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위한 포르노는 없다 (1)

이 얘기를 한 번 하긴 해야겠는데 복합적인 주제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좀 슬렁슬렁 시작해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tmi로 시작하겠단 소리다.

비평이라고 가끔 부르기 힘든 반쯤 칼럼을 포스팅하는 이유는 그냥 '비평' 소리만 해도 그 글의 내용이 어려워서 자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자기폄하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껏 내가 써온 글을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기본적인 관념은 기본적인 거라서 그렇게 어렵지 않다. 가급적 어렵지 않도록 예시를 들며 이야기 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 아주 약간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보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 말이다.

이렇게 일종의 지적 자극을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자신의 계급과 주변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속한 계급 때문에 대학 문턱을 밟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주변환경 때문에 자신이 처해있는 문제 자체를 느끼지 못할 때도 있다. 

지금이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는 나도 가끔씩 말하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들이 약간 나아진 상태에서 만족해야할 이유도 없다. 백래시는 항시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이 지속적인 싸움에 매번 응대하는 것 또한 개인의 단위에서는 피곤한 일임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겠는가. 그러니 싸우다 지치면 조금 뒤로 빠져서 쉬다가 기운 차리면 그때 다시 싸워도 된다. 변화는 언제나 수차례의 시도 끝에 느리게 시작되고 우리의 삶은 길다. 그러니 현실에 쉽게 안주해선 안 된다는 의미에서, 이 여성을 위한 포르노 문제를 얘기해보자.

일전에도 밝혔지만 나는 여성에게 폭력적인 헤테로 섹스를 못 보는 사람이다. 글은 그래도 대충 동공을 풀고 대충 펄럭펄럭 넘기는 정도로 끝나지만 영상은... 보게 되면 두통과 구토감을 느끼는 등의 스트레스 반응이 올 정도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금 놀라거나 거짓말 아니야?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과도한 성적대상화(Hyper-sexualize)로 점철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면 주류 광고를 생각해보자. 지금은 알콜 성분이 들어간 어른의 음료를 말하는 게 맞지만 대다수의 광고라고 여기서 자유롭진 못하다. 여하튼 간에, 보건복지부가 제동을 걸어서 지금은 안 하게 됐다지만 이전의 소주 광고와 맥주 광고를 비교하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맥주 광고를 떠올리라고 하면 보통 이런 이미지를 생각할 것이다. 청량감을 시각화하기 위해 과하게 들어간 거품과 회오리치는 물의 이미지가 대충 맥주 모양으로 빚어지고 그걸 남성 연예인이 집어들고 마신 다음 캬아- 하는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반면 소주 광고는 어떠던가. 대체로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성 연예인이 곱게 화장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 깨끗하다느니 깔끔하다느니 부드럽다니 하는 소리를 하는 이미지가 있잖은가. 왜 같은 술 광고인데 이런 차이가 있을까? 

맥주는 주요 소비층이 그렇게 성비차가 안 나는데 소주는 그 주요 소비층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소주는 원래 '고된 육체 노동 뒤에 마시는 술'이었다. 그래서 초반엔 남성 연예인들을 고용해 광고했고 이 이미지 자체도 아직까지 남아있다. 지금도 영상매체에서 흔하게 보는 '고된 육체 노동 뒤에 혼자서 술 마시는 씬'을 찍어야한다면 소주를 선택하는 비중이 높을 거다. 그 일이 고되면 고될 수록 말이다. 솔직히 소주는 자체의 향도 없고 맛도 없고 알콜 도수만 강한데 가격은 싸서 빠르게 취하기 위해 마시기에 좋지 크게 소주 자체로 즐길 거리가 없기도 하니 말이다.

소주가 처음 나왔을 땐 도수가 35도였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점점 더 내려가다가 9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2000년대 들어서 소주의 도수가 20도 부근까지 내려오게 되며 여성 모델들을 기용했는데... 이 말인 즉 기존의 도수가 높은 소주를 좋아하던 남성들에게 있어서 순해진 소주는 살 메리트가 작아졌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 이쯤에서 소주 광고 내용을 생각해보자. 

소주 정도 알콜 도수 쯤 되면 깨끗이니 깔끔이니는 그닥 의미 없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알콜로 입 안과 목을 헹구는 거랑 그닥 차이가... 없지 않은가. 글로벌 공급체인망이 무너지던 팬데믹 초반엔 소주 제조업체들이 손소독제와 소독용 알코올 등 방역 원료 공급처 노릇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소주의 도수가 낮아지니 더 많은 양을 사서 마셔야만 취하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즉, 더 많은 돈을 내야한다. 그래서 붙이게 된 게 여성 연예인의 사진이다. 예쁜 여성이 웃는 얼굴로 자신을 위한 포즈를 잡아주고 있는 사진이 병에 붙은 걸로 소비자는 불합리를 대충 넘어가줬단 소리다. 

취하려고 마시는 술의 용도에 있어 사실 이건 전혀 필요 없는 이미지다. 누가 웃어주는 사진을 보고 있다고 해서 술에 빨리 취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 여성이 자신을 위해 웃어주고 있다는 이미지가 있는 것만으로 대충 넘어가는데서 볼 수 있듯, 이미지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 

천천히 생각해보면 전혀 상관 없는데 예쁘고 어리고 성적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가 붙어있는 상업 광고는 정말 지나치게 많다. 모터쇼에서 신차 광고한다고 전시해놓고선 왜 여성 모델들이 차에 기댄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도 의문이고 베스킨라빈스에선 아동 모델을 어른처럼 꾸며놓고 성적대상화를 해대서 구토를 유발했으며 다이어트 제품 광고는 보고 있기 어지럽다. 이건 걱정되어 덧붙이는 말인데... 다이어트 제품 중에서도 특히 보조제처럼 약의 형태로 되어있는 건 정말 사람 몸을 어떻게 망가트리는지 추적조차 어려우니까 멀리하길 바란다. 복용을 생각하고 있다면 부작용으로 간이나 신장이 완전히 망가지거거나 호르몬이 교란되어 어떤 지병이 생길 수 있다는 최소한의 리스크 정도는 알아두자. 

여하튼 이야기를 돌려서, 이렇듯 우리는 일상적으로 과도하게 성적대상화된 이미지에 노출되어있다. 특히나 광고는 이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자신들이 파는 제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도 사람을 제품 옆에 나란히 세워놓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사기를 친다. 이 제품을 사면 이렇게 예뻐보일 수 있다, 이 제품을 사면 이성이 달라붙을만큼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어필된다고 말이다. 

문제는 이런 이미지들에게 워낙 노출되어있다보니 이게 진짜라고 믿기도 한단 거다. 이 믿음은 맹신에 가까워서 기출변형까지 된다. 대학 가면 살 빠져, 명문대 가면 남들보다 더 좋은 애인 생겨, 예쁘면 세상 일이 다 잘 풀려, 라고 말이다. 이렇게 이미지를 통해 물화된 여성을 일상적으로 접하다보니 사람들은 자꾸만 속게 된다. 

게다가 상업적 이미지들은 한결 같이 과도한 성적대상화 되어있다보니 필연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이용한 섹스어필에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반면 남성의 신체를 성적대상화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CGV의 포대팝콘 광고를 떠올려보자. 별 대상화를 추가한 것도 아니고 그냥 몸 좋은 남성 모델의 상의만 벗겨놨더니 세상이 그렇게 디비지더라. 

이제 좀 감이 오는가?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는 '일상'이나 다름 없어서 불편한 줄도 모르는데 남성에 대한 성적대상화는 워낙 없다보니 더 도드라지게 인식하는 거다. 그리고 이 일에 어떤 사람들이 격분한 이유는 이런 성적대상화의 맥락이 성에 대한 비하와 이어져있는 걸 은연 중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몸은 감히 평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숭배의 대상인데 감히 윗옷을 벗기고 보기 좋네 어떠네 하며 평가를 했다는 게 아니꼬운 거다. 무슨 고대 그리스도 아닌데 말이다.

고작 성적대상화 가지고 이 난리인데 진짜 침대 속 사정으로 가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탐구하다보면 성별임금격차(Gender pay gap)에 이어 오르가즘 갭(Orgasm gap)을 마주하게 된다. 이성애자 여성들이 성관계를 가질 때 절정을 느끼는 확률은 보통 60%가 안 되는데 남성의 경우는 90%가 절정을 느낀다고 한다. 이렇듯 절정을 느끼는데 격차가 생기는 걸 두고 처음엔 여성들은 신체구조상 오르가즘을 느끼기 어려워서 그런 거라고 헛소리하던 시절도 있는데 동성애자 여성들은 섹스를 할 때 80% 정도로 절정을 느낄 확률이 확 오르기 때문에 지금은 완전히... '그냥 남자가 못해서'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이성애자 남성들이 자신과 섹스하는 여성의 쾌락과 만족감을 신경 쓰지 않아서 그렇단 소리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서 여성들이 과연 나를 만족시키라고 섹스 중에 요구할 수 있을까? 

남성과 여성이 섹스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여성이 '거기 말고 여기를 이렇게 좀 해봐' 등의 지시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거 같은가? 지금 읽은 문장만으로 거부감을 느끼거나 이들의 섹스는 망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는가? 

여성이 자신의 쾌락을 목적으로 두고 행동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곤혹스럽게 느끼거나 최악의 경우 '여성이 성을 밝힌다'며 혐오하거나 노골적으로 무시할 거다. 이걸 모든 여성들도 은연 중에 느끼고 있다. 그래서 강간판타지가 여성향에 있어 절대 죽지 않고 잘 팔리는 길티플래져가 됐다. 여성에게도 성욕은 있는데 드러내거나 요구하면 안 되니 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충족되는 방향으로 가게 해주는 구세대의 나름의 방법이었달까...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과도한 성적대상화는 포르노 산업과 아주 똑같은 맥락으로 여성의 실제 성생활에 방해가 된다.

그러니까, 여성의 성적 쾌락과 성적 매력 사이에는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을 잊어버리게 한단 소리다. 과도한 성적대상화에서 만들어내는 여성의 성적 매력으로 꼽으라면... 반쯤 드러내놓은 큰 가슴, 물주머니처럼 부푼 엉덩이, 근육이 드러나지 않고 콜라병처럼 곡선이 있는 허벅지 등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런 신체적 특성을 가졌다 해서 여성의 성적 쾌락과는 연관이 없잖은가. 가슴이 크면 클수록 섹스할 때 더 기분이 좋은가? 엉덩이가 크고 작고로 쾌락의 크기가 결정되던가? 허벅지가 예쁘게 말랑거리면 쾌락을 더 느낄 수 있는가? 전부 아니다. 이런 성적 매력이 정말로 여성의 성적 쾌락과 관련 있었으면 남성들은 필사적으로 작은 가슴과 좁고 납작한 골반과 돌덩이 같은 허벅지를 숭상했을 거다.

성적 쾌락의 주체가 여성이라면 여성에게 있어 자신의 신체는 집중과 탐구의 대상인 동시에 평가에서 멀어진다. 모든 몸이 다 아름답다고 별로 와닿지 않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몸은 아름답지 않아도 상관 없다. 만족감을 얻는데 있어 부족한 몸이란 없기 때문이다. 로즈마리 바송 박사(Dr.Rosemary Basson)가 2000년쯤에 제시한 여성 성적 반응의 비선형 모델(non-linear model of female sexual response)을 봐도 그렇다. 거칠게 요약해서, 여성의 성욕이 드는 상황이 존재한다면 별 문제 없는 건 물론이고 섹스를 하며 한 번이든 여러 번이든 절정 느끼며 끝내거나 절정 없이 만족감을 느끼는 것 또한 다 자연스러운 범주라는 거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슬슬 왜 여성을 위한 포르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지 감이 올 것이다. 그렇다. 여성들이 향유하는 창작물 속 포르노의 도식 자체가 이미 너무 낡아서 이젠 위협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동시에 여성의 성적 쾌락과 상관 없거나 상관 없고 싶어하는 점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여성을 위한 포르노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5천자를 가뿐히 넘겨 쉬고 싶으니 이 뒤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사족 1. 주제가 주제다 보니 쓰는데 시간이 걸려서 이게 아마 올해 마지막 글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 이 김에, 그간 후원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보내주신 후원금은 카페인이 되어 핏속으로 흘러들어가 키보드를 두드릴 힘이 되었습니다. 잘 마셨습니다.

사족 2. 안 까먹기 위한 발버둥으로 스포하는데 다음 글은 인터넷 포르노가 범람하는 시대에 왜 기존의 포르노 도식이 위험해졌는지 천천히 말해보려 한다. 

사족 3. 그런 의미에서 이늬 작가의 '역하렘 게임 속으로 떨어진 모양입니다'를 되게 아쉬워하는데 이 작품이 카카페가 아니라 19금 달고 차라리 다른 곳에서 나왔으면 엄청 환호했을 거다... 아니면 e북이 19금으로 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조아라 연재 때 조연 캐릭터 중 하나가 주인공을 구강성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카카페는 15금이라 다 짤리긴 했지만 이게 어떤 의미에서 센세이션했는지 예상가지 않는가. 쾌락의 주체가 여성이다. 게다가 오르가즘 갭을 줄이는 방법으로 구강성교를 말하기도 한다는 걸 생각해보라.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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