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데이트는 내일로 하자
독백
젠장, 망했다. 딱 그 표정이네. 잘 정리했던 머리를 쥐어뜯는 A를 구경하다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내 웃어버렸다. 신난 웃음에 원망과 억울이 담긴 녹색 눈이 내 눈엔 그저 귀여웠다. 아, 진짜 큰일났네. 귀여워 보이면 답도 없다던데. 실컷 웃다가 A가 삐칠 기미가 보여 겨우 진정했다.
그래. 지겹게 싸우고 지겹게 간을 보다 겨우 서로 마음 확인하고 처음하는 데이트라 힘을 준 건 알겠다. 하지만 A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데이트는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그 애가 예약한 식당은 본인 측 실수로 예약이 취소되었는데도 뻔뻔하게 다음에 오라고 우릴 쫓아냈고, 급하게 찾아간 다른 식당은 빈말로도 맛있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의 음식을 내놨다. 그 다음 보러간 영화는 안타깝게도, 전투기를 타고 나는 액션 영화였고, 불과 며칠 전까지 직접 전투기를 타고 날 던 우리는 영화가 끝날 즈음 거의 졸았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야경이 예쁜 산책로에 갔고, 그래. 이 망한 데이트가 극에 달했다. 준비한 꽃을 급하게 가져와 내 앞에 내미는 A의 뒤로, 버스킹을 하고 있었는데, 달콤한 멜로디와 함께 이별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사가 왜 저런, 하….”
“아하하!”
“아니, 넌 진짜 왜 웃는거야?”
지금 내 눈앞의 A가, 내게 잘보이기 위해 안달났다는데.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지? 이런데 어떻게 귀엽지 않을 수 있냐고.
“A.”
“진짜, 내가….”
여전히 그 애의 손에 들려있는 꽃을 가져와, 냄새를 맡는다. 달콤한 냄새. 금빛과 푸른 빛이 섞여있는 꽃다발이다. 내 눈 색과 머리 색이네. 오늘 정말 귀여운 짓만 골라서 하는구나. 쪽, 하는 소리로, 아직도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에 횡설수설하는 그 애 입을 막는다.
“너…!”
“너가 데려다 주기로 했던 디저트 가게, 내일도 문 열지?”
“어…, 그렇지.”
“그럼 내일 나 거기 데려가줘.”
내일도 데이트하자는 내 말에 A의 얼굴 위로 점점 미소가 퍼진다. 아주 자신만만한 미소. 그래, 이게 내 A지. 내일이야말로 제대로 된 데이트 코스를 보여주겠다는 A의 뒤로 보이는 야경이 그 애 만큼이나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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