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의 너_ 1

프롤로그 & 좋아한다는 그 말

**

 

 "우리 오랜만에 같이 바다 가자."

 "지금 많이 추울 텐데, 괜찮겠어?"

 

 벌써 공기가 차가워 공기에 볼이 얼 것만 같은 겨울. 12월이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추운데,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바다는 더 차가울 날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너와 같이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

 

 "응. 바다 보고 싶어."

 "그래, 얼른 따뜻한 옷 챙겨와."

 

 

간단하게 옷을 갈아입고 버스를 통해 도착한 바다엔 끝없이 펼쳐진 물이 차가운 바람에 잔잔하게 흔들리며 따뜻한 노을빛을 반사해 반짝이고 있었다.

 

 "바다는 역시 이 시간대가 가장 예쁜 것 같아."

 "너 할 말 있어서 온 거지? 그냥 말해도 돼. 계속 고민하지 말고."

 

 정답이다. 실은 너를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사이를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온 바다였다. 처음 너를 좋아한다고 깨달았을 때와 지금의 마음 크기는 너무나도 달라져 버렸다. 이대로라면 이 마음이 작아지거나 없어지기는커녕 계속 커지기만 할 것이다.

 

 계속해서 커지는  이 마음을 나 혼자 안고 가기엔 너무나도 무겁고 불편했다. 그래서 이 마음을 풀어버리기 위해 너에게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걸 오랫동안 고민하면서도 쉽게 말하지도 못하고 이렇게까지 타이밍을 기다리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너는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나를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 말해야 한다고 계속 다시 생각하며 되뇌임에도 정작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니야. 없어."

 

 많은 생각이 순식간에 지나간 후 나의 대답은 내 마음을 무시하는 거였다. 결국은 처음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미소 지으며 거짓말을 숨기려 했지만 나를 나보다 잘 아는 너에겐 역시 불가능인가 보다.

 

 "나중에 말해도 되니까 천천히 생각하고 정리되면 말해."

 

 배려심 넘치는 그 모습에 과연 난 언제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응. 그럴게."

 

 한걸음, 또 한걸음.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흘러내리는 모래 위를 얼마나 오랜 시간 걸었는지 아까의 노을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달빛과 가로등빛만이 우리를 비추게 됐을 때, 오랫동안 걸은 그 시간 동안 조용히 계속 고민하여 말하기로 결심하였다.

 

 좋아한다고 말해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멈춰 섰다. 멈춘 나보다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던 너에게서 겨울바다의 차가운 바람과 함께 날 편안하게 만드는 익숙한 향기가 내 뇌로 스며들어왔다.

 

 "준비는 됐어?"

 

 내가 멈춘 후에 천천히 걸으며 나와의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준 너는 자연스럽게 돌며 나에게 말했다.

 

 너를 오래 보고 좋아한 만큼 쉽게 나올 줄 알았던 말들이 너의 얼굴을 보자마자 누군가 내 목구멍을 막은 것처럼 말은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를 좋아하는 만큼 너로 인해 상처받기는 싫었나 보다.

 

 "미안. 역시 못하겠어."

 "그래? 그럼 얼른 와. 더 걷자. 걷다 보면 고민도 사라지겠지."

 

 사라질 수 있을까. 이대로 고민이 더 이상 커지는 것만 아니어도 다행일 것이다. 나의 눈을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조용히 웃음을 짓고 뒷걸음질로 걸어가는 너와 깊고 까맣지만, 하얀 달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바다는 날 계속 바다로 오고 싶게 만든다.

 

 "빨리 와. 조금만 더 걷자."

 

*

 

 "얼른 와. 조금만 더 걷자"

 "너 10년 전에도 그 말이랑 똑같은 말한 거 기억해?"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마냥 고등학생 같았던 너는 겉모습이 제법 성숙한 모습을 하고 어른이라는 느낌을 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서로 다른 일을 하며 다른 생활을 하게 되었음에도 넌 나의 곁에 있어 주었다.

 

 "아 그랬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네가 하도 머뭇거려서 답답했던 건 기억나네."

 

 넌 장난 섞인 말투로 아이처럼 웃으며 나를 놀리듯 말했다. 겉모습은 성숙해졌지만, 말하는 건 그때와 바뀐 게 많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언제 그렇게 머뭇거렸다고."

 

 한참 동안을 머뭇거리며 말을 못 했던 건 사실이었기에 난 머쓱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까 너 그때 내가 할 말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네가 나와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보내왔고, 그만큼 날 잘 알기에 알 수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궁금해져 질문했다.

 

 "너 항상 고민 있을 때마다 나 데리고 바다에 오잖아."

 

 의식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너와 바다의 조합은 계속 오랫동안 시끄럽게 머리에 맴돌아 스트레스받게 하는 고민들을 없애주고 오히려 날 기분 좋게 만들었다.

 

 "응. 그랬지. 지금도 그렇고.”

 "그래서, 너 결국은 10년 전 그 말 아직도 못한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들어보자. 대체 무슨 이야기였길래 아직도 못한 건데?"

 

 10년 동안이나 더 모르는 척하고 무시하며 지냈던 이 마음을 계속 안고 걸을지, 풀어버릴지 이제는 진짜 정해야만 한다. 이대로라면 널 그냥 이렇게 마주 보지 못할 것 같아.

 

 "해 지고 나면 다시 오자. 밥 먹고 걸으면서 그때 말해줄게."

 

 나는 또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오늘이 아니라면 이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없을 것이다. 지금이 제일 적절한 타이밍이다. 그렇기에 정말 말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만 할 뿐이었다.

 

 "10년이 지난 비밀을 드디어 듣는 거야?"

 

 내가 또 말해주지 않을까 봐 차분한척 하는 것도, 들뜬 것도 전부 다 보이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 너는 나에게 되물었다.

 

 "그러니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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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차가운 바다를 뒤로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카페에서 평소와 같이 서로의 일상생활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다시 그때와 같이 변하지 않은 차가운 바람이 불며 까맣고 반짝이는 바다 앞으로 나왔다.

 

 "이제 말할 거야?"

 "이제 진짜 말할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궁금해지네."

 

 너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엄청, 엄청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너를 이렇게까지 오래 기다리게 했다.

 

 너는 내가 말하는 데 불편하고 어색하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조금씩 걸으면서 귀를 기울여줬다. 그런 너의 배려에 오늘은 꼭 말하겠다는 생각을 다진다.

 

 "다연아."

 "응. 나 어디 안 가니까 말해."

 

 다시 한번 빠르게 머릿속에서 할 말을 정리하고 마음을 먹은 후 조용히 심호흡을하고 반짝이는 너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할 준비를 하고, 드디어 담아왔던 이 말을 한다.

 

 

 "정말 많이 좋아했어."

 

 

 다연은 잠깐 멈칫하더니 순간 바로 내 말뜻을 알아듣고는 다시 나에게 다급하게 말을 걸어왔다.

 

 "뭐? 잠깐,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다연의 표정과 말투, 행동을 보니 마음을 확실히 풀어줘야겠다. 그리고 저 표정은 날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다시 같이 이 바다에 올 일은 없겠구나라고.

 

 "미안해. 평생 숨기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너를 생각보다도 더 많이 좋아하더라고. 네가 나한테 이런 감정 가질 리 없는 거 아니까 말하기 힘들었어. 그래서 지금까지 미루게 된거야."

 

 봇물 터지듯 내 맘속에 있던 말들이 차근히, 또 빠르게 나왔다.

 

 "아니 그게 무슨.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이게 내가 이해를 제대로 한 건지."

 

 제대로 이해한 게 맞을 것이다. 날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당황한 듯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는 너에게서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먼저 가봐야겠다."

 

 너와 바다를 두고 뒤돌아 걸었다. 귀에 맴도는 다연의 목소리에 걷기만 한다면 무조건 다연에게 잡히겠다는 생각에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서하야 기다려. 기다리라고, 박서하!"

 

 다연이 나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눈물이 날 것 같아 도로까지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렸다. 가려는 나를 부르는 너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지만 멀게 느껴졌다. 이제는 너를 볼 수 없겠구나, 너와 함께 이 바다를 올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채웠다.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도로에 서 있는 택시를 타고 떨리는 목소리로 택시 기사님에게 주소를 말해주고는 시트에 머리를 기대 흐르는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창밖의 풍경에서 계속 네 생각이 나는 바람에 결국엔 눈물이 흘렀다.

 

내 손에 잡혀있는 휴대폰에서는 진동이 계속 울렸다. 밝게 켜져 있는 화면에는 네 이름이 계속 떠 있었고, 사라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박서하] 9시 54분

 [왜 그냥 가] 9시 54분

 [그게 무슨 소린데] 9시 55분

 [얼굴 보면서] 9시 55분

 [천천히 얘기하자] 9시 55분

 [제발] 9시 56분

 

 빠르고 다급하게 오는 너의 문자를 더 이상 보기 힘들어서 화면을 꺼 뒤집어 놓고 차 시트에 머리를 대고는 창밖을 보았다. 차 안에서 보는 밤바다는 비참하게도 너무 아름다웠다. 버리고 온 바다도, 너도 너무 예뻐서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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