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 나인은 어린 나이에 재기불능이란 단어를 체화했다. 그 다음엔 무기력이었고, 종착지는 음울이었다. 허비한 시간들이 아쉽진 않았다. 모든 인생이 추모와 부고로 이루어져 있으니 보다 일찍 체득한 것이라고 보면 되는 일이었다. 보다 일찍 납득하면 되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면 됐다. 그러나 모든 삶이 비루해야 하는 법은 아니기에 그는 어느 날 자리에서 일어나 자
나는 당신을 사랑했는가? 글쎄. 나는 당신을 애정했는가? 어쩌면. 우리의 관계는 보다 발전하여, 우리는 서로를 붙들고 염원하고 애틋하다고 부를 수 있게 됐을 지도 모르는가?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럴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미정으로 끝나고, 모든 문장들이 가정의 한 끝에서 바스락대는 소리를 내며 사그라든다. 우리와 당신들은 다르다. 우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튀는 얼음 파편, 낯에 서늘하게 들이닥치는 공기, 직선과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곧은 춤선. 아이스링크장 위에서의 속도는 곧 다치지 않음과 비례하고, 느림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고수의 행위거나 초짜의 서투른 걸음으로 해석된다. 늘 얼음 위를 바라보던 루시아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낸 것은 한 사람 뿐이었다고. 그 사람을 따라
에이브 나인은 과연 문테라 헤즈윅을 사랑할 수 있을까? 기존의 문테라 헤즈윅은 죽었다. 더는 따뜻한 살갗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더는 보드라운 살결에 뺨을 치대지 못할 것이다. 남은 것은 오롯이, 실리콘 덩어리와, 구동음 뿐. 에이브 나인은 악몽 속에서 일어난다. 코핀 속에서 눈을 뜬다. 제 하프문을 봄과 동시에 죽음을 직감한다. 저 너머에서 아무렇지도
에이브 나인은 월면 지구에 정착한 지 얼마 안 지나 제법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원더러 호의 탑승자이자 생존자였던 것뿐만 아니라 개인 연구소를 차려 ‘기체권 향상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말이다. 운동권에 가깝지 않나? 라고 누군가는 속닥거렸으나… 뭐 어떤가. 어떤 분야로든 천재는 활약하는 법. 그의 이름과 명성은 남다른 것이 됐다. 그러는 와중 가장 시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