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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걱정할까? 걱정하지 않을까? 걱정할까? 성식은 자신의 머릿속 꽃밭에서 의미 없는 점을 쳐본다. 성하야 별생각 없을 수도 있겠다. 별거한 남편 같은 걸 신경 쓰기에 그녀는 너무 바쁘고 유능하니까. 오히려 성하를 곤란하게 하는 것은 눈앞에 없는 성식보단 그런 성식을 기다리는 지아일 거다. 누굴 닮은 건지 그냥 바보 같고 성격 좋기만 해서, 집에 없는 제 아빠를 잊지 않고 꾸준히 그리워하는 딸 때문에. 성식의 아내는 별거를 결심한 후에도 쓸모없는 남편과의 연락을 이어가야만 했으니까. 오히려 제 쪽에서 연락이 끊기면 다행이라며 내심 안도할지도 모르지. 9살짜리 어린 딸의 보챔엔 익숙해져 있을 테고, 그 나이의 아이들은 친구랑 놀면 울음도 쏙 들어가기 마련이다.
9살. 초등학교 2학년. 아직은 아무것도 모를 나이면서도 슬슬 많은 걸 알게 되는 나이. 매일매일 아내를 닦달해 안부를 건네고 대화를 이어 나가 유지되는 관계는 통하지 않을 시기이기도 하다. 주기적으로 성사되는 딸과의 만남은 아이의 사랑을 실감하기엔 충분했지만, 언젠가는 아이 쪽에서 원치 않을 날이 올 것이다. 성식은 그 시기를 직감하며 살았다. 확신에 가깝기도 했다. 자신이 받아야 할 애정에는 쓸데없이 민감한 남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성식은 그 시기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방법을 모른다.
젊어 보이는 얼굴만큼이나 모자란 정신연령은 책임과 그로 인한 희생이 필요한 가정에 맞지 않는다. 철없는 남편이란 언제나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적어도 아내가 되기 전인 성하와 시간을 보내며 보던 드라마에선 꼭 그랬다. 그땐 그 미래가 자신에게도 찾아올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맞는 어린 사고방식. 그땐 그런 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문제라면 그 뒤로 성식의 사고가 별로 자라지 않았다는 데에 있겠다. 성식도, 성하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꽃밭 속에서 사는 사람은 불행하지 않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서 그만의 꽃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성식은 함께 사는 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본인도 알고 있었기에 성하의 별거 통보엔 딱 한 마디 외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아가 날 보고 싶어 하면 만날 수 있게 해줄래?’
그것 외엔 바라는 것도 없었다. 양육비야 제 월급의 일정 부분을 보태기로 했고, 애초에 돈을 더 잘 버는 것도 아내였으니. 환경이야 아내 쪽이 더 좋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내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알겠어.’라고 말했을 뿐이지. 그리고 그 약속은 몇 년이 지나도 유지되고 있다.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문제는 하나뿐이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단 하나. 차라리 이 사실이 성식에게 있어 고통스러웠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인간은 고통으로 벼려지고 절망으로 바뀌곤 하니까. 하지만 성식은 괴롭지 않았다. 성식에게는 그만이 들어갈 수 있는 꽃밭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은 불행하지 않다. 그래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분명. 아무도 걱정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성식은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 화면을 껐다.
배경 화면은 유채 꽃밭 중간에서 웃고 있는 갈색 머리의 작은 여자아이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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