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20

how can i tell?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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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멍청한 시선이.

임이쥔은 멍청하단 표현이 기껍지도 고깝지도 않았다. 손에 쥔 옷자락의 천은 땀을 잘 흡수하고 미끄러지는 재질이었다. 자꾸 흩어지고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 빠져나가. 고개는 들 수 없었고 우는 대신 이쥔이는 네가 많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멍청하다. 그러면 불쌍하구나. 그 어떤 동요도 일지 않았다. 불쌍함은 그 정도였다. 말하자면 날이 서 있고 직역하자면 불행했고 오역하면 아주 괜찮은, 임이쥔 너를 살려 주겠다느니 하는 선배의 눈길은 얼굴을 덮은 머리칼에 부딪혀 부서졌다. 불쌍해요.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것은 제 자신에게 말을 잘 걸지 않던 습관 탓일 거다. 그랬다. 네가 아니라 내가 불쌍했다. 큰 키에 누가 봐도 예쁜 외모 운동까지 꽤 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참패인 것이다. 첫사랑부요? 낭만의 로망스 로맨티시즘 임이쥔은 그 때 제 자신이 너무나도 둔해서 아무 것도 찌르지 못한다고 스치듯 사고했다. how can i tell? 말하자면. 말하자면 임이쥔은 아무것도 몰랐고 사랑의 감정을 인식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져가고 있다는 걸 비로소 감각했다는 거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지만 언젠가 했던 수영의 음파법이 떠올랐고 체리맛 틴트가 밀려왔다. 맛있었다. 이쥔이가 똑똑했던 적은 없었지만 그 땐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서 진심이 아니라는 것에 진심이었어서 한없이 어리석었다. 언어가 사탕처럼 톡톡 끊어졌다. 임이쥔은 앞에 서 있는, 이제 등을 돌린 선배를 사랑한 것도 몰랐다. 바람도 숨을 쉬지 않았다.


너의 말을 이 곳에 인용해서, 그러면, 그러면 무언가 되기라도 한다는 건가?


이쥔이는 문득 고백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재작년 겨울. 눈이 왔고 둘 중 하나는 울고 있었다. 그건 임이쥔이었다. 틀림 없었다. 아주 엉엉, 펑펑 울었고 마치 연례행사나 인생의 과업이라도 달성하고 있는 기분이었더랬다. 그러니까 그건 흉내였다. 따라하다 보면 이게 사랑인가 싶었다. 너는 예뻤고 눈은 하얬고 공기는 차가웠으니까. 이쥔아. 무언가 담뿍 담긴 말을 들을 때부터 눈물이 차올랐다. 이쥔아,... ... 그건 나 너 좋아해보다 더 콱 박히는 표현이었는데. 떠올려지지 않았다. 당연히 이쥔이는 눈치채지 못한 바였고 그래서 너의 품에 안겨서 끅끅 울었던 것만 기억했다. 치마 아래 받쳐 입은 체육복 바지가 구겨져 뭉쳐 있어서, 그걸 빼면서 얼굴만 혹은 감정만 지어 먹은 너에게 눈물 콧물 묻혔다. 그게 이쥔이의 진심이었다.


더 이상 진심을 갖고 싶지 않았다. 사랑해본 적도 없었지만 사랑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면 자기는 너무 아파서 죽어버릴 걸 잘 알았으니까였다. 아마 겨울날 귤을 까먹으며 보았던 드라마에서 느꼈던 것 같다. 고요한 눈 내리는 소리. 지나치게 난방되고 있는 방 오래된 티비에서 몇 시간째 재방해주고 있던 드라마를 보면서 이쥔이는 알았다. 너는 나를 사랑했구나. 그리고, 혹은 그래서 너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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