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가 AU
자컾 로그 / 도윤주원 / 제목 짓기 어렵다
소란스러운 대피소 안, 검은 스포츠 머리의 남자는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는 한 사람의 손을 잡고 있다. 무심한 표정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또 다른 손. 그 손에는 작은 PDA가 쥐여져 있었다. 빠르게 올라가는 부상자의 수와 사망자의 수. 그리고 따로 집계되는 센티넬과 가이드의 수를 보며 이곳 역시 전장이고 자신은 전장에 투입된 군인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국가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한 평생을 목표로 해왔고 이루어 냈으나 가이드라는 이유로 자신을 버린 국가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다른 부대로 배치받은 것 뿐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잡음을 내다가 저를 찾는 소리를 낸 무전기는, 그 헛된 망상마저 한 순간에 부숴버렸다.
"정신간섭계 담당 가이드들은 당장 대피소 정문으로 나오세요. 센티넬이 폭주했습니다!"
나오세요.
군대는 절대 저런 말을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는 이런 싸구려 무전기를 쓰지 않는다. 통신을 담당하는 통신병이 따로 있다. 자신이 있던 곳은, 자신이 타고 있는 전투기에 직접 울렸다. 전혀 다르다. 자신은 군인이 아니다. 절대로 그곳에 돌아갈 수도 없다. 그것이 그 짧은 무전기가 전한 진실이었다.
잡고있던 사람, 센티넬의 손을 놓고 일어섰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걸음 사이사이 짙은 절망이 자신을 끌어내린다. 마음이 저 밑바닥에 처박히지만 발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더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꿈도 희망도 철저히 박살났으면서 계속 움직인다.
"형은 왜 군인이 된 거야?"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군인은, 그런 존재니까. 형이 해준 그 말때문에 남자는 발을 움직였다. 형의 꿈이 곧 제 꿈이었으며, 형의 목표가 곧 제 목표였으니까.
수송선에 올라 창밖을 보았다. 관계자가 다양한 것을 설명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신간섭계. 그들이 투입되는 전투는 다른 전투와 달랐다. 인간의 언어가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최소한 언어를 구사할 것. 그 조건이 충족되어야 정신간섭이 가능했기에 그들이 투입되는 전투는 일반 전투와 달랐고, 그만큼 사상자도 많았다. 매혹, 최면, 혹은 정신간섭을 사용하는 몬스터들이 나왔다. 그렇기에 사상자도 부상자도 더욱 처참했지만.
"도착했습니다. 버틸 수 있을 정도만 다가가세요. 언제나 여러분의 안전이 최우선이란 걸 잊지 마세요."
'난 한 평생 지키는 사람이었는데.'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다른 가이드들과 함께 내린 남자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한 때는 더없이 활짝 피었던 얼굴엔 이젠 짙은 그늘밖에 찾을 수 없었다. 마른세수를 한 남자는 주변을 살펴보고 저 멀리, 스파크를 튀는 폭주중인 센티넬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가던 중 다른 가이드들을 힐끗 바라보았지만 모두 주저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이번이 처음 출정인 사람도 있었고, 가정이 있는 사람도 있었으며 또 이미..
"아니야! 아니야아!! 내 잘못이 아니야!!!"
정신간섭계의 폭주에 휘말려 비명을 지르는 이도 있었다. 다시 앞을 보았다. 조금 더 가까워진 센티넬을 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지만 어디서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TV에서 봤겠지. 센티넬들은 유명하니까.'
기시감을 무시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더욱 더 다가갔다. 이명이 들리고 그 사이사이 지독한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들은 평소 제게 속삭이던 악마들보단 약하고 작았다. 당장 머리를 터트릴듯 느껴지는 간섭이 거슬렸지만 참을만했다. 억지로 머릿속을 휘젓고 괴로운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전류가 불쾌했지만 무시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전부 가짜니까.
무심히 서서 엄청난 전류를 흘리던 센티넬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은 한 손에 잡힐 정도로 얇았다. 손목을 잡고 실핏줄이 잔뜩 터진 눈으로 그의 눈을 마주했을 때, 그때 도윤은 큰 혼란을 느꼈다.
"주원이형?!"
"…도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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