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함께

가자, 선생님이 반겨주실 거야.

하늘의 색이 아수라 백작처럼 두 색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는 밤의 어두운 색. 하나는 아침의 밝은 색. 아니, 사실은 세 가지인 듯 했다. 가운데에서 둘을 이어주는 황혼의 색까지 합쳐서 말이지. 이제 곧 있으면 제 생의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에도의 여명이 떠오를 시간이었다. 저 멀리 산봉우리의 뒤편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빛이 이렇게나 반가울 줄이야.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끝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퍽 좋은 기분이었다.

"그게 네가 선택한 마지막이냐, 긴토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지 오래된 이 터미널의 옥상에서 여명이 떠오를 자리를 바라보고 있던 사카타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을 때가 다 되어가니 이제 환청까지 들리는 것일까. 헛웃음을 지어 보이자 조그맣고 딱딱한 무언가가 뒤통수를 강타했다. 아프잖아! 얼얼한 느낌에 머리를 감싸며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두 눈동자 담긴 그 모습에 긴토키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보지 못할 것을 보았다는 듯이.

"…타카스기?"

그럼 이 목소리를 누구로 착각한 거냐. 내가 아니고서야 누구겠어, 빈정거리는 타카스기에도 사카타는 잠시 놀란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빽빽거리며 소리를 질렀을 것을. 타카스기가 혀를 차며 사카타의 뒤통수를 때렸던 곰방대를 소매 안쪽으로 넣었다. 뭐 하러 온 거야. 글쎄. 왜 온 것 같은데? 사카타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저 멀리 있는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정말 왜 여기 있는 건데. 사카타가 중얼거렸다.

"만족하나."

"무엇을."

긴토키. 아, 네 목소리로 내 이름 듣는 거 오랜만이다. 그치. 자연스럽게 말을 돌려버린 사카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묻고 있는 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자신이었기에. 타카스기는 사카타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카타가 그를 보는 일은 없었다, 오로지 산 너머의 떠오르는 빛만을 눈동자에 담고 있을 뿐이었다. 침묵이 그들을 감쌌다. 타카스기가 그것을 내치기 전, 사카타의 입술이 먼저 떨어졌다.

"고마워."

타카스기는 그 말이 이 상황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내게 고마워할 일이 무엇이 있느냐고. 그러나 사카타는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이어 말했다. 처음이야. 2년 만에. 사카타는 잠깐 동안 말을 멈추었다. 타카스기는 굳이 그것을 재촉하지 않았다. 나를 내 이름으로 불러 준 사람. 사카타는 말갛게 웃으며 말했다. 타카스기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왜 그렇게 웃는 거야. 타카스기는 그 말을 감히 입 밖으로 내뱉을 자신이 없었다. 사카타가 지난 2년간의 그토록 바라왔던, 그 염원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므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타카스기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너는 마지막으로 남길 말 뭐 없냐."

"마지막이라 할 것도 없지 않나."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잖아. 아직 내 귀병대가 남아있다. 얼씨구, 그럼 나에게는 아직 내 해결사가 남아있거든. 요 녀석아. 두 사람 모두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마지막이라는 것치고는 무척이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사카타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의 대화를 나눌 동안에 어느새 태양은 절반이나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타카스기. 응. 이제 진짜 끝인 거야. 그래.

"즈라는 괜찮을까?"

"타츠마도 있다. 괜찮을 거야."

그러게. 둘 다 워낙 곧아서 말이지.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침묵만을 유지하는 시간에 어느새 태양은 절반의 절반만큼 더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수줍던 해님은 어디 가고 점점 과감해지네. 사카타가 중얼거렸다. 태양 빛이 그들을 감싸오기 시작했다. 먼저 침묵을 깨트린 것은 타카스기였다. 긴토키.

"잡아라."

"네가 손 내밀어 주는 거 전쟁 이후로 처음인 거 알고 있지?"

아아, 그래. 그제서야 사카타의 두 눈동자에 타카스기가 담겼다. 내가 이렇게 가도 괜찮은 걸까. 그래.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마중 나온 거니까. 사카타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내 반달처럼 곱게 휘어지는 눈동자에 타카스기 또한 미소로 답했다.

"돌아가자."

"응."

선생님이 어서 오래. 빨리 안 오면 당고 전부 먹어버리신다고. 그래 가자. 사카타는 타카스기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어린 날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어느새 찬란하게 빛나는 여명이 에도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터미널 위에는 태양 빛이 반사된 석장 하나만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20.09.11 작성 24.11.03 퇴고없이 백업

카테고리
#2차창작
커플링
#타카긴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