볼 수가 없었다. 정대만이었다.

“어우… 어우씨……. 허억, 개힘들어……. 헉…….”

누가 봐도 전력 질주를 한 모양새로 대만이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반쯤 벗겨져 팔꿈치 아래에서 너덜거리는 진청색 져지에는 대만의 소속팀 로고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흰 티셔츠는 그새 등판에 번진 땀자국이 선명했다. 예의 그 가죽 목걸이가 가슴께에서 덜렁거렸다. 그걸 보며 태섭은 목 안쪽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려는 걸 느꼈다. 속이 또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목구멍 앞에서 고통스럽게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눌러 삼키고, 태섭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못 온다며?”

정작 태섭의 앞까지 질주해 온 대만은 헉헉대느라 한동안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손을 들어 잠깐만 시간을 달라는 제스쳐를 취한 대만은 몇 번의 심호흡으로 간신히 숨을 갈무리하고 나서야 허리를 폈다. 쑥 올라가는 상체가 언제 봐도 높았다. 소매로 땀을 훔치며 대만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냥 원래 스케줄대로 아침 먹고 바로 가자고 감독님한테 건의했어.”

“그게 통했다고?”

“그동안 내가 오죽 성적을 잘 냈냐? 정대만 없어 봐, 매 경기마다 두 자릿수 안정적으로 따 오는 사람이 몇이나 더 있으려고.”

“그래서 특별 대우를 받아서 배웅을 나올 수 있었다?”

그런 셈이지. 환장스러운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며 대만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씩 웃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어이가 없어 뭐라고 한마디 더 해주려던 태섭의 머릿속에 문득 며칠 전 들은 준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너희도 다른 거 생각 안 하고 그냥 후회 없이 사랑했으면 좋겠어. 어후, 덥다. 대만은 티셔츠 앞자락을 펄럭이며 계속 땀을 닦아냈다. 차를 어디에 댔는진 모르지만 주차장에서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한 거리다. 게다가 사전 연락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대만은 무작정 송태섭의 항공편 체크인 카운터로 뛰었다. 송태섭이 아직 그 자리에 있을지 출국장으로 먼저 들어갔을지 아니면 도착조차 하지 못했을지 그 무엇도 모르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달렸다. 그 맹목이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두 자릿수도 안 될 낮은 확률에도 기꺼이 제 모든 것을 걸고 달려오는 이 남자를 대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당신은 과연 언제까지 나에게 달려올 수 있을까. 대만을 보며 입 벽을 피가 나도록 꾹꾹 씹던 태섭이 다시 물었다.

“…후회 안 해?”

“뭘?”

“새로 온 감독한테 찍힐지도 모를 행동을 하면서까지 여기로 달려온 거 후회 안 하냐고.”

“왜 후회를 해?”

태섭의 질문을 들은 대만이 외려 이상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내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동의해서 그렇게 된 건데. 그리고 너 다시 가는데 당연히 배웅해주러 와야지, 가면 또 언제 볼지도 모르는데. 왜, 내가 나오는 거 싫어? 슬그머니 제 눈치를 보는 대만의 모습에 태섭은 막힌 숨을 토해내듯 허탈하게 웃었다. 싫으냐고? 그럴 리가 있겠냐, 이 바보 멍청아? 이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공간에서 당신의 발소리를 듣자마자 심장이 뛰었는데,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게 당신임을 확인하자마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는데 그게 어떻게 싫은 감정이야.

그건 오히려 두려움이다. 내가 가정하고 상상한 최악을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버리고 들어와 다정함으로 감싸 버리는 당신을 향한 두려움. 못 올 것 같다는 연락에 실망하고, 혼자 공항으로 오며 외로움을 느끼고, 당신이 없던 2주를 엉망으로 보냈다. 그럼에도 견디려고 했는데, 언젠가를 위한 사전 연습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대만은 또 이렇게 송태섭이 마음먹은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나 버릇 나빠져요. 언젠가 대만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한 적 있었다. 그때 정대만은 뭐라고 했더라. 나빠지면 어때, 내가 다 받아줄 건데. 그럼 나빠진 줄도 모를걸? 이라고 했던가. 지금이 딱 그 꼴이다. 정대만이 들여놓은 나쁜 버릇 때문에 송태섭은 더 이상 최악의 미래를 대비할 수 없게 됐다. 정말로 영원이 가능할 것처럼 믿게 됐다. 불확실한 걸 확실하게 믿게 되는 그 모순이 태섭을 괴롭게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달콤함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한 번 더 확신을 줘. 나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게. 당신이 들여놓은 나쁜 버릇을 책임지겠다고 말해줘.

“형은 앞으로도 후회 안 할 것 같아?”

“뭘 후회해야 하는데? 오늘 여기 온 거?”

“아니, 나 사랑하는 거.”

“뭔 소리야, 그걸 왜 후회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잘한 짓인데.”

“지금까지 쓴 국제전화비도? 1년에 두세 번 볼까 말까 한 것도? 매번 졸음 참으면서 통화하는 것도? 그것도 전부 후회 안 해? 안 아까워?”

“그게 아까웠으면 사랑이냐?”

여전히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한 대만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런 건 왜 자꾸 물어? 그러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곧 만면에 은근한 미소를 띄운다. 왜, 가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 듣고 싶어? 그럼 처음부터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냐, 태섭아. 그러더니 대만은 남들이 보든 말든 태섭의 두 뺨을 감싸고 입술을 포갰다. 인주 묻힌 도장을 선명하게 찍어내려 할 때처럼 꾹 눌렀다가 쪽 소리를 내며 떼었다. 그리고 엄지로 태섭의 입술을 두세 번 문질러 주며 부드럽게 웃었다.

“사랑해, 송태섭.”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거지? 당당하게 되묻는 목소리에 헛웃음이 터진다. 아, 젠장. 울 것 같아. 태섭은 입술을 꽉 물었다. 고개 숙인 태섭을 제 품에 안으며 대만이 등을 토닥였다. 태섭의 눈앞에 해지고 삭았어도 여전히 질긴 가죽 줄이 달랑거렸다. 다정한 손길에 속이 또 다시 울렁거렸다.

나는 여전히 네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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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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