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승리와 패배, 그리고

2827 준탯

[안녕하세요! 여기는 XX 경기장입니다. 오늘 XX제과와 XX전자의 경기가 있는 날이죠. 크리스마스의 승리는 어느 팀에게 돌아갈지 너무 기대됩니다!]

[네, 맞습니다. 게다가 오늘 나오는 선수 중 유명한 커플이 있잖아요. 생일마저 크리스마스이브로 똑같은!]

[말씀과 동시에 XX제과 성준수 선수와 XX전자의 공태성 선수가 경기장으로 모습을 보입니다.]

[공태성 성수는 종이 셰퍼드잖아요. 성준수 선수는 회색 늑대이고. 그렇지만 인간화 모습으로는 공태성 선수의 신체 조건이 더 좋단 말이에요.]

[네네. 또 성준수 선수는 슈터라 몸집을 크게 키울 필요도 없죠. 어느 정도 증량하긴 했지만, 현재 모습이 고등학생 때와 거의 비슷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태성 선수는 고등학교 이후, 대학리그에서 몸집을 많이 키웠단 말이죠. 그 몸으로 저런 탄성을 낼 수 있는 선수가 해외에도 몇 없어요. 크리스마스에 커플의 경쟁. 보는 시청자들의 눈은 즐겁겠습니다!]

[이렇게 떠드는 사이,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립니다! 경기- 시작합니다!!]


경기 중 준수와 태성은 맞부딪칠 일이 거의 없다. 태성은 리바운드를 위해 골 밑을 지켜야 하고, 준수는 3점 라인에서 골을 넣는 슈터라.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 경기에서 XX전자는 무슨 작전을 가지고 왔길래 태성과 이리 자주 만날까. 공태성이 전문 디펜더도 아니고 골 밑을 사수해야 하는 새끼가.

"오우, 우리 태성이. 골 밑에서 놀아야지 왜이렇게 바깥까지 나왔어?"

"골 밑은 내가 안 지켜도 된다. 햄이나 잘해라. 내한테 이리 막혀 오늘 3점 슛은 쏘겠나."

"오늘따라 자신감이 넘쳐?"

어느새 3쿼터 중반. 준수의 미스매치로 인해 좀처럼 3점 슛은 터지지 않고 있다. 넣으려고 던져도 점프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뿌듯함과 동시에 좆같음을 느끼고 있는 준수는 머리에 펄펄 김이 올라온다. 겨우 2점 몇 번 성공한 게 끝이니. 이 작전을 흔쾌히 받아들였을 공태성을 생각하면 아득, 이가 악물린다. 오늘 저 새끼 제치고 3점 슛 쏜다, 내가.

투지로 빛나는 준수의 눈동자를 본 태성은 속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이 햄도 참 단순해. 그렇지만 크리스마스의 승리는 준수에게 넘겨줄 생각이 전혀 없는 태성이다. 이번 승리를 위해 성준수를 틀어막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그 말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지만 말이다.

긁힐 대로 긁혀진 준수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그 모습에 태성은 약간 후회했다. 아씨, 너무 긁었나. 저 눈깔을 할 때 성준수를 온몸으로 겪어서인지, 괜히 자기 몸도 흥분으로 달궈진다. 그래. 저 꼴을 한 성준수를 이겨야 진짜 이긴 거지.

"그 눈깔을 하고도 이길 수 있을랑가 모르겠네요-"

3쿼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벤치로 가는 준수 옆에 굳이 온 태성은 한 번 더 긁고 나서야 본인의 팀 벤치로 뛰어간다. 하, 이 XXX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핏줄이 올라온 손으로 눈을 가린 준수는 길게 숨을 고른다. 그래, 짖어대는 XX놈에게는 3점 슛이 답이지. 완전히 돌아간 눈깔로 준수는 감독님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4쿼터가 시작되고 자리를 잡던 태성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공을 튀기는 준수를 본다. 저 햄이 와 저기있노...


[4쿼터 들어와서 포지션 변경이 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성준수 선수가 포인트 가드인 것 같거든요?]

[네, 맞습니다. 성준수 선수가 얼굴로 유명한 풀업 점퍼인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친선경기에서는 종종 포인트가드 포지션을 맞곤 했거든요. 근데... 이런 정규경기에서 포지션 변경을 할 정도면 이기겠다는 마음이 중계석까지 느껴집니다!]

[샷클락까지 시간을 보는 것 같은데요... 어! 성준수 선수 바로 앞 선수를 제치고 바로 슛을 쏩니다! 클린 3점이에요!!]

[3쿼터 내내 붙잡혀 있던 한을 이렇게 풀어냅니다!!]

[앞으로 10점! XX제과 역전 가능성이 보입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립니다!]

[네, 크리스마스 경기라 그런지 굉장히 치열했거든요. 4쿼터에서 성준수 선수가 포인트가드의 면모를 보이면서 콤보가드의 모습을 정석적으로 보여줬어요.]

[성준수 선수가 좀 기복이 있는 슈팅가드라고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해줄 땐 해준다! 라는 면이 강해서 그렇게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데 본인 스스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모양이에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성준수 선수는 대학 리그에서도 슈팅가드의 모습만 보여와서 포지션 연습이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합니다!]


경기가 끝난 직후, 준수는 곧바로 인간화를 푼다. 귀와 꼬리를 드러낸 채로 벤치에 앉아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쓴 채 숨을 고른다. 정규 경기에서 처음으로 포인트가드로서의 경기였는데, 매우 아쉽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햄아. 괘안나?"

준수와 마찬가지로 꼬리와 귀를 드러낸 채 태성이 준수 앞에 무릎을 굽혀 앉는다. 솔직히 포인트가드 성준수를 듣기만 했지, 본 적은 없던 태성은 한 번 더 성준수가 지독한 농친놈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복이 있는 슈팅가드라고 아예 포가 연습을 할 줄은 몰랐지....

"어. 너는 넘어졌을 때 다친 곳 없냐."

"내는 괘안타. 햄도 어서 스트레칭하고 옷 갈아입어라. 진 건 난데 왜 더 진 것 같은데."

태성의 말에 픽, 웃음을 흘리며 숙였던 눈동자를 올려 태성을 본다. 땀으로 젖은 태성의 머리칼을 느리게 쓸어 넘겨준다. 준수의 손이 올라오자 태성의 귀가 뒤로 바짝 눕는다. 귀여운 새끼.

"진짜 3점 슛이 하나만 나올 줄은 몰랐지. 시바꺼, 이 악물고 점프하더라. 한 번도 제대로 뚫지 못해서 빡쳐."

"헹, 성준수 슛 많이 아리까리 하지-. 자, 우리 팀 이기면 줄라 했는데 내 혼자라도 성준수 이겨서 주는 기다. 이거 받고 정리하고 나오소서."

태성은 준수에게 다가올 때부터 쥐고 있던 조그만 상자 하나를 준수 손에 올려주곤 몸을 일으킨다. 완전히 일어나기 전 쪽, 도둑 뽀뽀는 서비스로 하곤 태성도 마무리하기 위해 몸을 돌린다. 구단 내 프로그램과 크리스마스 당일 경기로 인해 서로 생일날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지만, 내일까지는 훈련도 없고 꼭 붙어있을 수 있는 걸로 만족한다.

등을 보인 채 팀으로 돌아가는 태성을 가만히 본 준수는 손에 쥐어진 상자를 본다. 무엇이 담겼는지 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자 사이즈에 조금 전과는 다른 이유로 몸이 달아오른다. 느리게 손을 움직여 상자를 열어보니 준수의 취향이 제대로 담긴 심플한 반지였다. 가운데에는 음각된 푸른색 보석.

'12월 탄생석이 터키석이었나.'

보이는 것과 다르게 섬세한 연애 초반 때 탄생석과 그 의미를 알려줬다. 승리, 성공이라는 뜻이 준수와 닮았다고 감탄한 적이 있었지. 그 보석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이 새끼는 이걸 언제부터 준비한 거야. 속으로 투덜거리며 반지를 왼손 약지에 낀다. 딱 맞는 반지에 머리를 감싸고 있던 수건을 끌어 내리고 벤치에서 일어난다. 경기로 지친 몸은 다시 활력이 돌고 그 어느 때보다 흥분되었다.

"이거 언제 준비했어."

경기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지친 얼굴로 누워있는 태성에게 팔베개해 주며 준수가 물었다. 기분 좋은지 준수의 꼬리를 느리게 살랑이고 있었고, 손으로는 태성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지고 있다. 둘 다 선수라 은퇴 전에는 반지, 팔찌 등 악세사리를 선물해 줄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있었는데.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했다. 지는 걸 생각 못해 글치... 어떻게든 이겨서 내 이제 이만큼 컸다고, 자랑하면서 줄라 캤는데 햄이 그렇게 안 있었으면 오늘 안 줬을 기다."

"참나...- 그래서 이 악물고 뛰었냐?"

"어. 풀코트 뛸 수 있게 체력 훈련도 뒤지게 많이 했는데, 거기서 포가로 나올 줄 누가 알았나."

입술을 삐죽 내민 채 툴툴거리지만, 3점 슛 하나로 틀어막는 게 기분은 좋은 모양이다. 멍청한 시키. 공태성 앞에서는 지는 게 당연해진 준수를 자기만 모른다. 그 사실을 혼자 알아챌 때까지 말해줄 생각 없는 준수는 그대로 다시 입술을 겹친다.

해피 크리스마스다.


늦은 준탯절과 크리스마스 글입니다.

인수물을 섞어봤는데 인수가 뚜렷하지는 않네요...

남은 크리스마스 모두 즐겁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해피 크리스마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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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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