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1년이나 그림을 그리라고요?
4학년 천문학 과제
이 천문학 과제는 내 삶이 시작된 이후로 최악의 과제야! 펠릭스가 드물게 투덜댄다.
“그리웠어. 통금시간 이후 몰래 빠져나와 맞이하는 호그와트의 새벽이.”
“역시 넌 뭘 좀 알아.”
천문탑에서 학구열을 불태우는 대신 자율 비행을 마치고 나란히 로브 자락에 바람 냄새를 묻히고 들어온 소년들 뒤로 새벽 하늘이 반짝인다. 둘의 손에는 똑같은 기종의 빗자루가 들려 있다. 파이어볼트, 프로 퀴디치 선수들이나 사용한다는 그 마법사의 스포츠카를 겁도 없이 구매한 이 도련님들은 지금 여러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착륙을 미루다 결국 한 시간 가량을 비행에 투자해 버린 것을 깨닫고 지상으로 내려온 차였다.
밤하늘을 돌아다니며 별 사이를 유영한 두 소년의 그림은 다소 낭만적인 맛이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 둘은 분위기에 취해 별의 역사를 새로 쓰자며 밤하늘로 날아든 낭만주의자들이 아니고, 교수가 엄격한 얼굴로 일 년 내내 호그와트의 밤하늘을 그려내라고 엄포를 놓은 탓에 현실에서 도피하듯 하늘을 가른 평범하다면 평범한 학생들인 탓이다.
원래 공부라는 건 사전지식 좀 기르고, 예습 좀 하고, 복습 좀 한 다음에 이해 안 되는 것만 주변에 물어보고 책 좀 찾아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일 년이나 걸리는 장기 과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지간히도 싫은 건지 펠릭스가 속으로 불만을 토로한다. 매사에 부지런하기는 해도 늘어지는 건 싫어하는 특이한 성격 탓에 그에게 있어 이번에 교수가 내어준 천문학 과제는 매우 끔찍한 것이다. 과제를 위해 만년필을 드는 것조차, 옆자리에 앉은 카르윈의 길다란 속눈썹에는 하늘을 들여다보느라 별이 맺혔음에도 제 양피지는 텅 비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진 다음에야 겨우 시작이 가능할 정도로.
그래도 어쩌겠어, 해야지… 하늘을 쳐다본 그가 제 친구의 손끝 따라 하늘을 그렸던 과거를 반추하며 양피지에 하늘을 옮겨담는다. 어쨌건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가 양피지 위에 선을 그려 가며 옆자리의 달빛으로 빚은 듯한 소년에게 말을 건다. 그거 알아, 카르윈? 베가가 말하길 저기 있는 별자리는…
*
“… 무슨 별자리인지 알고 보면 예상이 가긴 합니다만….”
“말도 마. 베가가 보고 한참 웃더라!”
“1학년부터 지금까지 같이 공부해 줬는데 이게 그 결과라면 울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아… 방금 그 말은 좀 마음이 아파, 제니.”
결국 돌고 돌아 펠릭스가 에이레네에게 제 과제에 대한 감상평을 부탁했을 때, 쏟아지는 다소 신랄한 평가에 그가 눈썹을 그러모으고 웃었다. 글씨를 쓸 때는 그 누구보다 예쁘게 글씨를 쓸 수 있는데 그림만은 왜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지! ‘애착 슬리데린’이라는 명목으로 주기적으로 슬리데린 기숙사 친구들을 옆구리에 낀 채 천문탑에서 꽤 오랜 기간을 보냈는데도, 그가 세상에 내놓은 건 과제라기보다는 차라리 난해한 현대미술이라 보는 것이 바람직한 꼬락서니의 양피지였다. 맹세컨대 과제를 등한시한 게 아니고, 현대 미술의 거장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도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노성을 지를 것 같은 그의 처참한 그림 실력 덕이다.
전문가가 그린 것처럼 정교하고 아름답던 바니카의 하늘 지도를 생각하면 제 그림이 양피지에 대한 모욕으로 보일 수준인 것은 본인도 알기에, 죄인이 입을 다문다. 나 어떡하지, 제니… 이러다가는 사상 최초로 유급하는 리버포드가 되고 말 거야… 버터맥주를 파이어위스키처럼 마시며 하소연하는 꼴이 애처롭다.
“안되겠습니다. 줄 긋는 법부터 다시 가르쳐 드리죠. 당장 들어가서 노트와 펜 가져오십시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의욕이 든 건지 에이레네가 결국 먼저 자애를 실천한다. 그 말에 기운을 차리고 너는 그리핀도르로 가지 않았으면 후플푸프였을 거라느니 최고의 메이드 친구라느니 하는 찬사를 아낌없이 퍼부은 후 제 방으로 필통을 챙기러 가는 펠릭스의 뒷통수에 희미하게 아름다운 미소를 남겨주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별개로 펠릭스, 제일 처음 그렸다는 그림이 꽤 마음에 드는데 가져도 됩니까? 그래, 제니 네가 갖고 싶다는데!
* 공백 포함 1999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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