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네모나다

종상 | 지구가 네모나면 좋겠다. 그럼 네가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퇴고 X 맞춤법 X

저 진짜 순애 못 쓰는데 연습용으로 써봅니다. 

서클 한정 포타에 올렸던 걸 서클 없어져서 그냥 여기에 방치해요.

트위터 타래에서 추가된 거 조금 있어요~

해석은 아래에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의 최대 단점은 여름엔 덥고, 겨울에는 춥단 거다. 기상호는 최종수의 몇십억짜리 아파트에 대고 돈 많아봤자 쓸모 없네요-라 비평했다. 바야흐로 여름이었다. 충격 먹은 최종수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집을 구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쏜쌀같이 사라지는 가을 내에 이사를 끝냈다. 알음알음 있는 사람들끼리 양도하는 탓에 산골짜기 같은 풍경을 자랑하면서 도시에 있는 그림 같은 저택은 돈이 있어도 사지 못했다. 최종수는 집을 구하기 위해 난생처음 잘나가는 농구스타 이름을 이용했다. 수영장이 있는 마당. 그 마당이 보이는 너른 창의 거실. 천장고는 덩크슛이 가능할정도로 높았다. 심지어 2미터에 육박하는 몸이 누울 수 있는 소파도 샀다. 혼자 열심히 가구를 들이느라 기상호 취향을 묻진 않았는데 안타까워하던 와중 '내 집인데 왜 그런 생각을 하지' 한탄 했다.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한 채 가구점을 돌아다녔다. 편하게 가늠할 시간은 없었다. 소파는 둘이 누워도 적당한지 눈으로나 가늠했고, 침대 매트리스가 어떤지는 대충 누워보고 정했다. 메트리스 소음이 심한지 알아보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누가봐도 나 애인있소 시인하는 꼴이었다. 아무리 기상호한테 미쳐있다한들 아직 그정도 이성은 있다. 그러다보니 가구란 가구가 죄다 별로다. 소파는 최종수 한명만 누워도 꽉차고 침대는 스프링 소리가 컸다. 아, 이건 그가 극도로 예민해진 탓도 있었다.

"기상호 개새끼."

가을 초입. 이사하고 나흘 째에 기상호는 헤어지잔 문자 하나만 보내고 튀었으니까.

가을은 지나치게 짧아졌다. 어릴 때엔 한 달은 있었던 거 같은데 고작 2주만에 겨울이다. 뉴스는 패딩 입은 사람들을 보여주며 온도가 뚝 떨어졌음을 알렸다. 모두가 옷을 껴입는 때에 혼자 세상을 왕따시켰다. 여름 셔츠 위에 가디건 하나만 걸치고 콧물을 훌쩍이니 거울 속 자신이 얼마나 우습던지. 선수라 몸이 튼튼한게 다행이다. 최종수도 남들과 같이 추위를 느꼈다. 추워서 입 돌아갈 지경인데도 그는 고집으로 겨울옷을 꺼내지 않았다. 아직 창고에 박힌 계절 옷박스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겨울옷을 꺼내어 변해가는 계절을 인정하면 기상호 없는 인생을 살아야 했다.

최종수에게 기상호 없는 생은 대단히 낯설다. 없이 보낸 세월이 더 길지만, 한 번 겪으면 돌이킬 수 없는 종류가 사랑이라지 않던가. 솔직히 그는 기상호도 그 생이 낯설길 바랐다. 누구 마음대로 저를 두고 살라는지. 물론 인생은 자기 거라지만 최종수는 인정하지 않았다.

종국에는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얼어도 가을옷으로 버티겠단 아집으로 이어졌다. 거실 창문을 열어두고 혼자 누워도 꽉 차는 소파에 누워 생각한다. 

'지구가 네모나면 좋겠다. 그럼 네가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이성이 남아있는 줄 알았는데....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그러다 이내 다시 합리화한다. 이렇게까지 정신줄 놓은 이유는 모조리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라고. 멍청한데다 심지어 생긴 것도 멍청해 보이는 오타쿠 따위를 왜 좋아하지? 추위에 두통이 지끈거리고 시야가 핑그르르 돌아도 그는 꿋꿋했다. 진짜 지구가 네모났다면 기상호랑 만나지 못했을까?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따위 시간낭비가 아니라 사계절 내내 서늘한 농구코트에서 연습이나 했겠지.

최종수는 만약 지구가 네모났을 때의 우주를, 그 우주를 떠도는 자신을 상상한다. 괴팍한 네모의 행성을 멀리서 바라보며 유유자적 시간을 떼운다. 그리고 커피를 마셔야지. 호로록. 우주에서도 뜨끈한 커피는 씁쓸하니 좋았다. 카카오향과 베리향 그리고 끝은 허브. 로스팅이 잘된 질 좋은 원두였다. 시간을 보낸 다음에는 우주선으로 돌아가 아주 먼 행성을 떠돌겠지. 이 행성 저 행성 우주선에서 구경하다가 늙어죽으면 좋겠다. 망망대해 같은 생각의 종착역은 불운하게도 기상호였다.

상상 속 그가 구경한 행성 중에는 새파란 행성이 있다. 그는 저게 뭐야, 뭐 저따위로 생겼어하며 욕하다가 조용히 핸들을 꺾었다. 작고 습한 행성에는 착륙할 땅도 적었다. 겨우겨우 우주선 엔진을 끄고 켜고를 반복하며 착륙하니 작고 습한 행성에 사는 상어 한 마리가 그를 반겼다. 어떻게하면 이렇게까지 생긴 생명체가 있나해서 이름을 물었다.

"아아앙~ 제 이름 아시잖아요 햄."

물이 9할로 이뤄진 행성에 사는 상어 이름. 고민할 필요도 없다. 무조건 기상호다. 아니여도 이제부터 기상호라 해. 그렇게 말하니 놈이 헤실헤실 웃는다.

"좋아요! 기상호라고 부르세요."

기상호는 깊고 깊을 바다에 풍덩 몸을 내던져 수영했다. 기쁨의 표시인가? 외계 행성의 취향이란 알 수가 있어야지. 최종수가 혀를 쯧 차고 고작 1할있는 땅에 앉았다.

"야."

말할 때마다 우주복에 습기가 찼다. 뿌연 습기가 시야를 가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왜 헤어지자고 했어?" 

그리고 눈물이 흐른다. 

"왜 그런 못돼먹은 말을 해? 내가 좋다며. 나랑 같이 지내고 싶다며."

서러움이 차올라 지구를 가리켰다. 

"저기에도 물은 많아. 너가 평생 수영해도 좋을 행성이야. 근데 고작 이따위 거지같은 데에...."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태연하게 수영하던 기상호가 물보라를 철썩 일으켰다. 별안간 쫄딱 젖은 최종수는 황당해서 눈을 끔뻑였다.

"햄 우리에게는 각자의 행성이 필요해요."

잘가요.

최종수가 잠에서 깼다. 침대를 적신 눈물도 땀도 모조리 기상호가 일으킨 물보라였다. 축축해진 이불보와 더불어 활짝 열어둔 창문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 으슬으슬했다. 최종수는 몸을 닦지도 않고, 창문도 신경쓰지 않은채 휴대폰에서 지구 사진을 검색했다. 어쩐지 그래야할 거 같았다. 그러나 나사에서 실시간을 공개하는 지구는 여전히 둥글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상하다. 지구는 왜 아직 동글지?

-

기상호는 최종수에게 이별을 고했다. 지구가 둥글어서다. 네모난 모양이면 좋았을런만. 무작정 문자를 보내고도 엉엉 울었다. 아마 햄은 안 울거다. 사랑은 저가 더 했다. 최종수는 옆에서 바보 같다는 툴툴대는 말과 반대되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사랑을 표현했지만 그래도 제 사랑이 이긴다. 무조건. 그러면 무엇하나. 그는 이제 머나먼 별로 떠나야 한다. 이유를 물으면 어쩐지 답하기 어렵다. 그냥 떠나야 해서 떠난다. 태어날 적부터 정해진 운명이오 순리였다. 거부할 마음이 만만하나, 지구에서 머무르려는 욕심이 최종수란 인간으로 형체화되면 될수록 불운해졌다. 하늘에서 간판이 떨어지고 보안 좋은 집에 강도가 들이닥쳤다. 협회 내 정치싸움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고 갑자기 멀쩡했던 몸이 나빠졌다. 기상호 말고 최종수가. 욕심의 인간화인 최종수에게 기상호가 돌아가야 할 별이 내린 압박이었다.

'돌아와,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지구가 둥글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런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네모난 지구의 각진 부분에 최종수와 나란히 머리를 박고서라도 숨어살고 싶어졌다. 그가 왜 이딴 짓을 하느냐 따져물으면 그냥 입 다물고 이렇게 살아달라 빌거다. 최종수는 돌았냐는 표정을 짓다가도 금세 이렇게 박으면 되느냐 물을 걸 안다. 기상호보다는 아니지만, 그도 기상호를 사랑했다. 우습게도 제 사랑이 더 크다고 믿는 듯 했다. 바보 아니야?

어쨌든 아직 둥근 지구에서 기상호는 눈물바람으로 돌아갈 날을 세었다. 하루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면 지날수록 숨이 가빠졌다. 최종수는 어떻게 사는지 알아보니 이사했단다. 차라리 잘 됐다. 그 집은 행성의 저주가 강하게 내려 좋지 못했다. 새 집은 아직 저가 가지 않았으니 괜찮다. 꾹 참고 최종수 얼굴만 안 보고 살면 돌아가는 날까지 무사하다. 알면서도 차오르는게 사랑이고 욕심이다. 마지막으로 농구하느라 엉망인 손을 잡고 말하고 싶었다. 사랑하노라고. 내가 이 행성을 떠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욕조에 물을 받고 고개 박았다. 돌아가야할 행성은 이렇게 물로 가득한가보다. 마음이 안정됐다. 기상호가 사라진 이 둥근 지구에서 최종수는 뭘하고 살까? 만약 지구가 그를 잊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최종수에게 기상호를 아느냐 물으면 그딴 이름이 뭐냐 말하면, 그러면 진짜 어떡하지. 물로 넘실대는 욕조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햄, 햄. 보고 싶어요."

-

라는 꿈을 꿨다. 미친 이게 무슨 꿈이야? 최종수는 어느 행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혼자 속앓이하는 기상호를 보고는 이게 현실이라 믿고 싶었다. 나에 대한 사랑이 겨울을 알리는 찬바람에 식은게 아니기를 바랐다. 그러면 잡을수라도 있으니까. 저 먼 행성으로 가는 거라면 같이 가. 나도 가봐서 알아. 거기 나름 살만하던데? 내가 지낼 땅도 있더라. 거기서는 우리가 몸 뉘일 가구 같이 고르자. 네가 하자는대로 할게. 색도, 크기도, 모양도 모조리. 하지만 사랑만은 내가 고르게 해줘. 널 어떻게 사랑할지, 얼마나 사랑할지, 얼만큼 사랑할지 다 내가 고르게 해주라. 물이 9할인 행성에서 고작 1할인 땅에 앉아서 너를 보고싶어.

최종수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다시 잠들었다. 기쁨으로 달아오른 뺨은 꿈에서야 멀쩡해졌다. 깊고 깊은 잠의 끝은 드넓은 우주다. 사방이 어둠이라 방향조차 찾기 힘든 우주에서 우주선 없이 둥둥 떠다니던 최종수는 쫓겨났던 기상호의 행성으로 헤엄쳤다. 팔다리를 허접하게 폴짝대자 우주의 기운이 그를 보호하듯 행성으로 밀어주었다. 대기권에 들자 중력을 받아 낙하한다. 기상호가 노래하고 춤추고 있을 바다로. 최종수가 잠겨 죽을 바다로. 

우주복을 입었으니 질식사 하진 않겠지만 기상호가 맞이하지 않는 바다인지라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기상호, 기상호. 둥근 지구에서 잊을 수 없다면, 너가 있는 물이 9할인 작은 행성에서 널 기다릴게. 행성의 바다도 지구의 바다처럼 가라앉을 수록 깜깜해졌다. 기상호가 없는 그의 집도 어둡고, 우주도 어둡다. 기왕 어두울 거 기상호가 사는 바다에서 어두우니 좋았다. 맥없이 깊은 바다에 이끌려가는 때에 저 멀리서 어둠을 가르고 기상호가 헤엄쳐 오고 있었다.

"햄!"

바다에 최종수의 눈물이 더해졌다. 거센 물살 틈에서 기상호가 사람으로 변했다. 최종수도 언제부터인지 우주복이 아니었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틈 없이 껴안았다. 보글보글. 호흡마다 기포가 일었다.

여전히 둥근 지구에서 태어난 두 소년이 있다. 하나는 본래의 행성으로 돌아갔고, 하나는 태어나기를 짝처럼 태어났단 듯 따라 이주했다. 이제는 평생 둥글라지. 조그만한 땅에 집을 지은 최종수는 안을 기상호 취향대로 꾸몄다. 햄 저건 이렇게, 이건 이렇게 해주세요. 손가락을 휙휙 움직이며 징징대자 최종수는 귀찮은 표정을 하면서도 죄다 그를 따랐다. 부식되지 않을 집에서 평생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야지.

최종수는 그렇게 오래도록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 아주아주 오래도록.

+

해석

여기서 실제 기상호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최종수의 망상 속 기상호만 있어요. 상호한테 차였고, 왜 찼는지 물어보지도 못하는 소심예민남이지만, 꿈에서만큼은 믿고 싶은 거죠. 모종의 사유로 원치 않은 이별이었다고. 그리고 다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상어 기상호가 있는 행성은 물이 많아요. 지구도 물이 많지만, 9할이나 되는 작은 행성은 오로지 '상호만을 위한 환경' 입니다. 최종수가 있을 곳은 고작 1할짜리 땅이거든요. 심지어 우주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 외지인입니다. 처음에는 쫓겨나지만 (기상호만의 세계에서 쫓겨난 이별을 뜻함) 나중에는 기상호도 억지로 헤어진 거니까 하는 자기합리화로 그 세계에서 만나게 됩니다.

사랑하게 해줘 라는 말은 저자세입니다. 상호랑 만날 수만 있다면 저자세로 일관할 수 있는 을의 사랑을 표현했어요.

제목이 지구는 네모나다 라는 말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헤어진 두 사람은 말도 안 되게 세상이 뒤집어이지 않는 이상 다시 만날 수 없단 말입니다. 그리고 최종수도 그걸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 사랑이 식지 않을 거란 사실도 알아요.

꿈에서 지구가 둥글었지만 같이 있을 수 있던 이유는 '그래야만 하는 현실'인 지구에서 벗어난 '꿈'이기 때문입니다.

프하하 그먼씹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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