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물이 싫은 몇 가지 이유
신년부터 이런 내용이라 미묘하게 찝찝하지만 요즘 로판을 보면 몇 개의 유행이 주기적으로 흥하고 망하는 편이라 보기 괴로운 유행이 줄었으면 하는 신년의 염원을 담아 써본다.
시한부물의 흐름은 보통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푸대접을 받는 주인공이 어느 날 시한부인 걸 알게 된다. 삼라만상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이 세상 모든 번뇌에서 해탈한 양 가족을 포함한 인간 관계를 정리하고 저 하나 이쁘다 귀하다 해줄 예정인 사람과 계약 결혼을 빌미로 타지로 도망나간다. 그렇게 죽어가는 동안 받을 예쁨은 다 받고 죽는다니 매달려오는 과거의 사람들을 심리적 우위를 두고 적당히 조지면서 행복하게 죽던가, 아님 기적적으로 낫는다.
시한부물의 이런 흐름에서 읽을 수 있는 뒷면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역경을 거치되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형상화된 거나 다름 없다. 이렇게 놓고 보면 시한부물을 읽을 때 느끼는 불쾌감이 명확해진다.
1. 감당할 수 있는 역경이 왜 병이여야 하는가?
일전의 어떤 드라마가 암도 생명이라는 둥의 대사를 넣어 실제 피해를 입고 있는 환우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불쾌감을 자아낸 적이 있음에도 쉬운 역경으로 왜 병을 고르는지 모르겠다. 당사자들에게 이는 모욕에 가까우며 당사자가 괜찮더라도 주변인으로써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임은 염두에 두고 고르기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창작물이 가지고 있는 시한부의 병에 대한 묘사는 이 판타지가 정말 있어도 괜찮은 것인지를 묻게 하는 수준이다.
병은 뭘 어떻게 해도 아름다우면 안 된다. 유독 로판에서 비교적 흔한 설정으로 신체가 결정화하며 보석이 된다거나 하는 식의 어쨌든 아름다운 방식으로 죽는 걸 선택하는 경향성을 보이는데 이가 에블린 맥헤일의 경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에블린 맥헤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살'이란 사진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모계에 조현병 병력이 있는 것을 두려워해 우울증이 있었고 좋은 아내가 되지 못할 거 같단 유서를 남기고 88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이 사건에서 사람들이 결국 집중하는 건 그가 왜 죽은지가 아닌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젊고 아름다운 채로 죽은 여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걸리고 싶어 병에 걸리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역경이란 장치로 병이 쓰이는데 실제 환우가 겪는 고통과 불편, 심리적 불안은 적당히 미화한다는 명목으로 모조리 생략되는데다 상업적이여야한다는 미명 아래 어쨌든 아름답고 향기로워야 한다. 여성은 고통과 그 죽음마저 아름다워야한다는 집착은 소름 돋을 지경이다.
이렇게 시한부물을 통해 병은 병약미라는 분류로 하나의 패션처럼 다뤄진다. 창백한 피부, 가녀린 팔다리와 마른 몸, 지적이고 차분하지만 어딘지 초췌한 얼굴. 이 이미지들은 놀랍도록 18세기 프랑스의 모슬린 드레스 열풍 때와 다를 바 없다. 더 가녀리고 예뻐 보이기 위해 옷에 물을 뿌려 폐렴으로 여성들이 죽어나가던 그 패션 말이다.
현대의 여성들에게도 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패션은 이미 옆에 존재하고 있다. 칼 라거펠트(지옥 한구석에서 잘 타오르고 있길, 망할 영감탱) 다이어트, 팻 셰이밍이 그렇다.
샤넬과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는 생전 '런웨이에서 뚱뚱한 여성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마른 모델만, 정말 지나치게 마른 모델들만 기용했는데 덕분에 라거펠트의 등장 이후로 거식증은 서서히 사회문제화 되었다. 그 전까지의 모델계에 문제가 전혀 없었단 건 아니지만 지금도 흔하게 보이는 척추와 갈비뼈가 어떤 모양인지 그대로 보이는 모델이 유행하도록 만든 건 이 인간의 참 대-단하신 업적이다.
사람이 마르고 싶어서 다이어트 하다보면 거식증이 올 수도 있지 뭐가 문제냐고? 인간의 신체는 어디까지나 생물이고, 생물인 이상 지방이 없으면 면역력이 바닥나고, 면역력이 바닥나면 체력도 바닥나고, 몸 안에 써먹을 칼로리가 없으면 근육도 깎아먹음으로서 신체가 어떻게든 생존을 유지하는데, 심장은 근육으로 되어있다. 즉 거식증을 초기에 치료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가만히 누워있다 그대로 죽게 될 수도 있단 거다. 초기 암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 받지 않고 기 치료 받는다 뭐다 하며 병을 악화 시키고 있는 걸 보고 있을 때의 기분이 들지 않는가? 스티브 잡스도 그래서 죽었다.
평범한 여성의 인체는 가만히 있으면 배가 나오는 게 정상이다. 왜냐고? 여성의 인체에는 남성보다 장기가 하나 더 있지 않는가. 생리 때면 4배까지도 부푸는 자궁이라는 장기가 여성의 몸에는 붙어있다. 가만히 있으면 나오는 배의 존재는 살이 쪄서가 아니다. 무언가 먹은 게 장에 남아있으면 자연스럽게 나오기 마련이란 소리다.
모델들도 가만히 있으면 배가 나온다. 그래서 모델들이 패션쇼나 화보촬영 이전에 장을 완전히 비워버리는 거다. 식사와 수분 섭취마저도 끊어버리는 그 극단적이고 건강에 하나 좋을 것 없는 방식으로 완전히 안을 비워버린 몸을 예쁘다고 찍고 있는 거다. 때로는 그마저도 만족스럽지 않다고 포토샵이라는 문명의 이기로 여긴 줄이고 거긴 부풀리며 '아름다움'이란 관념을 필사적으로 쥐어짜고 있다.
다시 묻고 싶다. 아픈 몸은 정말 아름다운가? 아픈 몸을 아름답다고 해도 현실의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가? 영향을 준다면 그게 정녕 바람직한 방향성인가? 죽음은 아름다울 수 있냐고 묻고 싶다.
2. 죽음을 앞둬야만 생기는 시한부물의 용기
죽음을 앞둬야만 생기는 용기는 대체 무얼까. 내게 '죽음을 앞둬야 생기는 용기'의 속성을 꼽으라면 숭고함과 존엄성이 떠오르는데 현실은... 영 그렇다. 시한부물의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서 숭고함과 존엄성을 조금도 느낄 수 없단 소리다.
태어난 모든 생명은 죽는다. 사람들이 망자가 어릴 수록 그 죽음을 아프게 느끼는 이유는 앞으로 그들이 겪고 누릴 수 있었던 가능성이 한순간에 사라지는데서 보다 큰 상실감을 느끼고 또 그들이 마땅히 보호받아야하는 존재임에도 그리 됐기 때문인데 시한부는 이 경우에 속한다는데서 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시한부물에서는 죽음을 앞둔 주인공이 '니네가 날 평생을 싫어했으니 너네들에게서 꺼져주지. 난 죽는다. 잘 먹고 잘 사시던가.' 라며 가족이라 설정된 위치에서 갑자기 벗어난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시한부가 가지는 그 비극성을 무기로 가해자로 하여금 감정적 부채를 상환시키지 못하도록 만든다. 죽은 이에게 가지는 감정이 어떻게 행동으로 해소 되겠는가. 주인공에게 잘못했던 이들이 개처럼 기게 만드나 절대 용서해주지 않는 형태로 대리만족을 하는 건데... 이건 로맨스의 속성이다.
이건 정말 용기인가?
가족 이탈의 방식이 결혼인 것도 한숨 나오게 만든다. 보통 계약결혼이랍시고 남자 주인공으로 설정된 이에게 쪼르르 달려가 '내가 죽을 거지만 너라면 날 대충 감당할 수 있겠지? 가만 있을 테니까 내버려둬.'식의 태도를 보이는데 이게 대체 어떤 낭만화인가? 당장 죽을 사람을 사랑할 거라는 설정값도 설정값이지만 결국 이런 계약 결혼은 잘 따지고 보면 자발적 매매혼이다.
그러니까, 이게 정말 용기냔 말이다. 결국 이는 도피에 불과하다. 이런 도피가 정말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인가?
용기도 근육과 비슷한 점이 있다. 싸우기로 결심하는데는 대단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고, 그 누구라 한들 첫 반항은 아름다울 수도 당당할 수도 없다. 울고 두려워하면서도 옳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내는 용기는 익숙해지지 않으면 발휘할 수 없다.
물론 도망도 용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팔아서 만드는 도피처는 현실에 존재하는 범죄의 속성 때문에라도 절대 안전하고 편할 수 없다.
3. 기묘한 낭만화
시한부물에서 주인공은 역경을 이겨내되 노력하지 않는다. 이는 병이 가지는 특성 때문에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나, 어쨌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렇게 주인공에게 상냥할 수가 없다.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이 손상갈 정도의 고통은 아닌 아름다워보일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고통, 치료와 요양에 드는 거액의 돈을 어떻게든 메워주는 자신의 것이 아닌 재력, 투병 중 마모되어가는 당사자의 심적 여유를 모두 이해해주며 수발까지 들어주는 주변인, 죽음을 앞뒀다는 이유만으로 빠르게 자기반성을 거치고 후회에 젖어 만회하려는 가해자들.
보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게 해결된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주인공의 욕망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생을 고르나 사를 고르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 주인공이 산다면 대충 행복하게 살다 죽을 것이고 주인공이 죽는다면 주변인들은 평생 슬픔 속에 살아갈 테니까. 시한부물에서 말하는 행복은 딱히 주인공을 위한 행복이 아니니 주인공은 역경을 이겨낼 노력조차 할 필요가 없는 거다.
세상 일이 이렇게 쉽게만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이야기가 유행할 때의 문제는 로맨스 판타지와 로맨스의 장르적 차이가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설정들이 하나 둘 모이면 어떤 전개가 될 지 전부 예상하게 만드는 종류의 유행이 로맨스 판타지에도 있음은 부정하지 않겠다. 이게 당면한 현실이니. 하지만 시한부물의 어디가 '판타지'인지는 모르겠다.
시한부물은 분류를 로맨스로 해야 옳다. 감정적 흐름과 인간관계를 제외하면 그 어디에서도 스토리를 찾을 수 없다. 낭만화를 판타지라 부를 거라면 그럴 듯하게 들리긴 하겠지만 물론 쉬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
혹시나 하여 덧붙이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여주판을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거고, 로맨스 판타지가 현실적으로 로맨스 오염이 진행된지도 시일이 지났기 때문에 최소한의 경계선으로 '사랑 이외의 스토리가 있는가' 정도로만 로맨스 판타지의 장르를 판단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정도 구분이라도 없으면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를 구별할 방법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글을 로맨스 장르를 패는 글로 본다면 그도 곤란하다. 장르에 대한 비평을 남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일원화 때문이다. 다양성이라는 게 이렇게 희박해지기도 힘든데 그렇게 되고 있고, 이런 점에 불만을 가진 독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유를 명확히 말하는데 도움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어쨌든 미성년자가 볼 수 있는 컨텐츠에 내재된 문제점이 당연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최소한의 말은 나와야한다.
또한 거대 플랫폼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하는 프로모션에서조차 모험을 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 팔릴 거 같은데 잘 안 알려져서 아쉬우니 광고를 해보자는 식의 프로모션이 존재하지 않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이러한 점이 싫다 주장하며 약간 특이하고 재밌는 작품들이 알려졌으면 하는 희망도 있다.
그러니 새해에는 조금 더 다양한 소설을 볼 수 있길 희망하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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