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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by 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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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기. 누워있기. 책 읽기. 딸과 놀러 가기. 카페 음료 배달시키기. 신성식이 평소에 말하는 휴일의 자신이다. 묘하게 바쁜 듯하면서도 게으른 종류의 일과들. 이 중에서 매번 하는 일은 몇 개나 있을까? 딸과의 약속은 점점 간격이 멀어지고 있었고, 집 안에 남은 책은 재미도 없는 자기계발서와 이제는 아무도 읽지 않는 아내의 동화책들뿐. 3인 가족을 위한 집은 혼자만의 유토피아가 되었으니 무언가 채워 넣을 법도 한데 성식은 집을 전혀 건들지 않았다. 언제든지 나간 이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처럼. 아이의 방은 시간이 흘러도 자라지 않고 넓은 침실엔 여전히 한 쌍의 물건들이 간간이 존재했다. 구질구질하게 남아있는 미련이라기보다는 굳이 치울 이유를 찾지 못한 것에 가까운 것이고 가끔 놀러 오는 딸에게 큰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아무튼 그런 집 안에서 성식은 지내왔다.

가끔은 이 집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성식은 기분 가라앉을 일 없이 집 밖으로 나선다. 조깅이라고 할 수 없는 속도로 집 주변 공원을 걷고,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를 한다. 카페에 가서 제 딸이나 아내를 위한 심부름이라며 음료를 사기도 하지만 그 공간 안에 자리를 잡아본 적은 없다. 모든 공간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서성이다가 ‘역시 집이 최고구나’ 같은 생각이 들면 그제야 집으로 향한다. 그 과정에 딱히 우울감은 없지만 심심하다는 감각만큼은 제법 선명해서. 결국엔 언제 돌아올지 모를 딸과의 만남만을 기대하며 주말을 보낸다.

친구가 있다면 좋았을까? 성식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늘 불행하기 마련이라 그는 자신을 떠나는 이를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이니 마음을 나눌 친구는커녕,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조차 제대로 남은 적이 없다. 그나마 성식을 가장 오래 사랑하고 견딘 사람이 아내인 셈이다. 성식이 아무리 이기적이고 뻔뻔하다고 해도 타인에게 그 정도의 애정을 바라진 않아서, 그냥 가끔 만나서 실없는 이야기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가끔…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모두 의미 없는 가정이기도 했다.

자존심과 거짓으로 쌓아 올린 시간이 선사한 과장 자리도 성식에겐 영 어색했다. 평생을 제 잘난 맛에만 취해 살아온 인간이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가질 리도 만무했다. 그에게 있어서 회사는 단순히 하기 싫은 일이 많아 오래 있기 싫은 곳이 아니라, 있을 곳이 아닌 장소일 뿐이었다. 셋이 살던 집과 마찬가지로. 성식의 삶은 저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나길 반복할 뿐인 인생이라. 성식의 삶은 어리석고 제멋대로인 인생일 수밖에 없었고, 절대 끝나지 않을 미로와도 같았다.

그래서 문득, 성식은 생각했다. 차라리 여기가 나을지도 모른다고.

있을 곳이 없다면 차라리 어떤 목적으로든 날 데려온 여기가 가장 신성식이라는 인간에게 어울리는 장소이지 않겠나. 별거라는 이유로 바뀌지 찮고 남아있는 다양한 공동명의나 보험금 수령 대상 같은 것들은 아내에게 도움이 될 테고. 아직은 제 아빠의 단점을 인식하지 못한 딸도, 즐거웠던 빗속의 탐험 이후로 다신 만나지 못한다면 좋은 기억으로만 남을 수 있겠지.

얼마나 좋은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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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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