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마주볼 수 없어서

GL / 1차 창작 / 단문

포말 by 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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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 1차 샘플용 단문입니다.


툭 떨어지는 눈물에 감히 손을 뻗을 수조차 없었다. 하얗고 동그란 뺨이 하염없이 젖어들어 가는 걸 무력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제 신세가 구르는 낙엽만도 못했다. 배를 가르고 들어오는 칼날에 마치 불에 덴 듯한 격통이 온몸으로 빠르게 퍼져갔다. 가쁘게 호흡해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씨, 아씨….

입을 벙긋거릴 때마다 목소리 대신 듣기 싫은 소리가 말이 되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졌다. 시린 입김이 눈앞에서 소리치는 아씨에게 닿기도 전에 모습을 감췄다. 몸부림치는 아씨의 뺨이 철썩 소리와 함께 올려붙여 졌다.

휙 돌아간 뺨은 순식간에 울긋불긋 부어올랐다. 주인어른과 마님께 매질을 당해보긴커녕 나뭇가지에 스치기만 해도 우는소리를 하던 아씨였다.

“네년이 정신을 못 차리고 계집종을 싸고돌아!”

“제가 원했던 거예요, 아버지! 저 애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지금이라도 제발 의원님댁에 데려가게 해주세요, 네? 아버지, 잘못했어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 아버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비는 아씨의 모습에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바닥을 긁었다. 자꾸만 눈이 감기는 걸 버티고 땅을 기어도 아씨에게 닿지 않는 손이 야속했다. 우리는 이토록 닿기 어려운 거리였나요, 아씨. 아씨의 검은 머리를 빗어 드릴 적에는 둘도 없이 가까웠는데 말이에요.

커흑, 헉…. 쏟아지는 피와 내 몸의 부산물을 질질 끌며 주인어른의 다리를 붙잡자 이미 가눌 수 없는 몸에 지독한 매질이 이어졌다. 아씨, 도망가세요. 어서요.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꼼짝없이 혼인하셔야 해요. 싫다고 마구 우셨잖아요.

하늘을 찢어버릴 것처럼 비명을 지른 아씨가 내 몸 위로 몸을 날리자 정신없이 날아들던 발길질과 매질이 우뚝 멎었다. 차라리 저를 함께 죽이라며 소리치는 아씨의 절규에 “또, 또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셔요!”하고 언젠 가의 평화롭던 그날처럼 소리치고 싶었다.

납작한 등에 닿는 아씨의 부드러운 살결이 너무도 따뜻했다. 그 귀한 비단 솜이불에 나를 몰래 들여 함께 담소를 나누던 때가 떠올랐다. 내 어깨를 토닥이던 손길에 까무룩 잠들었던 그때처럼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아직 해야 할 말이 많은데.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몸이 식어간다. 아씨가 어서 따뜻한 방에 드셔야 할 텐데. 내 더럽고 찬 몸에 닿아서 좋을 게 없는데.

아씨, 죄송해요. 눈이 자꾸 감겨요. 다음 세상이 있다면 제가 먼저 가서 기다릴게요. 아이로 태어나시든 강아지로 태어나시든 돌멩이로 태어나시든 제가 모시고 넓은 세상을 함께 돌아다니면 좋겠어요. 항상 궁금해하셨던 세상에서 두 손 잡고 함께 노닐어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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