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사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었군요,

(1)

나는 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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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염색체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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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선언을 끝으로, 나의 남성성에 관한 주장은 완전히 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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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쩔 수 없지. 나는 융통성 많은 성격이라 신체에 대한 변화쯤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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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앉는 거쯤이야 어렵지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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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은 사회적인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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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일 먼저 화장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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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10분이면 끝날 준비를 나는 적어도 한 시간 전에는 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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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일 때는 ‘그까짓 거 대충 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었지만, 역시 사회적인 시선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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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의 눈빛만으로도 ‘오늘은 화장을 안 하고 왔군.’이라는 생각을 읽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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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그랬다. 화장이 잘 되는 날은 자신감이 붙었다. 확실히 이뻐지니까 어쩔 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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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힘듦’은 이제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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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자가 되었어도 돈은 벌어야 했다. 하지만 휴직 복귀 후 일주일 뒤, 나는 사표를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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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찝쩍거림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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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플러팅 수준이면 속으로 욕하고 끝내겠는데, 신체적인 터치도 당한다는 것이 진짜 사람을 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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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자였어서 그런지, 그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내게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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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리 오늘 한잔 어때?’ 하면서 어깨동무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엉덩이를 툭 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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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그럴 때마다 공포영화를 보는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쫙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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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내가 남자였다는 사실도 신경 쓰이지 않나 보다. 어떻게 그 나이를 먹고도 아랫도리에 행동이 좌우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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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들이 가끔 나를 신경 쓰는 척, 힘든 일에서 배제하는 것도 결코 좋게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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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나는 사표를 내지는 못했다. 여기서 도망가면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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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나는 평소 친하게 직장동료와 한잔 술로 힘든 것들을 털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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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실수했다. [ ] 나는 걸레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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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두 문장 [ ] 사이에는 많다면 많은 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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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나는 직장동료와 잤다.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나에게 묻지 마라. 술이 원수라는 말밖에는 못 하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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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그 일이 어떻게 퍼진 건지는 모르겠는데, 사무실에서 나는 어느새 ‘걸레년’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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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얘기가 내 귀에까지 들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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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성인이 되어서 자기 신체에 대해 남들의 허락까지 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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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남자의 기준일 뿐이었다. 여자는 사회 통념상 조신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적 처벌이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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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도 없어서, 나는 그 소문을 퍼뜨린 당사자를 잡아서 족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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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범인은 안 봐도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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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같이 잤던 직장동료 새끼가 무용담처럼 나와의 일을 떠벌리고 다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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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입 좀 다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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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진원지를 파악하던 나는, 우연히 직장동료 A군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는 다른 여직원들과 얘기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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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중심은 ‘나’였다. 더 정확히는 내가 했던 짓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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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A군은 나를 변호하고 있었다. 오히려 여직원들이 나에게 예의 그 타이틀을 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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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몰래 들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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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직장 동료 중에 우리가 모텔에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어서 그(그녀)는 그것을 사내에 소문을 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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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문제는 A군의 특수성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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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군은 평소에도 능력과, 배경, 성격과 외모 등을 다 갖춘 덕분에 남신 그자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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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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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누가 가지나 내기하고 있던 와중, 갑자기 내가 나타나 그를 채간(?) 것이다. 당연히 그들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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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나를 밑바닥에 처박으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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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여직원들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들은 여자로서의 삶에 공감해 주며, 같이 울고 웃고 해주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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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에게 언니, 동생이라 부르며 정말로 친자매처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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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자신의 알량한 이익 앞에서는 친구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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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 뿐으로, 그들은 그저 나를 재밌는 장난감으로 여겼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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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진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리고 A군을 의심했던 것에 대해서는 미안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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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사건의 당사자인 A군이 적극적으로 나를 대변해 준 덕분에, 직장에서의 나의 평판은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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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실수’로 인하여 그와는 관계가 조금 소원해졌지만 어쨌든 감사 인사는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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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A군과 친분이 있었던 덕분에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좋아할 만한 조그만 선물을 준비해서 그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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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비효과처럼 일을 크게 만들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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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그만 선물이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하기 쉽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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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놈의 베어브릭 한정판을 구하기 위하여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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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였던 A군이 쉽게 살 수 있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기에, 이런 한정판 같은 것만이 그에게 유일하게 먹히는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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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워 보이는 그가, 소년처럼 이런 것을 모은다는 사실은 꽤나 친분이 있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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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그와 어울렸으니 아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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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노력 덕분에, 나는 이번에 출시된 페코짱, 포코짱을 간신히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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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예쁘게 포장한 다음, 그에게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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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에게 왜 이걸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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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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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이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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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 일… 때문에 고맙다고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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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겸연쩍게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가 뭘 또 실수했나 싶어 심장이 두근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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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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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가 내 손을 잡고 어딘가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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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보고 책임지란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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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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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군은 나를 테라스에 데려갔다. 다행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바보 같은 얼굴을 모두가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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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른 척해? 이걸 나에게 줬다는 것은 그런 의미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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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러면서 나에게 내가 준 베어브릭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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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물을 구하는 것에만 신경 쓰는 바람에, 내용물에 대해서는 자세히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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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필이면 그것은 웨딩버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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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정 때문에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알겠어. 그런데 나는 여자의 과거 따윈 묻지 않는 타입이거든? 그러니까 내가 말해줄게. 나랑 사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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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용삐용. 응급상황이다! 머릿속에서 엠뷸런스 100대가 지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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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찌할 줄 몰라서 얼굴만 붉힌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다시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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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틀 줄게. 그때까진 답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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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군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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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결국 그날은 하루 종일 아무 답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머리가 멍해져 아무 생각도 안 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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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 여자? 그런데… 이래도 괜찮나? 친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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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상념이 복잡하게 뒤엉켜서, 제대로 된 문장조차 떠올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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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그가 준 이틀 중의 하루를 아무 소득 없이 낭비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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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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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된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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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친구 사이일 뿐이고, 나는 아직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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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치를 하며 그 문장을 수십 번 되뇌었다. 그런데 출근해서 그를 본 순간, 그런 생각 따위는 눈 녹듯 사르르 녹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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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까지 그를 이성으로 생각한 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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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를 보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일하는 내내 그 상태가 지속되어 미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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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오늘도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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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신체 변화는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여자의 감정이란 것이 이렇게 섬세하고 복잡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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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어했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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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그거고, 어찌 되었든 간에 그에게 답은 주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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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이틀째 날의 아침이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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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에 출전하는 기사처럼 옷을 신경 써서 입었다. 그것이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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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그와 나는 서로 힐긋힐긋 쳐다만 볼 뿐,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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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식으로 퇴근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대치 상태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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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가 끝나고 한잔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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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내 쪽이었다. 여기서도 회피해버리면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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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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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메시지로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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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퇴근하자마자 즐겨 찾던 역삼역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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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삼겹살집을 고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여자가 되었다고 갑자기 점잔 빼면서 호텔로 가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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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곳에서 회사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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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장 진짜 좀 그렇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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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가 내 몸을 훑어볼 때는 소름이 끼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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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적당히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마음 한쪽에 ‘그것’이 추처럼 매달려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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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야, 좀 생각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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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것을 견디지 못한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그 말에 빙그레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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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참을 줄도 알아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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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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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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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다. 우리는 천천히 길을 따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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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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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어느새 눈 한 송이가 내 손에 하늘거리며 떨어졌다. 그것은 순식간에 녹았으나, 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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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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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A군은 눈이 와서 추운지, 손을 비비며 입김을 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는 가방에서 목도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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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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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그에게 둘러주었다. 그러자 그가 눈이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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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군, 나를 지켜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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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도리를 여미며 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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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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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갑자기 그런 말을 들을 거란 생각하지 못했는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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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시선과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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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A군은 내 말의 의미가 뭔지 깨달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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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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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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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나는 미소 지었다. 내가 목도리를 매어 주고 나자,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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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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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상황은 좋지 않을 것이다. 여자로서의 삶은 만만치 않게 힘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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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옆에 누군가 있어 준다면 그런 것들은 단순한 장애물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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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이 오는 길을 서로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