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Know About You
10월 4일 금요일
도시 외곽의 큰 공원에서 러닝을 마치고, 로건은 적당히 오른 숨을 가다듬으며 고민이 무색하게 얼른 차에 올라탔다. 다리는 차 밖으로 쭉 빼둔 채였다. 정해진 의무처럼 물을 들이키고 허벅지 여기저기를 주물렀다.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시월 초의 한기가 스틸베리 시를 은근하게 감싸고 있어도 방금까지 그 뜀박질을 하고 온 로건에게 그 주위 공간은 아직 여름이었다. 시동을 걸었고 에어컨이 제 역할을 할 때까지 운전석 문을 열어 놓고 기다렸다. 그리고 이따금씩 분홍색 스포츠 타월로 땀을 닦았다. 이렇게 반갑게 차 탈 거면서 왜 매일 아침마다 차를 끌고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것인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셋째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로건은 쉬는 동안 아침마다 러닝을 나간다고 했다.
— 공복에 뛰는 거 안 좋다던데.
— 그건 누나 얘기고, 나는 근육이랑 지방이 다 많아서 괜찮아.
로건이 차를 몰고 향하는 곳은 시내에 있는 태권도장이었다. 이런 작은 도시에 있는 교육 시설 치고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고 크지는 않지만 샤워장도 딸린 곳이었다. 로건이 그곳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건 그 집 아들인 케이든 한 덕분이었다. 두 달 전 다른 공원에서 아침 러닝을 뛰다 만난 케이든과 로건은 금방 친해졌다. 케이든은 시내에 태권도장이 있는 걸 아느냐 물었고, 로건이 그렇다 답하자 자신이 그 집 아들인데 도장에 샤워장이 있으니 같이 가서 씻어도 된다며 선뜻 제안까지 했다. 로건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 가던 헬스 클럽의 주인은 거기서 운동을 하지도 않고 샤워만 홀랑 하고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괜히 그런 식으로 대면하는 게 좀 짜증 나기도 하고 갈 때마다 아 관장 없겠지, 하면서 복불복에 맡기는 게 말하자면 좀 현타가 와서 다른 곳을 물색하던 참이었으니까. 로건은 새로운 운동을 배워 볼 겸 도장에서 평일 저녁 이후에 진행하는 직장인 클래스에도 들었다. 원래 같았으면 도복을 바로 줬어야 했는데, 로건의 몸에 맞는 도복과 띠가 없어 주문 제작을 해야 했다. 케이든의 어머니가 치수를 재면서 이게 사람이야 소야,라고 우스개소리를 했고 로건은 소에 조금 더 가깝긴 할 거예요,라고 농담을 덧붙였다. 로건의 무릎과 어깨 부상을 전해 들은 케이든의 어머니는 수업 강도를 세심하게 조절했고, 로건은 브이로그도 몇 편 찍어 올리면서 나름의 홍보에도 일조해 주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제야 로건은 반소매와 반바지만 입고 다니기에는 꽤 추운 날씨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머리가 덜 말라 모자는 손에 들고만 있었고, 슬렁슬렁 움직이는 주황색 머리카락 사이로 쌀쌀한 아침 바람이 물기를 조금씩 훔치며 달아났다. 로건은 조수석 문을 열어 러닝 전에 벗어 둔 체크 셔츠를 다시 입었고, 문을 닫고 창문을 거울 삼아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영락없는 컨트리 스타일의 흔해빠진 백인 남자였다. 덩치가 심하게 큰 것만 빼면.
운전석에 다시 앉아 시동을 걸자 조금 전에 끊겼던 노래가 이어서 흘러나왔다. 메이지 피터스의 〈Lost the Breakup〉이었다. 남자친구에게 차였지만 대충 너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네가 놓친 것들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내가 주는 사랑인데, 네가 진 거야, 그런 내용의 신나는, 쿨하게 이별을 감내하는 것도 같고 그냥 정신승리 하는 것도 같은 노래였다. 그러다 ‘넌 네 전 여친한테 전화나 하겠지’라는 가사가 나왔을 때, 로건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피식 웃었다. 이런 노래들에서 항상 남자들은 헤어지고 나서 전 여자친구들한테 연락하더라. 하긴 그런 애들이 많긴 하지. 그렇게 하면 뭐 전 여친이 아이고 잘 오셨소 하면서 받아 주겠냐…… 나는 전 여친이랑 헤어졌을 때도 그 전 여친한테 전화하지는 않았는데, 그러면서 로건은 머릿속에 대충 ‘등신 같은 남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자신이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이유를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그러다 2절에서 가수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그래, 그렇겠지. 네 취향은 컨트리랑 웨스턴, 딱 두 가지잖아!”라고 외치자 로건은 이야, 그건 진짜 아니다, 하며 공허하게 웃었다.
차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 다음이었다. 정확히는 몇 가지의 자잘한 생각을 거친 짧은 의식의 흐름 이후였다. 신나는 이별 노래를 듣고도 생각이 많아지는 건 지금이 가을이라서 그런 건데 이 가을이 조금씩 끝나가면 나는 다시 일거리를 잡아야 하고 사실 지금도 얼추 업체를 알아봐 놓은 상태이기는 하니까 일 걱정은 없었는데 문제는 한두 시즌을 통으로 쉬어 놓고 다시 차를 몰았을 때 내 컨디션이 완전히 돌아오느냐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차의 컨디션이 돌아오느냐, 그러려면 그 차를 좀 오랜만에 안팎으로 좀 씻고 교외로 좀 몰아 보고 감을 좀 되돌려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초단기 계획을 잡고 나니 로건은 그것들을 꼭 이행해야 하겠다는 묘한 압박감이 들었고 어깨에 긴장감이 배었다.
로건은 집으로 곧장 가는 대신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싱클레어 베이커리에 들렀다. 아침에 먹을 빵을 사 갈 요량이었다. 싱클레어 베이커리는 아침 일찍 여는데다 구글 지도에서는 무려 평점 4.9를 유지하고 있는 맛집이었다. 만점이 5점인데 자그마치 4.9! 로건은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들에게 스틸베리 자랑 좀 해 봐, 범죄율 높은 거 말고,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동네에 구글 별점 4.9짜리 빵집이 있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미시간 중부에서 제일 맛있어,라고도. 지금까지 쓰인 리뷰가 천 개가 넘는데도 그런단 말이야, 천 개가. 유일한 단점은 현금만 받는 거랄까. 그러면 대개는 감탄했는데 가끔 누구는 거기가 제일 맛있는지 어떻게 알아,라고 딴지를 걸었고 로건은 나야 모르지, 내가 모든 빵집을 다 가 본 건 아니잖아, 근데 진짜 맛있어,라고 둘러대기의 성격을 띤 해명을 했다. 그런 과정은 로건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와 하는 자랑이기보다는 부단히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여기도 내 집이야, 그러니까 자부심이며 애정이며 가지고 사는 편이 좋아, 하는. 사람은 어딘가에 몸이건 마음이건 정착을 이뤘다는 감각이 있어야 좀 살 만하고 그런 거니까.
로건은 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하루나 이틀 치 먹을 정도의 양을 사 갔는데, 그 빵집의 주인은 여기 머무는 동안 자주 오기도 하고 올 때마다 한아름 사 가는 로건을 기분 좋게 맞이했다. 로건은 그 미소에 덩달아 기쁘면서도 왠지 모르게 찔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실은 더 자주 올 수도 있다, 그것을 책상 앞에 앉아 영상 편집을 딸깍, 딸깍, 하면서 우적우적 한 끼 식사로 다 먹는다—고는 차마 제 입으로 말하지는 못했다.
“플레인 글레이즈드 두 개랑요, 어……,”
투명한 진열장 바깥으로 대충대충 나붙은 체리, 커스터드, 블루베리, 당근 케이크 같은 메뉴 포스트잇을 읽으면서 로건은 이제는 조금 자연스럽게 정비소에 있는 라나 생각을 했다. 7월 초, 라나는 로건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운전은 로건의 의지로 한 것이었지만 그런 ‘이끎’의 형태는 확실히 라나가 로건을 데리고 간 것이었다—한국 라면을 끓여 먹인 적이 있는데, 로건은 그 한 그릇을 매워하면서도 곧잘 먹었다. 다음에 로건이 정비소를 찾아갈 때는 보답의 뜻으로 빵을 사 갔다. 이후로 둘의 그런 음식을 통한 교류는 너무 잦지도, 또 너무 가끔이지도 않게 적당한 비주기로 이루어졌다. 주로 라나는 집에 있는 재료나 완제품으로 음식을 해 먹이고, 로건은 자신의 집 주위에 있는 가게의 음식을 포장해 찾아가는 식이었다.
언제든 가도 만날 수는 있었지만 언제든 시간이 맞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로건은 기간 한정 백수이고 라나는 직장인인 탓에 몇 번은 라나가 바쁜 때에 찾아가 버려서, 정비소 로비에 덩그러니 앉아 보이는 바쁨과 보이지 않는 바쁨을 지켜보면서 시간을 죽여야 했다. 그러고 나면 보답과 호의와 무슨 빵을 좋아하지, 하는 조심스러움과 “몇 분 줄 서서 샀어” 같은 뻔뻔한 생색 같은 것들이 빵의 그 고소하고 달고 조금 콤콤한 냄새와 은근했던 봉지 속 온기처럼 온데간데없어지고 좀 무용해졌다. “아, 나 올 때는 따뜻했는데……” 같이 아쉬움 짙은 말을 흘리고 나면 라나는 로건을 좀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봤고 자신이 뭐 대단한 걸 대접한 것도 아닌데 정성이 갸륵하다며 옆구리를 찔렀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나서는 점점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 갔다. 예감과 직감을 활용해서 정확하게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도 되냐고 조금 당연한 정성을 들여 물어보는 것이었다. 답장이 없으면 바쁜 것이었고 조금 이따,라고 하면 정말 조금 이따 갔고 퇴근해야 할 듯,이라고 하면 로건도 그냥 내일 아니면 다음에 보자, 하고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갔다.
지금은 여덟 시였고 정비소는 아홉 시에 여니까 영업 전에 잠깐 보려면 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럼 갈까, 고민하다가 로건은 아니야, 안 그래도 오픈 준비 중일 텐데 바쁠 때 가면 미안하지, 거기다 이미 아침까지 먹었으면 더 어색할 것 같고, 하며 그만두었다. 근데 라나가 아침을 먹던가, 그건 안 물어봤으니까 몰랐다. 아무튼, 그건 그냥 ‘아무튼’이었다.
“근데 올 때마다 이거는 왜 안 가져가요?”
“어떤 거요?”
이거, 하며 점원이 가리킨 것은 귀엽게 생긴 하트 모양 도넛이었다. 흰색 글레이즈로 덮여 있고 아래쪽 면은 발갛게 브이 자 글레이즈가 묻어 있는. 딱히 의식해 본 적은 없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로건은 저것도 달라고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다음에 올 때 가져갈게요, 하며 지갑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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