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명헌] 발렌타인데이

괜찮아 by 흠.ㄴ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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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무드를 좋아합니다.


“으, 응원하고 있습니다!”

다가온 무리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포장지와 편지지에 가려져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내용물은 아마 뻔하게 초콜릿일 것이다. 우성도 등교시간에 갑작스러운 응원과 함께 몇 개 받기는 했지만 저렇게까지 많이 받지는 않았다. 우성은 창문 밑에서 발견한 명헌의 머리꼭지를 내려보며 손목을 주물렀다. 아예 이럴 줄 알고 있었던건지 손엔 아주 봉투도 있었고, 지금은 묵직하니 거의 찬 느낌이었다.

“고맙다, 삣.”

그러니까, 명헌이 비록 이 학교의 가장 인기 있는 전국 레벨의 농구부의 주장이고, 며칠 전 고교 농구 잡지에서 전면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 인기인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우성은 묘하게 근질거리는 느낌이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나? 많이? 일단 내가 더 잘생겼잖아?

”남자들 것까지 왜 당연하게 받는건데?“

“응?”

명헌이 고개를 놀렸다. 눈이 부신지 눈과 함께 입술을 오무리며 올려다보는 얼굴과 마주한 우성은 잠깐 펄쩍 뛰어올랐다가, 제자리에 섰다.

“앗.”

“우성삣.”

“안, 안녕하세요!”

멀뚱한 표정으로 쌩 가버리는 명헌을 보내고 우성은 허둥지둥 창문을 닫았다. 갑자기 마주칠 생각도 없었는데. 창문을 닫고 돌아서자 머물러 있던찬 바람이 올라왔다. 혹시라도 남자한테 받는다느니 그런 말까지 들린 건 아니겠지? 우성은 이번엔 확실히 생각을 삼키며 이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오후 수업이 끝나자 체육관으로 한둘씩 모여들었다. 1,2학년 당번들이 가장 빠릿빠릿하게 모여들어 체육관을 닦고 공을 꺼내두고 있었고, 의도치않게 그들보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은 락커룸 옆 휴게공간에 앉아 옷도 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현철에게 초콜릿을 주고 있었다. 저걸 준다고 할 수 있을까, 현철의 손 위에 올려놓고 기도하고 돌아서는 모습들은 공양한다는 표현이 좀 더 맞을 듯했다. 현철과 초콜릿들을 바라보며 우성은 슬그머니 웃었다.

“5cm만....”

“5cm나 바라면서 이건 너무 작지 않냐구.”

현철의 손에 들어가자 더 작아보이는 편의점 매대에 놓고 파는 싸구려 초콜릿은 거의 현철의 엄지손톱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우성이 봐도 저건 너무 했다. 

“키랑 당분은 상관 없잖냐?”

“어이, 그럼 상관있는 걸 가져오라고....”

앞의 대화에 뭔가 느낀 바가 있었는지 몇 명이 부정탄다며 줄에서 빠졌다. 아마 포장을 뜯는 모습이 비슷하니 같은 종류의 초콜릿이었나보다. 사실 이루어질 것도 아니고, 저런 걸 빌어서 무슨 소용이 있냐고 속으로 코웃음치며 우성이 락커쪽으로 향했을 때였다.

“나 왔어삣.”

“늦었네.”

“어, 전지훈련 동의서 때문에.”

락커룸으로 들어온 명헌은 초코바를 물고 있었다. 품에는 종이 뭉텅이를 안고 들어온 그는 문 옆의 탁자에 동의서 뭉치를 내려놓고, 탁자 위에 붙어있는 게시판에 공지사항을 붙였다. 그러면서도 초코바를 야금야금 먹고 있는 것이, 우습게도 나 초콜릿 받았다. 하고 자랑하는 것 같아 우성은락커 안쪽 거울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주장.”

”안녕하세요.“

“안녕안녕.”

다시 뒤섞인 부원들이 저마다 모여들었고,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현필이 들어왔다.

“아, 현필.”

“네!”

이거. 명헌이 주머니에서 꺼낸 건 초코바였다. 아마 먹고 있던 것과 같아보이는 빨갛고 파란 포장지가 요란했다.

”칼슘이랑 철분이 들어간 거라더라. 먹어삣.“

”어! 네! 감사합니다! 주장.“

”야, 나는 없냐?“

“없지.”

몇 번이고 꾸벅이며 락커룸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는 현필이나 기가 차서 가자미눈을 뜨는 현철이나 한 편의 만담이 따로 없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묵묵히 초코바 하나를 해치우고 동의서 하나를 챙긴 명헌은 쓰레기를 던져 넣었다.

오. 들어갔다. 소리 없이 쓰레기통 중앙에 쏙 들어간 쓰레기를 보다가, 우성은 자각없이 명헌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갈아입으려던 자켓 안쪽에넣어둔 초콜릿이 요란하게 바스락거렸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 그렇게 생각한 우성은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는 대신 입을 열었다.

“명헌 형. 잠깐 시간 되세요?“

“웅?”

입안에 있던 초콜릿을 우물우물 씹어 삼킨 명헌은 우성이 할 말 있는 낌새가 보이자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턱짓했다. 명헌이 먼저 나섰고 우성은그를 뒤따라갔다. 아까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던 품속이 괜히 간질거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조금 커서, 별 것도 아닌데 들켜버릴까 조급도 해졌다.

”무슨 일?“

”아, 별 건 아니고.“

우성은 준비했던 대로 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에서 꺼내다가 헛손질하긴했지만 손보다 조금 작은, 학교 매점이 아니라 외부에서 사온 게 분명한기다랗고 납작한 초콜릿을 쥐고 명헌에게 내밀었다.

“이거요.”

“어, 초콜릿? 왜?“

”에. 왜냐뇨. 저도...주장.... 응원하니까요?“

명헌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그냥 고맙다하고 넘어갈 줄 알았더니, 이유를 묻고 있다. 

”음....“

이 초콜릿이 잘못됐나? 초코바를 샀어야했나? 아까 낮엔 분명 아무거나 다 받아주는 느낌이었는데. 점심시간에라도 다른 걸로 바꿔치기할까 싶었던 우성의 손에는 식은땀이 잡혔다.

“미안하지만 괜찮아.”

“엥? 왜요? 아무나한테 다 받아주면서? 제가 다 봤다구요.“

“음, 진심이 느껴져서. 받을 수 없어삣.”

없어삣? 없삣? 어미를 붙인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명헌이 다시 고개를 들기 전에 우성이 질문했다.

“그게 뭐에요?”

“음.... 넌 가깝잖아? 그런 사람의 진심은 아무래도.”

곤란하지. 명헌이 흔치 않게 시선을 피하며 입술을 매만졌다. 

곤란한 쪽은 우성이었다. 해답이 되기는 커녕 혼란스럽기만 했다. 가까워서? 거절보다도 가까워서라는 이유에 머릿속이 가득 찼다. 

모르면서 좋아하거나 환상을 가지고 응원하는 건 ‘적당히’ 부응해줄 수 있다는 건 뭔가? 몰라서 좋아하는 것이고 환상을 품고 있어서 응원하는걸수도 있지. 그걸 떠나 그냥 '나'라서 안받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을때, 우성은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대신 이를 평소보다 꾹 깨물었을 뿐이다.

명헌은 현필에게 무엇을 쥐어줬을때처럼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노랗고 파란 포장지의 초코바를 하나 휙 던져줬다.

“그건 오메가...? 머리에 좋다는데, 일단 맛있어.“

아, 마음은 고마워삣. 명헌이 우성을 지나치던 순간에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았다. 그가 했던 말보다도 지나치면서 어깨를 주먹으로 툭 친 게 종처럼울려퍼져서, 말은 잘 남지 않았다.

“연습 전엔 들어와삣.”

명헌은 그러며 문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우성은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우성은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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