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실패했답니다
10회차, HBD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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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수 없다는 말을 써서는 안 돼!
그건 시의 불문율을 깨는 짓이다
너무 우울해서 죄송하다고 하면 안 돼!
그건 우리 사이 장벽을 깨는 짓이다
장벽은 너무 얇고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너는 도망가지
죄송하다고 하면 안 돼!
그렇다면 죄송할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시인들은 언제나 늘 죄를 짓고 있고
태어나서 미안하다고 해서는 안 돼!
그건 수동 공격이잖니 얘야, 다정하게 어르는 어른이 꼴 보기 싫으니까
저는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라고 말하기에는
이 세계에 더 이상 선생님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고
사람으로 마땅하게 태어난 이상 다들 나만의 선생님 나만의 짝꿍 나만의 연인 나만의 뮤즈 나만의 은사님 한 명씩은 꼭 가지고 싶어 하는데
사실 나에게는 선생님도 짝꿍도 연인도 뮤즈도 은사님도 없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
그러니까 더 살아서는 안 돼,
라고 쓰기 시작하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죽고 싶어지고
시라는 것은 죽음으로 빼곡하게 달려가고 있는 인간들의 사치품 같은 것이어서
쓰지 않고 읽지 않는 생이야말로 성공한 생이라 할 수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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