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식이, 축구랑 풋볼은 다르다니까 그러네? 뭐, 새꺄. 니네가 축구를 갖고 가서, 풋볼을 만들고, 그니까 그게 그러케 된 거 아니냐고. 꼽냐? 되긴 뭐가 돼? 짜식아. 우선 봐라. 이 똥그란 게 축구공이고, 그리고, 길쭉한 이게 풋볼이다. 봐라, 이게 똑같이 생겼냐? 공은 공이잖어, 그니까. 발로 까는 것도 똑같잖냐. 봐라, 풋볼. 까지? 축구공. 까지
얼마나 지났을까? 황무지에 있는 베이스 의무실에는 창문이 없음. 불빛은 조명등이 다임. 시계도 박살났으니까 시간을 알고싶어도 뭐 도리도 없고… 자명종이 울리고 나서 꽤 지나긴 했지. 아침은 지난 게 확실함. 숙취는 어느 정도 나아진 것 같음. 잔뜩 곤두서있던 속도 가라앉았고. 그러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진단 말이지. 다른 놈들은 뭐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미안, 닥터. 짧지만, 충분한 대답이었어. 너무나도 충분한. 마치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더 이상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의 끝자락처럼 말야. 해피엔딩이 아니란 게 문제였지만. 대답은 차마 할 수 없었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대신 작게 고개만 끄덕였어. 평소에도 둘 사이에는 긴 말이 필요하지 않았지. 그냥 눈짓 하나, 고갯짓 한 번만 봐도 의사소통이 가능했
일이 더럽게 돌아간다. 데모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 생각했음. 독한 담배연기가 소파 주변을 뽀얗게 맴돌았음. 어젯 밤에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고 난 뒤의 부엌 상황 같기도 함. 미션 때 레드 솔저랑 신나게 폭격질하면서 싸우고 난 뒤에 남은 연기 같기도 하고.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토끼 사냥이었음. 토끼 굴은 복잡하잖아. 그러니까, 굴 속에 있는 토끼를
황야의 상아탑에 스스로 감금되기를 원한 늙은 은둔자와, 저 홀로 탑을 수호하는 검은 원탁의 기사라. 한편, 스파이는 어깨 너머로 담배를 피우는 데모를 흘겨보면서 생각했음. 고루한 비유지만 신선한 구도군. 처음에는 술에 취한 데모의 상태를 보고 일이 잘 풀리리라고 기대했음. 취해서 기분이 좋은 데모는 수다쟁이였고,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몇 번 찔러보는 것으
술이 땡겼음. 그냥 필름이 끊길 때까지 실컷 퍼마시고 곯아떨어지고 싶었음.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취기가 돌기 시작하면 무슨 말을 하게 될 지 모를 것 같았음. 스파이를 상대할 때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음. 저 징글맞은 독사새끼는 얻고 싶은 게 있으면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서 반드시 원하는 걸 캐내고야 마는 놈임. 씨발, 야비하고 음흉하고 음험한 첩자새
데모는 술병을 끌어안고 편하게 소파에 누워있었음. 아, 아주 편하지는 않았음. 키가 크다보니까 장딴지 언저리는 반 정도 소파 바깥으로 삐져나가 있었음. 소파 가장자리는 베고 눕기에는 살짝 높았고. 어쨌든 항상 딩굴던 곳이었으니까. 들고 있는 게 사과주 술병이 아니고 손에 쏙 들어갈 만큼 작은 크리스탈 술병이라는 것만 빼면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음. 스파이는
이봐, 데모. 으아악, 씨발!!!!!!! 하고 스카웃이랑 데모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음. 씨발이라고 한 것마저 똑같았음. 스카웃은 스파이를 미리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데모한테 앵앵대느라 까맣게 모르고 있었음. 주의력 발달 장… 아니다. 이 소리까지 하면 스카웃이 너무 불쌍하니까 속으로만 놀려대야지. 음. 좌우간 만담 콤비가 질겁을 하거나 말거나 스
들어서자마자 마치 냉장고 문을 연 것처럼 약간의 습기와 함께 서늘한 바람이 얼굴에 엉겨붙었음. 소독용 알콜의 알싸한 냄새에 새똥 냄새 비스무리한 게 뒤섞인 냄새도 희미하게 풍겼고. 막상 의무실 안은 평소랑 다를 거 없었음.그러니까 비둘기들이 조명등 위에 올라앉아서 구구거리고 있고, 의무실 한 켠에는 흰 가운이라던지 셔츠라던지가 가지런하게 걸려있고, 안에는
…졸립지? 아니. 그럼 걍 여기저 쳐자다 감기나 걸려라. … …졸립지? 벌서 다앗번재다, 르거. 닥쳐, 맥주통… 아니다. 쭉 짜면 맥주 대신 잘 익은 사과주 한 통은 나오겠구만. 솔직하게 말해. 졸려, 안 졸려? 닌 안 치햇냐. 드가 안댜냐. 내가 마실 술을 그 쪽이 다 쳐마셨잖아, 네미랄. 댁이 남긴 거 갖고는 간에 기별도 안 가. 욧 안 섯거는 말더 몬
이놈의 술. 빌어먹을 사과주. 데모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음. 숙취가 아니고 다른 이유 때문에. 저번에 이어서, 메딕은 사과주가 가득 든 컵을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단숨에 원샷했음. 원샷하고 나서 눈을 조금 깜빡였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괜찮네, 더 따라봐. 하고 또 잔을 내밀었음. 허세부리지 마, 의사양반. 보릿물이나 홀짝
데모는 TV 켜놓고 소파에서 뒹굴뒹굴 술마시면서 보다가 곯아떨어져 있었음. 그러다 해가 지면서 기온이 내려가니까, 추워질 거 아냐? 술병 껴안고 드르렁 드르렁 자다가 으슬으슬해져서 눈을 뜸. 대낮부터 신나게 병나발을 불어댔으니 당연히 천하의 술고래라도 쩔어주는 숙취를 느낌. 손가락 하나 까딱할 만한 기분이 아니겠지… 일단 드러누운 상태로 더듬더듬 리모콘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의 일임. 제일 먼저 사소한 변화를 알아챈 건 팀 내부의 거의 모든 일을 꿰고 있던 스파이도 아니고, 팀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엔지나 헤비도 아니고, 전부터 그저 막연한 기분으로 메딕을 신경쓰고 있었던 데모였음. 헤비와 같이 다니게 되면서 메딕은 예전보다 더 자주 웃게 되었던 것 같음. 만난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단언할 수는
나중에 이것저것 고쳐야지 일단 알콜 중독자랑 으사양반이라 case 그리고 뭐 if 스토리 같은 거니까 case by case 소제목은 다 영화나 소설 제목 패러디고 몇 개는 그냥 그대로 가져다 쓰고 스파이 파트만 연극인 이유는 마무리 부분이랑 연결지으려고 등장은 오셀롯이요 끝은 템페스트…는 사실 구상 초기부터 마무리는 템페스트로 할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