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

깜짝 주의보

수학교사 사카모토×국어교사 구미긴파치

햇살 좋고, 구름 좋고, 바람 좋다.

이런 날은 소풍을 가기에 딱 좋은 날씨인데. 종례 전까지 학교에서 썩어야 한다니. 쯧. 사카타는 짧게 혀를 차며 완벽한 삼박자에 박수를 보내고 가운 안쪽 주머니에 고이 모셔둔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고작해야 서너 개비 밖에 들어있지 않은 탓에 시간이 나는 대로 근처 편의점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아폴로 초코도 보충해야 하는데 겸사겸사 잘됐네.

담배를 쥐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난간에 팔 한쪽을 걸치고 연기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곧이어 입속을 헤집어놓는 듯한 씁쓸한 감각을 뱉어내며 담배연기가 공중에서 흩어지는 모습을 구경하며 눈을 끔뻑였다. 아, 저 구름 파르페 닮았다. 한동안 지나가는 구름을 나름대로 관찰했다. 자세히 보니 파르페 구름뿐만 아니라 당고 모양 구름이라든지, 딸기 우유 모양도 보이는 듯했다. 어라, 저건 물뱀 자식의 곰방대를 닮았다.

흘러가는 구름과 함께 넋을 놓다가 아래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커다란 다이아몬드 모양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야구라고 했던가. 저번에는 축구가 대세라더니, 요즘 애들은 참 빨리도 질려하는 듯 했다. 그에 맞춰서 체육 수업 또한 바뀐 것 같았다. 저것도 시험이 다 끝났기에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거겠지. 좋을 때다. 즐겨라 즐겨.

따뜻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왔다. 점점 나른해지는 감각에 눈이 슬슬 감겨 왔다. 소풍 가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낮잠 자기에도 딱 좋은 날씨네. 베게 하나만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지만 양호실 베개를 가져올 경우, 눈을 뒤집고 핀셋을 쿠나이처럼 던지기를 잘하는 양호 선생을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도록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음. 그냥 눕자.

그래 그냥 눕자. 그까짓 베개가 뭐라고. 베게 하나 때문에 양호 선생에게 종일 쫓기는 건 사양이다.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은 옥상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딱딱한 것은 역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날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바닥에서부터 제법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다.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드네.

딱딱한 게 뭐가 있더라. 그래, 돌침대라고 생각을 하자. 따뜻한 돌침대에 몸을 뉘었다고 생각을 하니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어라. 아직 자면 안 되는데. 눈 깜빡임이 느릿해졌다. 운동장으로부터 들려오는 학생들의 응원 소리와 환호 소리는 귀에 물이 먹은 것처럼 먹먹하게 들려왔다. 때마침 커다란 구름이 태양을 가렸다. 온갖 소리를 자장가 삼아, 커튼의 막이 내려가듯이 천천히 눈꺼풀을 감았다.

쨍그랑!

악! 외마디의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뭐야, 뭐지? 유리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렸다. 가슴에 양손을 모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소리를 찾아 귀를 쫑긋거렸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듣자 하니 야구 경기를 하던 중에 홈런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방향이 잘못 가는 바람에 교실의 창문이 깨진 것이라고. 마침 빈 교실이어서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어이! 여기 연약한 글라스 하트에 스크래치 난 사람은 제외하는 거냐!

내심 큰일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었지. 안도의 숨을 뱉으며 비명을 지를 때 탈출했던 담배꽁초를 구두코로 문질러 꺼뜨렸다. 어휴,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푹신한 바닥에 앉으며 복슬복슬한 털 뭉치에 얼굴을 비볐다. 엄청 부드럽네. 온몸을 푹신푹신하게 받치는 것이 침대와 같은 기분이었다. 아까는 돌침대였는데.

어라. 그러게, 돌침대였는데. 이 푹신푹신한 감촉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거지. 이리저리 만져보니 마치 복슬복슬한 고양이 털을 만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더 익숙한 느낌인데 어디서 느껴봤더라. 불길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 무슨 귀로 들은 거야? 뭔가 쫑긋하는 느낌이지 않았어? 엉덩이 부분이 좀 무거워진 것 같은데? 뭔가 '푱'하는 느낌으로 숨겨왔던 수줍은 나의 비밀이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엉덩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푹신한 털 뭉치가 손에 잡혔다. 한 아홉 뭉치 정도.

으아아악,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작 창문 깨지는 소리에 놀라서 튀어나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요 몇 년간 단 한 번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 왔는데 공들여 쌓은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주위에 본 사람이 없기에 다행이었다.

"……."

"아하핫."

"아."

"아하하하! 킨파치 선생, 학교는 금연 구역이라네!"

다행은 무슨, 공든 탑이 무너지다 못해 기반까지 산산조각 나버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왜 하필 걸려도 저 녀석이야. 말 돌리지 마, 말 돌리지 마! 굳이 그렇게 애써서 말 돌리지 말고 그냥 뭐냐고 물어봐 줘! 그 편이 더 낫다고! 눈 돌리지 마! 딴청 피우지 마, 휘파람 불지 마! 그냥 물어보라고!

"…그러고 보니 이번 학교 축제 테마가 요괴라고 들었는데."

"그으래…?"

"벌써부터 축제 준비를 하는 건감!"

이게 무슨 일이래. 아무래도 사카모토 선생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면 어떠랴, 제 입장에서는 다행인 부분이었다. 자네는 무슨 요괴를 하나 싶더니, 꼬리가 아홉이구먼. 구미호인가? 정말로 실감 나는 분장이구먼! 저를 그냥 학교 축제가 너무 기대되는 나머지 벌써부터 요괴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신난 국어 선생 1로 보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게 더 별로인데. 차라리 의심이 나을 거 같아.

"그럼 나는 먼저 내려가 보겠네."

"어? 그래? 담배 피우러 온 거 아니었어?"

"아하하하하! 바로 아래 교실에 유리창이 깨진 것 때문에 와 본 거니까 신경 쓰지 말게남."

별일 아니네. 내려올 때 냄새는 확실히 빼고 오는 거 잊지 말고. 사카모토는 그 말을 끝으로 옥상을 내려갔다. 보통 유리가 깨지면 위층을 올라와 보는 건가 싶었지만, 구미호 코스프레의 국어 선생 1은 제 귀와 꼬리를 숨기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기에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잘 지나간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를 옥상 문틈으로 보고 있던 사카모토는 조용히 옥상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갔다.

"어이, 타츠마."

"오, 타카스기 아닌감?"

"긴토키는?"

"…글쎄. 나는 잘 모르겠구먼."

알다시피 우리 학교에 '긴토키'라는 존재는 없다네, 타카스기 군. 사카모토는 복도 한쪽에 기대어 저를 기다리고 있던 학생에게 미소를 지어주고는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갔다. 타카스기라 불린 학생은 멀어져 가는 사카모토의 뒷모습을 잠시 흘겨보고는 혀를 차더니 옥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우선 저 멍청이에게 한 마디를 해줘야겠어.

20.09.11 작성 24.11.06 퇴고없이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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