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극

명일방주 라플텍사

바다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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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극본 형식, 인게임 대사 일부 인용 有, 사이드 스토리 '시라쿠사인' 스포일러


#?? 빈 무대 위

모든 조명이 암전된 무대. 무대 위에는 조악한 세트장이 설치되어 있다. 시라쿠사의 길거리를 모방했으나 그것이 가짜임이 명백하게 보인다. 무대 가장자리에는 무대 소품들이 들어있을 법한 상자들이 난잡하게 쌓여있다. 라플란드, 암전된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들어온다. 무대 전체를 비추는 희미한 조명이 켜지고, 위에서 아래로 비추는 강한 스포트라이트가 라플란드만을 따라다니며 비춘다.

라플란드, 최대한 과장된 몸짓으로 무대를 천천히 돌아다닌다. 한 바퀴 빙글 돌기도 하고, 팔을 허공에 휘젓기도 하다가, 우뚝, 무대 한가운데에 멈춰선다. 이내 관객석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라플란드 이걸 이길 수 있는 연극이, 존재할까?

 이 망할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상연되고 있는 군상극을 이길 연극 말이야.

 너도, 나도 세상사에서 놀아나는 배우일 뿐이지….

라플란드, 가볍게 소리 내어 웃는다. 광기 어린, 그러나 절제되어있는 웃음이다.

 라플란드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사람이라고 생각해?

 대답이 어떨지는 - 잘 알잖아?

 이 연극의 극작가는 나야. 그리고 연출가, 또 원한다면, 그래!

 뭐라도 할 수 있어. 뭐라도 꾸며낼 수 있고, 뭐라도 연기할 수 있지.

 '내가' 원한다면 말이야.

라플란드, 무대의 세트장 패널을 하나 무너뜨린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처럼 보이는 패널이 힘없이 뒤로 넘어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본다. 이내 다른 세트장도 무너뜨리다가 무대 위가 난장이 되고서야 멈춘다. 이내 다시 무대 온갖 곳을 돌아다닌다. 마치 무너진 세트장을 보여주려는 듯이.

 라플란드 이거 봐, 전부 내 손에 들어와 있잖아? 하하하!

 사람들은 이 세상이 즉흥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조금만 손을 대면….

 결국엔 짜인 극본대로 흘러가기 마련이야.

 그래, ‘나의’ 극본대로.

라플란드, 넘어져 있는 세트장의 인물 패널들을 쪼그려 앉아 내려다본다.

 라플란드 등장인물들은 내가 건드리면 분노하고, 웃고, 공포에 떨기도 하지.

 바보 같긴….

 

이내 일어나 발로 툭 차버리고는 무대 가장자리에 쌓여있는 상자 위에 걸터앉는다.

 

 라플란드 나는 내가 쓴 극본 안에서 살아가는 거야.

 나는 내가 원하면 선역도, 악역도, 조력자도, 방해꾼도 연기할 수 있어.

 연기하는 것도, 조종하는 것도 전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라고.

 가끔은 너무 예상이 잘 가서 탈이기도 하지만.

 

라플란드, 상자 위에서 뛰어내리듯이 내려온다.

 

 라플란드 그런데…

 가끔은 내 손에서 벗어나는 배역이 있어.

 내 예상을, 벽을 부숴버리는 등장인물….

다른 인물의 목소리가 무대 밖에서 흘러나온다. 라플란드의 회상임을 암시하듯, 목소리는 반향으로 울려 퍼진다. 라플란드, 무대 가운데보다 조금 뒤쪽에서 위를 올려다본다. 스포트라이트, 라플란드가 아닌 텅 빈 무대 한가운데를 비춘다.

 ■■■ (회상) 날 용문으로 돌려보내 주기 위해 그동안 ‘최선을 다해’ 준 거 고마워.

 하지만 이미 결정했어.

 이 나라에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하고, 도와줄 가치가 있어.

 라플란드 …하하…

 ■■■ (회상) 단지 몇 사람이 그린 공상은, 내가 과거와 다른 답을 선택하기에 충분해.

 라플란드 하하하…

 

 ■■■ (회상) 너는 내 친구이기도 하고, 적이기도 해.

 라플란드 하하하하하!

 

스포트라이트, 다시 라플란드를 비춘다. 라플란드,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간다. 이내 희열에 찬 목소리와 표정으로 다시 독백을 이어간다. 시선은 여전히 위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다.

 

 라플란드 극작가의 손에서 벗어나는 등장인물이라니!

 예상을 벗어나서, 벽을 깨고, 나를 깨부수러 오다니….

 내 세상을 계속해서 깨부술 주인공은, 그래,

 저 녀석밖에는 없어, 너밖에는 없다고, ■■■*!

 

라플란드, 다시 한참을 소리 내어 웃는다. 여전히 광기 어려 있으나 이번에는 절제되지 않은 웃음이다. 이내 웃음을 멈춘다. 마치 웃다가 지친 듯이 - 그러나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없다.

 

 라플란드 그래, 너밖에는 없어….

 

라플란드, 무대 중앙에서 벗어난다. 스포트라이트, 움직이지 않고 계속 무대 중앙에 머무른다. 라플란드는 멈춰있는 스포트라이트의 반경만을 맴돈다.

 

 라플란드 그렇지만, 너도 나한테 조금은 놀아나 줘야 하지 않겠어?

 결국, 이 모든 건 내 극본이니까.

 하지만, 난 항상 네 친구일 수만은 없어.

 그러니, 친구, 적….

 

라플란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곳 바로 뒤, 어둠 속에서 멈춰선다.

 

 라플란드 어느 형태로든,

 내가 원하는 형태로.

 다시 만나자, ■■■*.

 

라플란드, 가벼운 웃음소리를 내며 퇴장한다.

 

무대, 암전한다.


* 이 부분은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만 크게 움직인다.


20241028

공개된 시네마틱을 보고 너무 감격하여… 내렸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라플란드가 텍사스에게 열광하는 그 지점을 참 좋아합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메타픽션 캐릭터라니, 극본가에게 얼마나 짜릿한 캐릭터일까요...

텍사스가 라플란드에게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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