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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르데 비사흐

Atarde bisah アタルデ · ビサフ

자서전? by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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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 관계가 수상해⋯.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아니면 실제로 그 예상이 적중했던 경험은?

직장에서, 거리에서, 또는 집에서 즐겨보는 미디어 매체의 한 장면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풍경을 보고 그 안의 인물들이 풍기는 미묘한 기류를 감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라 뭐야, 설마 사귀나?”, “너네 그런 사이야?” 하는 클리셰는 생각보다 흔하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종종 있다.

그 파급력은 특히나 대상이 세간에서 언급될 때마다 제법 큰 파장을 가져오는 소위 ‘유명인’ 혹은 ‘소문 속의 인물’일 경우 더 커지는 법인데, 여기에서 만약 이 대상이 ‘세상을 구한 소문의 빛의 전사’라고 한다면?

과연 얼마나 재미있을까. 분명 세상이 떠들썩해질 것이다.

이번에 만나볼 사람은 과거- 현 빛의 전사라 불리우는 비에라족 모험가의 옛 인연 중 하나였다고 주장하는 모험가 L씨다.
그는 그 수상한(아니다.) 4인조 일행에서 공격수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미흡한 실력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던 차, 이 글의 주인공으로부터 단비같은 도움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단비같은 도움이 대체 뭔데?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실력으로 인한 스트레스라면 대부분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과 입장에 대한 부채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 아니던가.

물론, 이만하면 눈치챌 수 있겠지만 취재의 대상은 그가 아니다. 오늘 취재할 대상은 바로 아타르데 비사흐.
최근 에오르제아에 존재를 드러낸 비에라족 모험가이며, 세간에 떠도는 소문의 빛의 전사, 새벽의 영웅, 희망의 등불.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 누구보다 열렬히─ 자신의 가장 먼 별에서.
운명으로부터의 승리를 거머쥔 모험가의 노고를 치하하며.

아타르데 비사흐는 동주 오사드 소대륙 ─스카테이 산맥 부근의 작은 숲에서 태어났다. 장수하는 종족으로 유명한 비에라족에, 누구보다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체질이지만 그의 나이는 고작 42세-고작?-로, 비에라족의 평균적인 끝수명으로 헤아려볼 때 상당히 젊은 편에 속한다. 물론, 비에라 족의 연령체제가 타종족과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현재로써는 없는 것으로 보아 마흔 둘이라는 연령에서 우러나는 지혜의 깊이는 분명 남다를 것이다.

건네받은 사진에는 각기 다른 모습의 아타르데 비사흐가 있었다. 어느 장면에서는 여성, 어느 장면에서는 남성의 신체적 특징을 지닌 긴 머리의 비에라족으로 등장하고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집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면 그건 역시나 푸근해보이는 옅은 밀색의 머리칼, 그리고 차분한 인상의 독특한 오드아이 이다. 감이 잘 오지 않는가? 좋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자.


오늘의 잡상식 코너 ─ 사람을 더 잘 인식하게 만드는 것 ─

───── 이미지로 누군가의 인상을 파악하는 경우 가장 눈에 많이 익는 케이스는 다름아닌 ‘채도’와 ‘색조’인데, 말 그대로 그 인물을 구성하는 색상이 마치 그를 대변하는 것처럼 강렬하게 각인되고는 한다.
처음 시각에 인식되는 가장 거대한 것은 바로 그 인물의 세세한 디테일이 아닌 전체적인 형태이고, 그 형태를 구성하는 가장 큰 것은 면이며, 색이야말로 그 면 하나하나를 가득히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지.

가상 매체에서는 주로 강렬하고 활동적인 인상을 강조하고싶은 사람에게 짙거나 따뜻한 느낌을 주는 쨍한 온색 계열의 팔레트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와 반대로 차분하고 내성적인 인상을 강조하는 경우 대부분 희미하거나 차가운 느낌을 주는 한색 계열의 팔레트가 사용되는 것도 이 이유에 기반한다. 각 색이 보여주는 인상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하나의 인물을 매력적으로 꾸며내는 것이다.

이 이론을 응용하여 ‘차분하지만 상냥한 ’ 계열을 나타낼 때 가장 자주 보이는 것이 ‘부드럽고 포근한’, ‘어디에나 스며들 수 있을’, ‘희미하지만 존재감 있는’⋯ 이미지의 색상인데. 쉽게 말하자면 그거다. [ 봄의 따스한 햇살같은 밀색 머리칼에 녹색 눈동자를 곁들인 다정한 서브 주인공 ]계.

이상, 오늘의 잡상식 코너 -사람을 더 잘 인식하게 만드는 것- 이다.

물론 아타르데 비사흐는 조금 다르다. 그의 외양은 전체적으로 채도가 무척이나 옅은데, 늦가을의 밀밭을 연상시키는 팔레트가 유난히 돋보이는 독특한 인상의 비나 비에라족인 그는 두꺼운 눈썹과 처지지 않는 무심한 일자형 눈매가 오묘한 분위기로 돋보였고, 연하고 탁한 코랄색을 지닌 입술은 빛을 받아도 아름답게 반짝이는 일 없이 부드러운 광택만을 유지했다. 머리카락은 아름다운 밀색이지만 마치 숨을 한 차례 죽인 듯 마른 잿빛을 품었고, 투명하고 새하얀 피부 너머로는 붉고 푸른 혈관이 언뜻 희미하게 엿보인다.

존재감이 크지 않은 것이 오히려 크나큰 특색이 되는 특징들인데, 심지어는 양 눈의 홍채조차 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왼쪽에 부드러운 밀밭의 색, 오른쪽에 연한 회색빛을 품어 어렴풋한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기본 인적사항

  • 이름 [ 아타르데 비사흐 ]

  • 나이 [ 마흔 둘 ]

  • 직업 [ 기공사 - 건브레이커 - 현자 / 그리고 세월을 낚는 어부 ]

  • 종족 [ 비나 족의 비에라 ]

  • 소속과 직위 [ 흑와단 - 대위 ]

  • 신장과 체중 [ 2.1 얄름, 개인의 사적 신상 보호를 위해 검열됨 ]

  • 좋아하는 것 [ 모험과 캐모마일 차 ]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아타르데 비사흐는 신비로운 사람이다. 상술한 외관의 이미지는 분명 ‘얌전하거나 초연한’, ‘조용하고 과묵한’, ‘지적이고 상냥한’ 인상이 두각을 드러내는데, 그는 아주 간단하게 그 예측들을 뛰어넘었다. 마치 타인의 상식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처럼.

아타르데 비사흐는 자신이 지닌 장점이 무엇인지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가장 큰 특기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모험심과 호기심, 그리고 그를 뽐낼 용기를 바탕으로 모험을 시작했다. 성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는 이지만 -일단은- 비에라족 여성이라는 바탕이 존재했으므로, 그는 바라기만 한다면 원하는 만큼 성지에 자신의 몸을 의탁해 생활할 수 있었다. 안정적이며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만끽하며 온전한 터전을 보존하고 살 수 있었음에도 그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소리다. 그 과거에 어떤 바탕이 존재했는지까지 알 수는 없으나, 양식서에 기재된 그의 행동양상, 성향, 그리고 추억의 단편들에서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안정적이고 따스한 보금자리가 아닌, 내일로 향하는 미지와 모험이라고.


─인터뷰 대상자인 L씨가 말하기를, 아타르데 비사흐와의 만남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험이었다.
아타르데 비사흐는 호전적인 사람이다.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어쩌면 세상 그 자체 에게까지 그렇다. 반발적이라는 것과 도전적이라는 말은 그 의미가 무척이나 상이한데, 아타르데 비사흐는 높은 확률로 후자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더 높은 것에 도전하고 그를 정복하는 데 열정이 있고, 발전해가는 자신의 성취에 따라 더 많은 것을 눈에 담고 경험하며, 어려운 상황에 몸을 내던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위기가 다가올 수록 고양감이 끓어오르고, 그 거대한 난관을 뛰어넘으면 그는 한층 더 거대한 존재로 성장한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그야, 그 정도 되는 실력자가 굳이 ‘실력이 미흡하여 제 역할조차 해내지 못하는’, 일명 ‘무능한 리더’ 아래에 자발적으로 들어올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아타르데는 고행의 길을 선택했다. 잘 닦인 길을 걸어가는 것만으로는 무엇도 그의 마음을 충족시켜줄 수 없다. 하물며 새로운 동료를 찾는 일에서는 더욱 그랬다. 아타르데는 동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세간에 나도는 소문 속의 주인공들- 전설의 용병이나 사냥꾼들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몸값의 문제가 아니다. 그야⋯. 너무 뛰어나기만 하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해프닝도 없고 사건도 없겠지. 그런 걸 감히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 안정성을 보장받을지언정 미지로의 모험이 가진 특유의 불안정성과 흥미는 찾아볼 수 없이 사라지게 된다. 설렘도, 두려움도, 기쁨도, 후회도, 성취감과 고양감도 없다. 그런 건 모험이라 부를 수 없지.

게다가 소위 말하는 ‘몸값이 비싼’ 모험가들은 비록 그 능력을 다양한 곳에서 인정받았을지언정, 그 출중함 탓에 초심을 잃고 쉽게 자만에 빠져 일을 그르치기 십상인데⋯⋯. 어쩌면 아타르데는 거기까지 바라보았던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부러 미숙한 모험가를 잡아 성장시킨 뒤 자신의 야망적인 계획에 동참시키고- 성불시키는 것에서 성취감과 정복감을 느끼거나.

L씨는 그 사실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 L씨는 리더의 경험이 전무했다. 경험이 없으니 당연히 미숙했고, 리더로서 카리스마를 뽐내기는 커녕 사사건건 파티원들의 결정에 휘둘리거나, 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지 못해 위험에 빠지는 경우도 허다했겠지.

그럴 때마다, 그의 곁에는 아타르데가 있었다. 아타르데는 그런 모험가 L씨를 무능하다 타박하거나 내치지 않았다. 되려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뼈가 되는 조언을 심어주며, 살이 될 전술적 지혜를 덧붙여주고, 피가 될 팀원들과의 조화- 그리고 화합을 위해 관찰충고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의 열정적이고 자상한, 한켠으로는 도전적이었던 친절이 L씨에게는 무척이나 인상 깊게 남아있었다.

는 사람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내뱉는 말에는 확신이 있었고, 동작 하나하나에는 망설임이 묻어나지 않아 기개가 넘쳐났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동료들에게 신뢰를 안겨주며 사기를 불러일으키고, 끝내 그것이 자신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을 확신하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대담하고, 우직하며, 강인하고, 강렬했다. 그 누가 그에게서 감히 눈을 뗄 수 있었겠는가. 당연한 수순처럼─ 결국 L씨도 그러했다.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그가 이끄는대로 걸음하며 나아져가는 자신을 보았다. 마치 호수에 떨어진 나뭇잎이 파문을 일으키는 것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L씨는-편집자는- 생각했다.
과연 이런 사람이 어디 나 포함 한둘일까. 아마 누구라도 그가 멋있다고 생각할거야.
그리고 그 예상은 어떤 의미로, -L씨에게 있어서는- 가장 최악의 방향이 되어⋯, 실현되었다.

이 일로 인해 모험가 L씨가 사무실에 비안카 노스의 뒷조사 경위까지 불게 되며-
이 문서들이 갈갈이 찢겨나가는 건 결국 나중의 이야기.

To Be Continued⋯⋯.


그는 개척자이자 모험가다.

잘 포장된 도로보다는 날카로운 돌의 파편들이 가득한 흙길을 잡아 걸으며, 누군가 그 자리에서 발을 헛딛거나 쓰러져 울고 있다면 다가가 함께할 것을 제안하고, 어째서 이런 길로 흘러들어왔을지에 흥미를 갖게 된다. 약한 것들이 자신의 분수에 맞지도 않는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면 둘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세상에 떠밀려 자신의 운명에 굴복 또는 순응했거나, 그만한 야망이 있어 도전-저항-하고 싶었던 거다.

아타르데는 운명에 굴복하기를 싫어한다. 깔끔한 길을 걷고, 성지를 지키며 수백 년의 전통을 이어가는- 그러기만 한다면 언제까지라도 순항할 수 있을 자기 부족의 삶조차 마다할 정도로. 생각해보라. 숲 속의 삶은 아름답다. 울창한 녹음이 만들어낸 그늘 아래서 따가운 태양빛을 피하고, 사랑스러운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전통이 만들어낸 안정감 속에 숨어 살며 안락함을 손에 쥐고, 갈등과 아픔조차 묻어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그 너머에서 다가오는 위협과 풍파로부터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아픔을 알고 자신의 실수와 안일함을 깨달은 자들만이 진정으로 강해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 그러니 만약, 그 쓰러진 이가 자신이 찾던 '진정으로 강한' 동료라고 한다면⋯⋯. 흙 묻은 손 한 번 잡아주는 것이 무어가 아까울까. 그 이후에는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기꺼울-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은 발전이 존재할 것이고, 자신은 그의 첫 관측자가 되지 않겠는가. 아타르데는 그러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다. 타인이 내딛는 발자취는 언제나 자신에게 미지의 영역이고, 그 영역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관측자가 되는 영광을 얻는 것은- 무릇 미지를 탐구하는 자들의 깊은 꿈이기도 하니까. 자신의 꿈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을 수 있었다. 아무도 갖지 않으려 하는 보석을 갈고닦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공예품으로 다듬을 기회를 허무하게 저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타르데는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꼈고, 자신이 모르는 미지에 손 뻗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 길들이는 것에 많은 기대감을 품으며, 재미를 느꼈다. 그 사실을 뒷받침하듯 L씨가 서술하는 바에 따르면- 아타르데는 현재 샬레이안의 고유 마법술식 중 하나인 현학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현학을 주류로 다루지 않았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상당히 많은 무기들을 다룰 줄 안다는 평을 받는다. 당장 손에 꼽는 것만으로도 건블레이드, 기공병구, 현학도구 등인데⋯. 단순히 이전에 사용하던 무기가 질려서일지도 모르지만, 세상과 함께 나아가며 발전할수록 달라지는 그의 심상과 신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담으로, 당연히 그런 거친 생활을 거쳐온 만큼 그의 몸에도 다양한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장비를 교체하기 위해서나 여러 이유로 탈의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못 보던 흉터나 멍자국이 하나씩 늘어나 의문스럽다⋯고는 하지만.

글쎄요. 의문스럽다기엔⋯,
당신. 이미 다 알고있는 거 아닙니까? 표정이 굉장히 껄끄러워보이시는데요?⋯⋯.
예?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요? 뭐 이런 막무가내가 다 있습니까?


새장 안의 새들은 너머의 세상을 동경하기 마련. 하지만 모든 새들이 그렇지는 않는다. 새장 안의 안락한 생활이 좋고, 자신을 옭아매는 이 구속이 자신을 지켜주는 것임을 알고 의존하기도 하지. 어쩌면 아타르데 또한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아타르데는 언젠가 자신의 손에 나뭇가지 하나만을 쥐고 세상 밖으로 뛰어들었다. 가족들과 마을에서의 추억에 작별을 고하고 발을 내딛는다. 자신이 우리 안에서 머물며 배워온 것들만으로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너무도 넓고, 험하다는 것을 어린 나이부터 깨달았던 탓일지도.

아무리 잘 벼려진 칼이라 한들 시간이 지나면 제 빛을 잃기 마련이다. 나뭇가지는 부러지고, 칼은 무뎌지고, 총은 화약 냄새만 가득한 고철덩어리가 되었다. 언젠가는 제대로 된 무기를 마련하기도 전 싸움에 휘말려 주먹을 내지른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아타르데의 앞에는 자신이 쓰러트린 강적이 있고, 아타르데는 그 순간 충만감을 느꼈다. 더이상 그늘 속에 숨어 살던 나약한 자신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모험으로부터 다가오는 기대감을 깨달았기 때문에.

세상은 다양한 것들로 이루어져있다.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때마다 아타르데는 그것이 자신의 양식이 될 것을 알고 기대에 휩싸였다. 이곳에서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떤 만남이 있을까, 나는 어디까지 강해질까.

아타르데는 자신의 야망마저 정복해낸 사람이다. 잠깐의 혼란과 충동에 휩쓸리지 않고- 그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냉철하고 이성적이게 판단하며, 모든 사건과 흐름을 자신의 욕망에 충실히 설계하고, 이해득실을 확실히 하며 자신에게 이로울 일에 있어 투자를 아끼지 않고, 난관이 찾아오거든 그것을 자신의 발판으로 삼는다. 그렇기에 더욱 고양감을 온전한 희열로써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아타르데는 이제 더욱 넓은 곳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작기만 했던 몸은 이제 사냥감의 몸에 날을 쑤셔박을 수 있을 정도로 단련되었고, 쉬이 상처나던 여린 피부는 자신의 훌륭한 갑옷이 되었다. 그는 아픔을 모르거나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그조차 자신의 양식으로 길들여 나아가는, 그러한 모험과 미지, 아픔마저 자신이 넘어서야 하는 벽으로 만들어 수행하는,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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