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한 재능
준탯 전력 주제 [눈물, 외출금지]
우승을 거머쥔 쌍용기 이후, 풀렸던 긴장도 잠시 준수는 다시 몸을 긴장시켰다.
쌍용기에서 지상은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재유는 에이스이자 고교급 이상의 가드를, 태성은 프로에서도 보기 힘든 탄성을, 다은은 커다란 키와 안정적인 슛을, 희찬은 범접할 수 없는 스피드를, 상호는 3점 슛과 훌륭한 디펜스를.
그럼, 나는?
원중전에서는 슈터로서의 명목을 보였지만, 그 외 다른 경기들에서는 글쎄. 슛 감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대체로 원중의 조재석만큼 슈터의 능력을 보인 적은 없다. 게다가 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키, 근육이 잘 붙지 않는 몸, 어정쩡한 슛 감까지.
농구 하나만을 보고 전학을 결심한 준수에게 우승은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음 경기의 목표를 우승이라고 단언한 말을 지키려면 슈터의 능력을 제대로 선보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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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가 무리한다는 건 다른 농구부 애들도 알았다. 다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은 우승 전 준수가 했던 지랄들과 결이 너무나도 달랐다. 우승 전, 준수는 최소한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다. 슛이 들어가지 않으면 넣을 때까지 던지는 게 준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준수는...
"어이, 전하. 이제 들어가서 쉽시다...- 오늘 슛 감도 좋았잖아요..."
오늘 연습경기에서 준수의 슛 감은 훌륭했다. 1쿼터에서는 약간 아슬해 보였으나 2쿼터에서부터는 보란 듯이 그물 한 번 스치지 않고 클린. 오늘 연습 경기에서의 득점 주자는 준수가 분명했다.
그러나 현성과 경기 복기가 끝난 후, 쿨다운까지 진행했음에도 준수의 손에서는 농구공이 떨어지지 않는다. 감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가, 하기엔 이미 다 떨어진 체력을 하고도 슛을 넣으려는 모습이 무섭다. 체력이 다 떨어지고 마무리 운동까지 했으니, 슛이 잘 안 들어가는 것도 맞을 텐데 준수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이를 악물고도 3점 슛을 던진다.
재유와 다른 애들은 먼저 보내고 골대를 맞고 뜅겨나가는 공들을 주우러 다닌 태성은 이미 퍼져 체육관에 드러누워 있다. 최근 준수를 볼 때면 준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랄을 해도 우리한테 하는 게 더 어울리던 준수는 왜 본인한테 지랄을 하는 걸까.
"하이고, 이젠 대답도 안 하네...-"
더 공을 던지게 뒀다가는 현성과 재유에게 욕을 뒤지게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태성은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뭐가 그리 조급한지는 모르겠지만, 몸 관리 하나는 뒤지게 잘하는 전하가 저러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우승까지 했는데 이유는 도통 모르겠지만.
다시 농구공을 쥐고 던지려는 준수의 손에서 농구공을 스틸한다. 곧바로 악귀 얼굴을 할 준수를 안 볼 수 있게 품 안으로 대뜸 끌어안는다. 열로 후끈한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려 준다. 맨날 몸 차드만 이래 뛰어야 뜨끈해지나 보네.
"햄아. 뭐든 괜찮으니까 이제 들어가서 쉽시다. 몸 찬 양반이 이래 뜨거분데 아프면 안 되잖아요. 내 다리 떨리는 거 안 보이나? 재유 햄이랑 아들 다 보내고 계속 공 줍고 다녀서 힘들다. 그러니까, 응?"
주먹을 꽉 쥐고 태성의 어깨고 허리고 내리치려고 했던 준수는 태성의 말에 몸에서 힘을 뺀다. 힘이 들어간 두 어깨를 툭 떨구곤 태성의 어깨에 얼굴을 푹 묻고 숨을 깊게 내쉰다. 과하게 쓴 탓에 덜덜 떨리는 팔 근육들을 느끼며 태성 모를 젖은 한숨도 같이 쉰다.
"야..., 공태성."
"와요."
"나, 힘들어..."
와...- 진짜 힘든가 보네... 쌍용기 우승 전에도 힘들다, 소리 한 번 안 한 사람이 힘들다 할 정도면. 계속 등을 쓸어내던 손은 준수의 팔뚝을 쥐고, 살짝 몸을 떨어트린다. 푹 숙인 준수의 얼굴을 보기 위해 무릎을 굽힌 태성은,
"...아니, 그래 힘들었나?! 눈가가 붉은데!"
"뭐래... 빙신이..."
우승 이후 또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준수의 눈물을 여기서 볼 줄이야. 허둥지둥 져지로 준수의 눈가를 문질러 준 태성은 어여 기숙사로 돌아가자고 준수를 이끈다.
'내일은 보양식이나 해 묵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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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찍 일어난 태성은 이리저리 보양식 레시피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후 훈련이 끝나고 바로 장 보고 오려면 지금밖에 시간이 없다. 근데, 가장 먼저 일어나야 했을 준수의 기척이 없네...?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려고 했던 태성은 준수가 자는 방으로 들어가 살살 흔드는데.
"아, 내 이럴 줄 알았다! 일주일은 외출 금지소서!!"
몸에 옅게 붉은 꽃들이 피어난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준수의 모습에 태성이 기숙사 사라져라 소리친다. 이후, 준수는 현성과 재유, 태성의 잔소리를 엄청나게 듣고는 일주일간 교실과 기숙사 외 외출금지를 당했다. 그래도 쉰 것이 괜찮았는지 조급한 생각들을 지워내고 본래처럼 돌아왔다.
불안해 하는 준수를 태성이 달래주는 걸 보고 싶어서 주제를 이용했습니다...
준수와 태성은 연애보다는 썸이라고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이번 글도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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