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휴식처
몇 달 전에 쓰다 만 걸 발견했는데 언젠가는 단편으로 완성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폴더에서 소년 도련님 x 거구의 호위기사 가 계속 나와서 웃음
이름 모를 옛 왕성에서 주울 수 있는 황금열쇠를 사용하면 오래된 침실로 들어갈 수 있다. 이 호화로운 침실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제는 알 수 없으나 어렴풋한 추측은 가능하다. 이곳만큼은 몬스터가 침입하지 않는다. 분명 왕족의 침실이었으리라.
그러니 가녀리고 아름다운 귀족 도련님을 모실 구색만큼은 갖췄을 것이다. 거구의 호위기사는 도련님을 섬세한 도자기처럼 안아들어 침대에 앉혔다. 주위를 경계하고, 덮을만한 모포를 찾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본래 가져온 모포는 전투 중에 찢어져 쓸 수 없게 되었으니.
호위기사는 침대와 이불을 점검하며 말했다.
"천 년은 지났을 텐데 어제도 썼던 것처럼 새것 같네요. 쓰셔도 되겠습니다."
"으응…."
도련님이 슬쩍 기사와 거리를 벌리며 이불을 어깨에 둘렀다. 기사는 부지런히 야영 준비를 했는데, 이 던전 자체가 당장 지금도 쓸 수 있을 만한 왕성인지라 그다지 준비할만한 건 없었다. 기사는 그저 보존식만 꺼내 도련님에게 건넸을 뿐이다.
"드실만한 걸 구하지 못 해 송구스럽습니다. 아시다시피, 던전에서 나는 모든 음식은 먹을 수 없는지라…."
"그… 경 거는?"
"저는 먹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아니야…. 싸우는 사람이 많이 먹어야지."
도련님이 슬쩍 보존식을 기사 쪽으로 밀었다. 기사는 보존식을 받지 않고, 심지어 앉지도 않고, 그냥 침대맡에 선 채로 도련님을 쳐다봤다. 도련님의 시선은 아까부터 땅바닥에 고정된 채였다.
"도련님은 몬스터에게 공격당하셨습니다. 당장 상처가 없는 것 같아도, 정기를 빨렸을테니 드셔야-"
"컥, 콜록, 콜록."
"괜찮으십니까?"
기사가 후다닥 달려가 도련님을 살폈다. 도련님은 재빨리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사의 반대쪽으로 몸을 물렸다.
"오지 마!"
기사의 몸이 움찔 멈췄다. 그러나 곧 기사는 침착하게 말했다.
"혹시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면-"
"아니야, 멀쩡해! 보존식은 경이 먹어. 난 괜찮으니까."
도련님은 이불 채로 거북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기사 또한 완강하게 버텼다.
"도련님이 드셔야 합니다."
"저, 정기 안 빨렸어."
"빨리셨습니다."
"아니야. 버텼어."
"버티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버텼다니까!"
이불 사이에서 도련님의 붉은 얼굴이 쏙 튀어나왔다.
"나는! 경의 모습을 한 서큐버스 상대로 버텼어!"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기사의 무표정이는 미동조차 없는 한편 반대로 도련님의 얼굴은 점차로 터질 것처럼 붉어지며 울상이 되었다. 도련님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누군가가 본다면 기사가 도련님을 울린 게 아닌가 의심했으리라.
침묵을 버티지 못하고 도련님이 무어라 구차한 변명을 이어가려는 때에, 기사가 입을 열었다.
"좋으셨습니까?"
"아악!"
도련님이 재빠르게 이불 속에 숨었다. 기사가 끈질기게 권유했다.
"거의 못 버티고 계셨습니다. 정기는 확실히 빨리셨지요?"
"몰라!"
"뭐라도 드셔서 체력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도련님께서는 육신을 온존하셔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내가 지금 먹을 게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어!? 경은 지금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있어!"
기어이 이불 속에서 억눌린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사는 과묵하게 기다렸다. 곧 기사의 예상대로 됐다. 도련님은 어떻게든 품위를 지켜보려 아등바등대며, 이불 속에서 눈만 빼꼼 내민 채 울며 사과했다.
"흐윽… 경…. 미안해…. 정신적인 괴롭힘을 당한 것은 경일 터인데…."
"도련님."
기사가 침착하게 무장을 풀었다.
"정 힘드시다면, 제가 돕겠습니다."
"경은 항상 나를 돕고 있었어."
"그런 뜻이 아닙니다. 도련님께서는 저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기사가 스윽 도련님 쪽으로 몸을 붙이며, 갑주를 완전히 내려놓았다. 셔츠와 바지만 남자 도련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사는 도련님의 속눈썹을 잠시 감상하고 셔츠의 단추를 하나 끌렀다.
"그 이유는 도련님께서 아직 귀족의 마음가짐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귀족은 아랫것들의 몸을 언제든 원할 때 취할 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겠습니다."
"겨, 경."
"만져보시겠습니까?"
기사가 셔츠 사이로 가슴골을 드러내자, 도련님이 이불 속에서 뛰쳐나와 기사의 품에 안기-
-려는 순간, 누군가가 기사의 뒤통수를 검집으로 후려팼다.
기사는 타격을 받는 순간 기민하게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어느새 사악한 악마의 뿔이 자라난 도련님이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사악해진 버전의 도련님은 고혹적인 매력이 있었다. 기사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안겼다.
그리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름다운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사라져라!"
도련님이 손바닥을 내밀고 백마법을 발사했다. 도련님의 모습을 한 서큐버스는 캬아악 하는 짐승의 소리를 내며, 잿더미처럼 변해 사라졌다. 동시에 기사의 눈에 깨끗하게만 보였던 침실 풍경이 천 년 묵은 마굴의 그것으로 변했다.
서큐버스는 죽은 것이 아니다. 도망친거다. 그러니 도련님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신속히 기사의 등짝을 발로 찼다.
"경,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어?"
기사 또한 전시상황임을 인지하고 훈련된 손길로 신속히 검을 빼들며 주변을 날카롭게 경계했다.
"아직 몬스터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나는 지금 해야겠는데?"
"적진 한가운데서 아군끼리 싸울 순 없습니다."
"불화의 원인은 경이 먼저 제공했다고 생각한다만. 나는 귀족이니 아랫것들을 언제든 원할 때 갈궈댈 수 있지 않아?"
도련님은 아껴두었던 일회성 아티팩트를 꺼내 공중에 던졌다. 아티팩트가 주변을 정화하며 퍼져나갔다. 침실에 가득했던 사특한 기운도 물러났다. 그 외에도 도련님은 몇 가지 추가적인 마법적 조치를 하여 일시적인 안전지대를 만들었다.
그 모습을 기사가 무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되어서야 한 마디 했다.
"아티팩트는 아끼셔야 합니다."
"나는 귀족이니까 내 아티팩트 정도는 언제든 원할 때 쓸 수 있어."
도련님이 낡아빠진 의자 하나를 발로 퍽 밀어 건넸다.
"앉아."
기사가 의자에 앉았다. 도련님은 그 앞에 섰다.
도련님이 물었다.
"그 울보는 누구냐?"
기사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주변 사람으로 위장하는 사악한 몬스터입니다. 도련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까부터 말 돌리려 하는데 제대로 설명해."
도련님은 사태의 시작점을 짚었다.
"경의 모습을 한 서큐버스를 보고 성욕을 참지 못 해 달려들었다가 경에게 구출당해 창피해서 우는 나의 모습을 한 서큐버스는 뭐였지?"
"설명하신 그대로입니다. 명민하시군요."
"말 돌리지 말라고 했어."
도련님은 기사가 앉은 의자의 팔걸이를 척 짚고, 다른 손으로 기사의 가슴팍을 찔렀다. 도련님의 눈가가 마구 경련하고 있었다.
"경, 그런 환상이 있었어?"
기사가 우직하게 대답했다.
"모두 몬스터의 술수입니다.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네가 원인인 게 아니고?"
"아닙니다."
"경, 언제나 뻔뻔하기 짝이 없……어."
도련님은 말을 하다말고 표정을 굳혔다. 기사의 가슴팍을 찌르던 손가락에 무언가 걸렸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작은 위화감이, 어쩐지 지금은 몹시도 불길하게 느껴졌다. 도련님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기사의 가슴을 더듬었다.
기사가 급히 숨을 들이마시며 어깨를 움찔 떨었다.
"도련님? 무슨-"
"가만히 있어봐."
도련님은 배신당한 얼굴을 하고 갑자기 기사의 셔츠 단추를 빠르게 끄르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의복을 입고 벗지 않는 귀족일지언데 이번만큼은 단추를 푸는 솜씨가 좋았다. 긴급한 상황에서 본인도 몰랐던 정교한 손재주가 발휘된 것이다.
기사는 차마 모시는 주군을 밀치지 못하고, 팔걸이만 잡은 채 몸을 등받이에 바싹 붙였다.
"저는 이런 일은 생각해 본 적이-"
도련님이 기사의 셔츠를 확 열어젖혔다.
"……."
그리고 말을 잃었다.
당황했던 기사도 급격히 침착한 무표정을 되찾았다.
기사가 브래지어를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유두가 반쯤 비치는 천박한 디자인으로….
"…이게 뭔, 무엇…. 설명해."
"던전에 서큐버스가 나온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대비해 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대비가 되지?"
"도련님께선 아직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수준의 전투 교법입니다. 만일 도련님께서 검의 길을 오르신다면 언젠가 이것도 이해하실 수 있겠죠."
"…."
도련님은 기사의 뻔뻔한 얼굴을 한 번 스윽 훑어봤다가, 갑자기 그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렸다. 기사는 버틸 수 있었으나 끌려갔다. 그는 언제까지나 충직한 호위기사이기 때문이다. 도련님은 기사를 낡은 침대에 패대기치더니, 허겁지겁 그의 바지를 벗겼다.
"제발 아니라고 해줘."
하지만 맞았다. 끈팬티가 나타났다.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팬티의 중심을 보자니 도련님은 현기증이 올라와 미간을 잡았다. 그동안 기사는 침착하게 옷 매무새를 갈무리했다. 언제나처럼 침착하고 무표정했다. 도련님은 그걸 보고 갑자기 속에서 울화통이 밀려와 버럭 소리쳤다.
"뭘 뻔뻔하게 도로 입어! 당장 그 파렴치한 속옷 갖다 버려!"
기사가 단추를 잠그다 말고 당황했다.
"도련님, 저 또한 기사입니다. 기사가 속옷을 안 입을 순 없습니다."
"그딴 걸 입을 수는 있고!?"
"안 입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도련님의 기사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게 해주십시오."
"차라리 벗는 게 더 품위있을거라 생각하진 않아, 경?"
"……."
기사는 뭐라 반박하려다, 침울하게 도로 셔츠 단추를 풀었다. 굉장히 우울하고 아쉬워 보였다. 그 꼴을 보고 멀쩡히 있기란 힘든 법이다. 도련님은 낡은 침대에 털썩 앉아 이마를 짚었다. 아까 봤던 연약하고 울보인 자기 자신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그, 도련님."
드물게도 기사의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들려 도련님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숨을 멈췄다.
끈으로 된 속옷만 입은 근육질의 아름다운 남체가 서있었다. 기사는 매혹적으로 파인 장골을 가로지르는 끈팬티의 끈에 손가락을 건 채로 우물쭈물대며 볼을 붉혔다.
"속옷이 없다면 전투에도 지장이 생깁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
"저는 차마 제 손으로 전투에 지장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니…."
기사가 스윽 침대 위로 올라오더니 네 발로 기어 도련님의 위로 올라탔다. 거구의 남자가 작은 소년 위를 제압하니 도련님으로서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기사는 어딘지 몽롱한듯한, 그러나 그를 유혹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도련님의 고간에 앉은 채 스윽 다리를 벌렸다.
"도련님께서 벗겨주십시오."
"헉, 난…."
도련님의 떨리는 손이 기사의 다리 사이로 가려는 때에-
기사의 가슴팍에서 칼날이 불쑥 솟아올랐다. 사악한 악마의 뿔이 돋아난 기사가 비명을 지르며 재로 변해 사라졌다. 그 너머에는 갑옷을 제대로 입은 기사가 태연자악하게 검을 거두고 있었다.
서큐버스는 여전히 죽지 않았고 도망쳤을 뿐이다. 기사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도련님은 입을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
"언제, 언제, 언제부터. 언제부터."
"정확히는 도련님께서 저를 의자에 앉혔을 때부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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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족제비
뭐야. 더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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