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09:20/PM 09:20

AM 09:20

저 남자는 여태까지 살면서 몇 조각의 케이크를 먹었을까?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와 같은 커피를 주문하고,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자세로 책을 읽는 저 남자에게 케이크를 주면 어떤 반응을 할지 카베는 문득 궁금해졌다.

하루하루 드나들며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단골손님이란 가게 오너의 입장에서 고마운 존재라고 할 수 있지만, 이곳은 디저트 가게이다. 정성스레 만들어 보기 좋게 줄 세워놓은 쇼케이스의 아름다운 케이크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항상 커피만을 주문하는 남자를 볼 때마다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문의 종소리가 맑게 울리고 어두운 옷차림의 키 큰 남자가 안으로 들어서고, 살짝 고개를 틀어 ‘평소와 같은 것으로’라고 말하듯 까딱 시선만을 움직였다 다시 앞을 바라보고.

‘오늘은 혹시’라며 품었던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축 처지는 어깨를 들키기 싫어서, 재빨리 테이블석으로부터 등을 돌려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남자를 살펴보면 하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콤함과 평생 인연이 없어 보이기는 했다. 차가운 시선이 이쪽을 향할 때는 주문이 필요할 때뿐. 그나마 가게에 드나든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에는 말을 걸어 주문했는데, 지금은 가게에 들어서서 매일 앉는 지정석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시선만으로 힐끗 쳐다보는 게 끝이다.

상당히 무례한 손님으로 취급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하지만 그는 매일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없이 커피만 마시고 얌전히 돌아갔기에, 어찌 보면 편한 손님이기도 했다.

외모에서 풍겨 오는 딱딱한 분위기 그대로, 그는 변화를 어지간히도 싫어하는 듯 보였다. 그는 손님이 거의 없어 자리 대부분이 비어 있는 시간에 찾아왔는데, 항상 앉는 자리를 어쩌다 한 번씩 다른 손님이 차지하면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갔다.

물론, 커피를 내줄 때까지 카운터 앞에 떡 버티고 서서 기다리는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커피를 내리는 등 뒤로 꽂히는 시선이 무거워 죽는 줄 알았다. 적당히 빈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면 서로 편할 텐데, 재촉하는 건지 마음에 드는 자리를 빼앗겨 심기가 불편한지 남자는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커피를 건네며 “오래 기다리셨죠?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말을 걸어보았지만 그는 목례만 하고 쌩하니 나가버렸다.

문에 달아놓은 방울에서 딸랑, 울리는 소리마저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 무뚝뚝한 손님을 배웅한 자리에서 카베는 한숨을 내쉬었다. 뒤에서 꽂히던 무거운 시선에 지친 나머지 ‘커피 나왔습니다’의 ‘다’ 뒷부분이 늘어져 버린 데 대한 자괴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싹싹한 태도는 접객의 기본 중 기본인데, 조금 무뚝뚝한 손님을 대한다고 이렇게 주눅이 들다니. 카베는 감수성 풍부한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내면에 작은 동요가 일어날 때마다 표정과 행동에 곧바로 드러난다는 것도. 흐려진 말끝을 상대방이 의식하고 ‘날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아닌가’, ‘그만 오라는 뜻인가’ 하며 오해하면 어떡하지.

아니, ‘조금’ 무뚝뚝한 게 아니었다. 아예 남과 말도 섞기 싫다는 태도였으니 어쩌면 흐려진 말끝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안 쓸지도 모른다.

단골손님을 배웅하던 자신의 언동, 그리고 그 손님이 평소 보여주던 태도를 곰곰이 분석한 끝에 ‘그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도 변함없이 가게를 찾는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한시름 덜었다.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눈 적 없는 손님 한 명이 왜 이렇게 마음속에 걸리는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그가 가게에 계속 와주었으면 했다.

그가 와 있는 동안 가게 한편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 가는 모습을 이따금 바라보는 일은 일상처럼 굳어져버렸다. 누구에게든 징크스가 있다. 사소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오늘 하루도 무사히 흘러갈 것 같은, 근거 따위는 없지만 기대고 싶은 구석 말이다. 그 손님은 카베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워낙 말이 없으니 토템 취급을 해도 될 것 같았다.

본인이 알면 떨떠름해할지도 모르지만 말 안 하면 될 일이다.

‘자리를 빼앗겼다고 커피를 안 마시진 않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두커니 앉아 책을 읽는 그 남자의 모습에 그새 익숙해져 허전함이 느껴졌기에, 카베는 이후 그의 지정석에다 ‘예약석’ 표시까지 올려두었다.

다음 날에 온 그 남자 손님은 여느 때처럼 카베를 힐끗 쳐다보는 것으로 주문을 마치고 지정석인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당연하다는 듯 예약석이라고 써진 표지판을 치우고 그곳에 앉았다.

……한 마디라도 의문을 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카베로서는 어이가 없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앉고 싶은데요, 예약은 몇 시입니까?’ 혹은 ‘이거 치워도 될까요?’ 하고 말을 거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일 텐데.

당연하다는 듯 예약석 표시를 치우고 자기 자리에 앉는 남자를 보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황당함과  ──예상대로 무사히 제자리를 지키는 ‘토템’의 귀환에 즐거워졌기 때문이다. 어제도 왔지만.

오늘도 저 토템 덕에 장사도 잘될 것 같고, 아마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가 되겠지 싶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결같이 원두 외에 아무것도 안 들어간 커피만 마시는 저 남자에게 살짝 장난을 치고 싶어진 카베는 아주 간단하고도 기발한 묘안을 떠올렸다.

다 내린 커피를 트레이 위에 올려놓은 후 쇼케이스의 문을 연다. 보기 좋게 늘어놓은 케이크를 훑고 구석 쪽 테이블의 남자를 힐끗 쳐다본 후 카베는 밀푀유를 골랐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모양이 남자와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꺼낸 케이크를 트레이에 올리고서 잠시 망설이던 카베가 결심한 듯 한 번 고개를 끄덕인 뒤 그것들을 들고 ‘토템’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간다.

이곳은 카베 혼자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라 주문받은 메뉴를 내놓을 때 손님을 불러 가져가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니 평소처럼 그를 향해 ‘커피 나왔습니다’ 혹은 ‘주문하신 커피입니다’, 아니면 ‘여기요’……처럼 간단한 말을 던지는 것이 보통이다. 즉, 손님이 가지러 와야 한다.

이토록 친절하게, 더군다나 서비스까지 얹어서 직접 가져다주는 이유는 그저 변덕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보통 이런 서비스를 줄 때 다른 손님들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반기지만, 왠지 저 남자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아 불안했다. 만약 메뉴가 준비되었음을 알려주어 카운터에 온 그가 트레이를 확인한다고 가정할 때, 그 즉시 케이크 접시를 집어다 뺄 것 같다는 게 정확한 이유였다. 그야말로 가차 없이.

모처럼의 큰 성의를 그런 식으로 거절당했다간 아침부터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을 테니, 차라리 직접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사근사근하게 말을 걸면 상대하는 척이라도 하겠지 싶은 마음에.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시러 올 뿐인 손님에게 왜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저 지금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 카베에게는 이것이면 충분했다.

“저기…….”

무뚝뚝한 그가 앉은 테이블 앞에 서서 조심조심 말을 건다. 책을 읽던 그가 시선만 움직여 힐끗 확인하더니 책을 든 한쪽 손을 살짝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무언가 말할 것 같다.

“잘못 가져온 것 같은데.”

“네?”

“케이크는 주문한 적 없습니다.”

……보통 이렇게 말하던가?

아니다.

망설임이라고는 요만큼도 느낄 수 없는 말투로 자연스럽게 말하기에 페이스에 휘말릴 뻔했다. 주문도 하지 않은 케이크를 가지고 오너가 직접 자리로 들고 왔다면, 감격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손하게 어쩐 일인지 묻거나 고맙다고 하는 것이 정상이다.

카베는 자신의 한쪽 눈썹이 꿈틀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는 곧바로 ‘안 되지, 안 돼’라며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았다.

“이건 서비스예요.”

“필요 없습니다. 커피면 되니까.”

“아, 진짜 ……. 사람이 모처럼……!”

──아니, 이게 아니지.

이번에는 미소 짓는 입꼬리가 경련했지만, 머릿속으로 이 남자의 입에 케이크를 욱여넣는 그림을 그리며 또 참았다. 실제로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했다가는 정성껏 만든 케이크가 가련하니까. ……물론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성숙한 인간으로서, 이 사회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자에게 자신의 케이크가 얼마나 훌륭한지 깨닫게 해주어야 할 사명이 카베에게는 있었다.

“손님.”

“…….”

부르는 말에 남자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눈동자만 움직여 카베 쪽을 다시 쳐다보기는 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착한 내가 참는다’라고 생각하며 카베는 마음속으로 한 번 더 울컥 치미는 화를 누르고 말을 이으려 했다.

“줄 때 얌전히 드세요.”

“뭐라고요?”

……아차.

실수했다. 이렇게 감정에 휘둘려 말이 튀어나오는 상황을 막기 위해 열심히 참았는데 이 특이한 손님을 상대하다 보니 역부족이었나 보다. 그러게, 평범하게 고맙다, 잘 먹겠다 같은 인사 한마디 던지고 조용히 받아먹으면 되는 일 아닌가. 전부 눈앞의 이 남자 잘못이라며 카베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스렸다. 자신이 던진 말을 수습해야 한다.

“아──아뇨! 제가 설명이 부족했네요. 전 오너인 카베라고 해요. 매일 커피만 드셔서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케이크 가게거든요. 주력이 케이크죠. ……물론 커피도 맛있지만요! 손님은 매일 와주시는 단골이기도 하니 제 작은 성의 표시라고 할까? 음, 그러니까……, 매일 정성 들여 만들고 있거든요. ──드셔주시면 좋겠어요.”

좋아, 제대로 말했다.

남자가 납득할지는 모르겠지만 카베로서는 최대한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한 셈이었다. 이 정도로 말했으니 또 못 알아듣고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소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그래야 한다.

……사람 아니면 어떡하지. 불쌍한 우리 밀푀유는 이대로 버려진 채 쓸쓸하게 접시 위에 그대로 남을 텐데. 내가 도로 가져가서 소중히 먹어줘야겠다. 걱정 마, 아가야. 이 남자가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네가 나의 자랑스러운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긍지 높은 나의 밀푀유여, 너는──.

“그럼 감사히 받죠.”

꼬리에 꼬리를 물던 사고의 끝자락을 꾸욱 누르는 낮은 목소리에 카베는 생각을 멈추었다.

짧게 대답한 남자는 아주 살짝, 미세하게, 올라간 듯 만 듯 입꼬리를 올리며 카베가 든 트레이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를 상대하느라 여태 들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웃는 얼굴은 처음 본다. 그가 웃을 줄도 알았다는 점이 의외라서, 카베는 한동안 멍하니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웃으니까 얼굴이 좀 괜찮네요.”

“시비 걸어요?”

“손님한테 그럴 리가 있나. ……사람들한테 성격 피곤하다는 말 자주 듣지 않아요?”

“그쪽처럼 오지랖 부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아, 그러세요?”

또 실수했다.

왜 이 사람 앞에서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끝내야 할 말이 술술 흘러나오는 걸까. 그저 재수 없기만 했으면 상대도 안 하고 쫓아냈을 텐데, 따박따박 늘어놓는 말이 은근히 정론이라 울컥하는 마음에 받아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돌이켜 보니 여태 말도 제대로 안 해본 상대에게 ‘웃으니까’ 얼굴이 괜찮다느니 피곤한 성격이라느니, 친한 친구 사이라도 된 양 쏟아낸 것 같기도 했다.

새삼스레 무안해진 카베가 가볍게 쥔 오른손을 입가에 대고 목소리를 고르는 척 작게 헛기침을 몇 번인가 했다. 하지만 오지랖이라니. 기껏 케이크까지 들고 와서 성질을 참아가며 애써 건넨 사람에게 할 말인가.

눈앞의 이 남자는 딱딱한 외모만큼이나, 성격 역시 냉장고 속에 한참을 방치한 파운드케이크 같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이렇게 사교성도 없고 남의 호의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줄도 모르며 모난 말을 하는 거겠지. 딱딱해진 파운드케이크를 폭신하게 되돌리려면 수분과 온기와 달콤한 시럽이 필요하다. 수분과 온기는 커피로 해결한다 치고──단걸 먹이면 되겠구나, 앞으로 이 남자가 오면 케이크를 종종 내줘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때.

“맛있네요.”

“……네?”

남자는 포크로 망설임 없이 잘라낸 케이크 조각을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고 나서 목을 꿀꺽 울렸다.

“두 번이나 포크로 잘랐는데도 무너지지 않는 걸 보니 구조가 상당히 견고한 것 같아요. ……당신의 말대로 정성 들여 만들었군요.”

중간에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느라 한두 박자의 틈을 두고 그가 한 말은, 카베가 마음속으로 이 남자에 대해 품던 오만 가지의 추측들을 전부 날려버릴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살짝 쥐고 있던 오른손을 펴서 이번에는 입을 가렸다. 분명히 무의식중에 입꼬리가 올라갔을 것이다. 케이크를 향한 칭찬은 언제나 듣던 것이었는데, 모순적이게도 이 무미건조해 보이는 남자에게서 무심한 듯 흘러나오는 찬사가 더없이 달콤하고 촉촉하게 스며들었다.

그런 말을 잘 하지 않을 것 같아서인지 그저 단골이라서인지, 케이크를 먹이기가 힘들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비워진 케이크 접시 위에 달그락 하고 포크를 내려놓으며 울리는 소리마저 악기처럼 들리는 걸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남은 커피, 남았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남자는 카베와 대화하고 케이크를 먹은 뒤 감상을 말해주느라 커피를 거의 마시지 못했다. 열기가 식어 마시기 적당해진 커피를, 그는 그래도 음미하듯이 한 모금 한 모금 정중하게 마셨다. 잔을 기울일 때마다 눈꺼풀과 함께 드리워지는 속눈썹 아래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아, 카베는 한 손으로 여전히 입을 가린 채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잘 안 보이네…….”

“……?”

커피잔에 집중하던 남자의 시선이 움직여 카베에게 꽂혔다. 방금 실수로 내뱉은 말을 추궁이라도 하는 것처럼 날카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침착해서 제정신이 조금이나마 돌아오는 것 같았다.

“사……, 사람이!! 사람이 잘 안 보인다고요! 여기……, 여기는 한적한 동네잖아요. 그래서 다들 느긋한가? 하지만 그쪽은 매일 출근하니까 바쁘시겠죠? 매일 기다릴 시간도 아깝지 않아요? 오시는 시간에 맞춰서 제가 미리 내려놓는 거 어때요?! 그럼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커피를 들고 이 자리에 앉으면 되잖아요. 좋은 생각이죠?”

횡설수설하면서도 제법 임기응변을 잘했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커피 마시는 모습을 넋 놓고 쳐다보다가 눈꺼풀에 가린 당신의 눈이 잘 안 보여서 아쉬운 마음에 스르륵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이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다.

이 남자도 말없이 커피를 주문한 뒤 내리는 동안 기다릴 테니, 항상 오는 시간에 맞추어 미리 따끈하게 내려놓으면 기다리지 않아도 될뿐더러 어색한 시간도 줄일 수 있다. 종종 트레이에 케이크도 올려 주어야겠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군요.”

“네?”

“내가 주문하면 그때 하세요.”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카베에게서 시선을 거두더니, 남자는 펼치지도 못한 책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오늘은 읽지도 못했네”라고 중얼거린다.

괜히 자기 탓인 것 같아 미안해진 카베는 입을 가렸던 오른손을 떼어 그를 향해 뻗으려다가 멈추었다. 해명하고 사과할 테니 이쪽을 봐달라는 것처럼 잡아봤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그는 그저 손님이고 카베는 카페의 오너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와서 정해진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책을 읽다 조용히 사라지는, 존재감 옅은 남자. 스스로 눈에 띄기 싫어하는 것처럼 기척을 내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싫어하면서 매일매일 가게에 찾아온 덕에 카베 안에서는 이 손님의 존재감이 더없이 크고 무겁게 들어앉아 있었다. 주문할 때 말을 걸어 주었으면 좋겠고, 따뜻한 커피를 건네며 ‘좋은 아침’이라느니 식상한 안부 인사도 나누고 싶고, 계산할 때 카드를 주고받는 손끝을 한 번이라도 더 스치고 싶고, 케이크를 먹어주었으면 좋겠고.

“내일도 오실 거죠?”

간신히 내뱉은 말은 확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애매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 남자는 다소 꼬아서 들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하고 나니 후회되었다. 조금 더 생각할 걸 그랬나 보다 하고 후회하는 카베의 귀에 담백한 대답이 날아들었다.

“네.”

그리고 그 손님은 가방을 챙기더니 성큼성큼 걸어 카페를 뒤로했다. 어정쩡하게 손을 올린 채 그 자리에 선 카베와, 문이 닫히면서 딸랑 울리는 종소리를 남겨두고.

。₍ᐢᐢ₎

그 이후로도 남자는 변함없이 가게에 찾아왔다.

말없이 시선만으로 커피를 주문하면 카베가 커피를 내리고, 커피를 가지고 도로 자리에 돌아간 그가 책을 펼치면 카베도 카운터에 앉아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태평한 한때가 다시 찾아왔다. 아무 생각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눈이 감길 것만 같아서, 카베는 전과 달라진 점에 대해 떠올려보려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밀푀유를 주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이따금 쇼케이스에서 케이크를 내어주면 아무 말 않고 접시를 비운다는 데서 달라진 점이 그나마 있기는 했다.

그의 지정석은 카운터에서도 잘 보이는 곳이었기에 저절로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자신을 향해 변명하면서도 카베는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격이 조용해서 구석진 데를 좋아할까 했는데, 의외로 항상 앉는 곳은 카운터에서 잘 보이다니. 반대로 말하면 그의 자리에서도 카운터가 잘 보인다는 뜻이겠지만, 잘 보이면 무엇하겠는가. 봐달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책에만 고정된 시선이 야속한 한편으로 갑갑해서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약불에 올려놓은 설탕 시럽은 옆에서 계속 지켜보다가 제때 불을 끄지 않으면 못 쓰게 되어버린다. 그러고 보니 가게에 비치한 시럽도 카베가 직접 만들었는데, 저 남자는 항상 블랙만 마시기에 그 환상적인 시럽의 맛도 모를 것이다. 저 사람은 먹어보지 못한 맛이 궁금하지도 않은가, 이렇게 불 위에 올려둔 채 방치당하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니. 졸아들어서 새카맣게 타버리기 전에 제때 맛을 봐주면 좋겠는데. ──방금 이건 이상하지 않나, 사고의 흐름이 다소 위험한 쪽으로 흐른 것 같아 카베는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저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제일이다. 저 남자가 직접 불을 끄고 시럽을 제때 내려줄 것 같지 않으니, 카베는 또다시 소소한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ᐢᐢ₎

“커피 나왔습니다.”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선언한다.

커피가 올라간 트레이 위에는 오늘도 케이크가 함께였다. 다만 오늘은 카베가 유독 정성껏 시간을 들여 단 한 개만 만든 특제 케이크로.

그러나 남자는 힐끗 시선으로만 답했을 뿐, 자리에서 일어나 트레이를 받아 들려는 기색도 없었다. 탁, 달그락 소리를 내며 남자의 앞에 커피와 케이크를 내려놓은 카베는 일생일대의 걸작을 다시 한 번 감상했다.

핑크색으로 코팅한 시트 안에는 베리로 만든 빨간색 필링과 구름 같은 치즈, 그 위에는 설탕 반죽으로 만든 흰 토끼가 올라간, 그야말로 절정의 사랑스러움을 뽐내는 케이크였다.

“후후……, 후후후…….”

카운터로 돌아온 카베는 자신의 천재적인 발상에 웃음을 흘렸으나, 카운터는 저 남자가 앉은 자리에서도 잘 보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황급히 입을 가린 뒤 즐겁게 지켜보기로 했다.

저 사랑스러운 케이크를 앞에 두면 누구나 ‘이렇게 귀여운 걸 어떻게 먹어’, ‘너무 아깝다’, ‘사진 찍을래!’ 등등,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어디부터 포크를 대야 할지 망설이기 마련이다. 물론 카베는 항상 아름다운 케이크를 만들었기에 ‘이걸 어떻게 먹느냐’, ‘평생 보관하고 싶다’ 같은 말을 질릴 정도로 들었지만, 저 남자가 토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어디부터 먹어야 할지 망설일 것을 생각하니 즐거워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디 한번 실컷 고민해보라지. 설탕 시럽이 끓는데도 불 끌 생각조차 않는 당신에게 하는 복수다.

그런데.

남자는 케이크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주저 없이 포크를 들어 설탕 토끼의 머리를 쿡 찍더니, 곧장 입에 넣어버렸다.

“……아…….”

망연자실한 자신의 목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왔다.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귀여운 케이크를 제대로 감상조차 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입에 넣어버리다니. 그러나 더 참을 수 없는 건, 지금 미간을 찌푸리며 커피잔을 들어 올리는 저 남자였다. 감히 내가 만든 케이크를 먹고 얼굴을 찡그리다니, 평소에 무표정한 남자이니만큼 더 용서할 수 없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카운터를 박차고 테이블로 성큼성큼 다가간 카베가 남자를 향해 외쳤다.

그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시선만으로 카베를 일별하여 대답을 마친 뒤, 커피잔을 기울여 들이켜기 시작했다.

“이봐요! 그쪽은 토끼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내가 새벽 내내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데!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토끼라고요. 설탕 반죽으로 파츠를 일일이 빚어 귀엽게 만들어놨더니, 그걸 보지도 않고 포크로 찍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건 너무 달아서 케이크 속의 과일 필링과 함께 먹어야 한다고요. 케이크 먹는 법도 제대로 모른다니, 그럼 물어나 보던가! 그 귀여운 걸 보고도 눈썹 하나 안 움직일 수가 있네? 아……, 진짜. 사람 맞아? 사람일 리가 없어!”

커피를 마시거나 말거나, 카베는 흘러나오는 대로 남자를 질책했다. 안 그래도 단것을 한 번에 삼켜버린 남자는 목을 울리며 커피를 몇 번이나 들이켰다. 뜨거울 텐데, 그런 건 상관없을 정도로 달아서 못 견디겠나 보다.

“……시험작 같은 게 아니었나?”

절반 정도 비운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고는 그가 물었다. 있는 대로 쏟아지는 카베의 맹비난 속에서도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였다.

“아니죠! 난 그런 거 손님한테 안 줘요. 그건 당신한테 먹이려고 딱 하나만 만든 거라니까요……. 완벽한 케이크였는데……. 하아……, 말도 안…….”

“…….”

“………….”

완벽하게 또 실수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카베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어색한 침묵은 잃어버린 냉정을 되찾게 했다. 방금 카베가 한 말을 의식했는지, 남자는 다시 포크를 들고 케이크를 잘라 한 입씩 입에 넣기 시작했다. 빨갛게 빛나는 베리 필링과 하얀 구름 같은 치즈가 섞인, 역시 완벽한 케이크였다. 토끼는 맨 먼저 먹혀버렸지만.

케이크를 다 먹어주는 건 기쁜 일이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되뇔 수밖에 없다. 이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출근 전에 잠시 들러서 커피 한 잔과 독서를 즐기는, 그저 손님이라고. 그의 시간을 빼앗고 억지를 부리는 건 카베 자신이다.

포크가 접시에 부딪치는 달그락 소리가 또다시 음악처럼 울렸을 때, 카베는 ‘이 남자에게 내 케이크를 먹이고 싶다’는 생각에 가려 여태 하지 않았던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혹시, 단거 싫어하세요?”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그랬구나……. 억지로 먹게 해서 미안했어요. 맛있다고 말해주니까 기뻐서……, 들떴나 봐요.”

남자에게서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천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그가 이제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어서 펜이 종이 위에서 마찰하는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왔지만 차마 고개를 들어 확인하지 못했다. 이어서 시원하게 종이 한 장을 뜯어내는 소리가 나더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푹 숙인 고개 아래 시선으로 한 번 접은 쪽지가 들어왔다.

그제야 고개를 들고 남자를 올려다보자, 그는 받으라는 듯 쪽지를 든 손가락을 한 번 까닥였다.

“내가 오기 전에 미리 커피를 내리지 말라고 하는 건…….”

카베가 쪽지를 받아 들었을 때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내뱉은 한숨만큼은 이 말을 하기 싫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졸리거든요, 아침에는. 그쪽이……, 카베 씨?”

“카베라고 불러도 돼요.”

“카베. 정신 산만하게 일하는 뒷모습을 보면──.”

“시비 걸어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아침이다 싶어서요. 그렇게 잠을 깨는 거예요.”

카베의 눈이 동그래졌다. 본인도 의식할 수 있을 만큼 놀랐다.

구석진 곳을 딱 좋아할 것 같은 성격인데 카운터가 잘 보이는 자리에 항상 앉는 이유가 궁금했다. 느긋한 시간을 선호하는 남자가 아침부터 출근하면서 피곤하지 않을 리 없다. 카운터 너머 주방에서 일하는 카베의 뒷모습을 매일 지켜보며 권태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그의 비밀을 듣고 나서야 카베 역시 깨달았다.

카베의 아침은 아주 이른 시간에 시작된다. 누군가에게는 심야라고 해도 좋을 시간이다. 특히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면서 케이크를 직접 만들기 때문에, 카베에게 이 아침 시간은 한바탕 힘든 일을 마친 뒤 쉬고 싶은 한때였다. 한적한 거리의 작은 디저트 가게, 거의 손님이 없는 시간에 어김없이 딸랑 소리와 함께 찾아와 말없이 책을 읽는 태평한 모습을 보다 보면,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잠깐이라도 잠들고 싶은 느긋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내일은 마침 휴일이죠. 거기에 적힌 주소로, 당신이 편한 시간에 와요. 케이크의 답례를 하고 싶을 뿐이니 안 내키면 안 와도 됩니다.”

할 말을 마친 남자는 가방을 챙겨 들고 주저 없이 가게를 나섰다. 딸랑, 울리는 소리가 이번에는 야속하지 않았다.

그가 나간 후 펼쳐 본 종이에는 자택으로 보이는 주소와 이름이 정갈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알하이탐.”

마침내 불이 꺼지고 딱 알맞게 졸여진 시럽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첫 데이트를 집으로 부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마른 지 얼마 안 되어 생생하게 느껴지는 잉크의 향기를 맛보기 위해, 카베는 종이쪽지를 입가에 대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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