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희통신대귀담

마희통신대귀담 1

청상과부의 운명도 협객을 흔들 순 없어요

수도자들은 신선이 되기 위해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속세에 물들지 않도록 깊은 본산에 은거하며 세상이 어지러울 때 불현듯 나타나 덕을 행한다. 이 덕에 수선을 위해 세워진 문파, 수선문파들은 백성과 강호에게 존경과 경외의 상징으로 통한다.

세 손가락에 드는 소수의 별난 문파는 예외지만.

그중 주여아사는 여타 어느 수선문파보다도 으슥한 본산을 두었다. 이곳의 양기와 음기는 기묘한 균형을 이루는지라, 언뜻 보기에는 마치 무덤가에 버금가는 음기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혹자는 이들을 마교나 사파라고 단단히 착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주여아사의 기이한 점은 첫 단추를 끼운다.

주여아사는 단 한 번도 저잣거리, 심지어는 강호들 사이에서까지 활발히 돌아다니는 그 헛소문을 정정하려 들지 않았다. 누가 마교라 떠들건, 누가 악당이라 욕하건, 주여아사의 그 어떤 장문도 불명예를 고치려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주여아사의 구성원은, 그 밑으로 들어가 그들의 법도에 따라 수련을 쌓는 모든 이들에게 소문이란 지나가는 날벌레 날갯소리만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죽음과 영혼을 보는 수도자로, 인간사에 초연하다 못해 무심했다.

하여, 주여아사를 향한 멸시나 악명은 언제나 수그러들지 못했고 수선문파끼리도 주여아사와 엮이기를 꺼렸다. 다만 주여아사가 수선문파임을 의심하지 않는 여타 수선문파들이 주여아사를 거북해한 것은 고작 소문 때문이 아니었다.

주여아사는 앞서 말했듯이 죽음과 영혼을 중심으로 몸과 정신을 갈고닦았다. 그들은 죽음도 삶도 모두 가까이했고, 많은 이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근본적으로 구분하려 들지 않았다. 즉, 그들은 시신을 가까이하고 시도 때도 없이 죽은 자와 말을 나눴으며 인간이 어찌하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를 배우길 전혀 거리낌 없이 배우고 전수했다.

수도자들은 그들의 본산을 지날 때면 혀를 차거나 인상을 찌푸리며 ‘괴짜 집단’이라고 불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괴짜였다. 새 제자가 혹 다른 문파와 비슷한 성미를 가졌다면 2년을 채우지 못 하고 주여아사를 떠나버리기 일쑤였다. 그들은 떠나는 자도 붙잡지 않았다.

주여아사를 세운 시조가문의 여식인 위채헌은 그 괴팍한 주여아사 문파에서도 가장 별종이었는데, 괴짜들의 별종이면 360도 돌아 상식적인 인물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기대는 접으시길. 다른 세계의 지성인들이 위채헌의 하루를 살핀다면 이입하긴 어려울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그런 위채헌이기 때문이었나, 수도자로서는 영 엉뚱한 굴레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위채헌은 졸지에 황자와 약혼하여, 황자비로 입적하게 생겼다.

그날도 위채헌은 본산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고독과 공법을 씹고 있었다. 먹과 고독은 둘 다 씁쓸하고, 위채헌은 쓴맛을 좋아했다. 나무에 늘어져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있던 위채헌의 귀에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몇째인지도 가늠이 안 되는 수많은 형제 중 한 명이 채헌이 누운 나무 위로 날아왔다. 채헌은 저와 닮은 눈매로 미루어 보아 대강 제 오라비나 남동생이리라 여겼다. 위채헌이 고개를 까딱이자 형제의 두꺼운 눈썹이 인상을 썼다.

“형님에게 예의가 부족하군. 올해 열여섯이라 들었건만 어찌 아직도 이리 방자…”

위채헌은 무시하고 안경을 벗느라 부산스러운 척했다.

“형님, 그래서 어쩌다 이런 골짜기까지 납셨답니까?”

아무개 형님은 혀를 한 번차고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위채헌에게 건넸다. 위채헌은 반사적으로 두루마리를 펼쳤다. 생면부지 소년의 초상화가 두루마리 속에서 위채헌을 응시했다.

“그분은 제8 황자시다.”

“으음.”

채한은 그의 곱상한 이목구비를 뜯어보았다.

“그래서요? 황자께서 이유 모를 사건에 휘말려 돌아가셨나요?”

위채한이 고개를 돌려 제 형제를 보았다.

“더 펼쳐라, 더.”

채한은 두루마리를 심만 남을 때까지 펼쳤다. 이렇게 보니 두루마리를 이루는 종이는 몹시 귀한 고가의 비단이었다. 돌돌 말렸던 종이가 평평하게 펴지며 숨어있던 글자가 드러났다.

“세상에.”

위채한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아무개 오라비를 쳐다봤다.

“수도자더러, 주여아사의 여식더러 황자와 약혼하라고요?”

아무개 오라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거리낌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말이람.”

위채헌이 다시 한번 찬찬히 두루마리를 읽었다.

[달포 전 주여아교 시조의 핏줄인 여식을 8황자의 짝으로 간택하고자 청을 보냈다. 주여아교는 이를 수락하였으니 아래 일시에 황실에서 보낸 시종과 동행하여 입궁하길 명한다.]

“심지어 주여아교라고 적어놨어. 사칭 아닙니까?”

위채헌이 안경을 다시 쓰며 또 한 번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봤지만 달라 보이는 철자는 한자도 없었다.

“그건 틀림없는 황가의 문장이야.”

“정말 이 황자가 죽지 않은 게 확실해?”

“확실해. 신기하게도.”

위채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 아무개 오라비를 쳐다봤다.

“왜 내게 진작 언질도 없이?”

“사실 그 청을 처음 본 청운 형님이 말하려고 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자기 일하느라 바빠 까먹었고, 까먹어서 사흘 전 확인하러 온 내관에게 네가 수락했다고 둘러댔다고 한다.”

“사고는 형님들이 치고 봉변은 내가 당하는군. 이놈의 집구석. 형님도 제법 저와 닮았으니 저 대신 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죠?”

“네가 집구석에 하루도 붙어있지 않으니 만날 일이 없어 형님도 까먹은 것 아니냐?”

“이러는데 내가 붙어있고 싶겠수?”

위채헌은 말없이 대안을 짜내려 골몰했다.

“우리 어머니의 딸이 그렇게 없나? 아버지의 딸이라도. 성미가 기이한 분들의 모임이니 개중에는 혼인에 환상을 품은 딸이 하나쯤…”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이 집에서 조건에 부합하는 딸은 너 하나뿐이다. 게다가 이미 네가 수락했다고 둘러댔다.”

“이놈의 집구석. 딸들조차도 가지각색이라 비스름한 애 하나 없나. 게다가 형님, 사고 쳤다고 고백하는 태도치곤 너무 뻔뻔하군.”

아무개 오라비도 찔리는 건 있어서 한숨을 쉬었다.

“그냥 슬쩍 갔다 와라. 협객 중에서도 수도자, 그것도 주여아사에 혼인을 청한걸 보니 그쪽도 진지하게 보낸 건 아니겠지.”

“가서 무슨 일을 겪을 줄 알고.”

“설마 범인들 상대로 적당한 임기응변도 못 한다고 할 셈이냐? 우리가 언제 제자를 그렇게 키웠지?”

“범인은 범인인데, 황실이라는 사소한 특징이 있죠.”

“그래도 청운형님말이… 네게 큰 잘못을 했으니 잘 다녀오면 뭐든 소원을 들어준다더군.”

위채헌의 눈이 반짝였다.

“가족이 뭐라고. 이놈의 정이 웬수야.”

…하여 위채헌은 황궁으로 가는 마차에 올랐다. 주여아사의 본산은 산길이 험해 말은 도저히 오르지 못할 지경이었으니 시종과 위채헌은 산기슭에서 만났다. 으리으리한 황실마차를 상상했는데, 생각 외로 매우 간소한 갈색 마차가 위채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실은 공사다망하여 결혼도 빨리빨리 해치우는 주의인지, 위채헌을 데리러 온 시종은 오늘밤 도착하면 바로 내일 약혼을 올릴 거라고 거의 통보했다. 주여아사를 깔보는 사람이 여기저기 많은 건 익히 알았지만, 황실도 다를 게 없나 보군. 위채헌은 마차에 머리를 기대며 생각했다.

평소 위채헌은 밤에 돌아다니기를 밥 먹듯이 해 마부보다도 쌩쌩한 눈으로 마차 창을 열어 야경을 구경했다. 황궁의 횃불이 저 멀리 일렁거릴 때 쯤 위채헌은 벌써 본산이 그리웠다.

진흙과 약 냄새, 무엇인가 종류별로 썩는 시큼한 악취가 저택 어딜 가도 희미하게 묻어나오는 위채헌이 나고 자란 그 집에 가고 싶었다.

자기가 여기저기 마련한 움막이라도 좋고, 근 석 달간 누운 일이 없는 제 방 침소라도… 한숨이 나왔다. 팔자에도 없는 황자비 노릇을 하게 생겼다.

위채헌이 한숨을 예순 번쯤 쉬었을 때(마흔 번째에는 마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위채헌은 숨소리가 한숨 같은 사람인 척 했다. 위채헌을 데리러 온 시종은 그때부터 위채헌을 정말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마차는 드디어 황궁 정문 앞에 섰다.

정문까지 와도 위채헌을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나 애초에 시종 하나 없는 주여아사에서 자란 위채헌은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 했다. 그래도 문지기들은 언질을 받았는지 위채헌에게 고개를 숙이고 정문을 열어주었다. 위채헌 또한 그들에게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위채헌은 휑한 궁의 앞마당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다들 자러 갔나 보지. 8 황자의 처소는 어디일까?

위채헌을 데리러 왔던 시종은 멀뚱히 주변을 둘러보는 위채헌을 등불을 들고 이끌었다.

“황자 저하께서는 아가씨를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황자도 밤잠이 없으신가요?”

위채헌이 태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소인도 잘 모르나 어찌 되었든 잠이 오지 않으셔서 기다리지 않으시는 건 아닐 겁니다.”

시종이 예의 야릇한 눈으로 위채헌을 보았지만 위채헌은 상관하지 않았다.

궁의 바깥길로 쭉 걷고 몇 번 꺾고 나니 곧 8 황자의 처소가 나타났다.

황궁이라곤 태어나 처음 보는 위채헌의 눈으로 봐도 과할 정도로 수수했다. 황자의 처소라는 설명이 없었다면 대강 신하들이 쉬는 곳이나 별 볼 일 없는 건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렇다. 할 장식물도, 인공정원도, 근사한 돌길도 없는 휑한 궁이었다. 다만 관리는 소홀히 하지 않는지 처마 밑에는 거미줄 하나 없었고 벽은 깨끗했으며 바닥은 잡초 하나 없었고 비질한 자국이 정갈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치된 궁이라는 인상을 지우긴 역부족이었다. 대문 패에 적힌 궁의 이름이 닳아서 잘 보이질 않았다.

“궁의 이름이 무어라 적힌 겁니까?”

“송구합니다. 소인은 글을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글을 아는 나도 못 읽겠는데. 무슨 궁인지 이곳에서 일하는 분이니 들어보시지 않았나요?”

“송구합니다, 아가씨. 제가 무지하여 알지 못합니다. 간밤 평안히 보내시고, 아침에 뫼시러 오겠습니다.”

시종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서둘러 위채헌에게 밤 인사를 올리고 물러났다. 위채헌은 그저 빠르게 사라지는 시종의 등불을 바라보다가 대문 앞에 서 문을 두드렸다.

“황자. 여, 위채헌이 지금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소박으로 시작하나. 뭐, 어차피 이쪽이나 저쪽이나 멀쩡한 혼인을 기대하진 않았으리라.

“황자. 주여아사에서 여, 위채헌이 도착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흠. 아예 처마에서 각방을 쓰는 걸로 확실히 해두고 싶으신가. 내 출신을 생각하니 신기하진 않다.

“에엣취, 아이코!”

위채헌의 상반신이 대놓고 어설픈 재채기와 함께 문으로 쏟아졌다.

“죄송합니다. 밤공기가 차 재채기와 함께 부득이하게 문을 열어버렸습니다. 무례를 용서…”

위채헌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아주 익숙한 향기가 황자의 처소에 감돌았다. 위채헌은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며 의자에 앉아 책상에 엎드린 8 황자를 보았다.

황자는 잠들기라도 한 것처럼 조용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았으니까.

위채헌은 익숙한 몸짓으로 황자의 맥을 짚고, 안색을 확인하고, 기의 흐름을 살폈다.

확실했다.

위채헌의 눈앞에 힘없이 늘어진 황자는 시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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