𝐓𝐡𝐞 𝐉𝐮𝐝𝐠𝐦𝐞𝐧𝐭 : 가시왕좌

[예레미야] 불신자의 논거

1페이즈

귤차 by 귤차
1
0
0




예레미야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의 호흡을 살폈다. 혹시 어긋나지 않았는가, 하여. 예레미야는 도대체 제멋대로에 마구잡이로 들쑤시며 헤집기 일쑤라 일관성이라고는 없었으나 한 가지, 드러내지 않는 표정은 있었다. 예레미야는 구역질이 치밀 것 같은 감각을 애써 누르며 눈을 감았다 떴다. 여전히 어둡고, 아니, 샹들리에 불빛이 환했다가 어느 지점 들어서는 엉뚱하게 무채색으로 이지러진 공간이 불쾌감을 선사했다. 

이곳은 사람이 만든 공간이 아니었다. 마법이되 산 자의 몫이 아니었고, 한때 비통한 죽음으로 이름 없어진 자의 시시한 수작이었는데 아쉽게도 예레미야는 태연하질 못했다. 예레미야는 그의 존재함으로 인해 발밑이 꺼지고 귓속이 흔들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죽었다. 이름 지워졌으며 줄글로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건가? 망령을 잡아 붙들거든……

신성인가? 이것이?

그것이 실재하는가, 진실로?

부정히 황금 면류관을 탐한 자, 언감히 이름을 알고자 하지 말라.

예레미야는 간신히 숨을 고르고 느긋한 체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어두운 곳으로 향했다. 불분명한 경계로 들어서거든, 몸도 덩달아 흑백으로 적셔질 것인가? 모르겠다. 흑백 사이로 별안간 피 끓고 생동하는 몸으로 도드라질 뿐이겠지, 그러나.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장소로 향하고 싶었다. 머릿속에는 카일루스, 힘, 추종, 번잡한 생각이 뒤엉켰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몸 가누기 힘든 자에게는 모든 생각이 다 몸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보이면 안 돼. 보이면, 안 되지. 그대로 잠겨 보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대로, 이대로…… 예레미야는 조급하지 않게 잘 움츠렸다가 다시 숨을 돌리기로 한다. 그리고 잠깐, 잘까. 잠들면 무슨 꿈을 꿀 수 있지? 지금 이때에 내가, 무슨 꿈을. 예레미야는 온갖 추궁으로 헤매는 머릿속을 어서 달래 재우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쯤 무도회장 한편에서 웅크려 앉아 있었는지는 예레미야 자신도 모르는 일이다.

시간이 멈춘 공간의 규율인 듯 예레미야는 자기 자신이 지금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다,

검은색으로 쓰인 이름을 본다. 예레미야 카일루스.

예레미야는 그것이 자신을 쓴 책임을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그리고.


***
 

7살, 예레미야 프리에르 카일루스.

열병 속에서 오래도록 헤매다가 보드라운 손이 손을 맞잡아 주었으므로, 고래고래 소리질러 생을 고쳐잡아 쥐게 한 보드라운 손이 있었으므로 그 어린 애, 동생을 통해 살아난 순간에.
 

“어머니, ‘계시’를 들었어요.”
 

한참 쉰 목소리로 예레미야가 첫 말을 꺼냈다. 물로 목을 축이고도 어린아이 것 같지 않게 버석거리는 목소리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막내딸의 소동에 어쩔 수 없이 아들의 숨을 붙여두고 만 어머니가 잔뜩 피로한 낯으로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다가 눈을 감았다 뜬다.

예레미야가 생각한다. 어머니가 이토록 자신에게 집중한 적이 있던가?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되살아난 자의 삶은 죽기 전과 다르니, 가히 이전 몫은 죽음으로 내어두고 남은 숨만을 헤아려도 되리라. 내 어머니가 이미 그리 하시리다.
 

“제게 기적을 내리겠다 언약하셨어요.”
 

예레미야 카일루스는 파리한 낯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저 아주 고요하게. 아이에게, 병자에게서 도통 비롯할 수 없는 형상이니 어머니가 놀라 주춤 일어선다. 그러다 그대로 쓰러지려는 몸을 아버지가 받아들고, 비명 같은 환호가 퍼진다. 촌극이 따로 없다.

숨이 가늘게 떨어져 나가는 동안에는 은밀히 기다리고 기어이 질기게 도로 붙었을 적에는 아쉬움으로 침묵하던 자들이 환희한다. 예레미야 카일루스는 그날 처음으로 가족에게 환대받았다.


***

예레미야 프리에르 카일루스. 7살 어린 애, 열병을 앓다가 되살아난 아이는 기적으로 이름 매겨졌다. 

듣자니 이러하다. 아버지 된 자가 이른다. 네 첫 번째 소명을 알려주마. 항시 신실할 것. 네 몸으로 받아 헤아린 기적을 잊지 마라. 너 숨 붙어 있는 내내 네 삶 기적의 증거함으로써 놓인 줄 너 자신이 잊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겠다.

기적의 증거함, 기적의 결과물, 예레미야 카일루스가 순순히 수긍한다. 예레미야는 한동안 불편한 거동으로 신실한 자들 앞에 가 섰다. 신께서 저에게 ‘계시’를 이르셨습니다. 다시, 환호하는 목소리. 계시의 내용을 꼬박 묻거든 수줍은 어린 애는 말을 흐린다.

저 애는 선지자는 못 되겠구나. 깔깔, 어린 애의 낯 가리는 행색에 귀부인 하나가 깔깔 웃기 시작하자 모여 앉아 있던 신실한 자들 모두 마귀 같이 일그러져 웃는다. 어지럼증 고인 채 소리를 듣자니 가장 높은 곳의 신성을 나눠 바른 자들의 면면이 저 먼 지하의 괴물들 같다. 그래도,

뻔히 천진하게 믿기지 않을 말이 신앙의 행색을 하고 예레미야의 외연을 감싸 두른다. 그래, 계시의 내용이 무엇이었니? 예레미야는 질문이 돌아올 때면 조용히 웃었다. 제가 미욱하여 대개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나이다. 다만, 신께서 임하시니 모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기다리거든 대답을 내리겠다 약조하셨습니다.

아이의 예고는 또 한 가지 즐거움을 촉발했다. 그다음이 또 있다니. 혹은, 한 번이 더 있으리라 믿는다니!

함구하겠다고 단언했음에도 순 어린 애의 낯이어서일까? 예레미야가 기적을 받고 되살아났으며 계시를 들었다는 소식은 내용 없이도 빠르게 나돌았다. 다행히, 떠들기 좋아하는 자마다 은근히 들뜬다. 일부러 감상을 재촉하지 않고도 사람들 사이에서 감상이 흡족하게 오르내린다

거짓말. ‘계시’라니, 신성이라도 입었다는 건가? 고작 카일루스가.

아니다, 그 어린 애를 긍휼히 여기시사 구해주셨으니 감사할 일 아니더냐. 기적은 모두가 바란다. 기꺼이 찬미하마. 카일루스를 위해서조차도.

어린 애를 추궁하지 마라. 때로 영은 오직 꾸밀 줄 모르는 천진한 육신에 깃드는 바, 그 말이 옳으리라.

그 어린 애는 필시 기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기적을 주장함은 이따금 정신의 쇠함을 초래하지 않던가? 지켜볼 일이다. 카일루스에 병자가 또 하나 더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베르하임의 번영마다 한 번씩 발 들였던 독실한 외가 클레멘스와 나자빠진 명예로 옹색한 카일루스는 기적에 관한 소문이 그들의 지반을 두들길 때마다 차츰 그들 딴에 기반을 되찾았다. 기적은 유효하다. 과연, 클레멘스로다. 신실한 자들에게 신의 전언이 있었음이라. 진정 카일루스를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그들에게 다시 신의 뜻이 깃들었다. 그 애가 장성하거든 멍청한 맏이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크란츠벨룸의 국민이란 대개 신민으로 태어난 까닭에 기적 앞에서는 한참 너그러워지기 마련이다. 기적은 반쯤 즐거이 떠돌았다. 예레미야 카일루스는 책임을 지녔다. 예레미야, 기적의 주인공은 기적의 증거함을 똑똑히 증명해야 한다. 기적을 등에 입지 않고서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니 예레미야 카일루스, 어린 애는 자신의 소명을 안다. 증명해야 한다, 오직. 살아난 자신 이외에는 어떠한 증거도 없이. 

어린 애, 예레미야는 자신의 쓸모에 감사한다. 



***

예레미야, 기적이며 계시로 이름 오르내린 어린 애는 오래지 않아서 다 나아 가벼운 몸으로 다시 교습을 들었다. 유서 깊은 가문에서 마법사가 배출되는 일은 특별히 드물지도 않았으므로 준비는 진작 차근히 다 갖춰져 오래전부터 배우기를 반복했다가 한차례 열이 올라 중단되었을 뿐. 다시 시작된 과정은 지난날보다 분주하게 늘어졌다. 이제 예레미야에게 기대가 생긴 탓이었다. 본래 자질로는 빼어나다고 들었으나 둘째 딸의 죽음을 셋째 아들의 탓이라고 저주하던 어머니는 예레미야의 진전을 썩 기꺼워하는 법이 없었다.

따라서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환경은 종종 뜻밖으로 소홀했고, 시원찮았다. 기적을 입고서야 예레미야는 비로소 카일루스답게 교육을 받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기적을 제의로 걸친 끝에 맞이한 환대에 충실할 예정이었다. 종내 도착할 곳은 왕립 사관학교. 기사 서임을 받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크란츠벨룸은 본디 신의 뜻 아래 확장하고 번영이 마를 날 없는 장소이니 마땅히 의무를 짊어져야 하리라. 어린 애는 자신엑 주어진 대개의 소명을 용인했다. 단지 조용한 즐거움이라면, 예레미야 카일루스가 본래 타고난 모양새였다.

티끌처럼 조심스럽게 갈무리하던 불씨를 기어이 화마로 다 끌어낸 후에는 한참이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탄 냄새가 지독해서? 그토록 참던 손끝으로 단번에 모두 검게 그을리게 해서? 아니다. 단지 그 힘이 근사했던 까닭이다. 예레미야 카일루스는 태어난 첫날부터 힘을 갖춘 자였고, 이 사실을 기꺼워했다. 불에는, 온갖 파멸과 비통함이 어감으로 들러붙어 있으니 자신이 그리 살 것 같거든 차라리 인내하는 법 배운 것이 다행인 줄 알고 살고자 했다.

폭력에 주저 없음이 네 첫 번째 재능이다.

그러나 공상을 들켰던가. 하필 가장 큰 자질로 일컬어진 것 향기롭지 못하니, 신실한 자에게 가당한가? 모를 일이다. 예레미야가 일으킨 불길에 얼굴 찌푸리며 소맷자락으로 코 아래를 가렸던 교사가 이른다.

너는 사람을 잡아 죽일 자로구나. 네가 진정으로 거룩함을 받은 것이 맞느냐?

예레미야는 의아하다. 기사가 되도록 교육받는데, 카일루스 자제에게 할 말인가? 싶어서. 그러나 여전히 신실한 예레미야는 대답할 줄 아는 말이 없다. 신실하거든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조심스러워야 하고, 기도하기 위해 깍지껴 잡은 손 단단히 모양 내어야 하는데 이 자의 힐난에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예레미야는 우스갯소리처럼 천진하게 굴었다.

저는 기적의 증거함이니, 다만 신성 아래 알맞게 안배될 수 있거든 그것으로 족하리다.

어린 애가 꼭 경전 읊는 소리를 외자 질렸다는 듯 낯이 질린 교사가 수업을 이어갔다.

네 불길은 너무 거세다. 감히 기적을 입은 자가 백정이 되지 않게 주의해라.

예레미야는 속으로 웃었다. 부아조차 치미지 않고 그냥, 우스웠다.

과연 평생 속이는 노릇 어렵겠구나, 하고.



***

예레미야가 사랑하는 동생, 에제 카일루스는 향년 7세에 죽었다. 예레미야의 위로 누이가 하나 더 있고, 예레미야의 어린 시절 앓던 내력까지 더해서 집안 형제 중 세 사람이 병을 치렀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과는 다르다. 누이는 중병으로 죽은 것이 맞으나 예레미야는 방치되었고, 동생은 사고로 죽었다. 예레미야가 베르하임의 꽤 먼 데까지 나가 교육을 받고 돌아온 날, 카일루스 저택은 아이가 사라진 일로 온통 소란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에제 카일루스를 목격한 하인에 따르면 예레미야가 보이지 않는다고, 찾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언제든 시선 거두면 불시에 사라지는 까닭에 그 넓은 저택조차 나서고 만 건지, 예레미야까지 덩달아 정신없이 부르짖으며 아이를 찾는 내내 에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밤이 되자 아이가 금방 돌아올 거라 믿었던 어머니는 이미 혼절했고 아버지만이 침묵을 지켰다.

예레미야, 들어라.

예레미야는 그 적막 속에 갇힌 채 오래도록 숨죽이고 있다가 간신히 말소리를 들었다. ……아니, 사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간간이 당부하던 이야기는 아이 잃은 아버지치고 끔찍했다. 어머니만큼 요란하거든 그것만이 사랑인가? 그럴 리 없다. 하지만 아버지, 아버지는. 연달아 아이가 죽어 나간 집안에 무슨 명예가 있겠느냐며 만약을 이야기했다. 예레미야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을 여상히 읊는 아버지에게 자식을 대체 왜 낳았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애초 자신도, 형도, 약한 어린 애도, 집안 소생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 그의 소유물이다. 본래 명망 깊은 집안이라는 게 그렇다. 그러나 사라진 딸을 두고 위신을 먼저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예레미야는 이 앞의 상대와 도무지 어떤 대화도 할 수 없으리라 예단했다. 그래서 그다음의 말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비정한 자에게 반기를 들었나? 아니다. 어느 날 넓은 저택을 빠져나가 실종되었던 아이는 저 먼 길거리에서 발견되었다. 부랑자들의 시신을 맡아두는 곳에 있었는데 사정을 복기하자면, 옷이며 구두 따위 다 헤졌을뿐더러 체구가 작으니 저만치 밀려난 시신을 빨리 찾지도 못했다. 열거하고 보면 도대체 고명한 집안 아이에게 일어날 수 없는 사건 같다가도 흔한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신을 발견해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기적이라고 칭해질 수 있게끔. 다행히, 라고 구태여 몇 가지 행운을 짚는다면 마차 사고였으리라는 점이었다. 마법사를 불러다 죽음의 연원을 복원해낸 몸은 그래도, 뒤늦게나마 관에 안치되었다. 며칠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과정을 기억하지는 못하므로.

그저 예레미야는 동생의 관 앞에서 한참 앉아 있었는데, 관이란 본디 매장하도록 예비된 것이라 언젠가는 치워졌고, 예레미야는 관이 사라진 허전함을 견디지 못했다. 신앙이란 무엇이고 신실한 양태는 다 무엇이란 말인가? 예레미야는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자신이 앓아 죽으려던 날에 내밀어졌던 보드라운 손이 비명에 저무는 동안 신이 임한 적 없었다. 자신이 기적을 꾸며서 둘렀어도, 병으로 죽은 아이 소식은 또 한 줄 덧대어졌으며 그마저도 본연보다 덜 비참하고자 가린 것이다. 참화가 벌어지는 내내 구명한 손길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런데 예레미야, 예레미야 카일루스는 기적의 증거함으로 행세해야 했다, 여전히.

저택에서는 도무지 견딜 수 없어 문밖으로 향하거든 예레미야 자신에게는 그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처량하게 똑 닮은 뒷모습은 몇 번인가 마주했다. 의복을 귀하게 기워 입은 아이들, 그러다 또 야릇하게 잘못 들어서거든 대번에 뒷골목. 빈민들, 또 어린 애들. 그 이후로 예레미야는 이따금 외출에 나섰다. 도련님 외연은 어떻게 속일 수 없는 까닭에 대번에 도드라져 변을 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기적이었겠으나 예레미야는 매번 무사히 돌아왔다. 훗날 집사가 사람을 붙여 돌보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기 전에 이미, 예레미야는 자신이 혼자 행차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똑똑히 알았다. 그러리라 생각했다. 

예레미야가 그간 겪은 것 어떠한 안온함이든, 인간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서 이루어진 바 없었다. 예레미야는 기적을 믿지 않았다. 기적을 증거하는 자신이야말로 숱하게 거짓을 목격한 자였고, 귀하게 인간의 손길을 받들어 기억한 자였기 때문에. 머리조차 덜 여문 어린 애는 저택에서 줄곧 얌전하다가도 그 바깥나들이 취미를 버리지는 못했다. 어느 때에는 양친의 무관심을 매개로 밖을 들여다보고 왔다. 그사이 예레미야는 생각했다. 신성으로 꾸민 제의를 입은 자신, 카일루스, 신성으로 이륙한 왕국. 자신의 기적은 지어낸 것일지라도 가장 높은 데 머무는 그들, 재앙을 마무리 지었던 이들은 한 번 목격했을 그 신성.

신이 있다면 왜 한미한 곳으로는 임하지 않는가. 에제, 카일루스, 그 사랑하는 어린 애만큼이나 빈번하게 길거리에서 흩어지던 죽음들, 슬픔들. 비참한, 시시때때로 발에 차이고 들끓는 고통들.

왜 침묵하십니까?

묻자니, 예레미야는 애초에 묻지 않는 자였다. 예레미야에게 기적이란, 모두 인간으로 이루어진 경험이었기 때문에 신의 증거함을 몸에 담은 자 신을 믿은 적 없다. 그는 없어야 한다. 없어야, 이 모든 환난으로부터 인간을 내버려 둔 사실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는 없어야 한다. 진정으로 있거든 어떠한 책임도 묻지 못할 대상이니 애석하다. 한낱 인간으로서 위명으로 줄줄 늘어놓은 신성에는 배알이 뒤틀렸다. 그것이 있거든, 거짓으로 꾸미는 자들 먼저 죽여 없애야 하지 않았나? 왜 그대로 내버려 두나. 왜 거짓 기적의 증거함을 자처하는 자 내버려 두고, 아래에서 솟구치는 탄식 거두어가지 않고, 왜 그저 그곳에 있으리란 말인가?

신실한 제의를 갖춘 예레미야 카일루스는 불신을 숭상했다. 그것이야말로 예레미야의 믿음이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어차피 거짓 공모로부터 달아나지 않은 자였다, 오래도록.

그렇다면 과연 불신자의 자격조차 있을 것인가?



***

카일루스家는 10살 차이가 나는 장자 대신 셋째 아이를 후계로 내세웠다. 사관학교 졸업 시험에서 꼬박 두 번 미끄러진 변변찮은 맏이는 아버지를 빼다박은 성미로 유명해지려다 결국 자퇴 수속을 밟았다. 나는 어머니를 닮은 건가? 형과 아버지를 조롱하는 말을 들으며 예레미야가 생각한다. 어느 쪽이 이점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구역질 나는 족속이 그의 양친이었으되 예레미야는 물려받을 이름을 내던지지 않았다. 한사코 쥐고 있었던 것은 화마를 두고 그것이 힘이라 들떠서 손끝으로 궁리했듯이, 장차 예레미야 자신이 쥘 권력의 크기를 일찍이 가늠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불만과 비방과 불신과 딴판으로 권력이 가진 파괴성도, 휘두르는 성미도 한결같이 꿈꿨다. 거머쥐면,

거머쥔 다음에는 이 가증스러운 자들 다 파헤치려고. 무덤에 처넣으려고. 가족을 두고 섬뜩한 상상을 하는 어린 애, 예레미야는 수시로 복수하는 상상을 곱씹지는 않았다. 돌아올 대가가 너무나 커서, 아직 맞닥뜨리지 못한 바로 현재를 종종 턱없이 비참하게 곱씹곤 했기 때문에. 나는 내 이름 끄트머리에 달린 이름으로 하여금 당신들의 시신을 매장케 하리라. 사리 문 것치고 어설프고 편리한 독이 입술 새로 도무지 빠지지 않는 사이, 시간이 간다. 흐른다. 예레미야는 어느새 기사 지망을 따져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는 키가 훌쩍 자랐다.

조용히, 얌전히, 충실히 지내다 오거라. 황자 전하께서 입학하셨으니 마침 잘되었지. 네 또 다른 행운이자 신께서 보살핌이니.

그렇게 왕립 사관학교에 간편하게, 추천서 따위로 입학한 예레미야는 양친의 말을 되새기며 생각한다. 그 말이 맞다. 거머쥘 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자. 내가 카일루스, 나자빠진 몸체를 뒤집어 영예를 복원할 자로서 알아야 하는 이름. 예레미야가 생각한다. 나는 예레미야이거나 프리에르로 구별되는 성질 없으며 카일루스면 되었다. 마침 잘되었지. 양친의 말을 곱씹는다. 동감하므로. 그가 누구이든, 어떠한 사람이든, 따를 상부가 있어서 다행이다. 지표로써 따라 걷거든 장차 황홀하리라. 그런데,

저게 카일루스의 종자인가?

입학식 이후 첫 순간에 듣기로는 불손한 말이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한심한 형을 떠올렸다. 얼마나 허술했길래 입 놀리게 둔단 말인가, 들리는 앞에서? 예레미야는 처음은 넘기기로 한다. 따져 묻는 순간부터 구차한 까닭에서다. 폄훼될 수 없는 이름이 낙후되었다고 확인될 때마다 왜 모진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의 이력이 낱낱이 복기되므로.

예레미야, 15세. 몇 번 더 저주를 듣는다. 이것이 퍼지는 게 나은가, 아닌가, 예레미야는 저택에서 내내 배워 익힌 신실한 행색대로 신중하게 헤아리려다 그러고 보니 이름 끄트머리의 무게가 이미 무거웠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첫 번째 재능을 곱씹었다. 그러자 주먹질 따위를 벌이게 되었다.

마법을 쓰는 것도 아니고, 왜? 급습을 피하지 못한 상대의 어처구니없어하는 낯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며 예레미야가 떠든다. 살해범으로 몰려고 하는구나. 안 되지, 너는 손찌검 하지 말고, 맞기만 해라. 내가 상하잖아. 네가 갸륵하게 참아. 안녕, 내가 예레미야 카일루스다. 그간 듣던 말 중에 꼬리 내린 개로 지칭되는 바 잦았으나 그것 환담이구나. 개 노릇을 요구하거든 네발로 기어갈까, 네 다리를 물어뜯을까? 예레미야는 나오는 대로 쏟아붓던 순간부터 꽤 즐거웠다. 원하거든 기꺼이 흙을 손으로 디디고 걸어가며 걸인 행세조차 자처할 마음이 뿌듯했다. 예레미야는 한동안 악취처럼 성가신 이름이었으되, 예레미야 자신은 줄곧 즐거웠다.

네가 왜 신실하단 거야?

기적의 자격을 묻거든 공들여 짠 신실함이 불쑥 외연으로 불거졌다. 그것을 의심하는 자보다는 다행히, 광신자 따위로 이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카일루스 이름의 덕분이었다. 한사코 깎아내려도 무거운 이름이라 문밖으로 나오니 도움이 되는 것 많구나. 내 이름도, 증거함도.

예레미야는 한동안 본분을 잊고 지냈다. 개 노릇, 충실한 자. 권력에 다다르기 위한 것. 아니, 문밖에서 한 차례 먼저 누릴 권력 있었으니 그것 다 샅샅이 핥아먹으면서.

요행으로 건너 온 삶, 과연 게걸스럽고 명예롭지 못한 채.


***

방학, 카일루스 저택으로 돌아오자 대뜸 형이 손찌검했다.

프리에르, 이 개자식. 집안 체면을 망쳐도 정도가 있지!

예레미야는 처음으로 형에게 말을 걸 생각이 들었다. 피차 모호한 목적으로 태어나 카일루스 이름에 속한 채 애매하게 서로 머무르다가 모욕적으로 밀려났으니 쌓인 원한은 알 만하고, 나머지는……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싶다. 그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예레미야가 지껄인다. 네 육친이 낳은 자식인데 왜 말버릇이 그 모양이냐. 너도 개의 종자인가? 카일루스는 본래 개 노릇 자처하기를 잘하니 명예인데, 네게 할애되기에는 아깝다. 도망친 주제에 말이 길구나, 벤야민. 그렇게…… 줄줄 외고 있자면 정신없이 싸우는 소리가 뒤따른다.

예레미야는 자신보다 훨씬 큰 형을 상대하면서 피멍 들고 다치면서도 기꺼웠다. 너는 아무래도 취약하게 여길 일 없겠구나, 내 안에서. 그러면 이제 다음 동작은 수월했다. 예레미야는 사관학교에서 손쉽게 보복하고 마구 휘두르고 폭력을 저지르는 자였다. 예레미야는 이내 그것을 밀려난 형에게 되받아치곤 했다. 이번에는 불을 써서. 백정 노릇을 하지 말라고? 예레미야는 진정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즐겁구나. 싫지 않다.

그렇다면 다시, 불신자가 경전조차 없어 그러한 야만이 날뛰는 세상을 상정하고 신을 비난할 처지가 되나?

자격이 있나?


***

아니, 없다.

예레미야는 그것을 알았으므로 거짓으로 꾸민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는 없었다. 처음 어린 애가 공모한 기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탓인지, 벗어나고자 하지 않았음인지, 선후는 모른다. 어차피 불행한 자는 못 되었다. 예레미야 카일루스, 추잡한 거짓 선지자, 불신자.

그러나 예레미야는 지금 신성 앞에서 다시 옛 마음이 들끓었다.

간구하여 부르거든 그곳에 누구도 없으리다. 아무도 듣지 않는 애걸을 양분으로 삼아 인간이 떠들고, 공모하고, 거짓으로 거머쥐어 위명으로 두른다. 그것, 신성이……

실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기 머무르고도 내 추악하게 산 이력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내가 그를 용인할 수 없다. 신으로 매겨진 자 없어야 한다. 없어야 한다.

신실한 외연 안쪽으로는 설명할 거짓이 너무 많아서 진실로 이해한 다정과 애정마저 분별할 수 없는, 영원히 거짓 속에서 살 자가 생각한다.

청컨대, 청할 곳 없는 기도 올리나니. 나 스스로 기까이 올리니.

그간 그러했듯이 신실함으로써는 텅 빈 기도로. 기도의 형식으로.

“번영을 의심하리다. 그것은 없어야 한다. 신성은 실재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신성을 부정하마. 내 삶마저 용인한 신성이거든, 기어이.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