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조각글

[디엘] Eternal

커뮤 엔딩 스토리 / 공미포 2,374

♬ : https://youtu.be/r_1TCcRIeyg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라

물론 많이 싸우겠지,

하지만 항상 누국가 곁에 있잖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트레이 파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카쉬파의 암투를 틈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게 되었고, 우연한 계기로 아라드로 내려왔다. 본래도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공국과 천계, 흑요정 왕국 등 발길이 닿는 곳이면 지체 없이 그쪽을 향해 떠났다.

 

수많은 일들도 있었다. 사도와 관련된 일들을 목격하기도 했고, 힘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적들을 토벌하기도 했다. 아주 가끔 공국을 포함한 국가적인 의뢰를 맡기도 했었지만, 대부분은 개인적인 의뢰를 해결하는 편이었다. 모험가이면서 동시에 해결사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평소처럼 의뢰하던 도중, 기시감이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 의뢰를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덕분에 어딘지도 모를 이상한 미로에 갇히게 되었다. 노아라는 작자는 누군지도 모르겠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들도 많이 보았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잔혹한 광경도 많이 보았지만, 운이 좋아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 미로 속에서 수많은 이들을 만났다. 다양한 전투방식, 그리고 높은 경지를 깨달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음을 그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살아온 세상을 듣기도 했고, 배울 점이 많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물론 함정 덕분에 죽을 뻔한 위기를 수도 없이 겪기도 했었지만, 그 또한 모험담 중의 하나가 될 것이 분명했다.

 

사소한 모험담은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곳에서 떠나기 전, 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인연이 닿으면 언젠간 다시 만나자.”

 

그 약속을 남기고는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마계. 그중에서도 퀸즈 지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살을 파고드는 냉기에 잠깐 몸을 움츠렸다. 굳이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는 이곳이 고향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가족들을 떠나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도착했네.”

 

퀸즈 지역 중에서도 가장 외곽지역에 위치한 리지우드에 도착하고는 익숙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함께했던 곳이었다. 풍족하게 지내지는 못해도 짧게나마 버티기에는 괜찮은 곳이었다. 적어도 화이트 스톤보다는 덜 추웠으니까.

 

물론 어릴 때는 이곳조차도 춥고 무서웠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걸 보니 시간이 제법 흘러 무뎌지고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밀려와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가족들을 곧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근처니까 금방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했다. 진짜 목적지는 그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산속이었다. 적당하게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목적지가 보였다. 발걸음을 옮겨 그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야, 여전히 그대로구나.”

 

투박한 돌로 겹겹이 쌓아 올린 세 개의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두 개는 부모님의 무덤, 옆에 작은 무덤은 어린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난 누나의 무덤이었다. 자세를 낮춰 무덤가에 앉았다.

 

“그동안 잘 지냈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감정이 북받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다시 가족들을 마주하는 날엔 아무렇지 않게 인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의 악몽들이 떠올라 눈을 감았다.

 

나를 구하려다 마족들에게 몸이 꿰뚫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부모님,

끝까지 나를 지키려다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누나,

한쪽 눈을 잃고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홀로 남겨진 공포가 더 끔찍해 발악하던 그날.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기 전, 잠시 머릿속을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흘렀을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그날의 아픔과 기억 때문에 씁쓸함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먼저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후회하고 기억을 끄집어내 봐야 변하는 건 없었다. 알고 있다, 그 정도는.

 

먼저 떠나간 이들의 삶을 대신해 여태껏 살아왔으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죽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살아남고, 피할 수 없으면 끝까지 저항하고 삶을 마무리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을 위해 모험담을 그렇게 모아왔던 걸지도 모른다.

 

“하하, 나 이제 이야기 시작한다?” 

 

그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겪은 모험담을 하나, 둘 늘어놓았다. 모험을 떠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했던 일들을 늘어놓았다. 그와 동시에 의뢰를 해결하며 가장 뿌듯했던 이야기들도 털어놓았다. 가장 최근에 발을 들였던, -사실은 강제로 끌려들어 갔던 곳이지만.- 미로에서 소중한 인연들도 많이 만났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귓가에 들려오는 반응도, 질문도 하나 없었지만. 익숙했다. 아무튼, 그런 건 상관없었다.

 

“어때, 내 이야기. 재밌었어?”

 

내심 대답이 들려오길 기대했지만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적막감이 맴도는 가운데 괜히 씁쓸함이 더해져 마음이 아려왔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겨보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주시던 부모님, 그리고 기초적인 마법을 알려주며 마법사의 길을 걷게 해준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서늘한 공기 위로 짙은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슬슬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깔끔하게 다듬어진 돌을 세 개를 주웠다. 그리고는 무덤 하나에 한 개씩 올리며 눈을 감고 기도했다. 이 땅에서 잠들고 있을 당신들이 조금이나마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당신들이 살아생전 이어가지 못했던 삶을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음에 돌아올 땐, 더 멋진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때까지 편하게 쉬어.”

 

몸을 돌려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는 와중에도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면 미련이 남아 발목을 붙잡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손을 허공에 뻗어 텔레포트 마법진을 만들었다. 다시 모험을 떠날 차례다. 나는 모험을 계속 떠날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내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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