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기다리고 있었어."
사하령
28세 161cm 불명
불변성 | 거리감 | 미련 | 비밀스러운 | 한결같은 애정
(아이유)
인간은 꽤나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동물이지. 그러니까, 존재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거야. 혼자서는 나약하고 무력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 말을 꺼내는 것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려는 목적이 아니야. 혼자라면 벽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하고자 함에 가까워. 어쩌면 내 이야기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어. 역시, 혼자서는 역부족이라고 느꼈거든. 그러니까 나는,
네가 필요해.
도와줄 거지?
그 사건이 있고 나서도 일상은 여전히 흐른다. 부원들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가도 그날의 일을 점차 잊고 모두가 하나 둘 명강여고를, 명강시를 떠나갔다. 그날은 잠깐의 악몽 정도로 취급해 버린 거겠지. 그 무렵 하령은 그곳에 홀로 남아 부원들을 배웅하는 쪽이었다. 떠나가는 그들을 보며 잘 가라며 웃었나, 혹은 멍하게 바라보기만 했었나, 그것도 아니면 서럽게 울었는지. 무엇이 정답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른 것들이 앞서 우리의 눈을 가렸으니까. 줄곧 살아왔던 터전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로 비롯되는 두려움, 기대, 긴장감과 설렘 등. 수많은 감정의 과잉에 시달리는 탓에 남겨지는 사람에 관한 것은 자연스럽게 뒷전이 되었다. 그러고는 완전히 잊어버렸지.
그런 상태로 10년이 지나고. 수많은 세월이 하령을 스쳤음에도 하령은 변한 것 하나 없다. 마치 십 년 전 기억의 조각을 뚝 떼어내 빚은 모양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쉽게 허물어지는 웃음이나 진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눈빛까지도 아주 여전하다. 그나마 조금 달라진 지점이라곤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긴 탓에 조금 더 비밀스러워진 것 같다는 점일까. 그렇지만 하령을 지나간 시간들은 그만 생략하기로 한다. 그 세월 속에서 하령이 어떻게 지내왔는지는 역시,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령이 모든 것들을 기억한 채로 아직도 이곳에 남아있다는 사실 정도가 되겠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가 떠나간 마을. 교정에 서서 소원나무를 올려다보다 나뭇결이 선명한 줄기 위로 천천히 이마를 기댄다. 하나하나 곱씹어보는 기억 속의 얼굴들은 잊혀질 줄을 모르고 선명하기만 하다. 그 사건으로부터 벌써 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 차라리, 나도 전부 잊었더라면. 아니, 함께 떠날 수 있었더라면. 하지만 동시에 느낀다. 무언가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가슴이 작게 술렁인다. 이젠 정말로 때가 된 거야.
그러니까 돌아오기로 해. 그리고는 떠올려.
우리의 약속을, 우리의 저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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