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친캐로 2차연성 말아먹기

정호정아 베란다

공백미포함 1357자

백업용 by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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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어느덧 지평선과 맞닿고, 그 여파로 세상이 주홍빛으로 물든 시각. 소년은 홀로 베란다에 서서 그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는 복잡한 머릿속을 잠시나마 붉게 가려주었다. 자신은 붉은 것과 거리가 멀지만 노을의 빛은 그런 자신에게도 약간의 주황빛을 베풀어준다. 곧 해가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면 하늘의 별빛이 나타나 제 존재를 한껏 뽐내려곤 한다. 허나 그 존재가 커다란 보름달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볼품없어 그들의 노력은 한 줌의 잿더미가 되기 일쑤다. 정아는 달이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빛을 내는 것도 아닌 태양의 빛을 빌려 쓰는 주제에 그것을 자신의 빛인 양 굴며 한껏 뽐내는 것이 너무나도 자만적이다. 그는 달을 제쳐두고 다시 깜깜한 밤하늘을 바라본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달에 가려졌던 눈꼽만한 빛의 점들이 떠오른다. 하나는 열이 되고, 열은 스물이 되고, 스물은 서른이 되고...

"정아야."

서늘하지만서도 따뜻하게 제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에 멍하니 있던 그는 고개를 돌렸다. 계속 거기서 서 있길래, 걱정되서.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제게 다가오는 형을 보며 저도 따라 눈꼬리를 휘었다. 뭐 하고 있었어? 그냥.. 별 보고 있었지. 평소와 다름없이 애정이 잔뜩 묻은 채로 대화는 오간다. 밥은 먹었는지, 밖에선 무얼 보았고 어느 곳을 다녔는지 흔하기 짝이 없는 대화였지만 정아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제 형과 하는 대화는 무엇이든 간에 즐겁고 기뻤으며 행복했다. 같이 있으면 이유 없이 종종 입꼬리가 스스로 올라갔다.

"형아."

"응?"

"나 아무래도 형을 진짜 좋아하는 것 같아."

그 말에 상대의 눈썹이 약간 움찔했다. 형은 곧 아무렇지 않게 나도 정아가 좋아. 하며 자연스럽게 깍지를 꼈다. 언젠가부터 대화 도중 손깍지를 잡는 행위는 그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하나의 규칙이 되었다. 걸어오는 쪽은 항상 형이었다. 아우는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함부로 다가가면 내쳐질까 봐, 그게 두려웠다. 그래서 그저 다가오며 맞잡아줄 손을 기다릴 뿐이었다. 형아 손 따뜻해. 하도 오래 밖에 있던 터라 이미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동생의 손은 무엇을 잡던 따뜻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형은 그렇지? 내가 손이 좀 따뜻해. 라며 기세등등하게 입을 열었다. 진짜? 그럼 앞으로 추울 때마다 형 손 잡아도 돼? 목적을 달성한 형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움을 극복할 계기를 얻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동생은 배시시 웃으며 잡힌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그렇게 잠깐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형은 동생이 추위에 몸을 떨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잠시 손깍지의 유흥을 즐기느라 눈치채질 못했다.

"정아야, 춥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

"형 먼저 들어가 있어. 난 별 더 보다가 들어갈게."

"하지만.."

도통 들어갈 낌새가 보이질 않자, 그는 한숨을 뱉으며 방에 들어갔다. 옆이 허전해진 동생이 다시 생각에 잠길 찰나, 베란다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코트가 온 몸을 감쌌다. 그러다 감기 걸려. 그 몸을 감싼 코트는 형의 것이었다. 검은색의 상의가 기다란 코트. 정아는 코트가 왜인지 번들거린다며 이유를 묻자, 그는 새것이라며 아직 한 번도 안 입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고집 때문에 새 코트를 처음으로 입는 영광을 형에게서 앗아갔다고 생각한 동생은 사과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알아챈 형은 얼른 볼에 굿나잇 키스를 한 뒤 금방 들어오라며 방에 들어갔다. 

동생의 얼굴은 노을의 주황빛을 받지 않았음에도 서서히 붉어져만 갔다. 별들은 그 모습에 수줍게 웃기라도 하는 듯 깜빡깜빡거린다. 재수 없는 달은 그 광경을 비웃듯 더 환히 빛난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별도, 달도, 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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