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다
쥬조지겐(+샤인)/진단메이커
별 건 아니고, 언제나처럼 눈을 떴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 전날이 '언제나'와는 조금 다른 날이라는 것 탓인지 눈을 뜨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밀폐된 방의 퀴퀴한 냄새와 담배, 술 냄새가 섞인 천장도 아니고 산뜻한 아침햇살이 보이는 것이련가. 심지어 코 끝에 와닿는 것은 꽤나 고소한 음식의 내음이요, 고막을 두드리는 것은 요리를 하는 중인지 각종 음식을 손질하는 소리였음을. 제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하품을 하며 일어나면 아침 햇살을 정통으로 맞으며 발코니에서 담배를 태우는 총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뒷배경인 겨울의 해수욕장도 덤으로.
"-일어났나."
"일단은."
다리를 움직여 바닥으로 내리니 전날의 '모임' 에서 들이 붓다시피 한 술병들이 발 끝에 치였다.
"……."
"치우기 담당."
"어이……."
그딴 귀찮은 일을 떠맡기다니. 여러 방향으로 부스스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불만 가득한 눈에 이누이는 거의 다 타들어간 담배를 난간에 비벼끈 뒤 몸을 돌려 그 난간에 기댄 채 지겐을 바라보았다. 샤인은 저기서 요리 만들고 있잖아. 그럼 네 녀석은 무슨 담당인데? 음, 하고 짧은 침음이 이누이의 목울대에서 머무르듯 끓었다. 설거지 담당. 짧은 정적을 뒤집어 쓴 고민의 시간 뒤에 나온 답은 어이가 없었다. 설거지가 이 개판을 치우는 것보다 쉬울 게 뻔하지 않겠는가.
"어-이! 요리 다됐어!"
"오."
"먹고 치워도 안죽어. 둘이 알아서 치워."
"…어딘가에 가는 듯한 차림새군."
어어, 짧게 수긍한 샤인은 현관에 팽개치듯 벗어놨던 제 코트를 집어들며 손으로 털어냈다.
"오전부터 '일'이 있어서. 어차피 둘 다 돌아가는 길은 알 거 아냐, 내가 일일히 안내해주기도 귀찮다, 이젠. 먼저 간다. 알아서 치우고, 짐 다 챙겨서 나가."
그럼 이만! 인사조차 할 틈 없이 문을 열고 사라진 '집주인'을 보던 둘은 테이블 위에 있던 음식을 한 번 보고, 서로를 한 번 보고, 다시 테이블 위를 봤다가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맛이야 뭐, 따질 것 없이 좋았다. 식기와 접시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와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가 둘 사이를 휘감는 것도 이제는 일상의 '부분'이었다.
"돌아가면 뭐할 거냐?"
"의뢰 받아야지. 그쪽은?"
"루팡이 최근에 뭘 좀 노리고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그걸 실행하지 않을까."
그렇구만.
식사를 끝마친 것인지 그대로 손에서 식기를 내려놓은 이누이가 먼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인 허락도 없이 열어젖히는 냉장고는 언제나 술로 가득 차있지만 다른 것도 있기는 있었기에 조식 후의 입가심으로는 썩 나쁜 상황이 아니었다. 집주인께서는 언제나 수돗물 아니면 술인 것 같았지마는. 200ml 짜리 작은 우유 한 팩을 꺼내든 이누이는 냉장고를 조금 더 뒤져보다가도 구석에 박혀있던 홍삼 음료를 꺼냈다. 유통기한은 이제 막 이틀 정도 지난. -우유는 제 것이다. 팩을 뜯으려던 차 겨눠진 장전 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했으리라.
"…어이, 고작 총이 내게 통할"
"내 타깃은 우유다만."
"……."
누가 전날 술 쳐마시고 넉다운 되었는데 다음날 아침 크림소스 파스타가 들어간 위장에 홍삼 음료를 끼얹고 싶겠냐. 그 말을 부정할 수는 없어서 이누이는 손에 들렸던 우유를 지겐에게로 던질 수 밖에 없었다. 터지는 건 확실히 아까운 일이니까. 홍삼 음료를 냉장고에 집어넣은 그는 주방에서 닦여있던 컵 한 잔을 들어 수돗물을 받아 마셨다. 홍삼 음료는 아무리 오버 익스텐더라도 싫은 법이다.
"그럼 설거지 하고 있을테니 방이나 치워둬."
"예이, 예이."
얼추 방이 본 모습을 되찾아간 뒤 지겐은 재떨이 위에 이제 막 첫 담배를 비벼껐다.
"언제 돌아갈 거지?"
"아마 2-3시간 뒤려나."
그리고 짧은 정적.
이제는 익숙하니 별로 상관은 없겠지만서도. 침대에 걸터앉은 이누이는 제 다리 위에 새하얀 천을 깔아둔 뒤 겉옷의 주머니에서 작은 통에 든 정비용 오일과 간단한 도구들을 꺼냈다. 뭘 하려나 싶어 바라보면 스스로의 손을 재정비 하려는 듯 싶었다. -아, 아까 설거지를 했었지. 방수라면서 물은 지독히도 싫어하는 건 아이러니 하기 그지없다.
"양손잡이야?"
"아니."
"그럼 내가 좀 봐줄까."
묵직해보이는 총머리가 그 고개를 올리자 시선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든 것 같다고, 지겐은 잠시 생각했다.
"네 총과는 구조가 달라."
"그런 건 보면 알아."
"내 머리와도 구조가 다르고."
"안다니까 그러네."
수 초 정도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가도 지겐은 슬그머니 다가가 이누이의 손을 잡고 살폈다. 확장자니 뭐니 여전히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지만서도 이런 '무기'의 기능성과 구조는 굉장하달지. 요전번 머리를 정비해줬을 때 봤던 구조와는 확실하게 달랐다. 그는 감탄했다. 침묵 속에서 긴 시간에 걸친 '간단한' 정비가 막바지에 이를 때 즈음-사실 이누이 본인이 대충했다면 수 십분 만에 끝날 작업이었다.-소매까지 걷어붙인 지겐에게 이누이가 넌지시 말을 건네었다.
"굉장하네."
"-총과 함께한 인생을 그냥 보면 안된다고."
"대충해도 될텐데."
"네 몸에 실례라는 생각은 안드냐."
그닥. 짧은 답이었다.
"좋아, 끝이다."
"오."
손에 달린 무기가 꽤나 매끄럽게 작동하는 걸 보니 만족스럽기는 한 듯, 이누이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몇 번 정도 제 양손을 움직여본 그는 곧 담배를 빼고 재떨이에 털어내며 지겐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뒤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지겐."
"왜?"
"사랑한다는 말 했었나?"
평소와는 다르게 무거운 정적 후 얄썅한 지겐의 총구가 이누이의 머리통에 겨눠졌다.
"방금 좀 무서웠거든."
"…나는 이 반응이 더 무서운데."
"……."
"아니, 별 건 아니고, 메리 만큼은 아니더라도 솜씨가 굉장하니까. 공짜 정비인데도 이렇게 세심하고. 나름의 감사를 담은 애정표현인데."
"…딱히."
필요 없어.
총구는 느릿하게 거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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