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쩌면 너를 어딘가에 묻고 올 지도 몰라
포타 연성 백업
연성용 문장 : 오늘 어쩌면 너를 어딘가에 묻고 올 지도 몰라
"당분간 '일'을 쉰다고?"
위아래로 느릿하게 움직이는 고에몽의 고갯짓을 바라보던 카이지는 그렇구나, 영혼 없는 감상 한 마디만을 남겨둔 채 원래 읽던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세계의 대도둑, 루팡 3세. 그리고 그 일당. 그러나 지금 그 일당은 당분간 '일'을 쉰다고 한다. 흔하디 흔한 감기 하나에 그 루팡 3세가 걸렸다면서. -별 상관은 없지만. 장갑을 낀 채로도 부드럽게 책장을 넘기던 손이 잠시 멈칫하더니 책상 위에서 굴러다니는 펜을 집어 책에 밑줄을 그어나갔다. 몇 줄 정도를 그어나가던 펜이 종이에서 떨어지자 다시금 책장이 부드럽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훨씬 빨라진 속도로.
"무언가 찾은 건가."
"아마도."
간만에 정보통을 자처한 정보통이 일을 제대로 한 모양이야. 카이지는 그리 말하며, 이제는 두세 장 정도를 한 번에 넘기고 있었다. 이윽고 책이 덮이자마자 장갑을 낀 손은 빠르게 서류봉투를 집어들었고, 봉투를 거꾸로 들자 쏟아지는 몇 장의 종이 중에서 한 장을 그가 서슴없이 집어들었다.
"이거다."
"-다녀왔어!"
동시에, 정보를 가져다 주었던 정보통이 귀가했다.
"어서 와."
"음."
"…저기, 최소한 잘 다녀왔느냐는 말은 얼굴 보고 해줄래?"
바빠. 한 마디로 잔쿠로의 말을 뭉개버린 카이지의 냉담한 목소리에 너무하다며 꿍얼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카이지나 고에몽이나 그 목소리에는 썩 신경쓰는 편이 아니었다. 언제나 한숨을 내쉬며 먼저 다가가는 건 자신이었지, 그래, 그랬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한 눈에 봐도 바빠보이는 카이지와 그런 카이지의 옆에서 흐트러진 종이들을 정리해 가지런히 놓는 고에몽에게 다가가면 어째 익숙해보이는 책과 종이가 카이지의 손에 여럿 들려있었다. -그거 내가 가져왔던 정보 아냐? 어. 여전히 짧은 답이었다.
"뭐 건졌어?"
"건질 것 같아. 이 정보들, 어느 정도까지 신뢰 가능해?"
"아마 3-40% 정도?"
아마. 심지어 그 단어가 붙었음에도 절반도 되지 못하는 확률이라.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저만의 필체로 적어내려가던 손이 완전히 멈추었다. 틱틱 펜 끝으로 종이를 건드릴 때마다 검은 점이 찍혔으나 그것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카이지는 몇 번을 더 찍다가 종이 속으로 들어갈 듯 숙였던 허리를 세웠다.
"카이지?"
"-잔쿠로, 일 뭐 들어온 거 있어?"
"아니, 오늘 끝내서 바로 들어오지는 않을 걸."
"고에몽, 일 쉬는 거 맞지?"
"그렇네만."
둘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장갑을 낀 손이 둘의 어깨를 붙들었다. 얼굴에 붕대가 감겨있지 않은 탓에 그 투명한 표정을 보기는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어쩐지 웃고 있는 듯한 기분이 둘의 감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여기 좀 가자. 한 손이 어깨에서 떨어져 책상 위에 있던 종이를 집어들고는 둘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어졌다. 깡촌의 이름없는 산에? 지금 당장? 둘의 표정을 확인한 카이지는 그대로 종이를 접어 옷걸이에 걸려있던 제 겉옷 주머니에 넣어두었고, 빠른 속도로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절반도 안될 확률이라면 괜한 희망 걸어서 계획 세우고 탐사하는 것보다 무작정 가는 게 더 나을 때가 많아."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풍신 일족 관련 주제 두 개로 각 80초 내외 인터뷰, 하야와의 대련 1회."
"당연히 가야지."
"장기가 될 수 있으니 루팡에게는 미리 연락을 해둬야겠군."
결론은 언제나 그랬듯, 허탕에 허탕이다.
"카이지, 이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나?"
"3-40%의 가능성은 이제 0%다 못해 마이너스인 것 같은데…."
하기사, 이틀 동안 4시간 밖에 자지 않고서 세 명의 청년이, 그것도 평균치 이상의 스펙을 가진 청년들이 이름도 없는 작은 산을 여기저기 뒤졌는데. 진즉에 그 가능성은 증발한 지 오래였다. 이 즈음에서 접는 수 밖에 없으려나. 붕대 사이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면 대충 씻고, 내일 아침에 돌아가자."
"돌아가서 인터뷰 하는 거 잊지 말고."
"돌아가면 인터뷰 준비랑 하야도 데려다 놓을 테니까."
좋아, 같이 목욕이나 하자! 순식간에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카이지의 어깨에 팔을 두른 잔쿠로에 의해 잠시 휘청였던 카이지는 떨어지라며 그의 얼굴을 밀어냈지만 오히려 잔쿠로는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 손이 허리까지 내려갔을 때, 카이지와 잔쿠로의 얼굴 사이로 철삽의 머릿부분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고 잔쿠로는 잠시 제 콧잔등을 문지르고는 질린 표정으로 고에몽을 바라보았다.
"누누히 말했을 터인데, 싫어하면"
"그 전에, 카이지가 다쳤으면 어쩌려고…… 어?"
퍼석거리는 감각이 퍽이나 낯설다.
"짚 인형이군."
"어느 틈에…! 아, 쪽지."
"…우리끼리 손 붙잡고 오라는 내용이군."
기분 나쁘게스리. 잡지도 않은 손을 잔쿠로는 보라는 듯 털어보이며 제 옷에 닦기까지 했다.
"잘됐어. 이 참에 너를 이 삽으로 목만 내놓고 묻어주지."
"……."
"오늘 어쩌면 네 놈을 어딘가에 묻고 카이지에게 돌아갈 지도 모를 일이겠어."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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