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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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는 사과 맛?

이우는 밤 by 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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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 | 일부 공개 | 5000(+900)자 | 《 하이큐 》 아카아시 케이지 드림

(C)떨리고설레다 2018


늦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카아시 케이지는 시계를 쳐다보느라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늦을 거라고 말은 했지만, 이건 늦어도 너무 늦었잖아. 사진부 활동은 이미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 모치즈키는 분명 교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어깨에는 카메라 가방을 메고서. 운동선수인 그가 들기에도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모치즈키의 카메라 가방은 그 조그마한 몸집에 비해 너무나도 컸다. 무겁지 않냐고 물어봤을 때 그녀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케이지가 들어줄 텐데 뭘!"

그리고 따라오는 질문. 들어줄 거지? 그래서 그 날부터 아카아시 케이지는 모치즈키 림의 짐꾼이 되었다. 카메라 가방을 짊어진 그 옆에서 방방 뛰는 조그만 모치즈키가 너무나 귀여워서 순간 음흉한 생각을 해 버리고 말았던 것 같다. 그게 뭐였지, 키스하고 싶다, 였던가? 그러고는 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미친 게 아니냐고 스스로를 타박하면서.

"아카아시! 조심해!"

순간 들려온 매니저의 외침에 아카아시는 정신을 차렸다. 아, 지금 경기 중이었지. 아카아시의 눈에 얼굴을 향해 거세게 날아들어오는 공이 보였다. 네트 너머 선 보쿠토의 당황한 얼굴도 같이. 피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는 걸 깨달아버린 그는 피하는 대신 고개를 돌리고 눈을 꼭 감았다.

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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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토, 아카아시를 죽이면 어떡해!"

"아니, 나는 아카아시가 당연히 받을 줄 알았지…."

 선배 둘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유난히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라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스스로도 미안하긴 했는지, 시로후쿠의 야단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보쿠토의 목소리는 픽 죽어 있었다. 윽, 머리 아파. 아카아시는 눈을 꾹 감고 어지럼증을 털어냈다. 그러고는 정정했다.

"…저 아직 안 죽었는데요."

"아카아시가 살아났어!"

"죄송합니다. 잠시 딴 생각을."

뭐 하는 거야, 아카아시. 스스로를 혼내며 보쿠토에게 사과했다. 안면 리시브는 카라스노의 히나타나 할 만한 짓이잖아. 아카아시 케이지의 안면 리시브. 예전이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쿠로오가 봤다면 깔깔 웃으며 평생의 놀림거리로 삼았으리라.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모치즈키는 아마 발을 동동거리며 늦는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고, 그녀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아카아시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모치즈키는 매사에 냉철한 아카아시를 이렇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니야 아카아시! 내가 미안해!"

"저, 죄송하지만 먼저 가 봐도 될까요?"

펑펑 우는 보쿠토를 무시한 채 시로후쿠에게 묻던 아카아시는 무언가 뜨듯한 것이 코에서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무심코 코 쪽으로 손을 가져가는데, 고개를 끄덕이던 시로후쿠가 기겁했다.

"응, 가 봐도… 아카아시, 코피 나잖아!"

당황한 아카아시에게 누군가가 휴지를 건넸다. 아카아시는 그것을 받아 들어 코를 감쌌다. 새빨갛게 젖어들어가는 휴지를 보며 그가 떠올린 것은 한 사람이었다.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 그러니까 아카아시 케이지의 사랑하는 여자친구 모치즈키 림. 

더 기다리게 하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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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아시 케이지는 체육관을 나오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기다림에 지친 귀여운 여자친구가 벌써 집으로 돌아가 버리지 않았기를 바라며. 달리는 아카아시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종류의 모치즈키들이 뛰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 버린 모치즈키. 늦었다고 짜증내는 모치즈키. 삐져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치즈키….

마지막으로 더 이상 부활동을 기다려 줄 수 없다고 말하는 모치즈키가 절망이란 이름의 신하들을 이끌고 당당하게 머릿속으로 들어왔을 때 아카아시는 정말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아, 진짜 그러면 어떡하지. 머릿속에서 모치즈키가 선언했다.

'미안, 케이지. 앞으로 부활동 끝나면 나 먼저 집에 갈래.'

정신 차려, 아카아시. 다 네 상상일 뿐이야. 아카아시는 고개를 저어 머릿속에 울리는 모치즈키의 목소리를 털어냈다. 저 멀리 교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앞에 모치즈키는 없었다. 아카아시의 심장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는 속도를 높여 교실 앞으로 다가가, 창문을 통해 안을 확인했다.

모치즈키 림이 거기 있었다. 카메라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서, 자리에 얌전히 앉아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곤두박질치던 심장이 다시 제 자리로 날아 돌아왔다. 교실 문을 조용히 열며,

"림 상…? 미안해요. 많이 늦었죠…."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항상 활기차게 대답하던 그녀였던지라, 지금의 조용한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다. 어떡하지, 삐진 건가. 조용한 여자친구의 모습에 당황한 아카아시가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을 때였다.

"으음…"

"아?"

낮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이는 그녀의 모습에 아카아시는 뻗으려던 손을 천천히 거뒀다. 남자친구의 긴장이 무색하게도 모치즈키 림은 자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학교 이름이 새겨진 배구부 져지를 벗어 엎드린 모치즈키의 가느다란 어깨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여기서 자면 어떡해요, 요즘 저녁 되면 쌀쌀한데."

여기서 계속 자다가는 감기 걸릴까 봐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는 그녀의 달콤한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고민하던 아카아시는 조금 더 자게 내버려 두자고 마음먹고선 모치즈키의 옆 자리 의자를 빼고 조용히 앉았다.

"오래 기다려 줬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기다릴게요."

아, 처음 이 애를 만난 게 언제였더라. 문득 아카아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도 작년 봄이었던 것 같다. 봄, 그러니까 흐드러지게 핀 벚꽃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계절에, 아카아시 케이지와 모치즈키 림은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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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부 사진 찍으러 왔어요!'

활기차게 문을 열고 들어오며 외친 건 사진부의 부장이었다.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어수선하던 체육관 분위기가 단번에 바뀌었다. 연습 경기를 하며 거칠게 공격하던 선배들이 갑자기 차분해지며 일제히 밖으로 나갔다. 조용해진 보쿠토 선배의 모습이 1학년 아카아시에게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모치즈키가 그 현상, 사진이라는 말이 가져오는 모두의 얌전함을 '사진의 마법' 이라고 부른단 걸 알게 된 건 조금 나중의 이야기지만.

매년 벚꽃이 필 때쯤 되면 사진부가 찍으러 다닌다는 이 사진은, 후쿠로다니 학원 축제 때 전시될 거라고 했다. 경기 중의 파워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벚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여 서서 자연스레 웃고 있는 배구부원들 사이에, 남에게 제 사진을 보여주는 데 익숙하지 않은 아카아시만이 굳어 있었다. 찍힌 사진에서는 그 혼자만 어색해 보일 게 분명했다. 그때 말을 건 건 조그마한 체구의 사진부 소속 여학생이었다.

'조금만 웃어줄래요? 네, 조금만요. 옳지, 그렇게! 고마워요!'

얼굴 가득 해사한 미소를 띄며 그에게 말을 건 예쁘장한 소녀의 이름이 모치즈키 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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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베고 책상에 누워서 자고 있는 모치즈키의 얼굴은 아카아시를 향하고 있었다. 잠든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는 거의 항상 초콜릿이 들어 있던 그녀의 볼을 쿡 찔렀다. 자느라 초콜릿을 먹고 있지 않아서인지 모치즈키의 볼은 말랑말랑했다. 주먹밥을 뭉치는 것과 비슷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볼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으으음..."

모치즈키가 몸을 뒤척이더니 잠결에 아카아시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 모습마저도 귀엽기만 해서, 아카아시는 그녀의 볼을 몇 번 더 누르고는 놓아주었다.

모치즈키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아카아시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녀의 입술이었다. 마치 앵두 잼을 얹은 것처럼 새빨간 입술. 숨을 쉬느라 살짝 벌어진 것마저도 매혹적으로 다가와, 아카아시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진짜 미쳤나 봐."

저 입술에 입을 맞추면, 어떤 맛이 날까? 아무리 고개를 저어 떨쳐내려 애써도 그 생각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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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간 합숙에서 배구부 멤버들끼리 야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분명 예쁜 연예인이나, 귀엽게 생긴 동급생, 혹은 (야마모토가 주장하기로)카라스노의 명물인 쿨 뷰티 매니저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이야기의 방향은 변질되어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다.

'와, 어떻게 고등학생이 열 시에 자냐. 걔 고딩 맞아?'

'자, 그럼 아카아시.'

아카아시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여자친구가 있는 보쿠토는 이미 자러 들어간 지 오래라, 질문 세례를 받는 건 당연히 아카아시였다.

'…네?'

'모치즈키 상이랑 어디까지 갔어?'

훅 치고 들어온 질문에 그때의 아카아시는 생각하는 걸 멈췄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당연히 화를 낼 것이었지만, 그때는 그럴 겨를도 없었다. 대답이 없는 걸 부끄러움에서 비롯된 긍정으로 오해한 몇몇 적극적인 선배들이 다시 물었을 때, 아카아시의 사고 회로는 완전히 작동을 멈춰 버렸다.

모치즈키 림. 작고, 귀엽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단순히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손은 당연히 잡아 봤고, 가끔 포옹까지도 해 봤다. 그 이상의 스킨십?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예를 들자면 키스라던가, 키스라던가, 키스라던가….

조그마한 모치즈키의 조그마한 입술에 입을 맞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아카아시는 새빨개진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 표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때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모치즈키 림과의 키스, 혹은 그 이상의 어떤 것? 아무리 여자친구라도 당사자의 동의 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조금 부끄러워져서, 배구부 합숙을 간 날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한참 동안이나 합숙소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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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자리에 엎드려 잠든 여자친구를 찬찬히 뜯어보던 아카아시는 모치즈키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주인의 활기찬 분위기를 닮았는지 따뜻한 손이었다. 함께 걷는 수많은 시간 동안 수없이 잡아 왔던 손이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잡으니 느낌이 달랐다. 그녀의 손은 볼만큼이나 말랑말랑했다. 주먹밥을 뭉치는 것 같은 아까의 느낌이 다시 되살아나 아카아시는 이번에도 그녀의 손을 놓지 못했다. 여자친구의 손에 그가 천천히 입술을 가져다 대려는데,

"…케이지?"

너무 세게 쥐어버렸나. 모치즈키가 하품을 하며 일어나더니 그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 잤어요?"

태연한 물음에 더욱 미안해졌는지 안절부절못하며 벌떡 일어난다.

"나… 나 잤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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